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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막사(三幕寺) 마애삼존불 연구

Title
삼막사(三幕寺) 마애삼존불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temple
Authors
곽황지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삼성산(三聖山) 삼막사(三幕寺) 경내에 위치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마애불로 조성된 유일한 치성광불상(熾盛光佛像)이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763년에 조성되었다는 명문이 남아있어, 편년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18세기 치성광불 신앙의 전개양상에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이 치성광불은 마애불로 조성되었다는 점 외에도 여타의 치성광불과 다른 특이점을 가진다. 기존의 치성광불은 금륜(金輪)을 들거나 소수레(牛車)를 타고 있지만, 삼막사의 치성광불은 선정인을 취하며 보주(寶珠)로 추정되는 지물을 들고 있다. 또한 원반형의 장식이 있는 보관을 쓴 협시보살이 보좌하고 있는데, 그 존상의 모습은 약사삼존불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마애불이 봉안된 전각에 대한 명문이 남아있어 삼막사의 마애불이 조성계획 때부터 약사불이 아니라 치성광불을 염두에 두고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아래에 있는 전각의 초창명문과 중건명문에 의하면, 불상이 조성된 다음해인 1764년에 칠성전(七星殿)이 처음으로 창건되고 1881년에 칠성각으로 중건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애불이 조성된 시기와 칠성전이 지어진 시기가 매우 가깝다는 것은 불상을 발원하고 전각건립을 주도했던 이들이 불상을 치성광불로 조성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런 삼막사 치성광불의 도상은 유래가 없고,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기 때문에 이형(異形)양식으로 분류하거나 치성광불에 대한 연구대상에서 제외시켜, 도상과 양식의 연원에 대해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불상이 드러내고 있는 기표(記標)가 일률적인 기의(記意)를 지니지 않으며 역사와 공간적 환경, 발원자와 관자(觀者)의 인식에 따라 매우 다기(多岐)적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삼막사 치성광불의 조성배경 및 약사불과 흡사한 형태로 조성된 도상형성의 동인(動因)이 불상의 장소성과 당시의 신앙행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예로부터 원시적 토속신앙이 성행했던 삼성산에 조성됨으로써, 삼성산이 갖고 있던 신앙처로서의 내력과 영험성을 확보하게 된다. 삼성산은 험준한 암산으로서, 이곳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바위를 매개한 타력신앙이 유행했고 삼막사 마애삼존불 이외에도 많은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특히 마애불들은 기존의 성석(聖石)으로 여겨지던 암석에 새겨졌는데, 이는 성소(聖所)로서의 내력과 기존의 권위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바위라는 물질이 상징하는 강한 생명력과 신앙물로서의 아우라를 획득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삼막사의 치성광불 역시 이런 장소성을 매개로 기존에 있던 성소의 권위를 계승했다. 불상이 위치한 장소에는 불상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남근석·여근석이 조성되어 주요한 신앙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기에, 불상제작을 계획했던 이들은 불상을 동일한 공간에 조성함으로써 남근석·여근석이 가진 자손점지·강복(降福)의 능력을 치성광불에 부여하고, 타력신앙의 대상물로서 불상의 신력(神力)을 배가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한편, 남근석·여근석이 지닌 성소의 지위를 계승하면서 불상을 치성광불이라는 특정존상으로 조성한 동인은 조선후기 치성광불에 대한 신앙이 현세구복적인 형태로 변모·확장되고, 치성광불상이 기존 성소의 성격과 부합하는 신앙적 합목적성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치성광불은 본래 북극성의 아이콘으로서 고대의 천문관과 불교의 습합과정에서 생겨난 부처인데, 주존을 비롯한 여러 권속들은 일월성수(日月星宿)의 알레고리와 관련이 깊다. 북극성이 제천요수(諸天曜宿)를 관장하듯이 치성광불은 여러 권속을 다스려 인간의 소재길상(消災吉祥)을 관장하는 부처로 여겨졌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당시에 유행한 도교의 북두칠성 신앙과 융합되어 북두칠성이 가진 ‘연명(延命)’의 기능까지 수렴하게 된다. 본연적으로 부여된 소재길상의 신력뿐만 아니라 무병장수, 자손번창이라는 구체적인 현세이익까지 관장하게 됨으로써, 치성광불은 보다 많은 대중에게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관장하고 자손을 점지하는 확장된 신앙적 기능은 남근석과 여근석의 신앙적 속성인 생장력, 영원성과 합목적적인 관계를 이루게 되면서, 발원자들은 다수의 부처 가운데 치성광불을 선택하여 조성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렇듯,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남근석·여근석이라는 민간신앙의 대상물이 지닌 공통적인 상징성을 매개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서로 습합하는 면모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교 자체의 내재적인 습합을 통해 기존의 치성광불과는 전혀 다른 도상의 전개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삼막사 마애삼존불이 치성광불이라는 명호를 가지면서 약사불과 같은 도상을 하고 있는 점에서 나타난다. 삼막사의 치성광불이 약사불의 도상을 차용한 일차적 원인은 치성광불 신앙이 확장되는 과도기에 불상이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칠성전’이라는 전각명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약사삼존불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도상의 형태가 유사한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후기 북두칠성 신앙이 유행으로 인해 치성광불의 현세구복적인 타력신앙의 요소가 강화되면서, 소재와 무병장수라는 동일한 신력을 가진 약사불과 도상이 혼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도상의 혼용은 서울·경기지역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삼막사 치성광불상이 혼용된 양상의 이른 예로 추정될 뿐이다. 불상의 명호와 도상이 불일치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상(造像)의 원칙과 신앙행위의 목적이 반드시 합목적적인 관계일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약사칠불경』이 칠성을 공양하기 위해 독송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약사칠불의 존명과 칠성불의 존명이 일치하기 때문에 혼동하여 경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신앙행위의 주체인 예배자에게 신앙대상인 불상의 상호(相好)나 수인, 지물 등은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들이 불상의 조상원칙과 도상에 담긴 내재적인 원리를 모두 이해했을 것이라는 것도 미지수다. 예배자는 다만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해주는 영험한 존재만 필요할 뿐, 그 존재의 모습이 치성광불이든 약사불이든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치성광불과 약사불 간의 신앙적 기능 및 신력의 공유는 점차 이분화 되고 그 기능은 치성광불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19세기부터 삼세불이 유행하게 되면서 약사불은 대웅전의 삼세불에 편입되어 단독 봉안이 줄어들고, 타력신앙의 대상물로서의 존재감 역시 약화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세적 염원을 기도하려는 대중들은 칠성전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칠성전에 봉안되는 칠성탱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와 연동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삼막사 치성광불의 유래 없는 도상은 독립된 각각의 신앙체계가 상황과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습합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불상도상의 변모가 신앙자의 현세적인 욕구와 불상이 위치한 장소성, 특수한 시대적 상황 등 다양한 메타변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의미를 주지한다면 삼막사 치성광불상은 조선후기에 변모하는 치성광불 신앙의 흔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불상으로 그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한다.;A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is a statue of Buddha that is placed on the precincts of Sammaksa temple(三幕寺) in Samsung Mountain(三聖山), which is situated at Seoksudong, Anyangsi, Gyeonggido. This statue was recognized by academia from earlier on, as the only Tejaprabha Buddha from the Joseon Dynasty that has been carved on the rock. An inscription indicates that it was carved in 1763; it holds a value as a chronological data and takes an important position providing a key to the development of the Tejaprabha Buddha in 18th Century. However, other than the fact that it is carved on the rock, there are singularities to this Tejaprabha Buddha compared with the original Tejaprabha Buddha. The original Tejaprabha Buddha is either on a bull-chariot(牛車) or holding a Golden-Dharma cakra(金輪), while the Buddha of Sammaksa is taking a gesture of Dhyana-Mudra(禪定印) and holding a staff that is assumed to be the maṇi(寶珠). It is assisted by the flanking bodhisttvas wearing a headdress with disc-shaped decoration; the sacred image of Buddha seems very similar to the Bhaiṣajyaguru Buddha Triad. However, from an inscription addressing on the palace where the rock-carved Buddha is enshrined, it is assumed that the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was constructed having the Tejaprabha Buddha in consideration, not the Bhaiṣajyaguru Buddha Triad. According to the 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inscription written under the Buddha, the Seven-Stars Hall(七星殿) was first built in 1764, a year after the statue of Buddha has been constructed, and was reconstructed to shrine in 1881. The fact that the construction period of the rock-carved Buddha and the Seven-Stars Hall is close indicates a circumstantial evidence that people who originated the statue of Buddha and led the construction of the hall would have constructed the statue as a Tejaprabha Buddha. This icon of the Tejaprabha Buddha in Sammaksa has no history and since it is unprecedented, there are no analysis in earlier studies neither on the icon nor on the origin of the style; only it was classified as a variant of style or was excluded from the study of a Tejaprabha Buddha. Therefore, noticing the fact that the statue of Buddha does not contain a uniform significance and that it can be very divergent depending on the history, the spatial environment, and the perception of the client or the spectator, this study focuses on the point that the construction background of the Tejaprabha Buddha in Sammaksa and the factor of the icon’s formation that was created in a similar form to the Bhaiṣajyaguru Buddha originated from a sense of place of the Buddha statue and a religious life back then. A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was constructed on the Samsung Mountain where primitive folk beliefs were prevalent from old times, gaining a history and a miracle that the Mountain possessed as the origin of beliefs. At this steep and rocky mountain, an ideology of pure land with the medium of rock was widely spread for long time and many statues of the Buddha were constructed other than the Triad of Sammaksa. These rock-carved Buddha statues were especially carved on a sacred rock of the mountain, showing the intention to naturally acquire a strong life force that a rock symbolizes and an aura as a material of beliefs, while gaining the previous authority and the historical background as a sanctum. This sense of place was also used on the Tejaprabha Buddha as a mean to succeed the existing sanctum’s authority. Before the Buddha statue was placed, there were Namgeunseok(男根石), a phallic-shaped sculpture, and Yeogeunseok(女根石), a vagina sculpture, constructed as main origins of beliefs; people who planned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would have endowed sculptures’ability of blessing and benediction to the Tejeprabha Buddha statue and expected the divine power of the statue to be doubled as an object of the belief in the pure land. On the other hand, a factor that drove the construction of the statue in a specific form of the Tejaprabha Buddha while succeeding the authority of sanctum that sculptures had possessed can be found from the facts that the belief on the Tejaprabha Buddha has been transformed and expanded in late Joseon Dynasty, to the form that believes in the blessing of present life and that the Tejaprabha Buddha has a faithful finality that coincide with the nature of the previous sanctum. The Tejaprabha Buddha was inherently an icon of the Pole Star that was created in the harmonization progress of the ancient ideology of astronomy and Buddhism. His entourage including the main image of Buddha is deeply related to the allegory of the Nine Seizers(九曜). Like how the Pole Star involves every constellations in charge, the Tejaprabha Buddha was thought to be a Buddha who governs various stellar deities and dispels all calamities, especially of celestial origin. However, as it blended with Taoism’s belief of the Big Dipper that was prevalent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Tejaprabha Buddha drew the spotlight of people taking over the ability of the Big Dipper, a “prolongation of life”, which not only let the Buddha to possess the divine power of the good but also to control the specific gain of the present life, that is, a prosperity of posterity. It is assumed that the Tejaprabha Buddha had been chosen to be constructed out of numerous Buddhas followed by the assumption that its expanded abilities such as controlling life and blessing posterity would have formed a purposive relation with a growing ability and immortality of phallic and vagina shaped sculptures. Thus, the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seems to be in harmonization with phallic and vagina shaped sculptures with the medium of common symbol that those possess as objects of folk beliefs; however, through the immanent harmonization of Buddhism itself, it also shows an icon’s evolvement that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previous Tejaprabha Buddha. This aspect is shown in the facts that the rock-carved Buddha Triad of Sammaksa has a name called the Tejaprabha Buddha and that it has a same icon as the Bhaiṣajyaguru Buddha. The primary reason why the Tejaprabha Buddha of Sammaksa adopted the icon of the Bhaisajyaguru Buddha is because the statue was constructed in a transition period when the belief on the Tejaprabha Buddha was expanding. As mentioned earlier, a belief of the Big Dipper was harmonized with the Tejaprabha Buddha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is progress, an element of the belief in the pure land that was in respect of the blessing of the present life had been solidified and the Bhaisajyaguru Buddha were being used together with the icon, since they had the identical power such as a power of keeping the bad away from people and a life of health and longevity. In case of Sammaksa, the main image of Buddha is holding the maṇi and taking the Dhyana-Mudra and the flanking bodhisattva is wearing the headdress with the symbol of sun and moon; these forms of icons are so similar that it is probable that it could have been seen as the Bhaisajyaguru Buddha Triad if the name of the hall “Seven-Stars”hadn’t been found. This mixed use of icons is mainly shown in Seoul and Gyeonggi area and the reason why such use is shown in specific areas hasn’t been identified yet. Only the Tejaprabha Buddha of Sammaksa is assumed to be the early example of the aspect. Another reason why a name and a form of the Buddha statue is in discord is because the principle of making Buddha statues and the purpose of religious life cannot necessarily be in a purposive relation. This can be inferred from religious lives of people back then. Back in the late Joseon Dynasty, people would recite 『Sutra of the Seven Medicine Buddhas(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 to make an offering to seven stars because they were confused of identical names of the Seven Medical Buddhas(藥師七佛) and the Seven-Stars Buddhas(七星佛). This case suggests that appearances, gestures or staffs were not main interests of worshipers who were subjects of a religious action and It is unsure that they would have even fully understood immanent fundamentals inside the icon and the principle of making Buddha statues. Worshipers were only in needs of divine existence who would answer to their pray. They didn’t care if the image of that existence were the Tejaprabha Buddha or the Bhaisajyaguru Buddha. However, a sharing of divine function and power between the Tejaprabha Buddha and the Bhaisajyaguru Buddha gradually got separated and the function got more laid on the Tejaprabha Buddha. As Three World Buddhas(三世佛) became popular in 19th Century, the Bhaiṣajyaguru Buddha was transferred as one of the Three World Buddhas of the Buddha Hall(大雄殿) and an independent enshrinement had diminished. People who wanted to pray for the present life’s desire gathered into the Seven Stars Hall as a reaction to such phenomenon, which resulted in the rapid increase of the number of the Chilsongtaeng(七星幀), a Seven-Stars Buddhist Painting. This study presents that the Tejaprabha Buddha’s icon in Sammaksa with no history was a result of the harmonization of dispersed belief systems that differed by situations and purposes. This means that the transformation of the Buddha statue’s icon is worked by various meta-variables such as a secular desire of worshiper, a sense of place where the statue is located, and a specific situation in history. For the following meaning, the value of the Tejaprabha Buddha statue in Sammaksa should be recounted as a statue that best shows a vestige of transforming belief of the Tejaprabha Buddha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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