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453 Download: 0

Full metadata record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dvisor장남원-
dc.contributor.author안수빈-
dc.creator안수빈-
dc.date.accessioned2021-01-28T16:32:11Z-
dc.date.available2021-01-28T16:32:11Z-
dc.date.issued2021-
dc.identifier.otherOAK-000000173109-
dc.identifier.urihttp://dcollection.ewha.ac.kr/common/orgView/000000173109en_US
dc.identifier.urihttps://dspace.ewha.ac.kr/handle/2015.oak/256699-
dc.description.abstract본 연구의 목적은 고려중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보상화문(寶相花文) 청자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현전하는 유물의 기종 및 문양분석을 통해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의 성격과 의의를 규명하는데 있다. 보상화문은 고대 이집트 신왕조 시대(B.C. 1570 ~ B.C. 1085)의 팔메트(palmette) 문양에서 기원하며, 중국 唐代(618~907)에 이르러 보상화문 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까지 보상화문의 기원은 팔메트 문양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통용되고 있지만, 보상화문은 현존하지 않는 상상의 꽃이기 때문에 문양의 기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불교경전에 의하면 옛 성인(聖人)이 득도할 때, 성인이 천계에서 내려올 때, 다시 천계로 올라갈 때, 부처가 설법을 할 때에 수 없이 많은 보상화가 비 오듯 흩날리며 천상계를 상징하는 진귀한 꽃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보상화문은 여러 화문과 결합된 상서로운 꽃으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어떤 문양이 보상화인지 명확한 정의와 규정이 없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또한 각 시대마다 도상이 급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현재까지 고려시대 보상화문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동시대 고려와 관계를 형성했던 중국 宋代 보상화문을 살펴보고, 고려에 문양이 전래 및 확산된 과정을 파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시대 보상화문의 도상을‘꽃 중앙 혹은 씨방에서 보주(寶珠)가 솟아나오는 형태’로 정의하였다. 한편 중국과의 문물교류로 고려에 유입된 보상화문은 석비·입사공예품·사경 표지·불화 복식 등 다양한 공예품의 장식문양으로 확산된다. 또한 11세기 후반부터 중국 내에서 압출양각기법으로 많은 양의 보상화문 자기가 생산되었고, 宋·金代 요주요, 정요 보상화문 자기는 무역 상품으로 고려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직접적인 문물교류를 통해 고려에 유입된 중국자기는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가 생산될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되었다.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의 제작은 11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초반까지 강진 계율리·용운리·사당리와 부안 진서리·유천리 가마터에서 한정적으로 생산되고 있어 모든 가마터에서 제작되었던 보편적인 문양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가 출토된 국내 소비유적은 개성 만월대, 개성공업지구, 강화 희종 석릉, 강화 옥림리·월곳리, 파주 혜음원지, 춘천 봉의산성, 단양 현곡리, 대전 상대동, 보령 성주사지, 합천 영암사지, 진도 용장성, 강진 월남사지, 강진 백운동, 부산 덕천동, 제주 항파두리성 등이 있으며, 국외 유적으로는 南宋의 도성이 있던 중국 절강성 항주시 일대에서 확인된다. 국내외의 다양한 유적에서 보상화문 청자가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왕실, 관료·귀족, 사격(寺格)이 높은 사찰 등 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소비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유통로에서 출수된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는 진도 명량대첩로·군산 야미도·보령 원산도·태안 대섬·태안 마도 등의 해적유적에서 발견되며, 12~13세기경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는 발·완·잔·접시·매병·합개·주자·기와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되는 가운데 일상기종이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발·완·잔의 비중이 높은 것은 보상화문 청자가 주로 차(茶)나 술의 음용을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던 것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고려중기에는 연례·연회에서 사용할 청자 다기(茶器)·주기(酒器)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이때 보상화문 청자는 왕실 및 세력가 계층의 취향에 부합하며 대량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대형의 보상화문 매병은 야외공간을 장식하는 화병(花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강진 요장에서 보상화문 매병이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부안 유천리 가마터가 자기소외의 지역으로 귀족이나 세력가, 사찰 등과 같은 사적인 수요를 감당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보상화문의 문양유형은 보주의 세부적인 형태에 따라 Ⅰ,Ⅱ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Ⅰ유형은 꽃잎의 유무에 따라 2가지로 세부분류가 가능한데 Ⅰ-1유형은 십자가형(十) 꽃잎이 있으며, 꽃 중앙에서 3개 이상의 보주가 솟아나오는 형태이다. 이 유형은 고려시대 압출양각 보상화문 청자에 주로 사용되었다. Ⅰ-2유형은 십자가형(十) 꽃잎은 없고, 꽃 중앙에서 3개 이상의 보주가 솟아나오는 형태이다. 대체로 음각기법으로 보상화문 청자를 장식할 때 나타난다. Ⅱ유형은 꽃의 씨방에서 작은 알갱이 형태의 보주가 솟아나오는 모습으로 대부분 특수기종에서 확인된다. 이상의 연구를 종합하면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의 시기별 경향을 제1기, 제2기, 제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11세기 4/4분기 ~ 12세기 3/4분기)는 고려 제자업에 압출양각기법이 도입되고, 청자의 문양으로 보상화문 도안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또한 11세기 말은 고려와 宋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이자, 요주요계 압출양각기법이 중국 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던 때이다. 따라서 제1기에 요주요계 압출양각기법이 급속하게 국내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더불어 국내에서 北宋 요주요 보상화문 자기가 다수 발견되었고, 제1기에 제작된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의 문양유형과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요주요계 보상화문 자기가 국내에 유입되며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 제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한편 제1기에는 일상용기 외에도 건축재로 사용된 보상당초문 청자와(靑磁瓦)가 소량 확인되고 있다. 자기질 기와는 만들기 전에 기와를 얹을 건물의 규모와 면적, 경사각도 등을 철저하게 계산하는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다. 즉 보상화문까지 정교하게 새긴 청자와는 고려 12세기 화려한 왕실 건축을 상징하는 특수성을 가진 건축재라고 할 수 있다. 제1기에 제작된 유적 출토품과 보상화문 청자와에 새겨진 명문 등을 종합하여 분석한 결과, 이 시기 고급품으로 제작된 보상화문 청자는 의종대(1146~1170)에 적극적으로 생산·소비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제2기(12세기 4/4분기 ~ 13세기 2/4분기)는 압출양각기법의 정착으로 보상화문 청자가 대량생산된다. 이전 시기에는 없던 새로운 기형과 문양의 청자가 제작되며, 상감기법의 보상화문 청자도 소량 생산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새롭게 등장하는 소형화된 화형접시는 구경이 10cm 내외로 6개로 구획된 내측면에 보상화문을 배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규석받침을 하고 있어 고급자기로 상위계층에서 소비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결과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만 보상당초문 화형접시가 확인되고 있어 강진요장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자기로 판단된다. 한편 이 시기는 上品의 보상화문 자기를 생산할 때, 하나의 기물에 음각·상감·압출양각 등 2가지 기법을 혼용하여 상대적으로 정교한 자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양질의 압출양각청자가 왕실관련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제2기에도 꾸준히 상위계층에서 보상화문 청자를 소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3기(13세기 3/4분기 ~ 14세기 전반)는 보상화문 청자가 압출양각기법으로 지속적으로 생산되나 이전 시기에 비해 문양의 섬세함이 떨어진다. 또한 제3기에 접어들면 규석받침의 비중이 줄어들고, 내화토모래빚음받침 혹은 모래받침의 사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변화는 1260년경부터 무신정권이 완전히 몰락하며, 삼별초의 항전이 시작되는 등 당시 사회적 혼란이 청자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전문적인 제작공정이 생략되면서 제2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 보상화문 청자는 특히 제2기에 제작량이 급증하며, 기종·제작기법·문양구성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제2기는 최씨 무신정권이 성립되고, 안정되는 시기이자 고종 19년(1232) 강화도에 수도를 일시적으로 옮겼던 때와 맞물린다. 이 시기 보상화문 청자의 수요가 증가한 이유는 최씨정권의 정치적 목적과도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제2기는 수차례 걸친 몽골의 침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연회가 빈번히 열렸다. 최씨집권자들은 강도천도 이전에는 연회에 참석한 문·무신에게 포상을 내려 권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들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강도천도 이후에는 전란 속에서 평화를 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회를 활용하였다. 즉 제2기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화려한 연회가 빈번하게 열리며, 다기·주기·화기 등의 용도로 사용될 청자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때 보상화문 청자는 왕실 및 최씨집권자 등 세력가 계층의 취향과 목적에 부합하며 제작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제2기는 몽골의 해상침입이 본격화되기 전으로 비교적 조운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청자 등 주요 물자를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세력가의 취향에 부합하였던 보상화문 청자는 위상 높은 문양의 자기로 인식되어 강진과 부안 가마터에서 주로 생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2기에 제작된 보상화문 청자의 번조받침은 대부분 규석받침을 사용하고 있어 고급자기로 번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급품으로 제작된 보상화문 청자는 생산지에 따른 장식기법의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제2기에 운영된 생산지 출토품의 장식기법을 분류해보면 강진 요장에서 제작된 보상화문 청자는 압출양각기법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부안 요장에서는 매병 등 위세품의 성격을 띠는 자기나 상감청자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즉, 제2기에 上品의 보상화문 청자를 제작할 때, 강진 요장에서는 대부분 일상기종의 청자를 압출양각기법으로 생산하여 왕실·사찰 등의 소비지에 공급하였고, 부안 요장에서는 위세품의 성격을 띠는 특수기종이나 상감기법의 청자를 중점적으로 제작하여 상위계층에 조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은 현재까지 명확한 정의가 이뤄지지 못한 고려시대 보상화문의 도상을 특정 짓고, 보상화문 청자의 출토 및 출수양상, 기종 및 문양분석을 종합하여 시기별 흐름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또한 제2기에 대량생산된 보상화문 청자의 제작양상을 분석하여 강진과 부안요장의 요업성격을 파악하였다. 더불어 상위계층의 취향에 부합했던 보상화문 청자를 대량생산하면서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요장별로 주력하는 제작기법을 달리하였다는 것을 제시한 점에도 의의를 두고자 한다.;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comprehensively organize the newly emerging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the mid-Goryeo dynasty and to identify the character and significance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the Goryeo dynasty through the analysis of the types and patterns of the existence artifacts. Boshanghwa Pattern is originated in the palmette pattern of the New Kingdom of Egypt, (B.C. 1570 – B.C. 1085) and appeared as a boshanghwa pattern in China, the Tang dynasty (618 -907). Hitherto, it is widely believed that the origin of the bosanghwa pattern is from the palmette pattern. But since the bosanghwa pattern is an imaginary flower that does not exist, various opinions can be suggested in the origin of the pattern. According to the Buddhist scriptures, when the saint (聖人) achieves spiritual enlightenment, when the saint come down from heaven, when the saint goes up to heaven again, and when the Buddha is preaching, a countless reward of bosanghwa is scattered like rain, and this is introduced as rare flowers that symbolize the heavenly world. Hence, there are various interpretations since the bosanghwa pattern is an auspicious flower combined with different flower patterns but no clear definitions of the bosanghwa pattern. Besides, bosanghwa pattern has a characteristic of rapid changes in the pattern in each period, and most of the research was conducted around the Unified Silla period; hence, no clear definition has been achieved with the bosanghwa pattern of the Goryeo dynasty. Thus, this paper has examined the Chinese bosanghwa pattern that formed a relationship with the same period of Goryeo dynasty and identified the process of transfer and diffusion of patterns to Goryeo. Based on this, defined the bosanghwa pattern as ‘The form of a boju (寶珠) rising from the center of a flower or from an ovary of a flower.’. Meanwhile, the Bosanghwa pattern, which was introduced into Goryeo through cultural exchanges with China, is spread to decorative patterns of various artifacts such as stone monuments, incident craft works, cover of Buddhist scriptures, and cloth pattern of Buddhist painting. In the late 11th century, a large amount of bosanghwa pattern using molded relief design techniques was produced, and a large number of Song and Jin dynasty Yaozhou wares with bosanghwa design and Ding wares with bosanghwa design were found in Goryeo artifacts as trade goods. Likewise, direct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Chinese porcelain inflow to Goryeo became the foundation of the Goryeo period’s bosanghwa pattern celadon production. During the late 11th and early 14th centuries, only certain kilns produced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as Gangjin Gyeyul-ri, Yongun-ri, Sadang-ri, Buan Jinseo-ri, and Yucheon-ri. Hence, it seems that it was not a universal pattern that was produced in all the kilns. Domestic consumption remains of the Goryeo dynasty’s bosanghwa pattern celadon was excavated at Gaesong Manwoldae, Gaesong Industrial District, Ganghwa Heejong Seokneung, Ganghwa Okrim-ri, Wolgot-ri, Paju Hyeum-won, Chuncheon Bongeui Sansung, Danyang Hyungok-ri, Daejeon Sangdae-dong, Boryeong Sungjusaji, Hapchun Youngamsaji, Jindo Yongjangsung, Gangjin Walnamsaji, Gangjin Baekun-dong, Busan Deokcheon-dong, Jeju Hangpaduri Castle. Oversea sites are found in Hangzhou, Zhejiang Province, China, where the capital city of Southern Song was located. Bosanghwa pattern celadon was found in various historical sites domestically and abroad, and it was consumed mostly by the royal household, bureaucrats, aristocrats, and the temple which has a high stature. Bosanghwa pattern celadon, during the Goryeo dynasty, was seen and trade at places as Jindo Myeongnyangdaecheop-ro, Gunsan Yamido, Boryeong Wonsando, Taean Daesum, and Taean Mado, and seems to have been made around the 12th– 13th century. While various celadon models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Goryeo dynasty were identified, daily models have occupied most of the market. In particular, the high proportion of Bal (鉢), Wan (碗), and Cup can be associated with the fact that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was mainly made to use for tea or alcohol. During the mid-Goryeo period, the celadon tea bottle and liquor bottle demand for the annual banquet has increased. It seems that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was mass-produced as it suits the taste of the royal family and the influential class. Also, the large-scale bosanghwa pattern Maebyeong excavated from the kiln site of Yuchun-ri in Buan is likely to have been used as a flower vase to decorate the outdoor space. Since the bosanghwa pattern Maebyeong has not been found in Gangjin Yuchun-ri kiln site, it is assumed that the kiln site in Buan Yuchun-ri was an area where it was in charge of private demand from aristocrats and influential people. Depending on the detailed shape of the boju, the bosanghwa patterns on the Goryeo celadon can be divided into I and II type. Type I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depending on the presence or absence of petals. Type I-1 has cross-shaped (十) petals, and three or more boju rising from the center of the flower. This Type is mainly used on the Goryeo dynasty's celadon with molded relief bosanghwa design. Type Ⅰ-2 does not have cross-shaped (十) petals, but three or more boju rising from the center of the flower. This Type is mainly used on the Goryeo dynasty's celadon with incised design technique. Type II was mostly a special model decorated with small pellet shapes of boju rising from an ovary of a flower. Based on this, the trend of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the Goryeo dynasty can be divided into the first, second, and third periods. The first period (4rd quarter of 11th century – 3rd quarter of 12th century) was when the celadon with molded relief technique was introduced to Goryeo, and when the design of the bosanghwa pattern began to be used as celadon designs. The end of 11th century is when th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Goryeo and Song (宋) was normalized. Goryeo accept new products of civilization; it was when the Yaozhou style of molded relief technique was widespread in China. Hence, it can be assumed that the Yaozhou style of molded relief technique was rapidly introduced domestically during the first period. Also, a large number of North Song area's Yaozhou wares with bosanghwa design have been discovered domestically, and it had a similar type of patterns with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Goryeo dynasty made in the first period. This shows how the mainstream bosanghwa pattern was introduced into Goryeo and directly influenced the production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the Goryeo dynasty. Meanwhile, besides the used for daily containers, a small number of celadon roof tile with incised bosanghwa design are was used for building materials in the first phase. Before making the tile, the tile's porcelain texture had to go through a thorough preparation process of calculating the size of the building and the angle of slope. In fact, celadon carved with elaborate inscriptions of the bosanghwa pattern is a special building material that symbolizes the 12th century Goryeo dynasty's splendid royal architecture.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excavated relics and the inscriptions on the celadon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from the first period, it is believed that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which was produced for luxury items was produced and consumed actively during the period by king Uijong (1146-1170). Since the molded relief technique has settled, the second period (4rd quarter of 12th century – 2rd quarter of 13th century)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has been mass-produced. The new form and celadon pattern, which was not in the previous period, has been produced and small quantities of celadon with inlaid bosanghwa design were also produced. The new miniaturized type of celadon flower-shaped dish in this period was a 10cm caliber size collocate the bosanghwa pattern in the inner surface of divided six sections. Since most of them have tiny silica spurs, this indicates that the higher class consumed them as high-end porcelain. Also, as the bosanghwa pattern flower-shaped celadon dish was only found in the kiln site in Gangjin Sadang-ri, the dish seems to show the characteristic of the Gangjin kilns. Meanwhile, during this period, when the bosanghwa pattern porcelain was produced as a product, two techniques among incising technique, the inlaid technique, and the molded relief technique, were mixed used to produce the one ceramic and made relatively a sophisticated porcelain. As high quality of molded relief celadon has been excavated from royal household-related sites; this indicated that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had been consumed consistently by the upper class during the second period. The third period (3rd quarter of 13th century – early 14th century) began around 1260 when the military regime was destroyed, and the resistance of Sambyeolcho began.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by the molded relief technique was continuously produced during this period, but the pattern's detail is inferior compared to the previous period due to the long war. Also, the proportion of tiny silica spurs decreases, and the use of the sand-clay spurs increases. This change is believed to have resulted in relatively lower quality than the second period as the social confusion also affected the production of celadon. The specialized manufacturing process was omitted. The number of bosanghwa pattern celadon of Goryeo dynasty production increased rapidly during the second period, and new models, production techniques, and patterns appeared. The second period coincides with establishing and stabilizing the Choi’s regime and the temporary relocation of the capital to Ganghwa-do in the 19th year of King Gojong’s regime (1232). The reason for the increase in demand for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during this period can also be related to Choi’s administration's political purpose. Despite several invasions from the Mongol, splendid banquets were frequently held for political purposes in the second period. Even before moving the capital to Ganghwa-do, Choi’s administrators offered a reward to a civil official and military official, who attended the banquet, to show his power and to connotate them. After moving to Ganghwa-do, banquets were used as a political device to disguise peace in the war. In fact, the demand for celadon as tea bottle, a liquor bottle and flower bottle increased to be used for the frequent and splendid banquets during the military regime. The sharp increase of the production volume of bosanghwa pattern celadon is believed to have met the powerful class's taste and purpose, including the royal household and Choi’s ruling party. The second period was also able to receive major supplies such as celadon as it was before the invasion by the Mongol and because the shipping road was relatively stable. In this situation,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that satisfies the influential family's tastes was recognized as porcelain with high status, and it seems that it was mass-produced in Gangjin and Buan kiln. Meanwhile, most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spurs during this period were tiny silica spurs, which indicates that they were converted into high-quality porcelain. Also, when classifying the excavated site's decorative techniques, most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with molded relief technique is produced in Gangin kiln site, and Buan kiln site mainly produced Maebyeong which was characterized by focusing on producing porcelain or inlaid celadon that has the character of prestige. In fact, bosanghwa pattern celadon mostly made of merchandise was produced in Gangjin kiln site by molded relief technique and supplied to the royal household, temples, and markets. It seems that Buan kiln site focused on producing special types of prestigious products or celadon using inlaid technique and procuring them to the upper classes. This thesis identified the image of the Goryeo period bosanghwa pattern celadon, which had not been clearly defined, and comprehensively organized the map of the Goryeo period bosanghwa pattern celadon to establish a standard flow of each period. Furthermo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eramic industry of Gangjin and Buan kiln site were identified by analyzing the production patterns of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mass-produced in the second period. This thesis is meaningful that it suggested that the production techniques focused on each kiln site were different to avoid losing the quality while mass-producing the bosanghwa pattern celadon that reflected the tastes of the upper class in the second period.-
dc.description.tableofcontentsⅠ. 머리말 1 Ⅱ. 보상화문 청자의 제작배경 3 A. 보상화문의 성립과 제작 5 1. 중국 宋代 보상화문의 형식 5 2. 보상화문 공예품의 전래 14 3. 고려시대 보상화문의 확산 21 B. 중국 보상화문 자기의 고려 유입 34 1. 宋金代 보상화문 자기의 제작양상 34 2. 국내 출토 보상화문 중국자기 38 Ⅲ. 출토양상과 유형 44 A. 보상화문 청자의 제작과 사용 44 1. 생산지 45 2. 유통로 70 3. 소비지 78 B. 기종과 문양유형 107 1. 기종 107 2. 문양유형 122 Ⅳ. 보상화문 청자의 시기 구분과 성격 132 A. 시기 구분 132 1. 제1기 : 11세기 4/4분기 ~ 12세기 3/4분기 132 2. 제2기 : 12세기 4/4분기 ~ 13세기 2/4분기 136 3. 제3기 : 13세기 3/4분기 ~ 14세기 전반 139 B. 보상화문 청자의 성격 142 1. 고급품으로서의 특징 147 2. 생산지에 따른 장식기법의 차별화 153 Ⅴ. 맺음말 156 참고문헌 160 도판목록 168 도판 169 ABSTRACT 171-
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70501820 bytes-
dc.languagekor-
dc.publisher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c.subject.ddc700-
dc.title고려시대 보상화문(寶相花文) 청자 연구-
dc.typeMaster's Thesis-
dc.title.translatedA Study on Goryeo Dynasty Celadon Wares with the Bosanghwa Pattern-
dc.creator.othernameAn, Soobin-
dc.format.pagexi, 177 p.-
dc.identifier.thesisdegreeMaster-
dc.identifier.major대학원 미술사학과-
dc.date.awarded2021. 2-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