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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역사지리학적 고찰

Title
수원의 역사지리학적 고찰
Authors
이병희
Issue Date
1970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사회과교육전공지리교육분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연구는 수원의 역사적 발전 과정상에 나타난 도시구조와 기능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고대에서부터 근세까지는 주로 문헌연구와 지도류를 모아 비교하였고 최근의 변천은 경기도청과 수원시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참고하였다. 또한 관계 행정 각부처에서 필요한 원조를 구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촌로와의 면담도 하였고 미심한 것은 현지 답사로 보완하였다. 삼국시대에 처음 조그만한 취락으로 출발한 수원은 통일 신라시대에는 당과의 교역로가 된 남양만 때문에 교통상 요지가 되었고 군사상 요새로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이조시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 짊으로써 더욱 군사상 중요한 방위 지역이 되었고 경부 호남로의 중요 역로로서 여전히 교통상의 요지 역할을 계속 하였다. 정조가 문왕의 묘소를 화산으로 옮기고 천도할 의향 하에 수원에 성곽을 쌓고 가행궁을 마련한때부터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인구 5만을 상회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남한테 성곽 도시가 많으나 대부분 허물어 졌는데 그 옛 자취가 그래도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수원성은 축조기법이 한국적이고 아름다우며 명승고적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이조 말엽 러시아 중국 등의 세력을 물리친 일본은 경부선 공사를 착공하였고 수원은 농사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일합병 후 그저 명색만 유지해 오던 길은 사통팔달로 신작로가 개통되고 수원은 다시 현대적 의미의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수원역이 서남방 2km 지점에 설치됨으로써 수원은 남문 밖으로 팽창되고 도심의 이동이 진행되었다. 수차에 걸친 행정구역의 변천으로 면에서 읍으로 다시 1949년 8월 15일에는 시로 승격되었고 1963년 인근 면에서 20 개 리를 병합시켜 8,367㎢의 넓이를 차지하는 남한 제 10위의 도시가 되었다. 가장 눈부신 발전은 해방이후 최근에 이루어졌다. 1950년 6.25사변으로 한때 인구의 계속 하강을 보였고 그 후 수년간 현상유지 상태에 머물렀으나 1960년 대에는 전재복구 사업도 완료되어 의욕적인 건설이 시작되었다. 1967년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 됨으로써 명실공히 경기도의 수부가 되었다.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과 팽창하는 수도 서울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하여 수원은 지방도시로서의 성격에서 서울의 위성도시 또는 수도권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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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원 > 지리교육전공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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