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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1879년~1919년) 기메 박물관 연구

Title
초창기(1879년~1919년) 기메 박물관 연구
Authors
이소라
Issue Date
2018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전동호
Abstract
본 논문은 19세기 후반 건립된 프랑스 기메 박물관의 초창기 역사를 살펴보면서 당대 인류 박물관과 차별되는 기메 박물관의 성격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기메 박물관 설립자인 에밀 기메는 동양 문화와 종교에 관심이 많았으며 직접 일본 등 극동 지역을 방문해 종교 유물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을 수집했다. 초창기 기메 박물관 컬렉션은 당시 기메가 수집한 유물들을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기메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동양의 종교였다. 그는 불교 등의 동양 종교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종교가 발생한 곳에서 직접 종교 의식을 체험하고 신도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메의 생각은 1876년 프랑스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 중국, 인도를 여행하면서 실현된다. 본 논문은 바로 이와 같은 과정 즉 기메가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종교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당대의 동양 유물 컬렉터들은 대부분 동양 예술품을 단순한 수집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 달리 기메는 동양 종교와 정신문화에 대한 선행지식을 기반으로 동양 문명을 대했으며 이는 동양 예술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케 했다. 박물관 설립자인 기메의 이와 같은 경향은 기메 박물관의 전반적인 성격과 운영 방식에 투영되었다. 1879년 리옹에 건립된 이후 1889년 파리에 재개관한 기메 박물관은 국립 박물관으로 승격된 뒤 국가가 운영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박물관에 대한 기메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기메가 기메 박물관의 모든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며 내걸었던 중요한 조건은 자신이 생존해있는 동안 기메 박물관의 관장을 임명하는 권한은 기메 본인이 갖는다는 것이었다. 기메는 타자의 문화인 동양 문화를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구 문화와 차별되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했다. 기메 박물관의 전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각 전시실 내의 동양 유물들은 종교와 문화의 정수가 담긴 독립적인 예술품으로써 배치되었다. 이러한 기메 박물관의 특성은 19세기 중후반 서구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상기할 때 주목할 가치가 있다.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 개척 사업 결과 유럽에서는 서구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타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졌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기메 박물관이 건립되었던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1851년 런던 만국 박람회에서 식민지 생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 전시’가 처음 개최된 이후 식민 전시는 살아있는 인간을 전시하는 ‘인간 동물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19세기에 유행했던 인류학과 민족지학은 바로 이와 같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학문이었다.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정신을 근저에 두고 있었던 인류 박물관이 당대 적극적으로 세워진 것은 시대 흐름을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같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당시 유럽에 건립되었던 인류 박물관을 기메 박물관과 비교함으로써 기메 박물관이 갖는 비(非)식민적인 경향을 밝혀보고자 한다. 박물관 건물은 박물관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기메 박물관은 리옹에 설립되었던 박물관 원형과 파리로 이관된 뒤의 건축물 형태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두 박물관 건축을 설계한 건축가 역시 동일했으며 이를 지시한 사람은 바로 기메였다. 단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사안일 수도 있으나 본 논문에서는 기메 박물관 건축물에 박물관이 추구했던 방향성이 녹아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간의 위치와 형태를 비롯한 전시실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해 기메 박물관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어 앞서 언급했듯 당대 인류 박물관과 기메 박물관을 비교·대조하여 기메 박물관이 당시 사회·문화적 흐름에서 이질적인 위치에 서 있음을 규명하고자 한다. 또한 기메 박물관이 자체 발행했던 출판물을 살펴보고 박물관이 추진했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본 논문의 주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열린 시각을 바탕으로 박물관 전시를 구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당시 지배적이었던 식민주의 이념에 노출되어 있었던 대중이 타문화의 ‘열등함’이 아닌 ‘차이’에 주목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기메 박물관의 모습이 이 과정에서 포착된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기메 박물관의 타문화에 대한 인식을 규명하고 당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은 비식민적인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As a study on the Museè Guimet, the France's important art museum, this paper aims to reveal that the Museè Guimet in the 19the century played the cultural role of conveying the correct perception of Other culture especially Non-Western culture to the French public. This will be demonstrated through an investigation of how the Museè Guimet had been acquired and operated during the period from 1879 through 1919. In this dissertation, how the Museè Guimet had been organized is examined by reviewing the French historical background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19th century. Emile Guimet who founded this museum was very interested in Eastern culture and religion. He visited Japan and Far East in person and collected various artifacts including religious relics. The Early collection of the Museè Guimet is based on the artifacts he collected at the time. Basically the area in which Guimet was interested was Eastern religion. He thought that in order to understand Buddhism and Oriental religion in depth, one should experience religious rituals and meet with the believers where the religion occurred. The idea of Guimet came true in 1876 when he traveled to Japan, China and India with the help of the French Ministry of Education. This paper notes that this process, or the reason Guimet's interest in Oriental culture, was due to religion. Most of the collectors of Oriental relics of the time simply thought of Oriental art as objects. On the other hand, Guimet recognized Oriental art based on his knowledge of Eastern religion and spirit, which enabled his to understand more deeply about Oriental art. Guimet recognized the Eastern culture, which is the batter's culture, as having unique values that are different from Western culture. The exhibition of the Museè Guimet was based on this perception, and the Oriental relics in each exhibition hall were placed as independent works of art, including the essence of religion and culture. After the 16th century, the colonization of Europe, which began in earnest, saw European culture as superior and foreign culture as inferior. This way of thinking was still vali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the Museè Guimet was built. Anthropology and ethnology, which were popular in the 19th century, were the studies that justify this kind of colonialism and racism. The active establishment of the human museum, which was based on the colonial and racist spirit, was a result of the passage of the times. In this paper, we will look at the non-colonial trend of the Museè Guimet by comparing the human museum that was built in Europe at that time with the Museè Guimet. The Museè Guimet organizes the exhibition based on its open view of other cultures. Furthermore The Museè Guimet tried to Keep the public who exposed to the colonial ideology that was then dominant eye on 'the difference', not to 'the inferiority' of other cultures.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is that it reveals this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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