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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지역 鞭羊門中의 佛事와 百潭寺 阿彌陀如來坐像

Title
조선 후기 강원지역 鞭羊門中의 佛事와 百潭寺 阿彌陀如來坐像
Other Titles
Bulsa of Gangwon Province Pyeonyang Dharma Clan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Dynasty and Seated Amitabha Buddha of Baekdamsa Temple
Authors
최수민
Issue Date
202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연미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인제 백담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748년 보월사 불사를 통하여 조선 후기 강원지역의 불사와 불상을 이해하는 한편, 강원지역에서 활동한 승려문중과 조각승을 파악하고 그들의 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또한 본 상의 양식적 특징과 발원문, 寺誌 등의 문헌자료를 통해 1748년 보월사에서 백담사 아미타상과 함께 조성‧봉안되었던 불상의 현 봉안처를 추론하였다. 백담사 아미타상은 1992년의 조사를 통해 1748년 平康 寶月寺에서 조성된 총 5구의 불‧보살상 가운데 하나이며, 불상을 제작한 것은 수조각승 印性을 비롯한 15명의 良工임이 밝혀졌다. 또한 불사를 주도한 인물은 華月聖訥(1689-1762), 虎巖體淨(1687-1748) 등, 18세기 鞭羊門中을 대표하는 고승들로 확인되었다. 백담사 아미타상의 조성 시기와 조각승이 규명된 이후, 조각승과 양식적 특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백담사 아미타상을 독자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아 심층 분석한 연구는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는 강원지역이 한국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전후 남북으로 양분되어 강원지역에 현존하는 조선 후기 불상이 타 지역에 비해 적으며, 특히 강원지역 불교계의 중심지였던 금강산 및 강원 북부의 불사와 불상에 대한 자료가 소략하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연구가 임진왜란 이후 재건불사가 활발했던 17세기에 조성된 불상에 집중되었던 점 역시 백담사 아미타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개진되지 못한 배경이 되었다. 본고에서는 18세기 강원 북부에서 조성된 백담사 아미타상을 탐구함으로써 전쟁의 피해 속에 사라지고 잊혀진 조선 후기 강원지역의 불사와 불상을 연구하고 복원하고자 하였다. 강원 북부의 불사에 대한 현존 자료가 소략한 가운데 백담사 아미타상과 1748년 보월사 불사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현존 불상 뿐 아니라 한국전쟁 이전까지 강원지역에 소재했던 사찰과 불상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강원 북부를 중심으로 활약한 승려문중으로서 1748년 보월사 불사를 주도한 편양문중에 주목하였다. 조선 후기 불상의 조성은 조각승 뿐 아니라 사찰의 승려 전체가 함께하는 공동체 작업이었으므로, 승려문중의 활동과 조각승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보월사 불사를 비롯한 조선 후기 강원지역의 불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강원지역의 現狀을 이해하고자 한국전쟁 이전까지 강원지역에 소재했던 사찰과 불상을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에는 200여 곳 이상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100여 곳 이상의 寺庵에 1,019점 이상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강원지역에서 조성 연대와 조각승이 확인된 조선 후기 불상은 20건 95점,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불상은 27건 65점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조선시대 강원지역 사찰이 이러한 위세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성지신앙에 기반한 왕실의 후원과 편양문중의 불사가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편양문중에 의해 강원지역에서 진행된 불사 가운데 1748년 보월사 불사와 비교분석할 대상으로 주목되는 것은 17세기 강원 남부에서 진행된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1661), 영월 보덕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87) 조성 불사이다. 상원사 불사의 주체는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활동한 幻寂義天이며, 수조각승은 전라도에서 활동한 懷鑑이었다. 보덕사 불사는 경상북도에서 수많은 불사를 주도한 昭影神鏡이 진행하였고, 수조각승은 소영신경의 門人인 卓密이었다. 두 불사를 이끈 편양문중 고승과 수조각승은 모두 타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이며, 동일 문중 혹은 특정 유파의 조각승만 기용되지 않았다. 이는 17세기 중‧후반에 三南 지방은 임진왜란 이후의 재건불사가 마무리되면서 타 지역의 인물들이 점차 강원 남부의 불사에 유입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이 시기는 아직 문중 의식이 공고하지 않았으므로 불사를 이끈 편양문중 고승들은 조각승의 문중이나 유파를 중시하기보다는 본인과 작업했던 조각승을 주로 기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성된 1748년의 평강 보월사 불사는 상기한 두 건의 불사와는 여러 차이가 확인된다. 보월사 불사를 주도한 것은 華月聖訥이다. 그는 평강 출신으로 평강 보월사에서 출가하여 60세가 되던 해 다시 보월사로 돌아와 불사를 일으켰다. 한편 보월사 불사의 수조각승 印性은 1740년 서울 도선사 소장 <목조아미타여래좌상‧대세지보살좌상>을 수조각승으로서 조성하고, 1748년 평강 보월사에서 불상을 조성하였다. 또한 북한산성에 속한 승려로서 왕실 공역에 세 차례 동원되어 단청 기화를 담당했음을 의궤를 통해 확인하였다. 북한산성의 승려 인성이 강원 북부에서 진행된 편양문중의 불사에 참여한 것은 제자 緇俊이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치준은 인성이 수조각승으로 기재된 모든 불사 기록에 2위 조각승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수조각승으로서 고성 신계사, 김화 장연사에 작례를 남기고, 표훈사 중창을 주도하는 등, 강원 북부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그는 편양문중의 일원이었으며, 보월사 불사를 이끈 인물들과 법맥상으로 가까웠다. 따라서 법맥과 지연으로 형성된 유대관계 속에 치준이 보월사 불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치준이 북한산성에 있던 스승 인성을 초빙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1748년 보월사 불사의 주역은 강원 북부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이는 강원 북부에서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불사가 진행되어 자체적으로 불사를 진행할 인적 자원을 갖추게 되면서 타 지역의 인물을 기용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문중 의식이 강화되면서 동일 문중의 조각승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백담사 아미타상과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물과 발원문은 강원 북부에서 활약한 편양문중과 조각승을 이해하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한편, 1748년 보월사 불사에서 백담사 아미타상과 함께 조성‧봉안된 불상을 추론하는 것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백담사 아미타상은 서울 봉국사 <목조석가여래좌상>, 고성 화암사 <목조여래좌상>과 결부 구조, 신체 비례, 생략된 중앙계주, 상호의 표현과 착의법, 그리고 무릎 사이로 펼쳐진 율동적인 3단의 옷자락, 옷자락 끝의 Ω형 주름 등에서 강한 양식적 친연성이 확인된다. 더욱이 백담사 아미타상의 조성발원문에 등장하는 발원자의 이름 및 발원내용이 백담사 아미타상과 봉국사 석가상의 한글발원문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또한 화암사 여래상은 寺誌를 통하여 보월사로부터 이안된 상임을 추론할 수 있었다. 즉, 세 존상은 양식적 특징과 문헌자료로 미루어볼 때 1748년 보월사에서 함께 조성된 삼존상으로 추정되며, 보월사 폐사 이후 흩어져 각각 백담사, 봉국사, 화암사에 봉안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본고는 백담사 아미타상과 1748년 보월사 불사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조선 후기 강원지역의 불사를 이끈 편양문중과 강원지역에서 활약한 조각승을 파악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강원 북부의 불사와 이곳에서 활동한 인물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만큼, 현존 불상과 더불어 금석문과 고승문집, 일제강점기 자료와 寺誌, 한글발원문 등, 다양한 문헌자료를 활용하였다. 이는 그간 자료의 부족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강원 북부를 포함한 조선 후기 강원지역의 불사와 불상을 탐구하고, 승려문중과 조각승의 관계를 이해하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aims to comprehend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Dynasty Gangwon Province Buddhist sculptures and bulsa 佛事 [Buddhist sculpture-making projects] and, furthermore, recognize the monk clans and monk-sculptors of the region and their relationship through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from Baekdam Temple, Inje and bulsa from Bowol Temple in 1748. In addition, the Buddhist sculpture, enshrined in Bowol Temple along with an Amitabha from Baekdam Temple, will be discussed based on the stylistic traits, prayer records, Buddhist temple records, etc. Based on the 1992 investigation, the Amitabha of Baekdam Temple is one of the five Buddhist and Boddhisattva sculptures designed in Bowol Temple of Pyeong’gang and was created by the chief-monk-sculptor, Inseong 印性, and fifteen monk-sculptors. Those who directed bulsa were the symbolic high priests of 18th century Dharma Clan of Pyeonyang, such as Hwawolseongnul 華月聖訥 (1689-1762) and Ho’amchejeong 虎巖體淨 (1687-1748). After the revelation of Baekdam Temple’s Amitabha’s monk-sculptor and creation period, there has been a debate over the monk-sculptor and stylistic characteristic, nonetheless, an individual study on the single sculpture is absent. This is due to several significant reasons. First of all, Korean War wrought havoc in the Gangwon Region and divided the peninsula to north and south which brought a significantly scant amount of late Joseon Dynasty Buddhist sculptures. To be specific, the resources of bulsa and Buddhist sculptures from Northern Gangwon region and Mt. Geumgang, the epicenter of the regions Buddhist culture, are prominently meager. Last but not least, the previous studies’ main focus on the 17th century Buddhist sculptures— a golden age of reconstruction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lso contributes to the imbalance of research on the topic. The major goal of this paper is to study 18th century Northern Gangwon Province’s long-forgotten Amitabha of Baekdam Temple in order to illuminate and restore the late Joseon Dynasty bulsa and Buddhist sculptures of the area. However, since the material on Northern Gangwon Province’s bulsa is clearly lacking, this paper concentrates on the Dharma Clan of the area, Pyeonyangmunjung, and their activities revolving around this sculpture. Considering collaborative aspect of bulsa, an Buddhist sculpture manufacturing event by both monk-sculptors and the entire monks of a temple, the study of Dharma Clan’s performance and his relationship with monk-sculptors is expected to invite various academic perspectives to Bowol Temple bulsa in 1748. The first section introduces the background of Joseon Dynasty Gangwon Province and the temples and Buddhist sculptures situated in the region until Korean War.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over two hundred Buddhist temples and, even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over 1,019 sculptures were ensrhined in over one hundred small temples. This prosperity was buttressed by the Royal patronage, grounded on their belief over shrines, and the continuation of Pyeonyangmunjung’s bulsa. The main sculptures to compare with Bowol Temple of 1784 among those from Gangwon province are Wooden Seated Manjusri Bodhisattva, Sangwon Temple, Pyeongchang and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Triad of Bodeok Temple. The main director of Sangwon Temple sculpture’s bulsa is Hwanjeok’uicheon 幻寂義天, an active figure in both Gangwon and Gyeongsang Province, and the chief monk-sculptor was a literati named Takmil 卓密. The high monk of Pyeonyangmunjung and chief monk-sculptor were all active in other regions, only those from the identical clan or particular lineage of monk-sculptors were not hired. This may be the result of the influx of adjacent areas’ monks to the southern part of Gangwon Province, as the restoration for Japanese Invasion of 1592 finalized around the time. Moreover, the idea of monk clans was not firmly established and, therefore, rather than emphasizing the lineage of the monk-sculptors, Pyeonyangmunjung monk-sculptors employeed those who once collaborated with them. The bulsa of Bowol Temple, Pyeong’gang presents varies from the previously mentioned two sculptures in various aspects. Hwawolseongnul led the Bowol Temple’s bulsa. This took place when he returned to the temple after he left his hometown of Pyeong’gang, On the other hand, the chief monk-sculptor, Inseong, created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and Seated Mahasthama-prapta, Doseon Temple of Seoul in 1740 and established a buddhist sculpture in Pyeong-gang Bowol Temple in 1748. Also, from uigwe 儀軌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records, this paper detected he was hired a monk of Bukhansanseong Fortress to decorate the buildings with multiple pigments. The rationale behind Inseong to participate in a bulsa of Northern Gangwon region is in close relationship with his disciple, Chijun 緇俊. Chijun is nominatred as the second place monk-sculptor in every bulsa document where Inseong is recorded as the chief monk-sculptor. He was an active chief monk-sculptor in Northern Gangwon area; an example in Jangyeon Temple of Gimhwa, Shingye Temple of Goseong, and, the reconsturction of Pyohun Temple are some of his achievements. He was one of the Pyeon’yangmunjung members and in close ties with the members who led the bulsa of Bowol Temple. The intimate bonding based on Buddhist doctrine and kinship encouraged Chijun to join the Bowol Temple’s bulsa and, eventually, invitied his master— Inseong. From this incident, this paper was able to conclude that the central figures who led the bulsa of Bowol Temple was those active in the Northern Gangwon area. There was no necessity to hire monk-sculptors from foreign regions by then since multiple bulsa events created a self-sufficient environment. The deeply-rooted idea of clan can also be a pivotal reason behind the tendency to prefer the monk-sculptors from the same family. The documents excavated inside Amitabha Buddha of Baekdam Temple establishes not only a background to understand Pyeon’yangmunjung clan and monk-sculptors but also a crucial clue to identify the buddhist sculpture enshrined with the Amitabha Buddha. This Baekdam Temple Amitabha Buddha sculpture reveals a great affinity with Wooden Seated Sakyamuni of Bong’gook Temple, Seoul and Wooden Seated Buddha of Hwa’am Temple, Goseong; the body ratio, portrayal depiction, garments, the rhythmic three layers of sleeve spread in between the knees, the omega-shaped wrinkle at the end of the clothing and so on. In addition, the name of the prayer and the context in the establishing document of this sculpture is identical to that of the Bong’gook Temple stone sculpture. Hwa’am Temple’s Buddha sculpture, moreover, was found to be originating from Bowol Temple according to Buddhist Temple History-Record. Hence, three sculptures, based on the stylistic traits and historical records, are expected to be designed as a “triad Buddhist sculpture” and dispersed to different regions aftert the collapse of Bowol Temple. In conclusion, this paper researches on the active monk-sculptors and bulsa directors of Pyeon-yangmunjung in Gangwon Province through examining the Buddhist sculptures from Baekdam Temple and Bowol Temple bulsa. It sought to invites various historical records along with Buddhist sculptures to compensate for the lack of specific information on the monks and bulsa of the Northern Gangwon Province. In other words, this paper contributes to the academic analyses on Buddhist culture in Northern Gangwon region around the late Joseon Dynasty and creates a cornerstone to comprehend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monk clans and monk-sculp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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