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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후소설에 나타난 휴머니즘

Title
한국전후소설에 나타난 휴머니즘
Authors
최영애
Issue Date
1975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어학교육전공한국어교육분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한국의 전후문학을 논함에 있어서는 6·25 이후 약 10년간을 한 시기로 하여야할 것 같다. 8·15 해방은 우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더욱 민중의 짓눌렸던 감정을 폭발시켰고 이것을 소화시켜 우리 것을 의식하기도 전에 6·25가 닥쳤던 것이다. 6·25는 우리들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기록되어야 했으며 한편 우방의 손길이 닿을 수 있게 한 동잔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만 그친게 아니고 그것은 문학상의 많은 혼란을 가져다 주는 다리가 되기도 했다. 즉 해방전까지는 우리들의 사상계는 완전히 일본의 독무대라 할 수 있었는데 6·25 이후에는 현저하게 서양 및 세계적인 사상이 압도적으로 유입 반영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리하여 1950년대 후반의 우리 문학계는 서구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혼용 속에서 이것들의 종합적인 조화를 위한 진통의 시기에 부딪친 것이다. 이리하여 6·25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전후문학은 외래사상을 받아들이는 단계와 소수의 사상이 대중화 하는 모색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뿐 정당한 비판을 거쳐 주체적인 한국적 문학의 확립이 일반화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곧이어 휴전은 되었지만 결코 전쟁의 종말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 국민전반은 물론 작가들은 저마다 암암리에 불안한 분위기에 쌓여있었다. 이러한 사회 현실에 처한 우리의 작가들이 6·25 이후 곧장 만족할만한 전후작품을 산출시키지 못했을 것임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전후작품의 인간상이 보여준 휴머니즘도 서구의 그것과 같은 위치에 두고서 이야기해서는 안될 줄 안다.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유와 권리, 정치적 현실이나 거기에 임하는 태도, 의식구조, 역사적 측면이 한국과는 너무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후소설작품의 인간상이 보여준 휴머니즘의 양상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양대 이데올로기의 전투장으로 본 작가는 있어도 인간과 인간의 갈등,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해진 인간의 리얼하고 적극적인 행동은 찾아볼 수 없으며 불행하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 무의지, 무목적으로 자조하면서 현실도피, 소외감에 젖어들며 전후의 독소적인 분위기에서 논리가 파괴되어가는 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인간상들에게 뚜렷한 방향이나 모랄의 제시는 없다. 고작 사회의 부조리에 현실을 폭로 고발하는 부족적 반항적 태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성을 짓밟는 모든 것을 향한 분노와 저항의식으로 집약될 수 있는 것이 1950년대의 문학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극한 상황 죽음, 고향상실 등,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한결같이 역사쪽으로 돌리고 있다. 전쟁은 역사 쪽에서 주어졌고 그러한 문제점을 전후 작가들이 취급할 때 그 발상법의 저류에는 역사에 대한 추종 혹은 용인이라는 명제가 짙게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아픔은 그리하여 일시적 시대 감정에 호소하며 현실을 지나치게 위기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한다. 여기에 6·25가 체험으로서만 존재하고 역사의식으로서는 그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전후소설은 당시 1950년대의 안정되지 못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보지 못했으며 단지 다음에 오는 4·19 세대의 문학정립에로의 발판인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우리는 우리 전후소설이 한국문학사에 끼친 공적이라 평가해야 옳을 것 같다.;The period of ten years since the out-break of Korean War on June 25, 1950 is normally regarded as suitable for the comments on Korean post-war literature. The Liberation from 36-year-old Japanese rule on August 15, 1945 had marked a most joyful occasion for the nation. The occasion had conspicously served as a moment for the free expression of our long-oppressed feelings. However, the Korean War in 1950 totally frustrated, our such efforts as to recognize and construct our own literature. The War also brought about so many confusions and disturbances in the field of literature as well as the other ones. Before the Liberation, the field of literature had been almost exclusively occupied by the Japanese but the Korean War brought us a good momentum to induce the Western way of thinking. As a result, our literature has met a very confusing period in the later part of 1950's when all efforts were exerted toward compromising Westerner's and ours. Under the circumstances, Korean post-war literature plunged into a trial stage in which foreign thoughts were brought in and some of our own thoughts ware in the process of its popularization. Therefore, there can be no room at the tims for a generalization of true Korean literature through fair and square criticism. The Korean War ended in truce in 1954 after fouryear long hostilities but the writers as well as all the other people were left in very unstable circumstances since the War did not come to complete end. Viewing from their positions urder such circumstances, it is quite natural that the writers were unable to produce satisfactory works as soon as the War went into truce. Henceforth, the humanism shown by our literatures in the past-war had every reason to be differently treated and understood from the Western one. The main reason is that there existed a big gap unable to bridge between them and us in embracing freedom and rights as well aa in meeting political realities. In addition, there existed obvious difference between our conscience-structure and theirs. There were some writers who understood the human-nature of the post-war in terms of the one warring between the two world ideologies. They lacked of depicting human troubles or positive human actions, dodging reality and drifting along to ineptness and non-willingness in face of disastrous reality. The failed to present a certain direction or set a morale for the people who were put in the decadent circumstances. They did nothing but to unveil the social irregularities, showing their negativeness and resistance. The literature in 1950's is characterized by anger and resistance which contributed only to trampling all humanity. All the responsibility for the resultant desperation and death was attributed to the turning of history itself. They believed that a war just constitutes a page of history and they gave up themselves to the trend of history which underlay their thoughts. For the cure of their pains, they usually compromised themselves to the tempory feelings of the times and committed fallacy in accepting a reality as a crisis. It follows that Korean War remained as a war itself but could find its raison d'etre in marking a historical occasion for the literature. In other words, Korean post-war literature could not make any normal progress nuder the unstable social circumstaness in 1950's, remaining only as a stepping-stone for the literature to be written in the period following the April 19th Revolution. We should appreciate above fact as a feat of our post-war literature which had infuluence on the history of our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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