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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인식주도적 관심' 개념

Title
하버마스의 '인식주도적 관심' 개념
Other Titles
Eine Studie ueber den Begriff der erkenntnisleitende Interessen bei Habermas
Authors
지순희
Issue Date
1988
Department/Major
대학원 철학과
Keywords
하버마스인식주도적 관심철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蘇興烈
Abstract
하버마스는 오늘날 경험과학의 실증주의적 사조가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실천적 의미에 관한 물음을 배제하고서 엄밀한 사실인식과 그 방법론적 규칙만을 학문의 영역으로 제한하면서, 인간의 실천적 물음에 부응하지 못하는 '학문이론'(Wissenschaftstheorie)을 인식론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버마스에게 있어서 실증주의의 극복이라는 과제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철학의 고유한 물음으로 확립한 칸트의 인식비판적 성찰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과 일치한다. 여기서 하버마스가 제시하려는 논제는 인식비판적 성찰이 그 본래의 의미에서 학문적 인식에 대한 비판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배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집약되는 사회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이론으로서 확대되고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칸트의 인식비판이 헤겔에 의해 정신의 현상학적 경험 안에 수용되면서 정신의 '자기형성과정'(Bildungsprozess)의 일부로 이해되고, 이러한 헤겔의 '자기형성과정'은 다시 맑스에 의해 '자연사'(Naturgeschichte)의 일부로서 규정되면서 밝혀진 바, 그것이 토대하고 있는 물질적 기반에 대한 논의를 포괄하므로써 가능하다. 이는 또한 칸트의 인식론의 한계가 헤겔과 맑스에 의해 극복되는 과정에서 인식비판적 논의 자체가 완전히 해소되어지는 위기에 처해졌던 계기들을 추적하여 이를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인식이론을 사회이론으로 확립하려는 하버마스의 의도는, 이론과 실천을 하나의 관련체계 안에 통합 하므로써 학문이론이 이 세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실천적인 힘으로 작용해야 하고 또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인식과 관심"에서 학문은 '자기성찰'(Selbstreflexion)을 통해서 자신의 '생성연관'(Entstehungszusammenhang)이며 자신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선험적인 틀로서 '관심연관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제 '관심' 개념은 이론과 실천을 매개할 수 있는 관련체계로서 부각되면서 , 현대철학이 당면한 사회비판의 문제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 개념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학문적 인식이 일반적으로 경험적-분석적 이론과 역사적-해석학적 이론으로 대별되는 것은, 그 이론의 근저에 놓인 인식주도적 관심에 연유 한다고 본다. 즉 경험적-분석적 학문은 기술적으로 이용 가능한 지식을 산출하려는 '기술적' 관심에 의해 주도되고 역사적-해석학적 학문은 행위지향적인 이해의 상호주관성을 확보하려는 '실천적' 관심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만으로는 관심의 본래적 의미와 그 총체성이 드러나지 않으며, 모든 실체화된 부당한 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해방적 관심'과의 관련에서만 전자의 두 관심은 인식주도적 관심으로서 그 확고한 기반을 얻는다. 해방적 관심에 의해 주도되는 학문은 보통 사회과학으로 지칭되는 '행위학'(Handlungswissenschaft)를 구성하며, 철학도 사회과학과 함께 해방적 관심을 공유한다. 해방적 관심은 바로 '이성'에 내재하는 '이성관심'(Vernunftinteresse)으로서 '성숙성'(Muendigkeit), 즉 인간의 자율을 지향하는 '근본적'(fundamental)인 관심이다. 하버마스는 바로 이러한 해방적 관심의 규정을 칸트의 '이성관심' 개념과 피히테의 해방으로서의 자기 성찰 개념,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성찰의 해방적 경험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 피히테, 헤겔의 관념철학 체계가 모두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에 의해 지양되지 않는 물질적 기반을 논의의 기본전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하버마스가 제시한 관념철학적 논거는 하버마스의 관심개념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뒷받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버마스에 있어서 관심은 무엇보다도 인류의 두 '생존조건'(Existenzbedingung), 즉 '노동 '(Arbeit)과 '상호행위'(Interaktion)에 부착되어 있는 '근본지향' (Grundorientierung) 이다. 다시 말해서, 관심은 노동과 상호행위를 통해서 삶을 재생산하며 자기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인류의 '자기보존'(Selbsterhaltung)에의 관심을 의미한다. 이때 자기보존에의 관심은 동시에 자기보존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 이성관심으로 나타나고, '자기성찰'에 의해서 인식을 위한 인식과 하나로 통합된다. 그러므로 '자기성찰'은 해방적 관심을 드러내는 계기로서, 즉 인식과 관심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행위'(Handeln)로서, 모든 학문이론이 그 실천적 의미를 회복하기 위하여 수행해야 하는 행위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성찰을 학문이론으로 수용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학문모형은 프로이드의 심리분석이다. 심리분석가는 환자의 무의식적인 세계에 묻혀 있던 것을 의식적인 세계로 이끌어 내는 작업을 통하여 환자의 분열된 의식을 재통합시키는 종합을 수행하는 바, 이때 분석이 행하는 종합의 기능은, 환자로 하여금 왜곡된 자기이해로부터 벗어나 자기동일성을 회복하는 '자기성찰'을 유발시키는데 있다. 본 논문은 하버마스가 그의 관심개념의 중요한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칸트와 피히테의 관념 철학적 논의와, 프로이드의 심리분석을 통해 그가 해명하려고 한 자기성찰의 개념을 고찰하여, '해방'의 의미가 하버마스의 본래적 의도와는 달리, 왜곡된 자기이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로 축소되어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왜곡된 자기이해로부터의 해방이 갖는 실천적 의미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모든 사회문제의 본질을 '왜곡된 대화관계'로 해석하는 하버마스의 시각이 얼만큼 타당한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문제로, 본 논문은 이 문제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놓았다.;Im Mittelpunkt vorliegender Arbeit steht die Frage, ob Habrmas Versuch, den Begriff der emazipatorishe Interesse im Rueckgriff auf Kants und vorallem Fichtes Begriff des Vernunftinteresses zu verdeutlichen, und den Begriff der Selbstreflektion im Rahmen der Freuds Psychoanalyse zu vergegenwertigen, gelingt. Dabei ist die Skizzierung seiner These, radikale Erkenniniskritik nur als Gesellshaftstheorie moeglich sei, vorangestellt. Kants Vernunftinteresse als praktisches Interesse am Guten ist dadurch von anderen menschlichen Interessen unterschieden, dass es als Interesse an Handlungen nichts vom menschlichen Beduerfnis bestimmt ist, sondern erst ein Beduerfnis erweckt. Fuer Kant geht die Frage, wie und warum uns das moral ische Gesetz als reine Idee interessieren kann, ueber unsere Vernunft hinaus. Die menschliche Vernunft kann dieses Faktum nicht erklaern. Aber dies soil nicht heissen, dass wir dieses Faktum als unerklaerbar endgueltig abschaffen duerfen. Vielmehr beruht der eigentliche Sinn menschlicher Vernunft, die Unbegreiflickkeit als solche zu begreiffen und dadurch die Moralitaet als nbedingte Forderung gel tend zu machen. Habermas findet diese Argumentation von Kant unzulaenglich, um die unbedingte Forderung des praktischen Handelns festzulegen. Deswegen wenndet es sich an Fichtes Begriff des Interesses, der als Akt der Vernunft mit der Vernunft schlechthin identifiziert ist. Fuer Fichte ist die Selbstreflektion als Akt der Vernunft “Anschauung und Bnanzipation, einsicht und Befreiung aus dogmatischer Abhangigkeit in einern”. Aber wenn man Fichtes Begriff des Interesses genauer ansicht, merkt man sonach, das mit seinern begriff des Interesses an Selbststaendigkeitdes Ich gerade die rein ideal ist ische Praemisse geltend gemacht sind, dass das menschlihe Sein schlechthin absolutes Sein waere, das heisst, dass es durch keine materiale Bedingungen bestimmt sei. Selbstaendlich mit diesern rein ideal istischen Gedanken kann Habermas Grundannahme nicht koindiziern, dass die Leistungen des transzendentalen Subjekts ihre Basis in der Naturgshichte der Menschengattung haben. Habermas ist davon ueberzeugt, dass die psycoanalytische Erkenntnis zum Typus der Selbstreflektion gehoert. Das heisst, die analytische Behandlung kann nicht ohne Bezugnahme auf die Erfahrung der Reflektion bestinint werden. Wenn mam aber in der psycoanalytischen Behandlungstechnik die Bestimmung der Selbstreflektion sucht, dann ist die Folgerung unabdingbar, dass die dabei entspandene Enanzipation nur als Emanzipation von falschem Bewusstsein anzusehen ist. Ob dieser Begriff der Bnanzipation als wahre emanzipative Erfahrung der Reflektion geltend gemacht werden kann, ist auch sehr frag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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