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43 Download: 0

中國의 ‘저(菹)’ 변천사

Title
中國의 ‘저(菹)’ 변천사
Other Titles
The History of Chinese ‘Zu(菹)’
Authors
申桂淑
Issue Date
2004
Department/Major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李鍾美
Abstract
This study was performed by researching a literature and field investigation to examine the history of Chinese ‘Zu(菹)’. The literatures used in this study were old references, custom writings, encyclopedia of agriculture, and cooking books that were related to ceremonies. In addition, a field investigation was done in the areas of Peking(北京), Zheijiang(浙江), Shanghai(上海), Sichuan(四川), Yuinnam(云南), and Kuiju(貴州). The ‘Zu(菹)’ is a kind of food with salt that will store in a long period of time. Although the ‘Zu(菹)’ was originated from China, the name of ‘Zu(菹)’ is not used in the recent years. It has been used as a similar group of the ‘Zu(菹)’, such as Eumchai , Jangchai (醬菜), and Pochai (泡菜). Thus, this study would attempt to examine the history of its origination and changing. The history of its changing was classified by the era of before Jin(秦) and Han(漢), the South and North Yui and Jin(魏晉南北朝), Su(隋) Dang(唐) and Song(宋), and Won(元) Myung(明) and Chung(淸). Consequently, it was notified that the ‘Zu(菹)’ has already existed before 3,000 years ago in the Sang generation. The ‘Zu(菹)’ existed in the era of SunJin was made by Go that was a food, which was enjoyed in a meal, banquet, religious ceremony of an emperor and a ceremonial occasion.The ‘Zu(菹)’ should be used with a Yukjang , Su (醯), Yukjang, and Jae. In addition, the Jang (醬) was considered as a more important one than the ‘Zu(菹)’ in a banquet or religious ceremony in its order of using. Because of the different numbers of Du(豆), which is a vessel for containing the ‘Zu(菹)’, the numbers of the ‘Zu(菹)’ is a scale of social standing. In the era of Han, the use of Yukjang (肉醬) was a more frequently used one for other ones. There was a Ja, which was a food of the mixture of fish with rice and salt, that was newly appeared in the era. It can be seen that the range of the ‘Zu(菹)’ was extended because the new Ja was also named as a ‘Zu(菹)’. People of the social standings who enjoyed the ‘Zu(菹)’ was expanded from an emperor to a landowner in which the ‘Zu(菹)’ became a popular food enjoyed in a particular privilege class. Moreover, the shape of the ‘Zu(菹)’ in the Han generation showed a different aspect according to the regions because the regional division of Han generation was performed by the idea of the South and North. Whereas, the production methods of the ‘Zu(菹)’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was different in which the North simply used salts, but the South used a kind of gruel in the production. There was an evidence that a jar of Pochai(泡菜) with juice was found in somewhere of the South of the Yellow river. The materials used in the ‘Zu(菹)’ was varied by the introduction of herbs, garlics, and strain roots by Janggun who reclaimed the western countries.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Zu(菹)’ can be investigated by the agricultural book of the Jakzujangsangchaibup (作菹藏生菜法) of Jaeminyosul 《齊民要術》, written by Gasahyup who was the emperor of Sandong territory, Bukwei in the era of the South and North Yui and Jin. In the book of the Jakzujangsangchaibup (作菹藏生菜法) of Jaeminyosul 《齊民要術》, it considered that a Chaizu was popular in that era based on the many methods for the production of the ‘Zu(菹)’ in which 32 kinds of Chaizu(菜菹) and one kind of Yukzu(肉菹) among the 33 kinds of the production methods were found. The Chaizu(菜菹) was classified by Hamzu(鹹菹), Damzu(淡菹), and Janzu(藏菹). The Jae was dished with raw fishes or raw beefs by mixing and pounding using various materials like rices, chestnuts, and so on. The Pochai(泡菜) was not known its actual pictures even though a jar was excavated. Consequently, it simply assumed that it was a kind of Kimchi that has juices because the Jakzujangsangchaibup (作菹藏生菜法) of Jaeminyosul 《齊民要術》 introduced the production methods of the ‘Zu(菹)’ in the South, such as the method of Chokin, Oh, and Dongkangjizu. In the era of Su(隋) Dang(唐), the use of the ‘Zu(菹)’ was activated. However, the selections of foods were varied by following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technologies and increase of the exchanges with the outsides. However, the name of ‘Zu(菹)’ was disappeared by the invasion of the North where was a large used region of the ‘Zu(菹)’ by Yeojin, but the use of the Jae increased by the South where the people of Han settled by the southward movement. The Jae presented various types, such as vegetables with salts, pastes used for some fishes, vinegar salad, and Kimchi with juice. In addition, the Jagnchai(醬菜), which was produced by using vinegar or wine, was also introduced by the increase of spices, such as wine, vinegar, and other things. The Eumchai produced in the era of Won(元) Myung(明) and Chung(淸), it usually used in the whole area of the South and North and was produced with some herb medicines, such as a fennel, Chinese pepper, and licorice as an idea of Yaksikdongwon (藥食同源). By varying the period of storage as a long or short period, the Eumchai, which was usually stored in a short period, was added by some sesame oil for its flavor. The Jangchai(醬菜) was produced by various methods that used presalted vegetables with soy bean, vinegar, wine slop or used unsalted vegetables with vinegar preservation. These methods were used in the South. The Pochai(泡菜) was made by using soup with salts and soak vegetables in the soup. In addition, it was added a flavor by using red peppers that was firstly introduced in the era of Chung(淸).;‘저(菹)’는 소금에 절여서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나 오늘날 ‘저(菹)’라는 명칭은 사용되지 않고 ‘저(菹)’의 무리로 볼 수 있는 엄채, 장채(醬菜), 포채(泡菜) 등이 이용되고 있어 이들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저(菹)’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저(菹)’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문헌고찰을 실시하였고 현존하는 ‘저(菹)’의 형태를 답사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연구에 이용된 문헌은 의례(儀禮)와 관계된 고문헌(古文獻), 풍속지(風俗志), 농업백과사전(農業百科事典), 조리서(調理書) 등이었다. 답사지역은 북경(北京), 절강(浙江), 상해(上海) 그리고 사천(四川), 운남(云南), 귀주(貴州)지역이었다. 변천과정은 진·한이전시대(秦·漢以前時代), 위진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 수·당·송시대(隋·唐·宋時代), 원·명·청시대(元·明·淸時代) 네 단계로서 ‘저(菹)’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되는 시기들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중국에서 ‘저(菹)’는 3천년 전 상대(商代)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진시대(先秦時代)의 ‘저(菹)’는 과(瓜)로 만들었으며 왕(王)의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식사(食事), 연회(宴會), 그리고 통과의례(通過儀禮)에 올리는 음식이었다. ‘저(菹)’는 해물 즉, 장(醬)의 범주에 속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菹)’를 먹을 때는 반드시 해, 혜(醯:식초), 니, 제 등의 장(醬)을 함께 올렸고 연회(宴會) 혹은 제사(祭祀)에도 장(醬)을 먼저, ‘저(菹)’를 나중에 올려 ‘저(菹)’ 보다는 장(醬)을 중요시 했다. 또한 신분에 따라 ‘저(菹)’를 담는 그릇인 두(豆)의 수(數)도 달라졌기 때문에 ‘저(菹)’의 가지 수(數)는 곧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했다. 한대(漢代)에도 ‘저(菹)’를 먹을 때 육장(肉醬)을 곁들이는 식습관은 변함없었으며 생선에 소금과 밥을 넣어 만든 자라는 음식이 새롭게 등장하였는데 자도 곧 ‘저(菹)’라 하였으므로 ‘저(菹)’의 범위는 더 넓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저(菹)’를 즐기는 계층은 천자(天子)외에도 지주(地主)계층에까지 확산되었다. 또한 한대(漢代)는 지역구분이 남방(南方)과 북방(北方)이라는 개념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菹)’는 지역에 따라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즉, 북방(北方)의 ‘저(菹)’는 소금만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남방(南方)의 ‘저(菹)’는 죽을 넣어 만들었으므로 만드는 방법의 차이가 있었다. 또한 한대(漢代)에는 소금물에 채소를 넣어 만든 포채(泡菜)를 담았던 단지가 황하(黃河)이남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이미 한대(漢代) 이전에 포채(泡菜)를 먹었을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위진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중 북위(北魏)의 산동지역(山東地域)태수(太守)였던 가사협이 집필한 농서(農書) 《제민요술(齊民要術)》 작저장생채법(作菹藏生菜法)에 당시 ‘저(菹)’를 만드는 방법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저(菹)’의 발전과정을 알 수 있었다. 《제민요술(齊民要術)》 작저장생채법(作菹藏生菜法)에 있는 33종의 저법(菹法) 중 32종이 채저(菜菹)이고, 단 1종만 육저(肉菹)인 것으로 보아 당시는 채저(菜菹)가 매우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채저(菜菹)는 함저(鹹菹), 담저(淡菹), 장저(藏菹)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함저(鹹菹)는 채소를 소금물에 씻은 후 소금물을 가라앉혔다가 다시 채소단지에 부어 절이는 방법이고, 담저(淡菹)는 발효촉진제와 풍미를 증진시키는 각종 부재료를 첨가한 방법이며, 장저(藏菹)는 각종 조미료에 재료를 담가 저장하는 방법이었다. 제는 마늘, 생강, 귤피(橘皮), 백매(白梅), 밤, 밥, 소금, 식초 등 다양한 재료를 모두 섞어 찧어 장(醬)으로 만들어 생선회나 육회에 곁들였다. 또한 한대(漢代)에 서역(西域)을 개척한 장건(張騫)에 의해 향채(香菜:고수), 소산(小蒜:마늘), 호근(胡芹:미나리과) 등이 전래되었으므로 다양한 재료가 ‘저(菹)’에 이용되었다. 수·당대(隋·唐代)까지는 ‘저(菹)’의 이용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당(唐)의 멸망과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 이후 북송시대(北宋時代)는 ‘저(菹)’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엄장채(淹醬菜)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엄장(淹醬)은 담가 저장한다는 의미이므로 ‘저(菹)’를 뜻하는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금조(金朝: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임안(臨安)으로 남하한 남송대(南宋代)는 제의 이용이 활발했다. 제는 생선회의 장(醬), 소금에 절인 채소, 나물, 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채소를 장(醬)이나 조(糟:술지게미) 등의 조미료에 담그는 장채(醬菜)가 등장하였다. 원·명·청시대(元·明·淸時代)의 ‘저(菹)는 엄채, 장채(醬菜), 포채(泡菜)로 변화되었다. 엄채는 남·북방 전역(全域)에서 즐겼던 것으로 보이며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개념으로 회향, 산초, 감초 등의 한약재를 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추가 전래되어 고추로 붉은 색을 내는 등 음식에 있어서 색(色)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장채(醬菜)는 간장 또는 장(醬), 소금, 식초, 조(糟:술지게미) 등을 이용하여 채소를 절였고, 주로 남방지역에서 이용하고 있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중국의 ‘저(菹)’의 역사는 소금을 넣은 절인 음식에서 시작 되어 ‘저(菹)’를 다진 후 식초를 넣어 만든 제로 양분된 후 변화가 지속되었다. ‘저(菹)’는 소금만 넣은 것과 장(醬) 등의 다양한 조미료를 이용하는 형태로 변화되었으며 제는 생선회에 찍어먹는 양념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절임음식의 총칭이 되었다가 엄채, 장채(醬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채(泡菜)는 국물이 있는 형태였으므로 진·한이전시대(秦·漢以前時代)에 남방에서 유행했던 ‘저(菹)’가 아닐까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포채(泡菜)는 서남이(西南夷)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일부 소수민족들이 즐겨 마셨던 신 국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진(秦)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국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채(泡菜)는 송대(宋代)의 국물이 있는 제와 서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천(四川)지역을 중심으로 이용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식품영양학과 > Theses_Ph.D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