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7 Download: 0

新羅末 豪族의 性格에 關한 硏究

Title
新羅末 豪族의 性格에 關한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LANDED PROPRIETORS FROM THE END OF SILLA(新羅) TO THE EARLY DAYS OF KORYEO(高麗)
Authors
姜貞淑
Issue Date
1985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사회과교육전공역사교육분야
Keywords
신라말기호족지방세력가신라고려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Landed proprietors were powerful families or men of local influence who lived in a district and ruled it political & militarily during the periods of political & social disorder from the end of Silla to the early days of Korye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clearified in the foreword and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1. Chapter Ⅱ :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of landed prophietors. 2. Chapter Ⅲ : The basis of power of landed proprietors 3. Chapter Ⅳ : The nature of land proprietors (1) their distributions. (2) their rank order. (3) their view toward foreign countries and communications with China. (4) their ruins First, the landed proprietors can be divided into two groups. the first group were novels in the capital. They came to the country as local officers with their family and lay their foundation there. The second group were village headmen who had settled there for a long time they had found their role in controlling the villagers. They had expanded their power as the power of the central government was being weakened finally they merged as landed proprietors when they could act as chiefs of countries & prefectures. Second, the landed proprietors had their foundation of power in the economic, military and ideological aspects. Their control over the land was essential for the control of the people. In order words, they could control their people by posses-ing the large area of land as their basis of power. The king Kyongduck(景德) restored the NOKEUP-JAE(祿邑制) which had been abolished by the king Shinmoon(神文) so the NOKEUP enabled the officers either local or central to secure their economic foundation of power in the provincess. The landed propritors had their private soldiers for their self-defence in the disorder ofk the end of Silla - the period of after three nations. The landed proprietor in the provincial areas as well as nobles in the capital or country had their private soldiers. They called themselves as generals, which was the nature of private soldiers. Among them, Kyon Hwon,(類盞) Koong Ie(弓裔) & Wang Kun(王建) appeared as men of strong power in the disorder of the period of three nations. The landed proprietors denied the existing relition and supported the Zen Blddism. By this they could establish the mental armament of the people. Third, some landed proprietors, awakened to foreign mat-ters, had their communications with China privately because they could begin cultural exchange through the private communications with China, they also expected their position to be approved internationally. The landed proprietors searched for a new administration system which was confronted with central government they introduced a new office organization which imitated avoid up all the restrictions concomittant with the existing village headmen service regulation. They called it "KWANBAN"(官班 ), "KWANBAN" was a substitute for the previous GOLPUM-(骨品 ) Classes and a basis of the society of Koryeo. The landed proprietors estabilished at the end of Silla were being united under the strong power of Wang Keun. As the ruling power of the Koryeo dynasty was being established and the centralization of power progressed, their power was relatively weakened and they belonged to the central government.;豪族은 新羅末에서 高麗初에 이르는 政治的, 社會的 혼란기에서 各 地方에 산재하여 그 地方을 政治 · 軍事的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支配한 土豪, 즉 地方勢力家들을 의미한다. 먼저 序言에서는 課題意識을 밝히고, 제Ⅱ장에서는 豪族의 成立過程을 다루었으며, 제Ⅲ장에서는 豪族의 勢力基盤을, 그리고 제Ⅳ장에서는 豪族의 性格으로서 豪族의 分布, 豪族의 位階秩序, 豪族의 對外認識과 對中 通交, 豪族의 轉身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첫째, 豪族의 成立過程 보면 원래는 中央貴族이었으나 外官, 出徙에 의해 一旅을 거느리고 地方에 내려왔다가 그곳에서 기반을 닦아 羅末에 다시 세력이 대두되는 경우와, 오랫동안 其 地方에 정착하여 살던 村主出身으로 이들은 군현의 행정 체계하에서 村落民을 통제하는 구실을 담당 하다가 中央政府의 統治力이 약화 되면서 그 세력을 확대하여 갔고 마침내 실질적으로 군현의 장관을 대신하는 지위를 차지하고 地方豪族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둘째, 豪族의 勢力基盤은 經濟的 · 軍事的 · 思想的 基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地方豪族이 農民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농민을 구속하고 있는 土地에 대한 支配이다. 즉 이들은 자기세력 근거지로써 土地를 광범위하게 소유하고 그에 예속되어 있는 인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羅末에 있어서는 神文王때 폐지한 祿邑制를 景德王때 다시 부활 시킴으로써 內外官들이 각기 祿邑을 가지고 지방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확실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豪族에게는 新羅末 · 後三國時代의 혼란 속에서 자체적 방어를 위해서 또는 세력 확장을 위해 私兵을 거느리고 있었다. 中央이나 地方의 貴旅만이 私兵을 거느린 것은 아니었다. 지방내륙의 豪族들도 將軍을 칭하였으니 그 자체가 私兵的 性質을 지니는 것이었다. 各 地方의 豪族들이 私兵을 거느리고 후삼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말기의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甄萱, 弓畵, 王建의 세력인 것이다. 또한 이들 豪族은 기성종교에 대해 정면 부인하고 등장한 禪宗을 적극 후원 함으로써 豪族과 일반 민중의 정신적 구심점을 마련 하기도 하였다. 셋째, 豪族들은 中央과 대립하는 새로운 형태의 행정조직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村主職制에 따른 제반 구속을 탈피하면서 中央官制를 모방한 새로운 職制를 도입하여 官班이라 호칭하게 되었다. 이들 豪族層의 官班 形成은 종래의 骨晶制度가 소멸되는 시기에 그에 대치될 수 있는 것이며, 高麗社會의 전개에 있어서 하나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었다. 地方勢力중에는 일찍 대외관계에 눈을 떠서 독자적으로 中國과 通交하는 자가 생겨났다. 이것은 中國과 공적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문물교류의 길을 연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으며, 중국과 통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認證되는 동시에 국제적 배경도 생기는 까닭이다. 끝으로 羅末의 地方勢力은 高麗 太祖 王建의 강력한 세력하에 통합되어져 갔다. 이는 高麗王朝의 지배권이 확립되고 中央集權化의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이들의 세력을 약화되어 中央의 一機構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뒤에 鄕吏의 身分으로 변질되어 그 세력이 강등되었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교육대학원 > 역사교육전공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