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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dvisor장남원-
dc.contributor.author노지현-
dc.creator노지현-
dc.date.accessioned2021-01-28T16:32:11Z-
dc.date.available2021-01-28T16:32:11Z-
dc.date.issued2021-
dc.identifier.otherOAK-000000173516-
dc.identifier.urihttp://dcollection.ewha.ac.kr/common/orgView/000000173516en_US
dc.identifier.urihttps://dspace.ewha.ac.kr/handle/2015.oak/256701-
dc.description.abstract본 연구는 조선 후기 새롭게 등장한 박쥐문의 사용양상과 의의를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둔다. 특히 박쥐문의 기원국인 명청대 황실의 용례와 조형을 바탕으로 조선 박쥐문을 분석해 문양을 통한 양국의 외교활동과 정치적 영향 관계를 주목했다. 박쥐문은 중국의 대표적인 기복(祈福) 문양으로 ‘박쥐 복(蝠)’과 ‘복 복(福)’의 발음이 같아 길상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음운적 연관성은 약 3세기경 인지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박쥐는 도가사상과 결부되어 자체로 신선[仙鼠]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먹으면 장수를 하는 영약으로 이해되었다. 곧이어 도교 길상도에 박쥐가 묘사되며 도상으로 등장하였고, 명대 황실 공예품의 문양으로까지 장식 영역이 확장되었다. 명청대 황실에서 박쥐문은 구체적으로 ‘장수의 복’을 상징하며 황제의 만수성절을 장식하는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건륭연간에는 문화예술 전반의 부흥으로 박쥐문 또한 큰 조형적 발전을 이루었다. 단일 소재의 문양이 다양한 구성과 형태로 발현되었으며, 이는 조선과 청대 박쥐문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한편, 같은 시기 조선은 정조연간으로, 정조는 종전 조선왕실이 취하던 대청 의식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그는 국정 운영에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활용하기 위해 청 건륭제와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한다. 덕분에 조선 사절단은 이전보다 더 가까이에서 황궁을 목도하고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으며, 당시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황실 공예품을 조선에 전할 수 있었다. 실제 을묘년(1795) 원행에 사용된 혜경궁 홍씨의 가교는 주문양으로 박쥐문이 사용되었는데, 같은 시기 청나라 공예품의 박쥐문과 조형적으로 매우 유사해 흥미롭다. 이는 조·청 외교활동과 국신물(國信物)의 교류로부터 박쥐문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조선에서 박쥐문은 청조와 동일하게 왕실 최고계층의 장수를 기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연향은 왕실에 혈연관계를 둔 사적인 성격을 보여 의례를 통한 효의 실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에 왕실 어른의 탄신연향처럼 장수를 축하하는 의례가 자주 설행되었는데, 박쥐문은 이러한 연향에서 주빈과 국왕을 위한 용평상, 용교의, 술잔 도금대에 장식되었다. 헌종연간에는 정재용 무구(舞具)로까지 사용이 확장되었으며, 어좌의 장엄을 위한 청 수입품에서도 박쥐문 장식이 확인된다. 이렇게 왕실 최고계층을 중심으로 소비된 박쥐문은 고급 문양으로 인식되어 다양한 재질의 고급 공예품을 장식했다. 현전 박쥐문 백자의 제작지와 사용처 또한 왕실 및 상류계층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광주 분원과 양구 방산에서 제작이 확인되며, 궁궐 유적 및 경복궁 인근 생활유적에서 양질의 박쥐문 백자가 출토되었다. 또한, ‘큰뎐’ 등 왕실 소용을 추정할 수 있는 한글점각명, ‘進’, ‘甲’ 등 고급 자기에 나타나는 한자명문이 관찰되어 상당히 고급 기명으로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자의 박쥐문 유형 분류는 박쥐문의 구성과 단일형태를 이원화하여 분석했다. 조선 박쥐문은 청 박쥐문의 학습을 통해 제작되었지만, 발전의 과정에서 조선만의 구성과 단일형태가 완성되었다. 구성에 따른 분류는 (1) 박쥐문이 화면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A 자유형, (2) 박쥐문이 이미 조선에서 먼저 성행했던 문양과 결합하는 B 동반형, (3) 두 마리 이상의 박쥐문이 서로 마주 보며 같은 중심을 향하는 C 조합형으로 나뉜다. 단일형태는 동물 박쥐의 모습에 가까운 사실형과 도안화가 이루어진 기복형(夔蝠形)이 관찰된다. 박쥐문 백자의 기종은 구성 비율에 따라 병, 연적, 타구, 호, 뚜껑, 접시, 대접, 주자, 합, 발, 기타로 나열된다. 생활용기이자 의례용기인 병은 헌수(獻壽), 헌다(獻茶)의 과정에서 축수(祝壽)의 상징인 박쥐문을 사용해 효심의 정성을 문양으로 강조할 수 있었다. 연적과 타구는 박쥐문과 특별히 공고한 결합을 이루는데 이는 조선 후기 문인문화와 생활문화를 대표하는 두 기물의 높은 수요와 박쥐문의 성행이 결합하며 대량생산이 이루어진 결과로 보인다. 이외 접시, 대접, 발 등의 반상기명은 기종마다 다양한 용적량으로 제작되어 한 찬상에 함께 올려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종합하면, 19세기의 흐름 안에서 박쥐문 백자는 다음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1) 조선백자에 나타난 박쥐문은 뛰어난 조형성과 화면 적응력으로 기존 관양(官樣)과 빠르게 융합했다. (2) 일부 박쥐문 백자는 19세기 중후반 청 박쥐문을 재도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모방의 대상이 되는 자기는 청 동치황제의 대혼례용 자기인 ‘동치대혼자(同治大婚瓷)’로 여러 구성의 문양 중, ‘황지홍복문(黃地紅蝠文)’자기와 유사한 기종, 문양 구성, 박쥐의 형태가 관찰되어 주목된다. 이상 왕실 연향용 공예품과 박쥐문 백자에 관한 분석을 기반으로 조선 후기 박쥐문의 성격과 문화적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박쥐문은 왕실 어른의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명청대 황실에서 조선왕실로 이어진 함의로 조선이 박쥐문의 구체적인 의미와 위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18세기 혜경궁 홍씨의 가교 장엄을 시작으로 19-20세기 주빈의 장수를 축하하는 탄신연향에 배설된 박쥐문 공예품, 더불어 돌아가신 선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탄신다례(誕辰茶禮)에 진설된 박쥐문 의례기는 모두 축수를 위한 문양으로 박쥐문이 사용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박쥐문은 황제국의 문양으로 인식되어 19세기 기록에 등장하는 ‘조선산 당화기’에 사용된 문양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인다. 조선 후기 왕실 연향에는 주빈과 왕실 최고계층을 위한 수백, 수 만점의 ‘당화기(唐畵器)’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자기의 생산국인 청나라는 내우외환의 혼란이 중첩되어 경덕진(景德鎭) 요업이 정지해 수출용 자기생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조선 왕실은 당화기의 안정적인 충당을 위해 ‘조선산 당화기’의 제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현전 박쥐문 백자 중에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보이는 유물이 적지 않게 확인된다. 그 가운데 청 동치황제의 대혼례용(大婚禮用) 자기를 모본으로 둔 최상품 조선 박쥐문 백자가 있어 주목된다. 동치황제의 대혼례(1872년 9월 15일)에는 박규수(朴珪壽)를 정사로 하는 진하겸사은사절단(進賀兼謝恩使節團)이 파견되었다. 이후 사절단의 복명에서 고종은 대혼례의 의장(儀仗)과 동치제가 곧 친정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당시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형식적인 국정 운영을 하던 고종에게 동치제의 친정 소식은 권력 회복을 갈망하던 그의 의지를 고취했다. 그리고 황제의 대혼례 의장으로 사용된 박쥐문 자기를 그대로 수용해 자신이 주빈이 되는 연향에 배설하며 군주로서 위용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 논문은 추상적인 복의 상징으로 일반화되어 연구가 심화되지 않은 박쥐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로, 박쥐문의 기원국인 중국에서 연원과 문양화 과정, 그리고 명청대 성행과 사용양상에 관한 이해를 선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 박쥐문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단순한 조형 비교를 넘어 문양의 수용과 확산에 영향을 미친 양국의 외교, 정치, 사회 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박쥐문의 구체적인 길상 의미를 밝히고, 박쥐문의 유입 경로에서 정조와 건륭의 외교 관계를, 국내 소비양상에서 고종과 동치의 영향 관계를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meaning, characteristics, and use aspect of bat design, which newly emer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particular, it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 bat design compared to China and verified the relation between exchange activities and political influence between the two countries through the pattern, by analyzing the Joseon bat design based on the usage and format of the royal family of the Ming and Qing, the countries of origin of the bat design. The bat design is a representative Chinese relief pattern, and considered as an auspiciousness because it has the same pronunciation of the Chinese characters, "Bok(蝠,[fu]) of Bat" and "Bok(福[fu]) of Luck". This phonological relevance seems to have been recognized around the third century, at the same time, being in related to Taoism(道家), it began to be regarded the bats themselves as a symbol of longevity, or as an elixir of life if eaten. Since then, it made an iconography as a bat was depicted in the Taoist auspicious picture(吉祥圖), and it settled as a pattern of imperial crafts in the Ming Dynasty. The bat design specifically symbolized 'the luck of longevity' in the imperial family and was also used as a pattern to decorate the emperor's birthday, the Longevity Festival(萬壽聖節). In particular, the bat design also made great formative development along with the overall revival of culture and arts during the years of Emperor Qianlong(乾隆, 1736-1796). The pattern of a single material was expressed in various compositions and forms during the same period and it was continued until the late Qing. Meanwhile, Joseon during the same period was the years of King Jeongjo(正祖, 1776-1800), and he showed a different walk from the consciousness toward the Qing that the Joseon royal family used to have. He promoted the amicable relation with Emperor Qianlong(乾隆) in order to utilize the advanced civilizations of the Qing Dynasty in his state administration. Thanks to this, the Joseon delegation was able to see the imperial palace and have an audience with the emperor closer than before, and they were also able to be gifted the imperial crafts integrated the best technology and introduce them to Joseon. Actually, the bat design was chosen as the main pattern for the Crown Princess Hong's palanquin(駕轎) used in Wonhaeng(園幸) in the year of Blue Rabbit(乙卯, 1795), and it is noteworthy because it is very similar in format to the bat design of the Qing Dynasty crafts at the same period. It suggested the possibility that the bat design was introduced through the diplomatic activities and exchanges of national gifts(國信物) between the Joseon and the Qing. The bat design was used to pray for the longevity of the highest class in the royal family in the Joseon Dynasty, the same as the Qing Dynasty. The royal banquets and feas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held around the blood relationship, and the realization of filial duty was valued. Accordingly, the court banquet was often held for the purpose of celebrating the birth of the royal elders, and the bat design was decorated on the Dragon flat bed(龍平床), the Dragon folding chair(龍交椅), and the silver trays(鍍金臺) of glasses, for the principal guest(主賓), a main person of the banquet, and the king. In the year of King Heonjong(憲宗, 1834-1849), the decoration was extended to the handicrafts for dances[舞具] used in banquet performances, and the bat design was also seen in the imported goods from the Qing for decoration of the King's chair(御座). As such, the bat design consumed around the highest class of the royal family was recognized as a high-quality pattern and used to decorate crafts of various materials. The remains of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bat designed white porcelain handed down to date are also confirmed to be deeply related to the royal family and the upper classes. The bat design in Joseon white porcelain was classified based on the composition pattern and the accompanying pattern. The bat design of Joseon started as imitating the one of the Qing, but it developed into the Joseon's own distinctive form and composition starting with Crown Princess Hong's palanquin in the late 18th century. In particular, a single material was described in various forms of the realistic and bat-shaped patterns also in the Joseon like the Qing, and it was observed the excellent decorativeness that encompassing both main and secondary patterns. In the flow of the 19th century, bat designed white porcelain showed two characteristics. First, the bat design was quickly blended with the existing style of royal kiln(官窯) by its outstanding formativeness and adaptability. It added an auspicious symbol to the originally popular pattern by the accompanied bat design. Second, it showed a tendency to reintroduce the aspect of the Qing's bat design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subjected porcelain is ‘Tongzhi Emperor great wedding porcelain(同治大婚瓷)’, which was created for the great wedding ceremony of Tongzhi of the Qing Dynasty(1795年 9月 12日), and among about 10,000 porcelain, it is observed the formative similarity in the ‘Yellow ground and Red bat design(黃地紅蝠文)’ using red bat design. As a result of synthesizing the consumption patterns of bat design shown in royal books(儀軌) and white porcelain so far, the bat design in white porcelain in the late Joseon period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bat design was used to pray for the longevity of the royal elders. As it is the implication connected from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o the Joseon Dynasty, it suggested that the Joseon Dynasty accurately recognized the specific meaning of the bat design and used it. The examples can be thought that the bat design was used as a pattern to pray for longevity, such as bat designed crafts for preparing birthday banquets and feasts to celebrate the longevity of the principal guest in the 19th–20th century, and the bat designed ritual flag for preparing the royal birthday tea ceremony(誕辰茶禮) to commemorate the birthday of the deceased late King, starting with the Crown Princess Hong's palanquin decoration of the 18th century. Second, it seems likely that the bat design was recognized as a pattern from the imperial kingdom(皇國), and served as one of the patterns used in the ‘Chinese ceramic ware made in Joseon(朝鮮産 唐畵器)’from the 19th century record. In the royal banquets and feas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undreds and thousands of 'Chinese ceramic ware(唐畵器)' were used for the principal guest and the highest class of the royal family. However, in the Qing Dynasty, which is a producer of ceramics, it seems that the Jingdezhen(景德鎭) ceramic industry was stopped due to the overlap of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in the 19th century, making it almost impossible to produce ceramics for export. Accordingly, for the stable use of the royal family, it seems that the Joseon royal family attempted to produce ‘Chinese ceramic ware’. It is noticeable there is the finest Joseon white porcelain with the same type, pattern, and design as ‘Tongzhi Emperor Great wedding porcelain’. At that time, the delegation for Celebration and Appreciation(進賀兼謝恩使節團), with Park Gyu-soo(朴珪壽) as the head, was dispatched to Tongzhi's Great wedding ceremony and conveyed all the circumstances of it to King Gojong(高宗, 1863-1907). At the time, the King Gojong showed a deep interest in the news of the flag for the grand wedding and Tongzhi taking the direct rule(親征) after finishing Sooryeom-cheongjeong(Regency behind the veil, 垂簾聽政). The news of Tongzhi's direct rule inspired Gojong's desire to restore power, who was running formal state administration due to the power of Heungseon Daewongun(興宣大院君). And, he would have absorbed the bat design used in the flag of the great wedding as it was and placed it in his banquet, where he is the principal guest, and showed his dignity as a monarch. As this thesis is a comprehensive study on the bat design, which has not been further researched since it has been generalized as an abstract symbol of luck(福), it analyzed the bat design based on the understanding the origin from China, a country of origin for bat design, patternized process, and popularity and use aspects in the period of Ming and Qing. This method allows a closer approach to the truth because it is possible to comprehensively analyze the diplomatic, political, and social situations of both countries that have affected on the acceptance and spread of patterns, beyond simple formative comparison. In conclusion, this study was verified the specific auspicious meaning of the Joseon bat design and its consumption as a high-quality pattern, and it is significant in that it suggested th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King Jeongjo and Qianlong in the inflow route and the influential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Gojong and Tongzhi in domestic consumption.-
dc.description.tableofcontentsⅠ. 머리말 1 Ⅱ. 명청대 박쥐문의 유행과 조선 유입 4 A. 박쥐도상의 성립과 전개 4 1. 박쥐에 대한 인식과 도상의 성립 4 2. 명청대 박쥐문 공예품의 양상 11 B. 대청관계를 통한 박쥐문의 수용 35 1. 정조대 진하외교의 전개와 배경 36 2. 조선 사절단의 활동과 박쥐문의 전래 42 Ⅲ. 의궤 도식에 나타난 박쥐문 54 A. 왕실 연향에서 사용된 박쥐문 공예품 54 1. 정조연간의 왕실 가교 54 2. 순조-광무연간의 진작·정재용 공예품 62 B. 왕실 공예품에 장식된 박쥐문의 유형과 특징 76 Ⅳ. 박쥐문 백자의 현황과 유형 81 A. 제작과 사용 81 1. 생산지 81 2. 소비지 83 3. 명문자료 92 B. 유형과 특징 99 1. 문양 99 2. 기종 120 3. 특징 124 Ⅴ. 조선 후기 박쥐문 백자의 성격과 문화적 의의 128 A. 왕실 어른의 축수를 위한 문양 128 B. 황제국을 상징하는 문양 135 1. 조선산 당화기 제작의 배경 135 2. 고종대 박쥐문 백자의 제작 141 Ⅵ. 맺음말 149 참고문헌 153 도판목록 167 도판 172 ABSTRACT 182-
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19657102 bytes-
dc.languagekor-
dc.publisher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c.subject.ddc700-
dc.title조선 후기 백자의 박쥐문[蝙蝠文] 연구-
dc.typeMaster's Thesis-
dc.title.translatedA Study on Bat Design[蝙蝠文] of White Porcelain in the Late Joseon Dynasty-
dc.creator.othernameRoh, Jihyun-
dc.format.pagexii, 185 p.-
dc.identifier.thesisdegreeMaster-
dc.identifier.major대학원 미술사학과-
dc.date.awarded20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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