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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의궤도설과 기록화를 통해서 본 연향 연구

Title
조선후기 의궤도설과 기록화를 통해서 본 연향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Royal Banquet through Uigwe diagrams and Documentary paintings in the last period of Joseon Dynasty : focused on the configuration of culinary tables
Authors
정희정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조미숙
Abstract
조선(朝鮮)은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예악정치(禮樂政治)를 실행하기 위한 왕실례(王室禮)로 오례(五禮)를 규정하였다. 가례(嘉禮)의 연향(宴享)도 오례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규정한 의식절차에 따라 음악과 무용이 있는 가운데 술과 음식을 나누는 의례적 행사로 연향의 기본적인 내용은 담보하면서도 자연발생적 연향과는 차별되는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은 조선시대 통치 방식으로 채택된 가례의 의식적 연향을 예연(禮宴)으로 규정하고 예연의 본질과 성격, 변화를 의례절차에 따라 등장하는 연향의 대상자, 즉 주빈(主賓)의 음식상(飮食床)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연향의 음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존 연구의 방법론으로는 조선시대 예연에서 음식의 의미와 본질, 시대적 변천을 이해하기 미진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연향 음식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하여 조선시대 예연의 연원과 예연 음식상의 의미, 실체와 변화의 실상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이제까지 연향의 음식연구의 주요대상이 관련 의궤 「찬품(饌品)」의 음식이었다면 본 연구에서는 음식을 차린 음식상을 상위 개념으로 상정하고 연구의 주요대상으로 하였으며, 그 중 예연의 성격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예연의 주빈을 위한 음식상만을 분석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예연 주빈의 음식상에 대한 문헌의 문자자료와 함께 관련 시각자료의 유기적 분석을 통해 예연공간에서 주빈 음식상 배설의 실체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예연은 헌작을 중심으로 형식절차가 강한 의례적 연향으로 중국의 오례가 고려시대 왕실의 적극적인 수용과 적응 과정을 거친 후 조선시대 초기 유교의 이해와 당대 상황 속에서 재규정되면서 조선 사회에 정착한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고려의 국가 전례서가 조선시대 세종대 새로운 국가의 오례 제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을 규명함으로써 조선시대 예연의 연원을 밝혔다. 예연이 국가적 차원에서 문서화된 것의 시작은 고려시대 최윤의(崔允儀)의 『고금상정례(古今古今詳定禮)』였다. 조선시대 예연 음식상의 특징은 『국조오례의』와 『고려사 예지』의 비교를 통해 도출하였다. 조선후기 예연 음식상의 실체는 현존하는 관련 의궤 19종의 「찬품(饌品)」과 「의주(儀註)」의 분석을 통해 확인하였다. 예연의 주빈을 위해 평균 13개의 음식상이 마련되었으며 연향에 따라 음식상의 수와 구성, 의례절차 중 배설 순서의 변화가 있었다. 본 연구자는 음식상 변화의 요인을 시대와 예연의 명칭으로 보고 예연 명칭과 음식상과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분류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예연공간에 배설되는 음식상의 특성에 따라 1차 분류를 하고, 이를 다시 명칭에 따라 재분류화함으로써 예연 명칭과 음식상, 헌작수와의 관계를 규명하였다. 예연 음식상은 찬안상류, 소선·대선, 미수, 기타 상들로 구성되며 평균 13개였다. 예연 명칭과 관련된 음식상의 종류는 찬안상류였다. 풍정은 헌작수 9작에 연상, 좌·우협상, 별행과상을, 진연은 헌작수 9작에 대탁, 별행과상, 찬안상을 진연은 헌작수 7작에 별행과상과 찬안상, 수작은 헌작수 3작에 찬안상의 구성이었다. 영조와 정조는 수작(受爵)과 진찬(進饌)이라는 예연의 명칭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왕실의 의지를 의례절차와 음식상 등으로 드러내었다. 연향 명칭과 관련된 의궤와 『조선왕조실록』등에서 새로운 예연 명칭이 규정되는 배경을 파악하여 해석을 뒷받침하였다. 예연 구성 음식상의 의미와 변화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알아보기 위해 관찬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분석하였다. 국정의 논의 속에 예연의 음식상을 다루었다는 것 자체가 예연에서 음식이 갖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반영하는 것이다. 관찬역사서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예연 음식상은 소선(小膳)과 대선(大膳), 염수(鹽水)였다. 논의의 주요 내용은 이들 음식상에 필요한 식재인 당안(唐雁)에 관한 문제였다. 예찬(禮饌)으로서 소선, 대선, 염수의 당안은 중국 오례의 수용과 한국의 음식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으로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켰다. 영조대 이 문제는 거의 30년간 지속적으로 국정에서 논의되었고 최종적으로 1773년 영조는 증자(曾子)의 고사에 나타난 고기음식의 의미와 자성의 뜻을 따른다는 효(孝)를 표방함으로써 예연에서 당안을 제외시켰다. 이후 예연의 음식상 변화는 19세기 초반 효명세자 대청시기와 고종 29년(1892) 대한제국으로의 전환 직전에 있었다. 효명세자 대청시기 예연의 「의주」 변화와 함께 진다(進茶)와 과합(果榼) 등 새로운 음식상이 등장하였고 대한제국으로의 전환 직전에 의례절차와 음식상를 통해 고종은 복고(復古)의 의지를 표명하였으나 의미는 담보하지 못한 채 형식만 복잡해졌다. 예연공간에서 주빈 음식상 구현의 문제는 문헌과 기록화의 융합적 분석을 통해 시도하였다. 그러나 시각자료에는 모든 음식상이 그려진 것은 아니며 대부분 찬안상류만이 선택되어 표현되었다. 시각자료의 소재로 채택되어 표현된 음식상과 채택되지 않은 것의 의미는 각 예연 음식상에 대한 당대의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례가 거행되는 공간의 중심을 차지한 찬안상류는 예연을 통해 드러내고자한 의미를 담은 상징물로 이해하였다. 예연공간의 기물 배설을 다룬 의궤「배설(排設)」을 사이에 두고 의궤의 「찬품」과 「도식」을 함께 분석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찬안상류는 상의 구성과 수량에 따라 네모형, 일(一)자형, 정(丁)자형, 분리형으로 예연의 공간에서 배치되었음을 밝혔다. 또 고종 임진년과 대한제국기 외연의 음식상 배설의 문제를 18세기 연향 기록화에 그려진 외연의 음식상 배설과 함께 해석하는 과정에 그동안 공안(空案)으로 알려졌던 상이 별행과상, 대탁임을 밝혔다. 또한 조선시대 예연에서 외연 찬안류상의 기본적 배설 형식은 분리형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수주정에 관한 「배설」과 「도식」의 분석을 통해 시대가 내려가면서 관련된 예기(禮器)가 분화되고 증가함을 알 수 있었으며, 대상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기형의 예기를 사용하였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상의 연구과정을 통해 조선시대 예연의 음식상 배설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였다. 조선시대 예연의 음식상은 중국 오례의 형식적 규칙성은 유지하면서도 조선의 사회문화적 환경, 시대의 변화, 그리고 국왕의 의지에 따른 변화를 하였다. 관찬역사서 속에서 인식된 당대의 예연 음식상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변화의 요인을 추정하였다. 예연 음식상에 담긴 조선 왕실의 예악정치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예연 음식상을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시대별 예연 음식상 구성과 배설의 순서에 대해 확인하였으며, 문자자료와 시각자료의 융합적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예연 음식상의 실체, 특히 예연 공간에서 찬안상류의 배설을 구체적으로 규명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각 분야에서 단편적으로 진행되었던 학문적 경계를 허물고, 음식문화 연구에 구체성과 미술사 연구에 의미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예(禮)는 사물의 실체를 체득하는 것이며 『석명(釋名)』禮 體也 得事體也 , 음식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禮運」夫禮之初 始者飮食 조선시대 예연에서 주빈을 위해 마련한 다수의 음식상은 왕실의 위의(威儀)와 유교적 차서(次序)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상징물이었다. 예연의 음식상은 조선시대 전기간 동안 기본적 구조를 유지하는 보수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오례에 비해 시대적 변화가 많아 당대의 예에 대한 인식이 음식상에 반영된 측면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예연에서는 음식의 차등을 통한 예(禮)의 구현과 동시에 외연 후 음식을 청색보자기[靑褓]에 담아 나가도록 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음식을 공유하는 악(樂)도 추구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예연 음식상은 예악정치의 상징물이자, 실현을 위한 매개체였다.;Joseon Dynasty enacted Five Rituals as the royal decencies to implement Confucianism politics. As the one of Five Rituals, the enacted Royal Banquet was held having alcohol and food with formal music and dance. Accordingly the enacted Royal Banquet was different from spontaneous feast. The aim of this study is to figure out the nature, the character and the change of the enacted Royal Banquet from the analysis of the guest of honor’s culinary tables. Until now there were a lot of studies on Banquet food of Joseon Dynasty, but they are not enough to understand the meaning, the essence, and the historical changes of the food in the enacted Royal Banquet. Therefore, I am going to attempt to investigate the origin of the enacted Royal Banquet, the meaning, the essence, and the historical changes of the food under the social cultural aspect of new methodology. In this study, the object of the study is the culinary tables, honor’s culinary tables, comparing the current research which was focused on foods themselves. And I am going to attempt to figure out the configuration of the culinary tables by the conjugate analysis of the written and the visual materials. The enacted Royal Banquet of Joseon Dynasty was a ceremonial occasion adoptted from China. Goryeo Dynasty attempted to adopt the Confucian Five Rituals as the political means. Initially enacted Royal Banquet was Choe Yunui GogeumSangjeongrye in Goryeo which influenced to enact the Royal Banquet of Joseon Dynasty. In the latter of Joseon Dynasty, the culinary tables was 13 in the enacted Royal Banquet averagely. As per the Banquets, the number, construction, the order to appear of the culinary tables had been changed. In this study the Banquet was classified by the character of the culinary tables in the space and the 2nd classified by the name of the Banquet. As a result, I identifi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ame of the Banquet and the construction of the culinary tables and number of the offer a cup of drink. Pungjeong was the 9 of the offer a cup of drink and Yensang, left and right supportive table, chanansang, Jinyeon 9 and ByeolHaenggwasang, Daetak, chanansang, Jinchan 7 and ByeolHaenggwasang, chanansang, and Sujak 3 and chanansang. The meaning and the historical change of the culinary tables was studied through the government complication, Joseonwangjosillok and Seungjeongwonilgi. It reflects the political and social cultural importance of the culinary tables that were discussed in the government. It were Soseon, Daeseon and Yeomsu that were discussed the most frequently. And the main contents were food material, Dangan. Dangan was supposed to be the point of food cultural collision and brought the social problem. After more than 30 years’ discussion, Dangan disappeared from the culinary tables of the enacted Royal Banquet in 1773 by the King Youngjo as the name of the filial duty. After then there were 2-times of the historical change, Prince Hyomyeong’s Daecheong period and the King of Gojong 1892. First, ceremony process was changed and piled up the culinary tables, second, had become more complicated by the restoration of the ceremony process and the maintenance of the culinary tables. But the restoration of the ceremony seemed empty without the meaning. It was attempted to study the configuration of the culinary tables in the enacted Royal Banquet through the conjugate analysis of the written material and visual material. But in the visual material there were not all of the culinary tables, only the group of chanansang. The group of chanansang was made with the long-leg-table comparing the other culinary tables with the short-led-portable dining table. And the number of tables formed an increasing culinary tables, and at the last Banquet, the total number of the tables was 16. In the documentary paintings, the configuration of the culinary tables look rectangle, but the study identified the 4 types-rectangular type, linear type, 丁-type, and Separated type in the enacted Royal Banquet in the latter Joseon Dynasty. Especially in the Oeyeon, Separated type was the typical one from 17century to 20century. In the process, I found the culinary table surrounded by a folding screen of Irworobongdo was the group of chanansang, ByeolHaenggwasang·Daetak, not the Gongan for the Soseon. And the ceremonial things for the offering a cup of drink was divided and increased as the generation went by. And the ceremonial things were made by diverse material and shape. Sustaining the rule of the Chinese Confucianism the culinary tables of the enacted Banquet of Joeson Dynasty have changed according the social cultural change, historical change and the will of the King. This study is the first attempt to identify the configuration of the culinary tables by the new methodology of the conjugate analysis of the written and the visual materials.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he first interdisciplinary study between the food cultural study and art history, giving the basic research to the food cultural study, concreteness and the semantics to the art history beyond the form analysis. In the enacted Royal Banquet, the food was the medium the Ye(禮) by the grade and the medium of the Ak(樂) by the blue rapping cloth to carry the food out of the court. And the culinary tables of the enacted Royal Banquet of Joseon was the symbol of the Yeakpolicits(禮樂政治) and the medium to fulf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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