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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代官話音系硏究 : 以北京, 中原, 江淮地區官話爲主

Title
淸代官話音系硏究 : 以北京, 中原, 江淮地區官話爲主
Authors
최려홍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官話는 中國近代 民族共同語로써 元明淸 몇 朝代에 걸쳐 "帝國通用"의 표준어역할을 수행해 왔다. 官話의 기초방언 그리고 어음체계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풀지 못한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官話에 대한 연구에서 明淸官話를 통합하여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중국어의 오랜 발전과정에서 明淸官話는 類似한 음운특징과 演變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또 현대표준어와 가장 접근해 있어서 통합하여 연구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語音의 分化와 合流는 시기마다 자기의 특징을 가지는 바, 한 사회의 共同語는 그 音韻變遷이 정치 경제 문화적인 사회발전과 同時性을 가지지 않더라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은 周知하는 사실이며 그것이 음운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淸代는 外族통치의 중국 마지막 왕조로써 근, 현대사회의 과도적 단계에 처했던 격변의 역사시기이다. 淸代는 분명 明代, 그리고 그 이전 朝代와 다른 자기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官話라는 共同語 어음체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音韻硏究에 있어서 淸 당시에는 "厚古薄今"경향으로 現實音에 대한 연구가 무시되었다면 그 후로도 淸代 音韻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며 연구성과 또한 元明보다 많이 뒤쳐진 상태이다. 체계적이고 深度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본 논문은 淸代 官話의 形成背景으로부터 그 聲、 韻、調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淸初에는 官話가 明末官話 즉 南京音을 표준으로 하는 明代의 音韻體系을 이어왔음을 고찰하였으며, 그러나 淸 中葉부터 서서히 북경어의 지위가 향상하면서 결국 淸末 民初에는 北京語音體系가 결정적으로 標準語音의 위치에 오르는 淸代 官話의 발전과정과 근대 中國語의 총체적인 演變趨勢를 分析하였다. 淸官話 聲母체계는, 淸初의 二十聲母체계에서 후기에는 二十二聲母체계(v母가 소실되고, [□,□ ,□]가 첨가)를 반영한다. 淸初 官話讀書音에는 仄聲에 약간의 全濁音 흔적을 보이기는 하나 全濁音을 제외한 音韻資料 또 혼용하는 예도 많은 것을 보아 淸初에 벌써 淸化한 것으로 보인다. 見曉精母의 顎化문제에서는 18세기 이후에 이 성모들의 구개음화가 완성되었음을 재확인하였다. 淸代 음운자료에는 18세기 20년대까지도 見曉精의 구개음화가 한, 두 例에 그쳤으며 확실한 顎化현상은 18世紀 40년대 이후에 나타났다. 零聲母는 淸代 北方官話語音을 반영한 대부분 자료들에 影疑喩母가 零聲母로 합류되었음을 나타냈다. 단 北京<<音韻逢源>>(裕恩, 滿族, 道光庚子1840年)음운체계에서만 明<<等韻圖經>>보다 疑母 ŋ 과 微母 v가 더 반영되어 있는데 이것이 만주어의 어떤 영향을 받아서인지 明末官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한 北京音을 반영한<<관화졸진>>(1898, 美國 Chauncey Goodrich)는 零聲母를 보여주고 있다. 江淮官話語音에는 대부분 ŋ 母를 없애고 零聲母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淸代官話標準音系에서 影疑喩母등이 이미 零聲母로 합류된 것을 나타낸다. 泥娘來母의 分混問題에서 淸代 中原 및 北京語音은 泥娘이 혼용되지만 泥와 來의 混例는 보이지 않으며 江淮官話에는 泥來가 合一되어 있다. 이는 現代江淮官話와 그 상황이 같다. 捲舌音에서 淸代<<五方元音>>에는 知照가 細音과도 결합하고 있다. 河南山東官話에는 捲平舌音의 混例가 보이고 江淮官話에도 混例가 보인다. 北京語音을 반영한<<관화졸진>>(1898)에는 捲平舌음을 확실히 분별하고 있고 捲舌音은 洪音과만 결합하는 現代漢語 표준어와 같은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淸代韻母체계는 38韻로 귀납할 수 있다. 淸代에는 운모에 있어서 四呼를 분별하는 연구방법이 성행하였다. 淸 四呼와 現代 普通話는 脣音字開合口 그리고 卷舌聲母와 介音의 결합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明代 및 淸 中葉 이전의 자료들에는 대부분 脣音字(今在開口呼類)를 合口韻에 분류하고 있다. 淸 中葉 이후에는 脣化 介音이 서서히 약화되어 소실되었다. 照組聲母의 四呼配合問題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淸初<<五方元音>>(北方中原音)에는 "홍세양병"을 나타내고 江淮官話도 마찬가지다. 淸 북경어음에서는 現代중국어와 같은 양상을 나타낸다. 또 일부 韻書는 細音과만 결합하고 洪音과는 결합하지 현상을 나타내지만 오늘날 방언 중에 그런 현상을 찾을 수가 없어, 實際音을 나타낸 것인지 의심스럽다. 兒爾二과 兒化韻問題에서 청 中原일대 語音에는 "兒而二"에 [l]聲母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지역방언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江淮官話음을 반영한 <<說韻>>(1807年)에는 그 韻母체계가운데 "而"아래에 "北音"(19世紀에 이르러 "北音"은 실제로 北京音을 위주로 하는 북방방언을 가리킨다.)이라 주를 달았는데 이는 [□r]로써 北音에 兒化音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李思敬은 <<紅樓夢>>에 대한 연구룰 통하여 18세기에 兒化韻이 북경말에 확실히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穿鼻韻 "東鐘", "庚淸"兩韻에 同時에 收錄된 漢字들은 <<中原音韻>>이후 변화하여 "庚靑"이 "東鐘"으로 읽히는 추세를 보였는데 淸代에는 江淮官話에 나타나고 있다. <<李氏音鑑>>에는 또 이들 중 喉牙音字는 東鐘韻으로 脣音類字는 庚淸韻으로 읽히는 변화를 보였는데 이는 현대한어와도 비슷한 양상이다. 元音韻尾중, "皆來"韻[-iai]운모의 주요원음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皆來韻"皆、街、介、鞋"[-iai]는 현대 北京音에서 "皆、街、介"는 [□ie]로, "鞋"는 [□ie]로 주요모음이 [e]로 변하였다. 이런 漢字들은 十三轍에 여전히 "懷來韻"에 들어 있는 것 봐서, 十三轍이 형성된 뒤에 주요元音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1840년, 裕恩의<<音韻逢源>>에 蟹攝齊齒呼[-ia i]의 "皆、解、戒、諧"等字들이 [-iε]로 변하여 酋部 齊齒呼에 들어 있다. 그러나 -iai와 ie에 동시에 들어 있는 字들도 약간 보였다. 그러나 1898년<<관화졸진>>에는 전부 [-iε]로 변하였다. 이들 주요모음의 변화는 19세기말에 官話에서 완성되었음을 나타낸다. 또 운모가 [-iai]이면서 聲母가 零聲母인 "涯、애、矮"등 字는 現代漢語에서 韻母가 [-iε]로 변하지 않고 韻頭가 소실되어 韻母가 [-ai]로 되었다. 이들은 注音符號전까지 여전히 [-iai]로 읽히었다. 齊祭韻에 蟹攝三四等에 속해 있던 韻頭[i-]도 있고 韻尾[-i]도 있던 자들이 운미[-i]가 사라지고 韻頭[i]를 주요모음으로 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현재 北京語에 "稽"讀[□i], "妻"字讀[□ i], "西"讀[□i]와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의 변화는 韻頭[i]가 사라지고 韻尾가 남아 있는 것인데 이는 주로 현재 廣州등 方言에 존재한다. 元音韻尾중, 韻尾가 [-u]였던 "收嗚韻"은 淸代 語音發展中에 演變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聲調면에서 淸代에 북경어음체계만 始終 4개 調類를 나타낸다. 河南,山東일대의 語音資料에는 五聲과 四聲 調類를 두루 다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淸代 많은 자료들에 入聲調을 반영하며 평성은 음양으로 나뉘어진다. 즉 五聲을 반영하는 자료들이 상당히 많다. 江淮官話的<<五聲反切正韻>>·<<等韻學>>도 五聲을 나타낸다. 북경과 지척에 있는 河北天津지역 語音체계도 五聲調를 반영한다. (<<拙庵韻悟>>趙紹箕, 康熙甲寅 1674年,<<운뢰>>華長忠, 天津1805--1858), 이러한 상황은 明末로부터 淸末에 이르기까지 官話標準音體系 聲調調類에 큰 변화가 없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淸代官話標準音은 聲調가 陰平、陽平、上聲、去聲、入聲 다섯 개 調類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청 중엽이후, 서서히 북경어음체계 四個調類의 挑戰을 받아 淸末에 결국 四聲으로 교체된다. 現代漢語는 陰平、陽平、上聲、去聲 4개 調類다. 이는 淸末 民初, 북경어음이 표준음으로 확정되면서 성조도 四聲으로 확실시된 것이다. 輕聲問題에 관하여 朝鮮崔世珍<<飜譯老乞大>>(1515年)에 連讀變音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이는 輕音現象을 반영한 것으로 明代 官話에 輕聲이 있었음을 반영한다. 이런 輕聲은 淸代 "白話"소설등 창작작품들에 많이 나타나는데 <<紅樓夢>>중에 "聲同調異"한 異文들이 그것을 반영한다. 淸代 북경어에 많이 나타난 경성은 음운자료에서는 구체적 설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淸代官話音系는 現代漢語 音韻體系와 가장 접근해 있으면서도 자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近代漢語官話, 上承古代雅言, 下啓現代漢語標準語, 是漢語史中十分重要的組成部分, 但從目前的硏究情況來看, 타仍是一個較爲薄弱的環節, 近代官話語音中許多問題, 至今還是一串串沒有解開的謎, 給漢語共同語的硏究, 建立完整科學的漢語語音史造成一定障碍, 타應該得到更廣泛的重視. 其中淸代官話音系作爲直接影響現代漢語普通話標準音的系統, 全面深入硏究타, 對正確理解現代漢語標準音具有現實的意義. 在探討近代官話語音時, 大多學者將明淸兩代結合在一起進行硏究. 在漢語語音長久的發展過程中, 明淸兩代官話具有相似的音韻特點, 而且最接近現代漢語標準音. 可以作爲一個整體來硏究. 但語音的分化與整合, 每一時期都有타自己的特點, 卽便共同語的音韻演變不一定與朝代更替等社會變化同步進行, 但至少應該可以說深受社會變化的影響. 淸朝作爲中國封建集權制的最後一個王朝, 타是中國近代社會逐步退出歷史舞臺, 走向現代社會的複雜多變的轉折時期. 這二百六十多年的歷史是民族大融合, 語言大融合的時期. 타具有不同於明代及以往各個時代的自身的特點. 硏究淸代官話音系, 對於我們探索漢語共同語音韻系統的演變過程及演變規律, 建立系統、完整的語音體系都具有重要的意義. 但有一點必須要提出, 淸代的"厚古薄今"傾向, 使當時的音韻學家對現實語言漠不關心, 他們甚至對漢以後淸以前硏究活語言的著作, 評價都非常低, 淸代語言學家對現實語音的冷淡, 後代學者似乎也有所繼承, 單就淸代官話語音進行具體硏究的論文병不多見, 可以說, 淸代官話音系硏究是有待進一步開掘的重要領域. 本文通過考察, 總結出聲母方面, 淸代前期應爲二十聲母, 後期共有二十二聲母(v母消失, 增加[□,□‘,□]). 淸初, 官話讀書音中, 在仄聲似乎保存一些全濁音的痕迹, 但極少, 大部分音韻資料反映全濁音淸化或淸濁混用, 說明淸代官話音系中全濁音無論平仄都已淸化了; 在見曉精母顎化問題上, 進一步證實了見曉精於十八世紀以後才完成顎化, 資料中直至十八世紀二十年代見曉精顎化僅見一, 二例, 明顯反映顎化是在十八世紀四十年代以後; 淸代反映北方官話語音的大部分韻書, 影疑喩變爲零聲母, 但北京出的<<音韻逢源>>(裕恩, 滿族, 道光庚子1840年). 比明代的<<等韻圖經>>多出疑母 ŋ 和微母 v , 這是兼顧滿文的結果還是反映南音或是"存古", 還흔難下定論. 영有反映北京音的<<관화졸진>>(1898, 美國 Chauncey Goodrich)反映零聲母. 江淮官話語音大部分已取消 ŋ 母, 變爲零聲母. 這說明淸代官話標準音系中影喩疑母合流병已變成零聲母; 泥娘來母的分混問題上, 淸代中原及北京地區官話泥娘有混例, 但不反映泥來混例, 而江淮官話反映泥來合而爲一. 這與現代江淮官話的情形相同; 捲平舌問題上, 淸初<<五方元音>>中照知捲舌音可與細音相병. 河南山東捲平有混例, 江淮官話捲平有混例. 北京語音(<<관화졸진>>)分辨捲平舌, 知照組只配洪音. 淸代韻母系統可歸納爲38韻. 分辨四呼是淸代音韻硏究的一大特點, 淸四呼系統和現代普通話在脣音字開合口問題、捲舌聲母和介音的配合問題上略見不同. 明代以及淸中葉以前的韻書大多把脣音字(今帶開口呼類)歸入合口韻, 淸中葉以後脣化介音漸漸弱化至於消失, 照組聲母與四呼的配合問題, 如上所述, 淸<<五方元音>>(北方中原音)等反映洪細兩병, 江淮官話洪細兩병, 淸北京官話反映只병洪音不병細音. 영外還有韻書只병細音不병洪音. 但這種現象今方言中未見證據, 令人懷疑, 可見,照組聲母淸初應該是洪細兩병, 淸末就只병洪音不병細音了; 兒爾二與兒化韻問題, 淸中原一帶語音反映將"兒而二"諸字歸於來母, 卽有[l]聲母, 是這些地區的方音特色. 當時反映江淮官話的<<說韻>>(1807年), 其韻母系統中"而"下注"北音"(到19世紀, "北音"實指北京音), 應是[□r]音値, 北方흔有可能存在兒化音. <<紅樓夢>>中的兒化韻, 表明十八世紀北京話中已確確實實存在兒化音, 兪敏證實官話區幾個曾有旗人駐찰過的大城市都有兒化韻, 這是滿族旗人帶去的; 穿鼻韻"東鐘","庚淸"兩韻重見字在<<中原音韻>>以後, 出現"庚靑"讀作"東鐘"的情形, 明<<等韻圖經>>, 淸反映江淮官話的<<五聲反切正韻>>也基本保存這種趨勢, 而淸末<<李氏音鑑>>中, 反映喉牙音字讀如東鐘韻, 脣音類字讀如庚淸韻的情形, 這與現代漢語的情形相似; 元音韻尾中, 皆來韻[-iai]喉牙音"皆、街、介、鞋", 今北京音"皆、街、介"讀[□ie], "鞋"讀[□ie]. 主要元音變成[e]. 這些字在十三轍中仍歸在"懷來韻", 說明這些字主要元音的變化可能出現在十三轍形成以後. 1804年<<李氏音鑑>>中"摘、塞、宅"等的反切下字仍是蟹攝二等字"皆、崖", 三個字的讀音如今仍保留-ai韻母, 說明十九世紀初, 其主要元音未發生變化. 而1840年裕恩的<<音韻逢源>>, 反映蟹攝齊齒呼[-iai]的"皆、解、戒、諧"等字變爲[-iε], 與拙攝齊齒呼合流, 歸酋部齊齒呼. 但也有一部分不穩定的-iai(其中흔多字與ie兩見). 但1898年<<관화졸진>>中, [-iai]全部改讀[-iε], 主要元音發生變化. 영外, 韻母同爲[-iai], 聲母爲零聲母的"涯、애、矮"等字, 在現代漢語語音中韻母沒變成[-iε], 而是韻頭消失, 韻母變成[-ai]了. 這些字直到注音符號出現時韻母仍是[-iai], <<中原音韻>>"皆來"韻的"擇澤策冊則測仄色(韻母[-ai])"、"革隔格客刻혁額厄(韻母[(i)ai])"等這些古入聲字, 在北京語音裏歸在歌韻, 主要元音都變成[-□]. 但淸反映河南山東方音的韻書<<萬韻新書>><<等韻簡明指掌圖>>中多讀爲[-ei], 卽保留元音韻尾, 主要元音起了變化. 齊祭韻字, 本屬蟹攝三四等字, 有韻頭[i-], 又有韻尾[-i], 頭尾發生矛盾的結果. 一種結果是把韻頭[i]變爲主要元音, 병去掉[-i]尾, 如今北京話"稽"讀[□i], "妻"字讀[□‘i], "西"讀[□i], 這類字在淸代, 韻母已發生變化, 韻頭變成主要元音.; 영一種結果是取消韻頭, 保留韻尾, 這種變化主要出現在廣州等方言中. 元音韻尾中, 韻尾爲 [-u] 的"收嗚韻", 在近代語音發展中, 未見演變的痕迹. 聲調方面, 淸代只有北京地區官話始終是四個調類, 河南、山東一代的語音資料基本是混合體現五個或四個調類, 淸代反映官話的흔多韻書都保留入聲, 平聲又分陰陽, 大多反映五個調類. 其中反映江淮官話的<<五聲反切正韻>><<等韻學>>, 與北京近在咫尺的河北天津地區聲調也保存五個系統.(<<拙庵韻悟>>趙紹箕, 康熙甲寅 1674年,<<운뇌>>華長忠, 天津1805--1858), 大部分官話區語音系統都保留入聲調, 反映五個調類. 卽官話音系中存在閉塞較松的[-□]韻尾. 這種情形說明明末至淸末聲調系統未起大的變化. 說明淸代官話音系聲調調類爲陰平、陽平、上聲、去聲、入聲. 但這一系統, 在淸中葉開始受到北京四個調類系統的挑戰. 現代漢語爲陰平、陽平、上聲、去聲4個調類, 這是淸末民初北京語音確定爲標準音以後, 才正式成爲標準音調類的.; 輕聲方面, 朝鮮崔世珍<<飜譯老乞大>>(1515年)中談到連讀變音, 這涉及到輕音現象. 說明明代漢語官話中有輕聲, 這種輕聲在淸代普遍存在. <<紅樓夢>>中"聲同調異"的異文就反映淸代北京話中確實存在輕聲讀法. 關於輕聲, 在淸代韻圖韻書中흔難조到明確記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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