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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正祖時代 以後의 通常服 硏究

Title
英正祖時代 以後의 通常服 硏究
Authors
金玉順.
Issue Date
1969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가정과교육전공
Keywords
영정조시대통상복영조시대정조시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李朝時代 服飾의 硏究는 宮廷 및 上流官員社會의 儀禮服이나 官服類에서보다 庶民의 日常生活 속에서 普遍化된 一般的인 外出服과 家庭안에서의 通常服에 대한 考察에서 한층 民族標式의 實態를 根據할 수 있다. 18,9世紀경의 李朝的 生活文化는 그 어느 時代보다도 國風化된 特性이 成熱되었던 時代였음으로 服飾은 그 時代의 住宅과 아울러 그러한 韓國的인 洗鍊이 한층 더 뚜렷했었다. 이러한 무렵의 服飾樣式考察의 實證的인 資料로서 重視되는 것은 風俗圖였다. 그 중에서도 18세기 後半期부터 19세기 初期에 活動한 檀園 金弘道의 作品에서는 庶民社會의 生業을 主題로 한 鄕村에서의 服飾을 매우 구수한 描寫로 寫實했으며 같은 무렵의 惠園 申潤福의 作品 속에서는 李朝人의 生活史 속에 얼크러진 都會的인 젊은 男女의 風流와 그들 庶民社會를 무대로 벌어지는 사랑의 生態를 다루어서 매우 洗鍊되고도 豊寫한 服飾美를 描寫하고 있다. 文獻史科는 거의 宮廷이나 宮員들의 服飾에 關한 것에 置章되어 있으며 庶民社會의 日常服飾에 關한 것은 具體的인 記述이 매우 적다. 즉 兩班階級 獨善的인 立場에서 庶民社會의 服飾材料와 色彩를 規制한 內容이 약간 있을 분이다. 李朝時代 服飾을 크게 男服의 構成과 女服의 構成으로 나누어 보면 男服에 있어서는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그 위에 外被로서 입는 두루막 또는 중치막 같은 윗옷으로 構成되어 있고, 女服은 치마와 저고리를 겉옷으로 하고 그 속에 겹으로 껴 입는 속곳類 等이 그 根幹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多樣하기 보다는 比較的 單純한 構成을 이루고 있으며 또 時代的인 樣式의 變遷도 그다지 變動이 없었다. 宮庭이나 兩班社會의 服飾中에는 그 材料와 더불어 帽 裝身具를 비롯해서 一部에 外來樣式(主로 中國의 漢族樣式)의 影響이 적지아니 作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나 庶民社會의 服飾일수록 그러한 影響이 적은 民族樣式을 잘 示顯한 것이 特色이다. 또 宮中이나 兩班階級에서는 綺, 羅, 繞, □, 繡 等 中國産의 衣科品을 매우 崇高한 나머지 國家經濟面으로 보면 힘에 겨운 輸入을 자행했던 것은 一般庶民의 衣料가 麻, 苧, 綿, 布 등 素朴한 國産織物이었던 것과 좋은 對照를 이루고 있다. 特히 國産織物이 지니는 좋은 屬性을 잘 살려서 民族服飾美의 主流를 이루어 왔음은 主意할 만하다. 李朝服飾에 나타난 色彩好尙은 中國과는 매우 異質的이어서 무겁고 장장한 色보다는 산듯하거나 조촐한 色을 즐겨입었으며 宮中에서는 黑色과 白色을 祭忌한 反面 庶民의 大多數는 白衣가 一般化되어 있었던 것도 하나의 特記할만한 表象이다. 또 宮中에서 美色이나 黃色을 高貴한 色彩로 삼으면서도 녹색 연옥색 연분홍 연두색 같은 淡調의 淸楚한 色彩를 基本衣裳(치마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 等)에 즐겨 써 왔다. 宮中의 그러한 好尙은 上下없는 民族的인 色彩好尙의 一面을 보인 것이다. 庶民社會에까지 그 風潮가 普遍化되었던 것을 보면 李朝人의 服飾이 깊이 民族樣式에 뿌리박고 이음을 말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더욱이 모든 文物이 國風化의 한 頂點을 이루었던 英·正祖年間이었더니 만치 더욱 그러한 느낌을 깊이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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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원 > 가정과교육전공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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