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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漢陽의 문학적 형상 연구

Title
조선 초기 漢陽의 문학적 형상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the Literary Configuration of Hanyang(漢陽)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uthors
강수진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김동준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 초기의 한양 공간에 주목하여 공간의 이미지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 초기는 수도로서의 한양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시기로,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이래 100여 년 동안 國都·명승·유흥지·생활공간 등 한양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초기의 한양 공간을 바탕으로 창작된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한양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양상을 창작 의도와 향유 계층에 따라 조선을 상징하는 國都, 관료문인의 공간, 시정인들의 생활공간, 이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태조는 조선을 개국한 뒤 한양으로 천도하여 새로운 나라가 열렸다는 것을 당시 人民들에게 인식시켜주고자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新都에 대한 송축시가 창작되었는데, 이들 작품 속에서 한양은 新國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국초의 한양을 소재로 창작된 송축시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도전의 <進新都八景詩>를 꼽을 수 있다. 정도전은 <進新都八景詩>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도와 新國의 모습을 형상화였다. 정이오의 <南山八詠>은 세종 대의 한양 공간을 八景詩로 나타낸 것으로, 국초의 新都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양을 거주지에서 바라본 승경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거정의 <漢都十詠>은 성종 대의 한양을 10개의 명승으로 나타낸 작품으로, 정비되고 번화한 수도를 바탕으로 人民들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공간으로 한양을 형상화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이 개국된 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 작품 속에서의 한양은 新國을 상징하는 도읍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는 정비된 國都로 그 이미지가 변화하였다. 한양의 관료문인들은 조선 초기의 정치·사회·문화를 주도했던 세력으로, 이들은 조선 개국 후 한양으로 이주하여 대를 이어 살면서 한양 내에 자신들의 사적 공간을 넓혀 갔다. 관료문인들은 사적 공간, 즉 거주지나 별서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투영하였으며 문학 작품을 통해 그 공간의 특성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八景詩의 형식을 차용하여 사적 공간을 표현하였는데, 그 대표적 작품으로 안평대군의 <匪懈堂四十八詠>을 꼽을 수 있다. 안평대군은 <匪懈堂四十八詠>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화려하게 조성된 왕족의 원림으로 형상화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신을 당대 문화를 선도하는 귀공자로 나타냈다. 안평대군의 영향으로 성종 대부터 관료문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와 별서를 八景詩의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이 다수 나타났으며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초기의 관료 문인들은 한양의 거주지와 별서를 자신들이 선망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최초로 시도한 인물은 안평대군으로, 그는 桃源을 놀러간 꿈을 꾼 것을 계기로 무계정사를 짓고 당대의 문인들에게 무계정사에 대한 詩와 記를 받아 무계정사를 桃源이 실현된 공간으로 나타냈다. 성종 대의 金紐 또한 도성 안에 雙溪齋를 지어 桃源의 공간을 조성하였다. 그는 당대의 문사들에게 쌍계재에 대한 작품을 받아 桃源의 정취가 실현된 공간으로 쌍계재를 형상화하였다. 성종 대에 들어서면서 거주지에 원림을 조성하는 것이 한양의 관료문인들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는 城市와 같은 번화한 곳에서 원림을 통해 자연의 정취를 느끼고자 하는 그들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원림을 조성하는 방법 중 하나로 石假山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다. 문인들은 名山의 형상을 석가산을 통해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원림을 臥遊의 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이러한 공간의 특성을 문학 작품을 통해 드러냈다. 한양의 관료문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隱居과 臥遊의 공간을 만든 것은 城市에서 관료로 살면서 강호에서의 은거를 꿈꾸는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료문인들은 자신의 거주지나 별서를 隱居와 臥遊의 공간으로 만들어 관료와 은자의 삶을 모두 추구하고자 하였다. 한양이 수도가 된 이래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거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서 그 이미지가 적층되고 분화되었는데, 본 연구에서는 한양의 이미지가 분화된 양상을 4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에 한양에 거주하였던 사대부 남성들에 의해 한양 곳곳에 吉地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科擧에 대한 관심과 名家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종 대 이후로 법적으로 사족 여성들의 활동을 제약하면서 그들의 유흥 공간이 점차 축소되어 사찰을 중심으로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한양에는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방외 공간이 존재하였으며,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변화를 맞이하면서 忌諱 공간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초기의 한양 공간에 대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조선 초기에 형성된 한양 공간의 이미지를 밝혔으며,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여러 계층을 포괄하는 한양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와 더불어 본 연구에서는 한양을 다루고 있는 문학이 예술적 향유의 대상을 넘어 특정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한양 전체의 경관과 관료 문인들의 거주지를 대상으로 창작된 八景詩는 원작의 표제를 바탕으로 재창작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재창작자들은 원작자가 만든 공간의 이미지와 정취를 공유하였다. 또한 조선 초기의 관료 문인들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거주지를 소재로 한 작품의 창작을 부탁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창작자들은 공간의 주인이 만든 이미지를 공유하였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space of Hanya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analyzes how the space of Hanyang was translated in literature. The early period of Joseon was when the image of Hanyang was constructed as its capital and during 100 years since King Taejo transferred the capital to Hanyang, a variety of images, such as a capital city, scenic beauty, entertaining, and living space, were laid on Hanyang. In this study, literature works having Hanya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s the background were reviewed to see how the space of Hanyang was translated and they were addressed from three different aspects – a capital city, a space for bureaucrat and writers, and a living space for people – considering the writers’ intentions and the intended social classes of readers. King Taejo was trying to make people aware of the opening of a new nation, Joseon, by transferring its capital. In this context, eulogies about this new capital city were created and Hanyang was described as a space symbolizing this new nation. One of the most noticeable eulogies about Hanyang is <進新都八景詩(Sinsinjipalgyeongsi)> by Jung Do-Jeon: He depicts the ideal capital city and new nation which he dreamed of. <南山八詠(Namsanpalyoung)> by Jung Ee-O describes Hanyang with eight poems in the reign of King Sejong and it could find its significance from the fact that Hanyang is described as a living space other than a new capital city. <漢都十詠(handosipyoung)> describes 10 scenic spots in Hanyang in the reign of King Sungjong and Hanyang is descried to be space where people can enjoy in peace. As shown in these works, during 100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Hanyang changed its image from a capital city symbolizing the new nation, to a living space and a refurbished and peaceful capital city. Bureaucrats and writers in Hanyang were the ones leading the politics, society, and cultur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y resided in Hanyang in generations and widened their private space in Hanyang. They reflected their identities in their personal spaces, such as residence or garden, and revealed the characteristics of such spaces in their literary works. They borrowed the form of eight scenes poem[八景詩] to express their personal spaces and <匪懈堂四十八詠(Bunhaedangsasippalyoung)> by Prince Anpyong is one of the representatives. In the poem, he depicts his residence as a garden of the loyal family and expressed himself as a man leading the culture of the time. Due to his influence, since the reign of King Sungjong, bureaucrats and writers often described their residences and gardenes in the form of eight scenes poem and this phenomenon continued till the late Joseon dynasty. Bureaucrats and writer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trying to create their residence and garden in Hanyang as the space of their dream. Prince Anpyong was the first one who made that attempt. After having a dream of visiting the Shangri-la, he built the 武溪精舍(Mugaejungsa) and asked the prestigious writers to write poems and to leave records about the Mugaejungsa and created it to be the place in which the Shangri-la was actualized. In the reign of King Sungjong, 金紐(Kim Yu) also constructed the 雙溪齋(Ssanggaejae) and asked the prestigious writers to write about it, depicting it as the place filled with the aurora of Shangri-la. During the reign of King Sungjong, having a garden in the residence became the popular culture for bureaucrats and writers. It was originated from their preference for experiencing nature amid bustling streets. At that time, it was popular to have stone pavilions. Writers were trying to capture the images of prestigious mountains in their stone pavilions, transforming their gardens into the space of rest and peace, and to reveal such characteristics in their literary works. Bureaucrats and writers in Hanyang created their residences as the place of hermitage and rest: it was derived from the contradiction that they were willing to continue their life in the capital city while dreaming of retiring in the suburbs. They were trying to convert their residences or gardens as the space of hermitage and rest to experience the life of a bureaucrat and of a hermit at the same time. After 100 years since Hanyang became a capital city, the image of a living space was stacked and differentiated. In this study, the differentiation of Hanyang’s images were analyzed from 4 different aspects. Because of nobleman residing in Hanyang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here were several Feng Shui fortunate spots in HanyangL They were the results of their interests about the past and their passion towards a reputable family. After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activities of noble women became legally restricted and their places of entertainment were gradually decreased except for Buddhist temples. In addition, in Hanyang, outside spaces were formed as well as taboo[忌諱] spaces while facing with social or political changes. In this study, through the analysis of images of the space of Hanya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long with the literatures in which such images were depicted, the spatial images of Hanyang form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revealed. In addition, various data and documents were reviewed to analyze the spatial images of Hanyang, encompassing various social classes. Moreover, this study revealed that the literatures, having Hanyang as the background, became the foundation to share the images of a certain space rather than the simple object for art. Eight scenes poem, depicting the residences of bureaucrats and writers in Hanyang were re-created on the basis of the original title, and through this process, the re-creators could share the image and atmosphere of the space created by the original creator. Bureaucrats and writer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sked their colleagues to write a poem or a literary work about its residence, and through that process, creators shared the image of the space, created by the ow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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