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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松寺址 石造菩薩坐像 硏究

Title
寒松寺址 石造菩薩坐像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Stone Seated Bodhisattvas from Hansongsa Temple Site
Authors
김윤이
Issue Date
202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연미
Abstract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구는 유려한 장식과 원통형의 高冠,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과 풍부한 양감의 불신, 백대리석을 활용한 정교한 조형성이 돋보이는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불상 중 하나이다. 이 두 보살상은 고려 말의 학자 李穀(1298-1351)이 집필한 「東遊記」(1349)에 의거하여 도상적인 측면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 인식되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오늘날 한송사 터에는 두 보살의 乘物으로 추정되는 사자좌와 코끼리좌가 전하고 있다. 또 양식적인 측면에서는 소위 溟州 양식과의 관련성이 지적되어, 한송사지 상은 고려 전기 불교 존상에서 보이는 다원성과 지역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고려 전기 불교조각사의 보편적인 흐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명주 일대의 다른 존상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 및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로서의 도상적 특수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한송사지의 두 보살상을 둘러싼 연구는 고려 전기 불교 조각사라는 거시적 흐름에 주안점을 두고, 명주 지역에서 보이는 양식을 ‘지역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는 한편, 또 한송사지 상에서 보이는 조형의 원류를 추적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한송사지 상을 비롯해 강릉 신복사지,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에서 명주만의 지역적 특징을 찾고, 이들 보살상의 양식이 요나라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내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염두에 두는 한편, 한송사지 상이 지닌 독자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그 의의를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또 그 과정에서 명주 지역에 소재한 오대산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존상과 오대산 사이의 상호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원 봉안처인 한송사의 내력에 주목하였다. 한송사의 옛 이름은 문수사로, 이 문수사라는 사명은 17세기 이전까지 한송사라는 명칭보다 더 빈번히 사용되었다. 또 명주는 곧 오대산이 소재한 지역으로 본 연구에서는 한송사 역시 ‘오대산 문수사’와의 접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고려시대 오대산은 단순히 산악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영역을 통칭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곧, 오대산 외부에 위치한 한송사 역시 과거 오대산 문수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송사지 상의 양식과 그 조성 연대에 관해서는 먼저, 폐사 이후 한송사지 상이 예배상에서 예술품으로 인식이 전위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송사지 상은 1950년대까지 일제강점기 성립된 미의식에 기반을 두고‘치졸한 기교’로 조성된 고려시대 조상보다는 ‘우수한’ 통일신라시대의 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관념은 점차 고려시대 조상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한송사지 상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술하였듯 한송사지 상의 양식이 지역성이 지적되었으며, 오늘날 한송사지 상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본고에서는 두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지닌 양식적 요소를 크게 외래적 요소와 高麗的 요소로 양분화하였다. 외래적 요소로는 한송사지 상이 착용하고 있는 관과 의복에서 보이는 이국적 양상을 예로 들었다. 또한, 국보 124호 상에서 보이는 원통형 보관과 두건의 조합이 고려에서만 나타나는 점에 주목하여, 이것이 고려 내에서 자생하였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그 근거로는 徐兢의 『宣和奉使高麗圖經』 및 당시 문인들이 남긴 관과 건에 대한 기록 등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두건을 요나라만의 전유물로 추정하는 견해는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요나라 등 외래로부터 새로운 양식을 도입함과 동시에, 또 그 양식을 고려 자체의 실정에 맞게 변용하여 샐운 양식을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한송사지 상의 양식은 이후 신복사지 상 등 인근의 다른 존상들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한송사지 상의 존명과 그 도상을 고찰하기 위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서의 한송사지 상을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짝을 이루어 조성될 수 있었던 배경을 오대산 신앙에서 찾았는데, 정황상 고려 전기에도 오대산 신앙이 흥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관련된 자료는 무척 희소하다. 따라서 고려와 같은 시대에 존속하였던 송, 요 등 주변 국가의 오대산 신앙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고려 전기 오대산 신앙의 유행을 추론해보았다. 한송사지 상의 존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騎獅文殊像과 騎象普賢像이 함께 남아있는 작례를 조사하여 그 지물과 봉안 위치를 비교하였다. 이 비교군은 한송사지 상을 중심으로 하여 기사문수·기상보현 도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초당기부터 고려가 멸망하는 14세기 사이에 조성된 불교조각·회화 등의 사례들로 구성하였다. 그 결과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의 지물을 특수한 사례로 비정할 수 있었으며, 지물 외에도 봉안 위치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하여 한송사지 상의 존명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의 국보 124호 상이 문수보살로, 보물 81호 상이 보현보살를 추정하는 시각에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현재로서 두 상의 존명을 명백히 밝히는 것은 어려움이 있으며, 한송사지 상의 존명이 폐사와 함께 대좌가 상실된 시점부터 그 불확실성이 심화된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본존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한송사지의 두 보살상 사이에 모셔졌던 본존의 근거에 모순이 있고, 사료에서도 ‘두 석상’이 강조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주존으로서 봉안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고려 전기 보살 신앙이 대두하는 시대적 정황과 강원 지역이 오대산뿐만 아니라 낙산·금강산 등과 같이 예로부터 보살주처신앙의 세가 강한 지역이었다는 공간적 성격 역시도 주요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오대산의 문수·보현이었을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예배자들에게 주존으로서 배례 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양식적인 측면에서는 외래 양식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변용한 사례이며, 도상적인 측면에서도 오대산 신앙과 결합하여 조성된 기사문수·기상보현의 특수한 작례임을 규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지닌 특수성을 규명하고 관련 담론을 다양하게 논의하였다는 점에 연구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Two sculptures of Stone Seated Bodhisattvas from Hansongsa Temple Site 寒松寺址, while absorbing an exotic style into an authentic one, had a significant impact on Myeongju 溟州 and nearby areas such as Woljeongsa Temple 月淨寺, Shinboksa Temple site 神福寺址, and so on. The images consist of ‘Manjusri Riding a Lion 騎獅文殊’ and ‘Samantabhadra Riding an Elephant 騎象普賢’ which is a rare example around the early Goryeo Dynasty 高麗. This implies Hansongsa Temple sculptures’ relationship between an adjacent area named the abode of the Bodhisattva Manjusri in Mountain Odae 五臺山. Hence, although the sculptures are situated in the mainstream of Goryeo Dynasty Buddhist sculptures, it bears a distinct characteristics compared to those in Myeongju region. Previous research on the two sculptures focused on two major ideas; the “style” which illuminated the concept of “regional trait” within the Buddhist sculpture history and the origin of the imagery of the sculptures. These researches aimed at localizing Stone Seated Bodhisattva at Sinboksa Temple Site at Gangneung, Stone Seated Bodhisattv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and, last but not least, Bodhisattva from Hansongsa Temple Site as Myeongju region’s image. However, this paper concentrates on analyzing the Hansongsa Temple Site Bodhisattvas from various angles as well as studying the special characteristics of them. To be specific, the link between the sacred image and the mountain will be thoroughly examined since Mountain Odae is expected to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in the entire process. First of all, this paper underscores the history of Hansongsa Temple, the original space for the enshrinement, in order to specify the Two statues of Stone Seated Bodhisattvas. The former name of Hansongsa Temple was Munsusa Temple and it has been more frequently utilized than Hansongsa up until the 17th century. This study claims that Hansongsa Temple might have close connection to Mountain Odae’s Munsusa Temple 文殊寺 considering that Myeongju was located in Mountain Odae. During the Goryeo Dynasty, Mountain Odae was beyond a mere mountaineous region; its name extended to much wider areas. To sum up, Hansongsa Temple, situated outside of Mountain Odae, could have been recognized as Mountain Odae’s Munsusa Temple to the contemporaneous Goryeo people. Two analytical approach was adopted to explain Hansongsa Temple statues’ style and creation period; the ideological transformation on statues from sacred to artistic purpose. Based on the aesthetic taste of Japanese colonial era, Hansongsa Temple sculptures were deemed as the essence of superior Unified Silla Dynasty 統一新羅 art, in comparison to the ‘crude technique’ of Goryeo Dynasty until the 1950s. Nonetheless, this perspective began to alter as the understanding on Goryeo Dynasty Buddhist sculptures developed. The regional style was able to be detected and, eventually, contributed to the current day perception on Hansongsa temple Bodhisattvas. This paper explores the sculptures from the Hansongsa Temple considering from the external and stylistic aspects. In particular, the analysis on external influence was centered around the exotic crown and garment of the sculptures. The literati’s remark on crowns and the hood in Gaolitujing 高麗圖經 by Xujing 徐兢 (1091-1153) and several historical records suggests a great possibility that, in fact, they originate from Goryeo. Despite the incapability to thoroughly comprehend the apparels of the period, this paper argues to rethink the previous perspective of attributing the origin of the hood to the Liao Dynasty 遼(916-1125). In other words, Hansongsa Temple’s sculptures result from the well-balanced combination of novel style from the foreign culture and domestic taste. With this significant background, the sculptures are the foremost sacred sculptures to be manufactured around the Myeongju area and expected to have heavily impacted the nearby ones. This paper adopts Manjusri and Samantabhadra from Mountain Odae’s myth in order to study the sacred image and the image of the sculptures. While the related resources are scarce, under the circumstance during the early Goryeo Dynasty. The Mountain Odae’s myth of adjacent states, such as Song 宋 and Liao Dynasty, are invited to prove the popularity of the cult. The sacred image of the Hansongsa Temple Bodhisattvas was explained through the comparison between the possession and enshrined spot of examples of the coupled image of Manjusri Riding a Lion and Samantabhadra Riding a Elephant. These images were collected from Buddhist sculptures and paintings of the 14th century, from early Tang Dynasty to the collapse of Goryeo Dynasty, when expansion of the Manjusri riding a lion and the Samantabhadra riding a elephant figures took place. Based on this examination, this paper was able to conclude that the possession of Hansongsa Temple was a unique exemplar. Not only the possessions but also the enshrined location, mentioned in sacred books, were taken into consideration to illuminate the sacred image of the sculptures. Yet, the exact location spot of Hansongsa Temple sculptures has not been detected which makes it difficult to grasp the sacred image. Yet, according to the modern and contemporary information, Hansongsa Temple’s two sculptures of National Treasure No. 124 and Treasure No. 81 are each noted as a Manjusri. Therefore, the confusion over sacred image must have begun around the era when the temple was destroyed as well as the loss of Stone Pedestal. Ultimately, this paper suggests the flaw in the rationale behind the principal icon of the Hansongsa Temple sculptures and, rather, provides a possibility that the two sculpture figures enshrined as the principal icon. Mountain Nak 洛山, Mountain Geumgang 金剛山, and several other spots, worshiped as Bodhisattva's residence, are a great supporting evidence as well as the periodic background of the popularity over Bodhisattva cult in early Goryeo Dynasty. Thus, it is pivotal to regard Hansongsa Temple Bodhisattvas as the Manjusri and Samantabhadra of Mountain Odae, cherished as the principal icon by the believers. This study argues the successful stylistic adoption of Hansongsa Temple sculptures and peculiarity of the iconographical representation of Manjusri riding a lion·Samantabhadra riding a elephant in combination with Mountain Odae myth. To sum up,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resides in studying the unique trait of two Boddhisattvas of Hansongsa Temple from diverse viewp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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