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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祖 親政期 (1804~1826) 경연제도의 운영

Title
純祖 親政期 (1804~1826) 경연제도의 운영
Other Titles
A Study on Royal Lecture of King Sunjo : focused on Sodae and Byeolgang
Authors
황유나
Issue Date
2020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백옥경
Abstract
조선의 23대 국왕으로 즉위한 순조와 그의 정국 운영 방식은 세도정치라는 틀 위에서 이해되었다. 왕실의 외척 세력을 비롯한 소수가문이 정치‧사회적 특권을 독점하고 정국을 주도하였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정 운영의 주체였던 외척 신료들에 주목하였던 반면, 국왕인 순조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을 모색하고 자신의 주도권을 확보해나가고자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이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순조의 여러 정치적 대응 중 특히 經筵 제도의 운영에서 이전 시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차이가 확인된다. 경연제도는 현실 정국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그 운영 양상이 달라져 온 만큼, 본 논문에서는 순조의 왕권 행사 방식과 그 변화 과정을 순조대 경연 제도의 운영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순조는 4년(1804) 親政을 시작한 직후 양 세도가의 지원 하에 벽파 중심의 정국을 재정비하였다. 정치적 처분을 제한적으로 실시하여 최대한 넓은 범주의 인사들을 조정 내에 포섭하고자 하였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 제도의 정비시도와 행정적 장악력 확대를 위한 각종 조치들도 취하였다. 학문적‧도학적 수양 즉 경연제도에 성실히 임하여 스스로 유교적 군주상에 부합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召對가 활용되었다. 法講과 兩對(召對‧夜對)로 구성된 조선시대 경연이 일반적으로 법강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것과 달리, 순조는 소대를 중심으로 운영하였다. 소대는 국왕이 원할 때면 언제 어디에서나 시행될 수 있었고, 공식 참여관 외의 인물도 국왕의 요청에 따라 참여할 수 있었다. 실제 이 시기 소대 참여관들은 집권 세력인 노론 시파(북당) 인사들을 비롯해 소론, 남인, 북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고 출신 지역도 다양했다. 참여관들은 자신이 속한 당파가 정치적 실권을 상실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소대와 별강에 참여해서 얼마든지 정견을 국왕에게 제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순조가 이들과 함께 재위 6년(1806)부터 『國朝寶鑑』을 진강한 것은 당대의 각종 폐단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소대는 군주가 보다 광범위한 정견을 수용하는 장이었고 또 소대에 입시한 관원을 보다 면밀히 탐색하고 고찰할 기회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순조의 이러한 노력은 신료들에게 공적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거나, 제도의 規式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되었다. 추진해오던 많은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조는 자신을 지지할 신료 집단을 양성하고 그들과 함께 정국을 주도해나갈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순조 11년(1811) 별강이 정비되었다. 이는 군주가 修身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순조의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순조 17년(1817) 12월, 朴宗慶의 죽음으로 집권 세력 내에서의 정국 주도권이 金祖淳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집중되었다. 이에 순조는 권력 간의 균형을 안배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소대와 별강이 그 매개가 되었다. 전반기 소대 운영과정에서 발탁한 인물들 중 일부를 그대로 참여하게 하는 한편, 안동 김씨 가문에 비견될만한 京華士族의 연소 관료들을 불러들여 불시에 製進하도록 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주제는 당일 다룬 진강책자에서 선정하였는데, 이 시기에 진강책자에는 『羹牆錄』과 같이 君師를 추구했던 정조에 의해 편집‧편찬된 서적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대와 별강은 이 시기 국정 전반의 정무를 처리하는 장으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소대와 별강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시행되었기 때문에 政令 을 내고 사무를 처리하는 수준도 증대되었다. 순조의 소대와 별강을 중심으로 한 정국운영은 영조‧정조대의 탕평정치와의 연속성에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순조는 소대와 별강에서 영조와 정조의 통치 방식을 담은 『국조보감』과 『갱장록』을 적극 활용하여 통치의 모범으로 삼고자 하였으며, 국왕의 주도 하에 당파를 넘어서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과 함께 정국 운영 방식을 논의하고자 했다. 이는 영조와 정조가 보여주었던 국왕으로서의 통치 방식을 순조 자신의 선택지로 삼아 적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결국 소대와 별강은 순조가 선대의 탕평 정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활용한 하나의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순조의 계지술사는 실효를 얻지는 못했다. 소대와 별강은 수많은 관료들 중에서 적합하지 않은 신료들을 걸러내고 쓸 만한 인재를 골라내는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제도였지만, 첫째로 그렇게 선발한 인사들을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진출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둘째로 발탁한 인사들 사이의 동질성이나 응집성을 보장해주는 성격의 제도도 아니었다. 소대와 별강을 통해 발탁된 이들은 개별적으로 국왕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쳤다. 이는 제도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던 비공식성‧유연성이 도리어 제도의 한계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순조에게 주어졌던 소수의 정치적 조건조차 그 한계가 분명한 것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순조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제도를 활용하여 변화를 모색하고자 했으나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자신이 주도권을 온전히 확보할 수 없었던 점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순조의 경우 친정 직후의 상황을 제외한다면 현실 상황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순조의 정치적 성향이 실제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여 활용하고자 했던 애초의 정국 구상의 실효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 The previous researches understood King Sunjo, the 23rd K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his way of political administration only in the frame of Sedo politics(勢道政治). Therefore, they did not pay enough attention to the King Sunjo’s political practices, while mainly focusing on his maternal relatives who dominated the political situation; these researches circumscribed the scope of time to the reign of King Sunjo and his political practice. Further, they did not highlight how King Sunjo responded to the changing political situation, even though King Sunjo sought to respond to political fluctuation by utilizing Gyeongyeon system (經筵, Royal Lecture). Whereas the political function of Gyeongyeon had changed in the correlation with real politic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King Sunjo used it in a way different from his predecessors. Therefore, this article seeks to explore King Sunjo’s political practice related to Gyeongyeon system. Gyeongyeon system was composed of Beopgang (法講, the lectures on law) and Yangdae (兩大, two meetings). The previous kings had put Beopgang at the center of this system, while King Sunjo mainly made use of Yangdae, which consisted of Sodae (召對, Nonscheduled Meeting) and Yadae (夜對, Night Meeting), and Byeolgang (別講, Special Lecture). Byeolgang is a royal tutoring system that extended and improved Sodae and was developed in 1811 (11th year of Sunjo).Whereas King Sunjo had to give a notice about various kinds of Johoe (朝會, Formal morning audience with rituals) to the government officials in advance, Sodae and Byeolgang could be convened and conducted at any time he wished to. Also, he could summon any bureaucrat, no matter whether the bureaucrat was an official counselor or not. Accordingly, Sodae could work as a place where King Sunjo accepted more extensive political opinions and had a chance to examine whether a bureaucrat would fit in a certain governmental position. In 1804 (4th year of Sunjo), upon the end of Queen Jeongsun’s regency and the beginning of King Sunjo’s direct rule, he reformed the political condition where Byeokpa (僻派) had monopolized the power, with the cooperation of two Sedo families, Andong Kim Clan and Bannam Park Clan. With that as a beginning, from 1806 (6th year of Sunjo), he sought to establish the hegemony as a king in the political situation at that time. Through Sodae, King Sunjo evaluated the participants’ competency in order to extend his pool of talents. Moreover, he had the participants give lectures on Kukjobogam (國朝寶鑑), which explained the great achievements of the previous kings, in order to tackle the abuses of government and create a plan for his administration. All these steps were intended to inherit the Tangpyeong (蕩平) policy of King Youngjo and King jeongjo. However, the bureaucrats criticized King Sunjo that he did not formally discuss with government officials nor follow the law and style of system, which turned his efforts ineffective. Thus, he found it necessary to form a group that shared his political ideas and developed the system of Byeolgang in order to extend his discretionary power. Then again, in 1817 (17th year of Sunjo), the death of Park Jongkyeong from Bannam Park Clan changed the political terrain where Kim Josun from Andong Kim Clan began to consolidate the hegemony. Hence, King Sunjo sought a role a sa mediator to set a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Sedo families by means of Sodae and Byeolgang. He had the bureaucrats, whom he had selected through Sodae, participate in the lectures in the same ways as before. Additionally, he unexpectedly summoned the young bureaucrats from Gyeonghwasajok (京華士族), whom he expected to form a future power group comparable to Andong Kim Clan, and had them give a lecture in the presence of the King. King Sunjo selected topics from the lecture literature which was chosen on a daily basis from the books edited and compiled by King Jeongjo, including Gaengjangnok (羹墻錄). Because King Jeongjo envisaged a king as a teacher, these selections implied King Sunjo’s political aim to reinforce his authority as a king. In addition, the state affairs were often discussed and resolved in Sodae and Byeolgang; convened several times a day, their importance in governmental decision-making increased. On the other hand, King Sunjo’s effort to reorganize the political powers did not go further. While Sodae and Byeolgang were useful to screen incompetent bureaucrats and appoint talented ones, they had several limitations. First, they lacked the institutional capability to give power to the selected bureaucrats. Second, the backgrounds of selected officials were too diverse to be united into a political group; these officials selected and appointed to important positions through Sodae and Byeolgang did not go any further than having a separate relationship with the king. These shortcomings can be understood that the flexibility, which King Sunjo exploited for his political purposes, ironically restricted his intentions. Furthermore, King Sunjo did not make critical decisions that could change the political situations, except for the short period right after he started the direct rule. As a result, King Sunjo’s political disposition weakened the effectiveness of his blueprint to extend the pool of tal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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