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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 흉배 연구

Title
조선시대 왕실 흉배 연구
Other Titles
The Study of the Royal Insignia Badges of the Joseon Dynasty
Authors
송수진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이 연구는 조선 왕실의 흉배 제도를 고찰하고 문양에 따라 조형성을 분석하여 시대별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신분에 따라 문양과 형태, 사용 위치 등을 엄격하게 구분한 왕실 흉배의 변화 과정을 확인하고자 어진(御眞)과 초상화, 흉배본, 유물을 함께 분석하였고, 이를 통해 사용자가 밝혀지지 않았던 흉배본의 주인을 유추하였다. 왕실에서 사용한 흉배 문양은 대부분 상상의 동물로 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상징한다. 용(龍)은 왕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왕권을 잇는 자와 그들의 정실(正室) 부인만 사용하였다. 용보(龍補)는 조선 전기까지 왕과 왕세자만 사용하였으며, 상복(常服)과 융복(戎服), 군복(軍服)의 가슴과 등, 양어깨에 부착하였다. 왕은 오조룡(五爪龍), 왕세자는 사조룡(四爪龍)을 사용하여 신분에 따른 차등을 두었다. 한편, 왕비는 임진왜란 전까지 명(明)에서 사여 받은 적계문(翟雞紋) 흉배를 썼으며, 인조 연간부터 봉황 흉배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영조 때부터 비로소 용보를 사용하였다. 용보는 사용자와 용도에 따라 용의 형태와 배경 문양에 차이가 있다. 상복 차림의 세조 어진을 보면 가슴과 양어깨에 모두 측면을 바라보는 승룡(昇龍)을 그렸지만, 영조 어진에서는 정면을 바라보는 반룡(盤龍)으로 바뀌었고 국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용의 주위는 시대 구분 없이 모두 구름으로만 채웠다. 협수(挾袖)와 전복(戰服)으로 구성된 군복에 사용한 용보는 조금 더 복잡한 변화 과정을 거쳤다. 가장 이른 시기 유물은 갑자년(1744) 흉배본으로 가슴에는 승룡을, 등과 어깨에는 반룡을 그리고 주위는 구름으로 채웠다. 무술년(1838) 흉배판은 배경 문양에 변화가 생겨 하단에 삼산과 물결, 파도, 보문이 나타났고, 갑자년 본에는 없었던 정원형(正圓形)의 테두리가 생겨났다. 등과 어깨의 반룡은 철종 어진까지 그대로 이어지다 기묘년(1879) 본에서는 가슴과 마찬가지로 모두 승룡으로 바뀌었다. 또한, 테두리의 형태가 24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으로 상복과 군복 모두 바뀌었다. 남성이 사용한 용보는 시대에 따라 용의 형태와 배경 문양 양식이 바뀌는 등 굵직한 변화가 있었던 것에 비해, 여성이 사용한 용보는 용도에 상관없이 기본 구성은 동일하게 이어 가면서 시대에 따라 세세한 부분에 변화가 포착된다. 흉배와 견화 모두 반룡을 그렸으며, 용의 주위는 구름으로 채우고 하단에는 삼산과 물결, 파도, 보문을 넣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용의 머리 위 구름과 하단 문양의 양식에 변화가 있다. 구름은 여의형 운두(雲頭)에 꼬리가 달린 형태로 처음에는 ‘X’자 모양으로 4개의 꼬리가 있었지만, 기묘년(1879)부터는 좌우로 길게 뻗은 꼬리를 2개만 그렸다. 하단의 물결 개수는 1개에서 4개로 늘어났고, 삼산에 그린 전보(錢寶)의 위치는 점점 높아졌다. 여성용 용보는 가장 이른 시기 제작된 경술년(1790) 본부터 정원형의 테두리를 한 줄로 그렸는데, 기묘년(1819)부터는 두 줄로 바뀌었다. 용의 갈기와 수염, 화주(火珠)의 화염은 용도와 성별에 구분 없이 변화의 흐름을 함께하였다. 반룡의 머리 갈기는 위를 향해 휘날리는 모습에서 기묘년(1879)부터는 ‘一’자로 곧게 뻗는 형태로 정형화 되었다. 입꼬리와 볼에 뾰족하게 그린 수염은 반룡과 승룡 모두 기묘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화주에서 뻗어 나온 화염은 무술년까지는 한 방향으로만 날리는 모습으로 단순하게 그렸지만, 기묘년부터는 좌우로 길게 뻗어 나가는 복잡한 형태로 바뀌었다. 용보의 테두리 모양은 성별에 따라 단순하게 구분되어 왔지만, 분석 결과 그 보다 복잡한 변화 과정을 거쳤다. 갑자년까지는 상복과 군복에 구분 없이 별도의 테두리를 그리지 않았으며, 경술년(1790)에는 한 줄로, 기묘년(1819)에는 두 줄로 그린 테두리가 생겨났다. 이후 철종 어진까지 남녀의 구분 없이 정원형의 테두리를 두 줄로 그렸다. 성별에 따른 차이가 생긴 것은 고종 연간으로 남자는 24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을, 여자는 정원형을 두 줄로 그렸다. 봉황 흉배는 임진왜란 이후 왕비의 예복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문헌에 나타난다. 용보를 사용하기 전까지 왕비와 왕세자빈의 흉배로 법복(法服)인 적의(翟衣) 및 노의(露衣), 장삼(長衫)에 부착하였다. 이후 용보 제도가 확립되면서 적의를 상복(常服)으로 착용할 경우 용보 대신 봉황 흉배를 사용하였다. 또한, 제도에는 없지만 왕의 후궁과 왕녀가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봉황 흉배는 시대에 따라 주문양의 배치 방법과 배경문양의 구성을 달리하였다. 18세기까지는 봉황을 좌우로 배치하고 주위를 구름으로만 채웠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 봉황을 상하로 배치하고 하단에는 용보에서 보았던 삼산과 물결, 파도, 보문이 생겨났다. 오색 견사(絹絲)로 수놓았던 봉황은 금사(金絲)를 사용하여 문헌에서 보았던 ‘금치[金體]’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봉황의 꽁지깃 모양과 화주의 화염은 제작 시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수컷 봉의 꽁지깃은 가운데 깃털이 가장 길며 가장자리로 갈수록 짧은 형태에서 끝이 나란한 형태로 바뀌었다. 화주에서 뻗어나간 화염은 용보와 마찬가지로 길고 복잡한 패턴으로 진화한다. 남아 있는 봉황 흉배와 흉배본은 모두 방형(方形)으로 가슴과 등에만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숙선옹주의 흉배와 정미년 흉배판을 통해 방형 흉배도 견화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고, 봉황 흉배를 견화까지 갖추었다는 문헌 기록을 확인하였다. 기린(麒麟)은 대군의, 백택(白澤)은 왕자군의 흉배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국말 흉배본을 보면 기린은 용의 얼굴에 말의 발굽을 갖고 있으며, 백택은 사자 얼굴에 발톱을 그려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연잉군의 초상화를 보면 백택의 얼굴은 용과 유사하게 그리고 발에는 발톱을 그려 기린과 백택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 이는 당시 대군이 없이 왕자군만 있었기 때문에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흥선대원군이 기린 흉배를 사용하면서 왕자군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도안이 세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壽’자 흉배가 여성용으로 사용되었다. 후궁 간택 시 삼간택 의복으로 초록원삼에 부금수자(付金壽字) 흉배가 마련되었으며, 순정효황후의 「탄일 발긔」에서 ‘壽’자 흉배가 확인된다. 탄일을 맞아 장수를 상징하는 ‘壽’자 흉배를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정리한 결과를 토대로 육십갑자로 표기한 흉배본의 정확한 제작 연대를 확인하고 사용자를 추론하였다. 본 연구에서 밝힌 시대 판단을 위한 단서들은 왕실 복식 연구에 활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분과 용도에 맞춘 다양한 왕실 흉배가 소개되어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This study focuses on investigating the characteristics of insignia badge for royal family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analyzing the formative features depending on their designs. This study analyzed the portrait of kings and officials, the patterns of insignia badges and embroidery insignia badges to identify the process of change of the royal insignia badges that strictly distinguish design, forms and positions for usage depending on the social class of wearers. This study inferred the owners of insignia badges whose users have been unknown from it. The designs of insignia badges are mostly imaginary animals that symbolize the dignity and authority of the royal family. As the symbol of a king, a dragon was only used by an heir and his legal wife. Dragon insignias were used by a king and his crown prince, and were attached on the chest, back and shoulders of a royal robe(袞龍袍) or two types of military uniform, yungbok(戎服) and gunbok(軍服). The social status was distinguished by the number of claws of a dragon. A dragon with five claws was used for a king and a dragon with four claws for a crown prince. Meanwhile, the insignia badge with the pheasant(翟雞紋) form offered by the Ming Dynasty of China was used by a queen prior to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Imjin war. There remain records on the insignia badge with the phoenix from the period of King Injo. It was from the period of King Yeongjo when the dragon insignia began to be used. The shape of a dragon and its background design differed depending on who and what the dragon insignia was used for. The portrait of King Sejo wearing a royal robe has a rising dragon(昇龍) looking sideways depicted on his chest and shoulders, but that of King Yeongjo has a coiled dragon(蟠龍) looking front, which continued to be worn by the end of the dynasty. Around the dragon was filled up with clouds regardless of times of dynasties. The dragon insignia used for military uniform, or gunbok went through a slightly more complicated course of change. The earliest relic is the insignia badge pattern which was made in 1744 with a rising dragon on the chest, a coiled dragon on the back and shoulders and the surroundings filled up with clouds. The pattern made in 1838 manifested changes in the background design, representing a world mountain with triple peaks(三山), ripples, waves and precious treasures(寶紋), showing a circular shaped outline which was not found in 1744. A coiled dragon on the back and shoulders remained up to the period of King Cheoljong in his portrait, and the pattern made in 1879 was changed into a rising dragon just like on the chest. Furthermore, both the royal robe and military uniform were modified to have a rounded shape with 24 curved lines for the outlines. While the dragon insignia used by men went through dramatic changes with different shapes of the dragon and the background design depending on the dynasty, the dragon insignia won by women was subtly modified over the passage of time in different times with the basic composition remaining the same regardless of the usage. A coiled dragon was on the insignia badge regardless of its position and a dragon was surrounded with clouds and the bottom was filled up with a world mountain with triple peaks, ripples, waves and precious treasures. And yet, there are changes to the clouds above the dragon head and the pattern at the bottom depending on each period. For a cloud of ruyi(如意) type, four tails were attached in the shape of an ‘X’ but from 1879, there were only two tails stretched to the sides. The number of ripples at the bottom increased from one to four. The position of jeonbo(錢寶), brass coin pattern, drawn on a world mountain with triple peaks, went up. As for the dragon insignia for women, the circular outline was in a single line from the pattern made in 1790 as the earliest year of production, but it had two lines from 1819. The mane and beard of a dragon and the flame of precious beads were in line with the changing trend regardless of the usage and gender. The mane of a coiled dragon was stereotyped into a ‘horizontal’ straight line starting from 1879, from the upwardly flying image. The beard sharply drawn on mouth corners and the cheek for a coiled dragon and a rising dragon began to disappear from 1879. The flame exuding from the precious beads was simply drawn to be flying in a single direction up to 1838, but starting from 1879, it was changed to be in complicated forms being stretched out to the sides. The shape of the outline for a dragon insignia was made simply distinctive depending on the gender, but as a result of this analysis, it underwent a more complicated course of change than that. No extra outline was drawn regardless of a royal robe and a military uniform up until 1744, and a single outline in 1790 and two outlines came into being in 1819. The circular outline was drawn in two lines regardless of the gender up until the period of King Cheoljong in his portraits. The gender distinction started to appear in the period of King Gojong: a rounded shape with 24 curved lines for men, and two rounded lines for women. The insignia badge with the phoenix appeared in literature as ceremonial attire for a queen were self-made after the Imjin War. Prior to the usage of the dragon insignia, the insignia badge for a queen and a crown princess was attached on jeokui(翟衣) for ceremonial attire, noui(露衣) and jangsam(長衫) as ceremonial robes. After that, as the institution of attaching the dragon insignia was established, the phoenix insignia badge was used instead of the dragon one upon wearing jeokui for feasts. In addition, albeit absent in the institution, the phoenix insignia badge was used by royal concubines and princesses,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phoenix insignia badge had a different way of placing the main design and the background design depending on the times. The bird was placed on the left and the right until the 18th century whose surrounding was filled up with clouds only. And yet, moving onto the 19th century, the bird was placed up and down, and the bottom showed a world mountain with triple peaks, ripples, waves and precious treasures which were seen in the dragon insignia. The bird was embroidered with golden threads instead of colorful silk threads. The shape of the tail feathers of the bird and the flame of precious beads serve as critical clues to determine the period of making. The tail feathers of a male bird have the longest feather in the middle, and the shorter ones towards the corner changed into the ones whose tips were in parallel. The flame exuding from precious beads have evolved in complicated patterns as in the dragon insignia. The phoenix insignia badge that remains and the pattern of the insignia badge in a square form are known to have been used on the chest and the back. However, the insignia badge of Princess Sukseon and the pattern made in 1847 reveal that the square-shaped insignia badges were used on the shoulder, and historical records proved that the phoenix insignia badge was even on the shoulder. As for the insignia badge, ch’i-lin(麒麟) was used for the son of a king’s legal wife(大君), while baektaek(白澤) was used for the son of a king’s concubine(王子君). A close look at the insignia badge at the dynasty’s end, ch’i-lin had a dragon face and hooves of a horse, and baektaek had a lion face with claws, showing a clear distinction. And yet, Yeonginggun(King Yeongjo)’s portrait painting shows that the face of baektaek is similar with the face of a dragon and has claws on feet, implying that it has both the characteristics of ch’i-lin and baektaek. It is assumed that back then there was only a son of the king’s concubine without a son of the queen so there was no distinction between ch’i-lin and baektaek. As Heungseon Daewongun later used the insignia badge of ch’i-lin, it is assumed that the drawing turned more specified to distinguish it from that for a son of a king’s concubine. Moreover, the insignia badge with the Chinese character of ‘壽’ was used for women. Upon doing gantaek (choosing concubines after formal processes, like queens, among daughters of noble classes), the insignia badge in gold was prepared for the clothes of the third gantaek concubines on up of green wonsam (a ceremonial robe worn by femal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The 壽字 insignia badge was identified from Balgi(발긔) Generated for Birthday Anniversaries of Empress Sunjeong, hinting at how the Chinese character of ‘壽’ symbolizing longevity on her birthday was placed on the insignia badge. Based on the aforementioned information, this study assumed the exact year of production and users of the insignia badge pattern indicated in the sexagenary cycle. The criterion in analyzing times suggested in this study can be utilized for research of royal attires, through which various royal insignia badges suited to each social status and usage could be introduced to be used as cultural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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