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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民衆)에서 민(民)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Title
민중(民衆)에서 민(民)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Other Titles
From Minjung to Min (person), from a Group to an Individual
Authors
이인미
Issue Date
2008
Department/Major
신학대학원 신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In the 1970s and 80s, Minjung Theology took sides with minjung, i.e., the politically, economically, and culturally weak of the Korean society. The first generation of minjung theologians was outraged by the injustice done to the weak, testified the suffering of them, and even participated in their protest. The socially weak were referred to as “minjung,” i.e., as a group of collective people by the first generation of minjung theologians. And yet, does this mean that minjung should always be recognized as a collective term? The author says ‘No.’ Today, when Minjung Theology is often deemed only as a great heritage or a relic of the past, the same socially weak still exist in the Korean society. However, they portray different aspect from the people of the 1970s~80s. The main thesis of this research is that Minjung Theology, which recognized minjung as a collective term, now has to address to the each and every concrete face of individual minjung as well. Each minjung has different face and feature. It may be an out-dated approach to regard minjung as a “group,” when each of them is very diverse in nature. Thus, this research proposes the individuation of minjung in Minjung Theology. This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stop studying the minjung as a group of suffering people, but in addition to the previous method, we should look into individual faces of minjung. The individual in this research is an individual identical with Hannah Arendt’s definition in that “no individual is same as anyone else that has lived in the past, is living now, and will live in the future.” As such, the individuation mentioned in this research is not equivalent to egoism, but identical with the Christian individualism introduced by Emile Durkheim, which is “expressing the essence of sincerity amid one’s inner belief and faith.” The author argues that her emphasis on the individual minjung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generation of minjung theologians after all: By rereading closely of the texts of Ahn, Byung-Mu and Hyun, Young-Hak from the perspective of an individual woman, the author is assured that the first generation of minjung theologians actually did not close their door to the discussion of individual minjung. Ahn, Byung-Mu’s theory of minjung was recognized as the major branch of Minjung Theology in the 1970s and 80s, as he sought to provide explanations on “theology of events” by uniting Korean minjung movement with the biblical minjung events. Ahn proposed the “self transcendence of minjung,” and provided prospects for many individuals that there were social or public spheres which could aid isolated individuals. Hyun, Young-Hak was discovered as unique among the first generation of minjung theologians through this research. Influenced by Reinhold Niebuhr and Harvey Cox, he talks of minjung in both collective and individual terms. Hyun dealt with the individual differences within a group by constantly emphasizing on the concept of relationship, i.e., the vivid and lively interaction of individual differences. Instead of erasing the individual differences within a group, he emphasized on the different layers of individuals that formed the society. The recognition of individual differences while viewing the group as a whole is the strength of Hyun’s Minjung Theory. The author proposes through this research that the Minjung Theology should recognize individual faces within the group, and shall become a theology that works with each and every weak individual in the society. As the title of this research, “From Minjung to Min (person), from a Group to an Individual,” suggests, the author argues that we need to move the weight of Minjung Theology from “jung”(衆) to “min”(民) in the term minjung itself.;1970~80년대, 1세대 민중신학은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약자들인 민중을 편들어주었던 신학이었다. 1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약자들이 처해있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분노했고, 혹여 위험을 자초하는 한이 있더라도 약자들의 집단봉기를 증언했으며 나아가 그들의 봉기현장에 직접 참여했다. 바로 그 약자들을, 1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민중(Minjung)’이자 집단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그때에 민중이 한 번 집단으로 불리웠으니 그때 이후로도 계속해서 민중은 집단으로 불리워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생각이다. 지금 2008년, 민중신학이 얼핏 위대한 유산(遺産) 내지는 박제된 유물쯤으로 간주되는 듯한 오늘날, 위와 같은 의미의 약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단, 그들은 1970~80년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과거에 약자들을 한꺼번에 묶어 편들어주었던 민중신학이 이제는 약자 하나하나를 편들어주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맡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약자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또한, 스스로 약자의 처지에 놓이는 경험들은 다양할 뿐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상당 기간 지속되기도 하고 드문드문 끊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 본 연구자 역시 살아오면서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약자로 느꼈던 경험이 종종 있어왔다(그 중 한 사례가 본 연구의 서두에서 공개된다). 그렇다면, 이렇듯 각양각색인 약자들을 ‘한 묶음’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시대감각의 면에서 볼 때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민중신학의 개인화를 주장한다. 이는 집단으로서의 민중을 이야기하는 일을 중단하자는 게 아니라, 그에 더하여 민중집단 안에 있는 개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는 주장이다. 본 연구가 주장하는 개인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개인 즉 “어느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동등한 개인이다. 이러한 개인의 의미와 관련해 본 연구가 함께 언급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egoism)가 아니며,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이 제시한 기독교적 의미의 개인주의, 다시 말해 “내면적 믿음과 개인 스스로의 신념 속에서 경건함의 본질적인 상태를 드러내” 보이는 개인주의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의미의 개인과 개인주의가 1세대 민중신학과 충돌하지 않음을, 안병무 · 현영학의 민중론 텍스트를 여성 그리고 개인의 자리에서 꼼꼼히 다시 읽음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상 1세대 민중신학은, 개인과 개인주의에 관한 논의에 대해 완전히 문을 꽉 닫아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1세대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집단의 면과 개인의 면을 포괄하는 현영학을 제외하곤 대개 집단으로서의 민중을 이야기했다. 집단민중론이었다. 이 집단민중론은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1세대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한국사회의 민중집단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인과 동일화했다. 이는 집단과 개인을 분별없이 동일화하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집단적 민중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민중신학이 한국의 민중(인간들)에서 출발해 민중에게 일어난 사건을 증언하며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이미 심리학적 방법을 적용했다는 데에 착안한 본 연구는, 안병무와 현영학의 민중론을 대다수 한국인들의 인간관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심리학이론을 도입해 고찰했다. 한국인들의 경우 개인이 개별적으로 사고 · 행동하기보다 자기에게 중요한 타인들을 자기의 심리구조 속에 포함한 채로 사고 · 행동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문은희의 포함이론(inclusion theory)은, 1세대 민중신학자들과 그들의 민중론의 한 면을 설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유용했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 1세대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1970~80년대 한국의 현실에 철저히 발붙이고 있었던 현실의 신학, 그 현실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사회참여의 신학이었다. 민중신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민중을 집단의 면에서 발견했고, 바로 그 집단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했다. 정치적 신학으로 주로 알려져왔지만 본 연구는 민중신학이 지닌 사랑의 면을 부각해보았다. 그리고 본 연구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집단과 개인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훑어보았다. 이러한 역사적 · 사회적 고찰을 통해, 개인에 대해 불철저하고 애매한 관심이 표면화되던 때가 있었고, 개인논의 자체가 불온시되던 때도 있었으며, 개인들의 결집된 힘이 개인 하나하나를 두드러지게 하는 일보다 우선시되던 때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세대 민중신학은 이 같은 역사적 흐름의 큰 줄기를 따라 함께 흘러왔다. 그리고 집단으로서 민중을 이야기하는 1세대 민중신학의 목소리는 그 흐름 속에서 일정한 힘을 발휘했다. 특히 안병무의 민중론은 ‘사건의 신학’으로서 성서의 민중사건과 한국의 민중사건을 과감히 일치시켜, 당대에 큰 힘을 내뿜었던 민중신학이었다. 안병무는 ‘민중의 자기초월’을 제시하여, 개인의 일을 ‘나 혼자만의 일’로 사소하게 여겨 그저 참아내려 하거나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성매매여성들의 성매매행위에 대해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일 수 있다”고 서술한 텍스트를 찾아내 여성의 자리에서 비판하였고, 자기자신의 삶과 신학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했던 안병무의 신학하기(doing theology)의 자세에 대해서는 크게 무게를 두어 강조하였다. 그리고 현영학은, 본 연구의 고찰을 통해 1세대 민중신학계에서 독특한 존재감으로 드러났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와 하비 콕스(Harvey Cox)로부터 영향받은 현영학은 집단의 면에서 민중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개인의 면에서 민중을 이야기했다. 현영학은, 혈연이나 지연 등 확정된 울타리라는 의미가 아닌,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다름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관계(relation)의 차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집단 내 개인간의 차이를 다루었다.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식으로 개인차를 무마하려 하지 않았고 ‘마흔 결의 초록’을 노래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바로 그렇게, 집단을 보면서도 개인간의 차이를 알아보고 그 차이를 비중있게 다루었다는 점이, 현영학 민중론의 가치이자 강점이다. 사도 바울은 “피리나 거문고같이 생명이 없는 악기도, 음색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지 않으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수금을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고전 14: 7)”라는 말로 차이를 존중했다. 악기들은 소리를 낼 때 그 차이를 드러내야 자기의 존재감을 누리고 또 표현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존재감의 누림과 표현은, 함께하는 일의 도모를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충만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이제, 개인을 이야기하고 개인간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의 제목 “민중(民衆)에서 민(民)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라는 문구가 ‘민중’과 ‘민’을 대립항으로 세우려는 새로운 논쟁구도의 설정과는 무관한, 일종의 언어적인 시도(試圖)라는 점을 밝혀둔다. 민중론의 무게중심을 ‘중(衆)’에서 ‘민’으로 이동하는 시각적 효과를 발휘하려는 데에 그 주된 의도가 있다. 본 연구는 앞으로의 민중신학이 집단 안에 있는 개인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알아보고 그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약자 하나하나와 함께하는 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집단적으로 무시당하고 집단적으로 차별당하며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집단으로 묶였기 때문에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 모두를 개인으로 알아본다면, 우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하나님의 딸 · 아들로 바라본다면, 무시와 차별과 억압의 시선을 거두는 일은 보다 쉬워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무시당하고 집단적으로 차별 ·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또다시 집단으로 묶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 연구는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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