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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대조선관계사 연구와 류큐 역사 교과서에서의 서술

Title
류큐의 대조선관계사 연구와 류큐 역사 교과서에서의 서술
Other Titles
The study of Ryukyu on the history of Chosun and Ryukyu relations and the description of Ryukyu History Textbook
Authors
최명화
Issue Date
2004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최완기
Abstract
琉球는 14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의 역사무대에 등장하면서 15~6세기에는 명ㆍ조선ㆍ일본ㆍ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던 해상왕국이었다. 이시기 류큐는 명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조선과 류큐는 지리상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동시에 일본세력 팽창의 출구이기도 해 정치적ㆍ군사적 관계를 통해 활발한 문화적 교류관계를 지속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조선과 류큐의 외교관계 형성배경과 인적ㆍ물적 교류, 대외관계의 쇠퇴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琉球ㆍ沖繩史』의 대외관계 서술의 구체적인 내용과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류큐의 대조선관계사의 형성과 변화의 방향을 알아보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古琉球 부분에서는 당시 조선과 류큐 사이에 활발한 인적ㆍ물적 교류가 이루어졌기에 다른 시기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한국사가 서술되어 있었다. 조선의 건국과 대외관계, 류큐의 대외관계, 조선과 류큐의 교역이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고,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 졌으며, 조선과 류큐 관계가 왜 쇠퇴하게 되었으며, 양국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실제적 증거인 『朝鮮王朝實錄』, 『歷代寶案』에 대해 서술하였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琉球見聞記」는 당시 류큐 사람들의 생활 관습과 제반제도, 조선 사람들이 류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인식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대체로 고류큐 부분의 한국사 서술은 정치ㆍ사회적인 문제보다 경제ㆍ문화적 교류에 관한 서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조선과 류큐간의 교류가 활발해 직ㆍ간접적 영향을 주고받았으므로 교과서 역시 이점에 주안점을 두고 주요하게 다루었던 것이다. 둘째 近世琉球 부분은 류큐의 대조선관계가 쇠퇴기에 접어들어서인지 고류큐 보다는 상대적으로 한국사 서술의 비중이 훨씬 적었다. 시마즈씨(島津氏)가 왜 류큐를 침입했으며 어떻게 통치했고, 일본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쇄국을 하게 되었고, 명의 멸망과 청의 성립과정, 조선과 류큐의 교역 결과가 류큐의 근세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구미선(歐米船)의 내항에 류큐는 어떻게 대응했으며, 류큐가 어떻게 일본에 완전히 귀속되었는지를 서술하였다. 근세류큐 부분에서는 조선과 류큐의 독자적인 교류에 관한 서술보다는 주로 중국, 일본에 관한 서술을 하면서 이에 맞물려 조선의 상황을 다소 이야기하는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임진왜란 도발에 따른 류큐의 전쟁협력 명령을 서술 할 때나, 일본이 조선으로 진출해 조선을 둘러싼 청·일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즉 조선과 류큐의 독자적인 경제ㆍ문화적인 교류보다는 당시 동아시아를 둘러싼 중국ㆍ일본ㆍ류큐ㆍ조선의 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맞물리는 정치적 상황에 관한 서술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류큐의 대조선관계사를 류큐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통해 살펴보는 일은 중국ㆍ일본의 시각이 아닌 교류의 주체인 류큐인들의 역사인식과 함께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류큐의 역사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조선과 류큐의 관계라는 개별 사례의 접근을 통해 조선조 대외관계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선조 대외정책의 성격 파악은 물론 이를 수용했던 범동아세계의 구조파악에도 유용할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교린 외교체제의 일원으로서 주요 통교국의 하나인 류큐에 관한 이같은 이해는 전근대 시기의 대외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올바른 한국ㆍ중국ㆍ류큐사의 관계를 파악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한 부분으로만 간주하며 도외시 되었던 류큐의 독자적인 역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며 총체적인 실상을 파악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래서 류큐의 문화가 단순히 일본의 한 지방 문화로서만 존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 즉 근세 이전의 한류문화교섭사를 포함하여 중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에 기인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문제를 류큐가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류큐 역사 교과서 서술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종래의 한국ㆍ중국ㆍ일본이라는 동아시아 삼국 문화권의 여러 가지 과제들에 대해 이제는 한국ㆍ중국ㆍ일본ㆍ류큐라는 네 개의 문화권을 새로 설정함에 따라 그러한 과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변동과 역사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가 미흡하나마 류큐의 대조선 관계사 연구를 활성시키고, 앞으로 『역사』교과서의 류큐사 서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yukyu appeared in the historical stage in East Asia in the latter of 14th century, and it was a prosperous marine kingdom through connecting trade of Myeong, Chosun, Japan and East Asia. In this period, Ryukyu joined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order of East Asia. Especially, since Chosun, and Ryukyu were close to Japan and these two countries were the route of expansion for Japan geographically, cultural interchange and cooperation between two nations through political and military relationships was continued. This paper investigated the background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Chosun and Ryukyu, human and material exchange, and the reason of decline. In addition to it, the concrete content and featur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of 『Ryukyu Chungsungsa』 are examined in order to understand the formation of relationship with Chosun and the orientation of change. The findings are as followings: First, in the part of ancient Ryukyu, on the grounds that the human and material interchange between Chosun and Ryukyu was vigorous, Korean history was recorded more particularly than any other time. The establishment of Chosun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nd the start of trade between Chosun and Ryukyu, the method of human and material exchange and the decline of interchange of these two nations were recorded as well. In addition, the description of 『Chosunwangjosilok』 and 『Yeokdaeboan』 were the substantial proofs to inform u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nations. Especially, 「Ryukyugyeonmungi」 listed in the 『Chosunwangjosilok』 recorded the general customs of people and laws of Ryukyu and the perception of Chosun people towards Ryukyu in those days. The description of ancient Ryukyu in Korean history put its emphasis on economic and cultural exchange. It represents the fact that Chosun and Ryukyu were influenced each other as a result of vigorous interchange. Secondly, in the part of modern Ryukyu, the description of Ryukyu in regard to Korean history became decreased in terms of volume. It reflects that the relationships between Chosun and Ryukyu entered the stage of decline. Simaju, a Japanese historian described the invasion and reign of Japan towards Ryukyu, the process of national isolation policy, the collapse of Myeong an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Chong, the exchange effect of Chosun and Ryukyu on the modern culture, and the coping strategy of Ryukyu to the emergence of European ships and the process of being possessed to Japan. In the part of modern Ryukyu, the description put weight on China and Japan instead of independent interchange between Ryukyu and Korea and revealed the tensed circumstance. For example, the cooperation of Ryukyu in the Japanese invasion to Chosun in 1952, or the war between Chong and Japan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invasion towards Chosun were recorded. That is, the description of complicated political circumstance was significant in the record rather than the interchange of economy and culture. The investig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Ryukyu and Chosun through history textbook out of the perspective of Japanese, gives us opportunity to compare our historical recognition with that of people of Ryukyu. In addition, the individual approach,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of Chosun and Ryukyu offers us a certain aspect of international relations of Chosun. The understanding of international policy in the era of Chosun is applied to the structure of worldwide East Asia. As one of diplomatic policy based on Fraternity and dependence, the case of Ryukyu helps us grasp the relationships of Korea, China, and Ryukyu in these days. It is true that we have not tried to approach the independent history of Ryukyu in an objective and universal way and we have considered Ryukyu as one part of Japan. However, the culture of Ryukyu is not confined to the local culture of Japan and includes the political, social and culture matters related to the historic relationships with China, Japan and Korea. The Cultural interchange with Korea before the modern time is meaningful in this aspect. In this regard, we can reorganize the circle of culture as 4 nations; Korean, China, Japan, Ryukyu through breaking from the existing circle of 3 cultures; Korea, China and Japan. This new perspective can contribute to broadening the width of historical recognition. It is also hoped that this paper will serve as a steppingstone from which studies of relationships between Ryukyu and Chosun may be activ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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