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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직미술품제작소 연구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 : The institution and its craftwork
Issue Date
대학원 미술사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This study began as an effort to further understand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李王職美術品製作所), which was found under the auspices of imperial family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and functioned for 30 years. The manufactory, which is arguably the most important modern craftwork manufactory, is observed through the social situation of the time as well as its ideological impulses resulting from a change in ownership, with a focus on its foundation and development. Due to the low number of preserved artefacts, studies up until now mainly focused on its institutional aspect. Hence, this study aims to analyse additional artefacts, and reflect the situation as well as the understanding of craftwork during a transitional period in society. The manufactory had its name changed three times. The Hansung Craftwork Manufactory(漢城美術品製作所) was found in October 1908 to encourage traditional arts and crafts, and functioned until June 1913. However, it is considered that the institutional system and the characteristics of its production have changed since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of 1910. The House of Yi(李王家) was degraded to a ‘royal family’ under Japanese rule, and it is evident that their name was used as a strategy to invest the products with greater value. Due to bureaucratic reasons, the ownership went over to the YiWangJik(李王職) in June 1913. Intentions of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李王職美術品製作所) had also changed from its original aim of promoting traditional arts and crafts to a more commercial one. It was during this time when the manufactory started to promote itself through newspaper advertisements and various fairs. It looks as if the manufactory had understood its shortfalls in sales and funds and sought survival through privatization.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 idea of privatization must have appealed to the Japanese who could benefit from its potential revenue. It would be fair to say that such reasons were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sale of the manufactory in 1922 to Tomita-Gisaku(富田儀作), a Japanese entrepreneur. At this time, been switched into a corporation and leads the Joseon Craftwork Manufactory(朝鮮美術品製作所) name was changed. Production reflected such changes in ownership. Most evidently, the emblem of the manufactory‘美’ shows a change over time. Contrary to what was known until now, a stylised emblem ‘’ was used during the Hansung Craftwork Manufactory period, which continued on to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 Later on, it is visible that different emblems were in use due to the branching out of specific departments following an expansion. Such changes in emblem applies to the Joseon Craftwork Manufactory corporation period as well. They would have made use of the original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 emblem to reinforce their legitimacy and sense of continuity. Also in this study, the artefacts produced by the manufactory were examined part by part, according to how the manufactory was divided in different departments. For instance, goldsmithing department was the most conservative in its design and form as a lot of it’s works were produced for the royal family. However, being under Japanese rule, even the more traditional pieces were distorted by an external force of commercialism. Ancient replicas reflected the Japanese understanding of Korean art history. The style and shape of ancient Chinese replicas widely produced during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 period were intentionally chosen to show that Japan has its central place in Asian art and also a deep tradition in diverse arts and crafts. Thus, it could be understood that these products were the result of modern Japanese ideology with the intention to situate Japan as the center.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 of pearl were adapted to the everyday needs of the Japanese. Moreover, in the case of pottery, many were produced to cater for the taste of Japanese and their fondness for tea. As a result. through the analysis of the remaining artefacts,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at the products in this era were focused to attract Japanese tourists rather than a revival of traditional arts and crafts, Although the manufactory claimed to continue and promote tradition, a sense of tradition is largely absent apart from some early pieces made for the royal family. In reality, this claim to continuity was false, as tradition was distorted or overshadowed by colonialist designs. Nevertheless, there is a need to acknowledge this as a part of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cratfwork. The craftwork manufactory holds its value in that it was an effort made by the imperial family, during times of turmoil, to preserve and continue traditional craftsmanship. Also, though it would have been hard for craftsmen trained during the Japanese rule to have correctly learnt traditional techniques, it was through them that the lineage of traditional craft survived. Previous studies on the institutional system were taken into account and developed through further examining additional artefacts, and by looking at the YiWangJik Craftwork Manufactory, one could hopefully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modern craftwork in general.; 본 연구는 구한말 황실의 후원으로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후반까지 약 30년간 운영된 근대기 대표 공예품 제작소인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설립과 변모과정을 시대적 상황과 운영주체의 변화를 반영한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주목하였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알려진 제작유물의 부족으로 인하여 제도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졌었다. 본 논문에서는 새롭게 발견된 미술품제작소의 제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근대기라는 시대적 변혁기에 공예분야가 직면한 상황과 공예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파악해보고자 하였다. 미술품제작소는 총 세 차례에 걸쳐 명칭이 변경되어 운영되었다. 1908년 10월에 ‘전통공예의 진작’을 표방하여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는 1913년 6월까지 운영되었다. 하지만 경술국치가 이루어진 1910년을 기점으로 운영시스템 및 제작품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여겨진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개입이 심해지게 되며 ‘황족’에서 ‘왕족’으로 격하된 ‘이왕가’를 부각시켜 왕실의 명예를 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경영상의 문제로 1913년 6월 이왕직 소관으로 미술품제작소의 운영주체자는 변경되었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기존 설립취지인 ‘전통공예의 계승’을 위한 생산적 주체라기보다 상업적 주체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문을 통해 미술품제작소를 홍보하고, 박람회․공진회에 미술품제작소를 노출시킴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미술품제작소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유동자금의 부족, 판매부진과 더불어 더 이상 설립취지를 계승해 갈 수 없음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민간에게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본 일본인들의 민간으로 옮기려고 하는 내의가 엿보인다. 그로인하여 1922년 일본인 자본가 도미타 기타쿠(富田儀作)에게 매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때 주식회사체제로 변경되었으며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운영주체의 변화는 제작품에도 반영이 되었다. 일단 미술품제작소의 대표마크라고 할 수 있는 ‘美’의 표현에 있어서도 시기별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제작품에 나타난 ‘美’를 살펴보았을 때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르게 한성미술품제작소 시기에도 도안화된 ‘美’마크를 사용하였으며 그것이 그대로 이왕직미술품제작소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업의 확장 등으로 제작공장 분류체계가 세분화되면서 부서별 사용되어지는 마크의 표현도 달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마크의 변화는 민간에게 넘어간 조선미술품제작소 시기에도 적용된다. 기존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사용되어진 마크의 일부를 차용함으로써 전통성과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본 논문에서는 미술품제작소에서 생산된 공예품을 당시의 공장 분류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부서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금공부의 경우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성이 강한 왕실소용의 제작품이 많았으며 이 경우 문양이나 형태면에서 전통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전통적 기형을 하고 있는 제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내면에는 타자적 시선으로 해석된 상업적 상품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고대의 형태를 모방한 제작품의 경우 당시 일본인들이 바라본 조선미술사 인식론이 반영되었으며, 이왕직미술품제작소시기 많이 제작된 중국 고동기 형태는 일본이 동양 미술에 있어 중심이며 다양한 공예에서 문화적 역사가 있다는 의미를 내비치기 위해 선택된 기형으로 일본 중심주의적인 구조를 기초로 한 근대기 사상이 기반이 되어 나온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전칠기는 대부분 일본인들의 실용적 기형에 맞춰져 있었으며 도자기의 경우에도 일본인들의 대표 취미인 茶具와 관련된 제품이 제작됨에 따라 전통공예의 부활이라는 의미보다 조선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소비와 유혹의 대상으로서의 관광 기념상품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남을 제작품을 통해 확인하였다. 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된 공예품들은 전통의 계승과 부활이라는 명목 아래 제작되었지만 초기 황실관련 공예품을 제외하고는 전통적 성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고유의 전통 양식 특성을 상실시키거나 식민지적 이념이 내포되어 제작품에 반영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복원과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역사가 가진 근대기 공예사의 한 면임을 인지하여야할 것이다. 미술품제작소는 전통문화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에 대한제국 황실의 의지로 ‘전통 공예기술의 복원과 계승’이라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당시의 견습생으로 기술을 전습 받은 장인들이 비록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지기는 힘든 상황 속에서 해체될 수 있었던 공예기술의 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제도사적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품의 검토를 통하여 이를 보완할 수 있었으며 근대기 대표 공예 제작소인 ‘이왕직미술품제작소’를 살펴봄으로써 근대기 전반에 걸친 공예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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