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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하(もの派)의 ‘존재로서의 모노(もの)’ 연구

Title
모노하(もの派)의 ‘존재로서의 모노(もの)’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Mono-ha(もの派)’s ‘Mono(もの) as Being’ : focusing on Martin Heidegger’s concept of Artworks and Things
Authors
한승은
Issue Date
2020
Department/Major
대학원 조형예술학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남시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Mono(もの)’ of the art group ‘Mono-ha(もの派)’ through the philosopher Martin Heidegger’s thinking of Work-Being(Werksein) of artworks and Thing-Being(Dingsein) of things. The name of Mono-ha was invented by the critics who looked back on the art practice of some emerging artists, advocating “not-making art”in Japan in the late 1960s and the early 1970s. In addition, the critics divided these Mono-ha artists into several subcategories, taking into account the differences in their understanding of Mono and their intentions of working. One of the subcategories discussed in this paper is the group of the artists who attended the round-table talk held in 1970, “A New World, Where Mono Opens.” In this regard, this paper begins with searching the art trend surrounding Mono-ha. First, the background of Mono-ha’s emergence is examined, and then the activities of Mono-ha artists who participated in the above round-table talk(hereinafter referred as “Talk Mono-ha”). Further, Talk Mono-ha’s art practice is compared with the contemporary conceptualism art which prevailed the world, to define the differences of conceptual features between the two. The Mono-ha artists placed natural or industrial materials not processed by the artists in the exhibition space so that the viewers as well as the artists were expected to experience the things as they are. The second chapter goes over Heidegger’s thinking of the origin of art works and the nature of things in order to be closer to Mono opening from each situation in which the things are arranged. Third, based on the above discussion, it is covered how Heidegger’s Work-Being of artworks and Thing-Being of things can be used to understand the new world revealed by the work of Mono-ha. Furthermore, it is explored that Mono as the Work-Being of artworks and the Thing-Being of things suggests the limitations and significance of Mono-ha art movement. The Talk Mono-ha artists and Heidegger both called into question the existing human language that has built and sustained a human-centered and self-centered world view. The existing language that expresses confidence in the reason of human subjects has led to a clear distinction between human and nature, conscious subjects and objects of consciousness. Man’s own definition of the external world of the conscious “I” ignores the Being of an external thing as it is, that is, the object to be defined by itself, and violated the unique existential status of each thing. The Talk Mono-ha artists brought things like stones, wood, iron plates, ropes, paraffin, sponge, cotton, and so on into the exhibition space as they are, that is, as they are given to the artists. And they tried to find a proper arrangement in which these things open their own Being. Heidegger said that ‘the strife of world and earth(der Streit zwischen Welt und Erde)’happening in the work let the work as it is, and the thing is to be itself when it opens up as a place to call together ‘the fourfold(das Geviert)─ earth, sky, mortals, divinities.’ Talk Mono-ha artists were immersed in ‘Mono more than things.’ Mono, as something beyond the things placed in the exhibition space, evoked by working of Mono-ha opens the exhibition space as a world where Mono is held. This new open world is the place of the work in which the strife between world, where humans make history, and earth as the foundation upon which the world is built. It is also the place of opening up the events where the fourfold as the Being-constitution(Seinsverfassung) of things gather into the thing, letting the thing be itself. However, it is skeptical that Mono as Work-Being is able to overcome modernist art that covers the external world with the artist's self and even general modernism that justifies the violence of the subject on the object. It is because the Talk Mono-ha artists are not sure whether the viewer who encounters the work actually experiences Mono as Being as the artists expect the viewers to. And it is also difficult to have concrete results which prove if the artist overcomes the modern human subject through experiencing Mono as Being. Moreover, the works not processed by artists, in other words, the works not created by artists are not free from criticism of disregarding crises at hand, just staying in a passive attitude not to make. To put it another way, unlike actively created works expressing the reality of modern Japanese society, the works intended not to make present merely a cause of the postmodern. If so, is the art practice of Talk Mono-ha a mere slogan that is hard to say an action? Talk Mono-ha's own discourse on not-making art attempted to open up the things as they are in the place where the works not created by artists were come out. If one evaluates effectiveness and tangible results of these events, the judgment should be made on whether Talk Mono-ha’s working successfully escapes modernism as much as their voice of rebuking modernism. Then has the art practice of Talk Mono-ha successfully escaped modernism? Before answering this question with yes or no, we must ask how to differentiate from modernism to postmodernism, from modernity to postmodernity. What is the clear border line between modernism and postmodernism, modernity and postmodernity? If the clear boundary cannot be determined, the location of Talk Mono-ha will not be at one end of both extremes, but on the way from modernism to postmodernism. In other words, the significance of Talk Mono-ha is in the process of reflecting on and criticizing modernism.;본 연구의 목적은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만들지 않는 미술’을 주창하며 등장한 한 무리의 미술가들, 이른바 ‘모노하(もの派)’라고 불리는 미술 집단의 미술 실천에서 ‘모노(もの)’란 무엇인가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작품 존재(Werksein)’와 ‘사물 존재(Dingsein)’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 ‘존재로서의 모노’가 미술 안팎에서 어떤 한계와 의의를 갖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모노하라는 이름은 훗날 모노하로 분류되는 미술가들의 활동이 잦아든 후, 이들이 일군 미술 세계를 돌아본 비평가들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은 모노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미술가들을, 이들의 모노에 대한 이해 및 작업 의도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고려해 하위 범주들로 나누었다. 본고에서 논의되는 모노하는 이 하위 범주들 중 하나로, 모노하 미술 운동(もの派 movement)의 주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좌담회 ‘모노가 열리는 새로운 세계(<もの>がひらく新い世界)’에 참석한 미술가 무리다. 이를 위해 첫째, 모노하 미술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본 다음 좌담회에 참석한 모노하 미술가들(이하 ‘좌담회 모노하’)의 활동 내용을 짚어보고 이들의 미술 실천이 동시대 개념주의 미술(conceptualism art) 실천과 어떤 공통점 및 차이점을 갖는지를 분석한다. 둘째, 자연물이나 공업용 재료를 구한 상태 그대로 작품에 도입하는 좌담회 모노하 작업의 근본, 즉 미술가가 미술가 자신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사물을 전시 공간에 배치하여 미술가를 비롯한 감상자 모두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있음을 경험하게 하는 작업의 의의를 밝히기 위해 예술 작품의 근원과 사물의 본질을 묻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들여다본다. 셋째, Ⅱ장과 Ⅲ장에서 살펴본 바를 토대로 좌담회 모노하의 작업이 열어 밝히는 새로운 세계를 하이데거의 작품 존재 및 사물 존재를 통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나아가 이들의 작업 과정 및 작품에서 열어 밝혀지는 사물 존재와 작품 존재에 대한 이상의 논의로부터 좌담회 모노하 미술 운동이 갖는 한계와 의의를 해명한다. 좌담회 모노하 미술가들과 하이데거 모두 인간 중심적·자아 중심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지탱해 온 기존의 인간 언어를 문제 삼는다. 인간 주체의 이성에 대한 확신을 표명하는 종래의 언어는 인간과 자연, 의식 주체와 의식 대상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사유를 이끌어 왔다. 이렇게 인간이 자아의 외부 세계를 인간 언어로 규정하는 것은 곧 규정 주체 이외의 모든 것, 즉 규정되는 대상이 그것 자체로서 있음을 묵살하고 사물 각자의 고유한 존재적 위상을 침해하는 것이다. 좌담회 모노하 미술가들은 돌, 각목, 철판, 밧줄, 파라핀, 스펀지, 솜 등의 사물을 구한 상태 그대로 전시 공간에 가져와 그 사물들이 각자의 고유한 존재를 열어 보이는 배치를 고민하고, 이렇게 배치된 사물들의 만남이라는 상황에서 감득(感得)되는 ‘사물(もの) 이상의 모노(もの)’에 착목했다. 하이데거는 작품에서 일어나는 ‘세계와 대지의 투쟁’이 작품을 작품으로서 있게 하고, 사물이 ‘사방(das Geviert)―땅, 하늘, 죽을 자들, 신적인 것들―을 모아들이는 장소’임이 열어 밝혀질 때 비로소 사물로 된다고 말한다. 좌담회 모노하가 작품을 통해 감득하는, 전시 공간에 배치된 사물과는 다른 무엇으로서의 모노는 전시 공간을 모노가 열리는 세계로서 열어 보인다. 이렇게 개시되는 새로운 세계는 인간이 역사를 일궈나가는 ‘세계(Welt)’와 세계가 그로부터[그 위에서] 열어 세워지는 토대인 ‘대지(Erde)’ 사이의 ‘투쟁(Streit)’이 일어나는 작품의 장소인 한편, 사물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존재구성틀(Seinsverfassung)인 사방이 사물 안에서 한데 모이는 사건(Ereignis)이 열어 밝혀지는 장이다. 그러나 작품 존재로서의 모노가 미술가의 자아로 외부 세계를 뒤덮는 모더니즘 미술, 나아가 의식 대상에 대한 의식 주체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근대주의 일반을 극복하는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회의적이다. 좌담회 모노하 미술가들이 바라는 대로 작품과 만나는 감상자가 존재로서의 모노를 실제 경험하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확실치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로서의 모노를 경험한다 해도 그 경험을 통해 근대 인간 주체를 반성하고 극복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가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달리 말해 미술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은 적극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근대 일본 사회의 실상을 표현하며 당면한 위기에 직접 맞서는 것과 달리, 만들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에 머물며 탈근대를 운운(云云)할 뿐 위기를 방관하고 회피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좌담회 모노하의 미술 실천은 실천이라 말하기 어려운 구호에 그치는가? 좌담회 모노하의 만들지 않는 미술은 미술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있음을 열어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사건의 실효와 유형(有形)의 성과를 평가하려 한다면, 좌담회 모노하가 근대주의를 일갈하는 목소리만큼 이들의 작품이 근대주의를 성공적으로 벗어나는가에 대한 판단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좌담회 모노하의 미술 실천은 근대주의를 성공적으로 벗어났는가? 이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기에 앞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 근대와 탈근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 근대와 탈근대의 명확한 경계선은 어디인가? 그 명확한 구분을 가늠할 수 없다면 좌담회 모노하의 위치는 근대라는 출발점 또는 탈근대의 종착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와 탈근대 사이, 근대주의로부터 탈근대주의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해명되는 모노하의 의의는 근대주의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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