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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후 북한 식생활의 시기별 변화 연구

Title
분단이후 북한 식생활의 시기별 변화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hanges of Dietary Life in North Korea after the Division
Authors
최은경
Issue Date
2020
Department/Major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조미숙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1956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 식생활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조선녀성』에 게재된 식생활 관련 기사와 북한이탈주민의 구술사를 통해 북한 식생활의 실체에 대해 보다 통합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조선녀성』은 1946년 9월 창간이후 현재까지 발행되는 북한 여성잡지로서 시대별로 북한 당국이 주력하는 식생활 관련 정책에서부터 레시피 제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생활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문헌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제시할 뿐 실제 북한 주민이 경험하는 식생활을 여과 없이 담고 있지 못하다. 식생활은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삶의 일부분으로 그 생활을 직접 경험한 체험자의 실체가 중요하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인터뷰도 함께 연구하여 북한 식생활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하였다. 비교적 긴 기간의 북한 식생활 변화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1956년부터 2017년까지의 시기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였다. 시기 구분의 기준은 『조선녀성』의 기사 수, 기사 내용 및 특징의 변화, 북한이탈주민들이 식생활의 변화라고 느낀 시기, 그리고 외부 식생활 요소 등이다. 도출된 시기별 북한 식생활 변화 및 특성은 다음과 같다. 제 1시기는 1956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로 북한식 식생활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 북한은 사회적으로 전후 복구건설과 북한식 사회주의 확립에 주력하였는데 특히 식량배급제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농업협동화를 단행하므로 북한식 식량생산 및 공급체제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식량배급제는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장마당이 확산되기 전까지 북한 식생활에 가장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였다. 북한은 식생활 개선과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 및 노동력 확보를 위해 식품가공공장과 사회급양망을 설치하며 식생활 전반에 걸쳐서 공업화 및 사회화를 모색하였다. 식료품 가공 사업에 있어 가장 먼저 장류, 곡류, 채소류, 통조림 분야의 공장제 생산을 시도하였으며, 사회급양망에 있어 밥공장 및 공동식당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이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사적인 영역인 식생활을 국가의 제도 곧 공적 영역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부족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는 옥수수 및 수산물 확보에 주력하였다. 또한 유아 및 어린이, 그리고 임산의 영양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전후 인구의 격감 및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노동력 부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구증가정책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조선녀성』에 조리 관련 기사는 이 시기 전체 기사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생존과 절약 측면보다는 기호 향상 및 다양한 조리팁을 제공하고 있었다. 조리법 분석 결과, 식단은 밥, 국·탕류, 채소 위주의 반찬, 장아찌 및 김치 등 저장음식, 생선 위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1950년대 말 북한은 전후 복구과정에서 재건인력의 감소를 고려하여 대대적인 귀국사업이 펼쳐졌으며, 이 때 많은 일본 귀국자가 북한으로 유입되었다. 이런 인적 자원의 유입은 북한에 이질적 식생활 요소를 유입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제 2시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로 북한식 식생활의 활성기 및 위기이다. 북한 당국은 식품가공공장을 확대 및 세분화하고, 다양한 가공 식료품을 생산하는 등 북한 식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식량 증산에 주력한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고난의 행군’이라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식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조선녀성』제 1시기 전체 식생활 기사의 1/3 이상을 차지하던 조리법 및 조리팁 관련 기사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제 1시기에 25%에 불과했던 식량증산 관련 기사가 이 시기 전체 식생활 기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부각한다. 식품가공공장 확대 및 사회급양망 사업을 강조하는 관련 기사도 증가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제 2시기는 식생활의 주체자가 각 가정보다는 북한 당국으로 옮겨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즉 각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국가가 주도하는 식량배급 및 사회급양망, 각종 가공식료품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 보다 간편하고 편리한 식사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주도하는 식생활 지방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평양은 1990년대 초부터 식량수급에 차질이 발생했으며 급기야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식량수급에 이례 없는 위기가 찾아온다. 식량배급제가 마비되자 북한 주민들은 자연에서 식재료를 구하고 양을 늘리는 조리법을 사용하며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 나아갔다. 한편 이 시기 재일친인척의 북한방문이 가능해지면서 일본귀국자들을 중심으로 외부 식생활 요소가 확산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친인척들의 경제적 원조, 식료품 등 물품지원, 그리고 외화상점을 설치 및 이용 등으로 귀국자들은 정착 초기와는 달리 그들만의 외부 식생활을 형성할 수 있는 제반적이 여건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 3시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17년까지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식량배급제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을 중심으로 식생활의 주체자가 되었다. 『조선녀성』에 식품가공공장 및 사회급양망 관련 기사의 빈도가 감소하고, 조리법 및 조리팁 관련 기사가 재등장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북한 당국이 식재료를 구매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련의 행위를 다시금 가정으로 되돌렸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녀성』에 등장한 조리법 분석 결과 제 1시기와 비슷하게 주식보다 부식의 종류가 더 많았다. 하지만 제 1시기보다 부식의 종류 및 다양성이 축소되고 대체적으로 음식이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김치류 및 장아찌류 같은 저장 음식의 조리법이 빈도 높게 게재되었다. 또한 전통음식의 유래, 세시음식 및 지역별 향토음식 등을 소개하며 민족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반적으로 식량증산 관련 기사는 제 1·2시기와 비교해서 감소하였지만 식량난 타개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음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자이다. 이 시기 감자농업혁명을 통해 감자 생산량 증가뿐만 아니라 감자를 쌀과 옥수수에 이어 제 3의 주식물로 확장하려고 했다. 북한 당국은 경공업 부분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식료공업의 중요성을 위해 경공업성에서 식료일용부문을 분리하여 식료일용공업성을 신설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실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는 그 영향력이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식량배급제보다 장마당에 의존하였다. 장마당은 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식량 공급처가 되었다. 장마당의 확산으로 식재료 종류 및 품질은 다양해졌고, 식생활의 사회화도 심화되었다. 더욱이 장마당 확산과 더불어 외부 식생활 요소도 더욱 확대되었다. 장마당에 다양한 외국 식재료가 판매되고 있다. 한편 이전과 달리 경제적 지위가 급락한 일본 귀국자들이 장마당 장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두부밥과 앙꼬모찌 등 일본식 음식들이 장마당을 통해 확대되었다. 북한의 식생활 변화를 분석하면서 도출한 식생활 변화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적 요인으로 식생활 관련 정책 등이 있다. 농업협동화는 식량생산에, 식량배급제는 식량공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탈주민 인터뷰 결과에서도 식량배급제는 북한 식생활에 영향을 주는 가장 핵심적 요인이었다. 모든 권력이 북한 당국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에서 식생활 관련 정책은 북한 주민의 식생활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었다. 다시 말해 북한 주민들은 당국에서 진행하는 모든 식생활 정책에 절대적으로 조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식품가공 기술의 발달 또한 북한 식생활에 영향을 준 요인이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의 경감을 위한 실천적 방안 및 사회진출을 독려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 마련을 위해 식품가공공장을 확대 설치하였으며, 가공분야도 세분화되었다. 해방이후 1960년대까지는 콩, 옥수수 등의 원료 가공에 주력하였다면 그 이후 식품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 옥쌀, 옥당, 인조고기, 어린이 전용 가공식품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하였다. 대부분 단순가공에 의한 생산품이지만 식품가공공장의 종류가 확대되고 세분화되는 양상들을 통해 분명 북한의 식생활이 변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문화적 요인으로 외부 식생활 요소의 유입이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59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진행되었던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이다. 이는 단순한 인적자원의 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동안 외국에서 경험했던 이질적 식생활 요소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1980년대 재일친척의 북한방문의 절정 그리고 외화상점의 설치로 인해 귀국자들의 이질적 식생활 요소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추후 장마당을 중심으로 일본식 음식이 전파되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how the dietary life of North Korea changed from 1956 to 2017. To this end, the articles related to dietary life published in 『『Joseon Nyeoseong』and oral histories of defectors were employed to get closer to the reality of North Korean dietary life. 『Joseon Nyeoseong』 is a North Korean women's magazine published since September 1946 and contains information on various dietary lifestyles, ranging from dietary policy focused on North Korean authorities to recipes. However, it only suggests the direction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are heading, and does not contain the real dietary life experienced by North Koreans without filtration. Therefore, this study should use an interview approach with 23 North Korean defectors and attempted to get closer to the reality of North Korean diet. In order to systematically analyze changes in North Korean dietary life over a relatively long period, the periods from 1956 to 2017 were divided into three parts. The criteria for the classification of the period are the number of articles in 『Joseon Nyeoseong』, the changes in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articles, the period when North Korean defectors felt the change in their diet, and the external dietary factors.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North Korean dietary habits are as follows The first period is from 1956 to the late 1960s, laying the groundwork for North Korean diet. During this period, North Korea focused on the post-war restoration construc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North Korean style socialism. In particular, North Korea established a food production and supply system for North Korea by strengthening the framework of the food distribution system and cooperative agriculture. The food distribution system was the key mechanism for North Korean dietary life after the economic crisis of the 1990s and the spread of the Jangmadang. North Korea sought industrialization and socialization throughout its diet by setting up food processing factories and social welfare networks to improve dietary life, liberate domestic work for women and secure labor. In the food processing business, the company first attempted to produce factory-made products in the fields of Jang(fermented soybean), grains, vegetables, and canned food, and introduced a rice factory and a communal restaurant in social feeding networks. This is an attempt to subsume the dietary life, a private area centered around the home, into the state's institutional or public sphere. In order to solve the shortage of food during this period, North Korea showed great interest in the nutrition of infants, children and pregnant women, focusing on securing corn and seafood to address food shortages. This seems to be a result of the population growth policy aimed at overcoming the postwar decline and the lack of labor for socialist construction. Cooking articles in 『Joseon Nyeoseong』 accounted for more than one-third of all articles in this period, and provided preferences and various cooking tips rather than survival and saving aspects. The results of the recipe analysis suggest that the diet consists of rice, soups, soups, vegetable side dishes, preserved foods such as pickles and kimchi, and fish. On the other hand, in the late 1950s, during the post-war recovery process, North Korea had a large-scale returning project in consideration of the reduction of manpower for reconstruction. This influx of human resources is meaningful as an opportunity to introduce heterogeneous dietary elements into North Korea. The second period is from the 1970s to the late 1990s, the period and the crisis of North Korean eating.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are actively involved in the North Korean diet, including expanding and subdividing food processing plants and producing various processed foods, and focusing on food production. In the mid-1990s, however, the economic crisis of the “marching of hardships” led to a crisis in diet. In the 1970s, articles about recipes and cooking tips, which accounted for more than one-third of the total dietary articles of the first period of 『Joseon Nyeoseong』, no longer appeared. Food production articles, which accounted for only 25% of the first season, are the most important topics that account for more than half of the entire diet. There is also an increasing number of articles highlighting the expansion of food processing plants and social welfare projects. In this point of view, it can be inferred that the second phase of the diet was transferred to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rather than to each family. In other words, rather than spending a lot of time preparing meals in each family, they emphasized simpler and more convenient meals by actively using state-led food distribution, social welfare nets, and various processed foods. However, in North Korea's dietary district, Pyongyang has had a disrupted food supply since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and in the mid-1990s, it experienced severe food shortages and an unusual crisis in food supply. When food rations were paralyzed, North Koreans sought ways to live on their own, using recipes to obtain ingredients and increase their quantity from nature. On the other hand, the possibility of visiting North Korea by relatives of Japan during this period showed that the external eating habits were spreading mainly by returning Japanese. The economic support of relatives, the provision of food supplies such as foodstuffs, and the establishment and use of foreign currency stores have allowed returnees to have their own conditions for forming their own external diet unlike the early stage of settlement. The third period is from the late 1990s to 2017. After the “march of hardships” the food ration system no longer functioned normally, North Koreans became the subjects of the diet, mainly in the Jangmadang. In 『Joseon Nyeoseong』, the frequency of articles related to food processing factories and social welfare nets decreases, and recipes and recipe tips articles reappear. This means that North Korean authorities have returned to their homes a series of actions to purchase food and prepare meal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of recipes appearing in 『Joseon Nyeoseong』, there were more types of corrosion than stocks. However, there was a tendency to reduce the type and variety of corrosion and to simplify food as a whole. Recipes for stored foods such as kimchi and pickles have been published frequently. It also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ethnic food by introducing the origin of traditional food, ceci food, and local food. Overall,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articles related to food production decreased compared to the first and second periods, but it was confirmed that various efforts were made to resolve the food shortage. The representative one is potatoes. During this period, not only did potato production increase, but the potato agriculture revolution also tried to expand potatoes into third stocks after rice and corn.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emphasized the modernization of the light industry sector and emphasized various efforts to separate the food daily sector from the light industry to establish the food daily industry for the importance of the food industry. However, it was not enough to have an influence on the real life of North Koreans. Most North Korean defectors rely on the Jangmadang rather than the food ration system. Jangmadang has become a new food source that can meet all of your dietary needs. The spread of the jangmadang has resulted in a wide variety of food ingredients and quality, and deepened the socialization of food. Moreover, with the spread of the market, the elements of external eating have expanded. Various foreign ingredients are sold in the market. On the other hand, as Japanese returnees, whose economic status has plummeted, participated in jangmadang business, Japanese foods such as tofu and ankomochi expanded through the jangmadang. Followings are the changes in dietary factors derived from analyzing changes in dietary conditions in North Korea. First of all, political factors include food-related policies. Agricultural cooperatives have had an absolute effect on food production and food rations. In the interview with North Korean defectors, food ration was the most important factor affecting North Korean diet. In a society where all power is concentrated in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dietary policies were the most important factors affecting the dietary environment of North Koreans. In other words, North Koreans had no choice but to comply fully with all the dietary policies of the authorities. The development of food processing technology has also influenced the diet of North Korea. The food processing plant was expanded to provide practical measures to reduce women's domestic work and to provide an institutional basis for encouraging social advancement. After liberation, he focused on processing raw materials such as soybeans and corn until the 1960s. Since then, food processing technology has been developed. Most of the products are processed by simple processing, but the types of food processing factories have been expanded and subdivided. Lastly, there is an inflow of external dietary factors as a cultural factor, and the representative one is the returning business of Koreans living in Japan from 1959 to the mid-1980s. This was not only a simple movement of human resources, but also provided an opportunity for the inflow of heterogeneous dietary elements that they had experienced abroad. In addition, due to the climax of the visit of North Koreans to Japan and the establishment of foreign currency stores in the 1980s, the heterogeneous dietary elements of returnees could be maintained, leading to changes such as the spread of Japanese food mainly in the Jang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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