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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문장론 연구

이태준 문장론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Lee, Taejun's theory of the writing
Issue Date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Lee, Taejun was the chairman of 'Gu-In-Hoey(九人會)' which is focusing on artistry and opposite to uncultivated politicism and the editor of magazine, 『Mun-jang』 from February, 1939. He led Korean literature after KAPF was dismissed. After independence, however, he changed his ideology unexpectedly, and joined in 'Chosun Culture Construction Main Conference(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 and went to North Korea and finally he published works with conformism. As a result, his world of works included radical and ironical layers rather than one integrated flow. Thereby, this study will consider his literary history chronologically and try to understand Taejoon Lee's world of literature, which was not accepted as one flow, but organically based on his theory of writing or book published in the magazines at every point of distinguishing his world of literature. In chapter Ⅱ, this study searched the procedure of seeking his own early literary character based on situations of that period from 1925, his start of his literary career with 「Oh-Mong-Nyo」to the early and middle 1930's with his active workings. At that time, Sang-heo started to find his literary position in the stern census of Japanese colonies. In this process, he was interested in expressionism style. He used it for his writing as delivery of his conscious by using 'techniques'. We may consider that he could aim for more pure literature art with this kind of writing and express his real situation in Japanese colony indirectly.「Method of Writing ABC」 is the text specified for his theory of writing at that time. He repeatedly emphasized more vivid expression of object with being 'described' with finding unique point from his own feeling or recognition with close long-term observation by his senses. This description is the expressions for all the details with awaken main agent's own sense and consideration beyond unified recognition system and resistance to modern society which is unifying all the various differences with possibility of aesthetic modernity. In chapter Ⅲ, this study examined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Lee's tradition-oriented recognition based on comprehension of timely context as obvious Japanese making people for Japanese Emperor policy. In this time, Japan implemented obliteration policy for people in Chosun Dynasty as its colony insisting the Great East Asia public policy and the theory of unified Chosun and Japan. In this context, the writers of Chosun tried to establish new ethnic ego by inquiring to 'more like Chosun'. For Sang-heo, he focused on Korean letter as his interests in 'more like Chosun'. He published magazine『Mun-jang』 claiming to support traditionalism, or published 「Munjang-ganghwa」 serially as practice for this kind of works. When The status of Chosun language was downgraded to just as a dialect for Japanese as a official language, Sang-heo emphasized not also sentence with the unification of the spoken language and written language with 「Munjang-ganghwa」 but specialty of Chosun language with lots of echoic and mimetic words, and also he established Chosun language as a independent people's language itself with emphasizing the innate hystoricity of Korean sentence based on boudoir style. In last chapter Ⅳ, this study searched the process of change of his recognition with socialism through Lee's novel, 「Before and after independence」 and travel essay, 「Trip to Soviet Union」 based on independent Korean circumstances and concluded his reasons for decision of system. Unlike his time for 「Before and after independence」, the reason with traveling Soviet Union in 1946, we can see his active agreement for socialism. The economic reality in Soviet Unions he saw was regarded as optimal condition to immerse in art and attract and it also at his with the people policy for assurance of lots of minor race's endemism. In other words, Lee joined his original image for ideal community and socialism system, rather than acceptance of socialism system. So, after going to North Korea, he felt a kind of ideological chaos from real socialism system in North Korea and this confusion was revealed in 「New Munjang-ganghwa」. This can be regarded as faithful theory of writing to realize socialism system when you look into it at a glance. When you look into it in details, however, there are ironic points from crash between race and ideology, individual conscious and collective idea. He remained the points to be arranged regularly with North Korean Culture system in the intervals at syntax to consider his own literary value and politicism thoroughly in North Korea, as a limited environment. In conclusion, we can consider that Lee corresponded to protect people and develope modern literature with constancy in time with radical change as Japanese colony - Independence - divided country based on his own recognition of real world. Firstly, in early and middle 1930s', he tried to express his critical recognition to colonial capitalism as 'technique' not as 'content' to avoid Japanese census. After that, in late 1930s', Japanese War basis was in earnest and racial identity was in crisis in accordance with theory of unification with Chosun and Japan, he published 『Mun-jang』 with supporting traditionalism to form and protect racial main agent with his effort. Lastly. after independence, he choose socialism system and worked for ideal system realization to reach perfect independence and cultural development of all the people. And when he decided all of these, he wrote or modified and published theory of writing again to prepare modern sentence, ethnolinguistic establishment and ideal image of Korean as national language. The reason for this, for him, a language is the media between real world and him and mirror to show his conscious. Although the decision for going to North Korea didn't satisfied his expectation, but his theory of writing was the result from more sensitive response to timely context rather than isolated from that.;이태준은 비문화적 정치주의를 반대하고 예술성을 중시했던 ‘구 인회’의 좌장이었으며 1939년 2월부터는『문장』지 편집자로 활약하면서 카프 해산 후 우리 문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왔다. 하지만 해방 후, 갑작스러운 사상적 전환을 보이며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 가담하는가 하면 월북과 함께 점차 체제순응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통합적 흐름을 보인다기 보다는 급격하고 모순적인 단층을 내포하게 된다. 이에 본고는 이태준이 그의 문학 세계를 크게 구획 지을 수 있는 기점마다 문장론을 잡지에 장기간 연재하거나 단행본으로 출판한 바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문장론에 대한 연구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유의미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 이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적 이력을 통시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기 어려웠던 이태준의 문학세계를 유기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먼저 이태준이「오 몽 녀」로 등단한 1925년부터 그가 왕성한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1930년대 초, 중반까지의 시대 상황을 토대로 상 허가 초기 자신의 문학적 성격을 찾아가는 과정을 살폈다. 당시 상 허는 촘촘한 일제의 검열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 모색의 과정에서 상 허는 표현주의 화풍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를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한 것이‘기법’을 통해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상 허 는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보다 순수한 문학예술의 경지를 지향할 수 있었던 동시에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현실적 인식을 간접적으로 표출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글 짓는 법 ABC」는 이 당시 그의 문장도가 구체화된 텍스트다. 이태준은「글 짓는 법 ABC」에서 자신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오랜 시간 면밀히 관찰하여 자신만이 느끼거나 인식하게 된 독특한 지점을 찾아내 ‘묘사’의 기법으로 그것을 생생히 표현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이 때의 묘사는 획일화된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 주체 나름의 감각과 사유를 일깨워 세세하게 표출해 내는 것으로서 모든 다양한 차이들을 획일화시키는 근대에 저항하는 미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Ⅲ장에서는 일제 황민화 정책이 노골적으로 수행되던 시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이태준의 전통 지향적 인식의 성격 및 그 의의를 살폈다. 이 시기 일본은 대동아 공영 및 내선 일체 론을 내세우며 식민지 조선에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한다. 이 상황에서 조선의 문인들은‘조선적인 것’에 대한 천착을 통해 새로운 민족적 자아를 확립하고자 했다. 상 허의 경우 이 시기‘조선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한글에 집중된다. 상고주의를 표방하는 잡지『문장』을 간행하거나「문장강화」를 연재한 일도 이 같은 실천의 일환이다. 조선어의 지위가 이미 일본어를 표준어로 하는 한 지방어로 격하될 무렵의 시기에 상 허는「문장강화」를 통해 언문일치 문장을 강조하는 한편 의 음 어, 의태어가 풍부한 조선어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내간체를 근간으로 하는 한글문장의 고유한 역사성을 부각시킴으로써 하나의 독립된 민족 언어로서 조선어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는 해방 정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이태준의 소설「해방 전후」와 기행문「소련기행」을 통해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 과정을 살핌으로써 그가 내린 체제 선택의 이유를 가늠해보았다. 그는「해방 전후」시기와 달리 1946년 소련 여행을 계기로 그에 대한 적극적인 동조의 입장을 보인다. 상 허가 소련에서 목도한 경제적 현실은 예술 및 문화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으로 인식되었고, 여러 소수 민족의 고유성을 보장하는 민족 정책은 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컨대 이태준은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였기 보다는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상과 사회주의 체제를 결합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월북 후 실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그는 일종의 사상적 혼란을 느끼게 되고, 이 같은 혼란은 월북 후 집필한『신문장강화』에도 드러난다. 이는 사상 성이 투철한 예문들로 구성되어 있어 일견 사회주의 체제의 실현에 충실한 문장론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 그 안에는 민족과 이념, 개인의식과 집단적 사상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모순적인 지점들이 존재한다. 문장론 사이사이에 북한의 문화 체제와 일정하게 배치되는 지점을 남겨둠으로써 상 허는 북한이라는 제약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문학성과 정치성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태준은 일제 식민시기 - 해방 - 분단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에 대한 나름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민족을 수호하고 한국 근대 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대응을 보여 온 것이라 판단된다. 먼저 1930년대 초, 중반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해 식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내용’이 아닌 ‘기법’ 으로 서 표출하고자 했다. 이후 1930년대 후반 일제 전시체제가 본격화 되어 내선일체의 논리에 의해 민족 정체성이 위기에 처해있을 시기에는 상고주의를 표방하는『문장』지를 간행하여 민족적 주체를 형성하고 수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에는 온 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문화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하여 이상적인 체제 실현을 위해 복무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결정의 시기에 그는 문장론을 집필하거나 수정하여 다시 펴냄으로써 근대적 문예 문장, 민족어 구축, 마지막으로는 이상적인 국어의 상을 마련하고자 고심했다. 그에게 언어는 현실과 자신을 매개하는 창이자 자신의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월북의 선택은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지만 이태준의 문장론 및 문학 창작 활동은 시대적 맥락에서 유리되어 있었다기보다 오히려 그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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