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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조의 정치 경제학

Title
북한 원조의 정치 경제학
Other Titles
Political Economy of Aid to North Korea : Examples of Soviet Union, China, and East Europe in 1950s
Authors
이시연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북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최대석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전후 복구 시기 사회주의 국가의 대북 원조가 지니는 정치, 경제, 외교적 의미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냉전 시기 북한이 받았던 원조의 함의를 제시하는데 있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주의 국가는 왜 북한에 원조를 제공했는가? 둘째, 사회주의 국가는 북한에 원조를 어떻게 제공했는가? 셋째,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는 북한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본 연구는 냉전 시기 ‘원조’자체의 의미에 보다 집중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냉전 시기 사회주의 국가의 대북 원조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관계의 산물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소련과 중국은 1949년부터 1957년까지 북한에 대한 정보 공유를 의미하는 파워 셰어링(power sharing)을 했다. 이 기간은 북한과 소련, 중국, 3개국이 서로 협력을 했으므로 북한은 많은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8월 종파사건’에 중소가 정치적으로 개입을 했고, 결론적으로 김일성은 이들의 개입을 수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소와 북한의 사이는 나빠졌고 북한에 대한 원조는 줄어들었다. 중소의 파워 셰어링 기간 북한이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면 원조는 많았지만 수용하지 않을 경우 원조는 줄어들었던 것이다. 중소 분쟁으로 파워 셰어링이 끝난 후 원조는 3자 관계가 아닌 북한과 소련, 북한과 중국의 양자 관계에 의해 원조가 결정되었다. 소련이 북한에게 제공한 원조를 분석해 본 결과,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후견-피후견 국가관계(Patron-Client State Relationship)’였다. 소련은 북한경제의 전 분야에 걸쳐 원조를 제공했고 이는 이례적이고 관대한 원조였다. 따라서 소련의 원조는 전후 북한이 국가를 재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소 분쟁 시기 북한은 사안에 따라 친중 혹은 친소적 행동을 취함으로써 원조를 받을 수 있었다. 북한은 후견-피후견 국가관계를 이용해 소련과 교섭을 통해 원조를 획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약소국의 힘(power of the weak)을 보여주었다. 이 당시 북한의 외교 정책은 진영외교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추구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었고 실리 추구를 통해 중소로부터 원조를 얻을 수 있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대부분 혈맹 관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국가의 이익이 우선인 실리적인 관계였다. 북한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갖는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컸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에게 많은 원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한이 소련으로 편향될 경우 이는 중국에게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 증대되었다.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 철수와 1961년 북·중 협약 체결은 북한과 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중국은 북한에게 주로 인민지원군, 고아 양육, 조선족 귀국 사업 등과 같은 인적지원을 해줌으로써 전후 북한의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해주었다.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천명한 평화공존론(peaceful coexistence)은 사회주의 진영의 자유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폴란드, 헝가리 사건 해결에 중국이 소련을 도와줌으로써 중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때부터 마오쩌둥은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서 동유럽까지 세력을 확장할 야망을 드러냈고 중소 분쟁은 첨예한 대립의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정치적 상황은 오히려 북한이 중소로부터 원조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소 분쟁으로 북한에 대한 이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중소는 북한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적극적인 원조를 북한에게 하였다. 북한이 친중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소련은 북한에게 많은 원조를 줌으로써 소련 쪽으로 기울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원조를 중단함으로써 압박을 가했다. 김일성은 중소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는 헤징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1961년 중소와 차례로 이중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자율성-안보교환(autonomy-security trade-off)을 최소화하였다. 북한과 동유럽의 관계는 동유럽 국가의 대부분이 소련의 위성국이었기 때문에 소련에 의해 좌우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초기에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북한에게 원조를 주었다면, 중소 분쟁 시기에는 북한의 태도에 따라서 북한이 친중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원조를 감소하거나 중단하였다. 냉전 시기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받은 원조의 함의를 분석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조 수원국인 북한에게 전후 원조는 냉전시기 정치와 외교의 산물이었다. 원조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가 외교 정책과 정치적 관계라는 점을 상기시켜본다면 북한은 냉전 시기 원조의 전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전후 인민경제 복구발전 3개년 시기는 미시적인 결과, 즉 공업 분야에서 약 40%의 성장률을 보였기 때문에 원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제 성장에 작용했고, 거시적인 결과 면에서도 1954-1956년은 30%의 경제성장률을 보였기 때문에 원조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 시기는 원조의‘미시-거시 역설(micro-macro paradox)’이론이 적용되지 않았던 시기라고 분석할 수 있다. 셋째, 나쁜 정책(bad policy)을 채택하는 국가의 경우 원조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전후 복구 시기 북한의 중공업 일변도 정책은 초기에 외형적인 성장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후 병목현상을 초래했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었다고 볼 수 없다. 이를 통해 원조는 권력자가 중시하는 정책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원조는 주는 측과 받는 측의 고도의 정치적 타협 과정이었고 이러한 타협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원조였다. 하지만 선행연구는 원조에 대한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 미시적인 연구에 머물렀다면 본 연구는 국제 정치사적 흐름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대북 원조를 분석함으로써 거시적인 관점에서 원조를 재해석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중소 분쟁 시기 김일성은 같은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패권 다툼을 양면정책(double-dealing policy)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원조 획득과 정권 안정이라는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2018년의 김정은이 처한 국제 정치적인 환경은 유사한 듯 다르다. 따라서 김정은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떤 전략적인 정책을 구사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The purpose of the present study is to analyze the political, economic, and diplomatic significance of the aid to North Korea provided by socialist countries in the post-war restoration and to investigate the implication of the aid that North Korea received during the Cold War. The research questions of the present article is as follows. First, Why did the socialist countries provided aid to North Korea? Second, What aid did the socialist countries provided to North Korea? Third, What role did the aid provided to North Korea by the socialist countries play? The present study is focused on the significance of the aid during the Cold War period. Therefore, the present study begins with the assumption that the aid provided by the socialist countries to North Korea was the outcome of not only the economy but also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relationships. From 1949 to 1957, China and the Soviet Union did ‘power-sharing,' which means the sharing of the information about North Korea. In this period, the three countries, North Korea, China, and the Soviet Union, cooperated with each other, and thus North Korea could obtained much aid. China and the Soviet Union intervened in the August Factionalist Incident, but Kim, Il-sung eventually refused to accept their intervention. As a result, the relationship of North Korea with China and the Soviet Union was deteriorated, and the aid to North Korea was decreased. The aid was much when North Korea accepted power-sharing by China and the Soviet Union, while the aid was decreased when North Korea refused to accept it. After the power-sharing was terminated because of the Sino-Soviet Split, the aid was determined, not by the three-party relationship, but by the bilateral relationships between North Korea and the Soviet Union, and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The analysis of the aid provided by the Soviet Union to North Korea showed that the two countries were in a Patron-Client State Relationship. The Soviet Union provided to North Korea exceptionally generous aid, which was an omnidirectional aid for North Korea. Therefore, the aid given by the Soviet Union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rebuilding of the state by North Korea. During the Sino-Soviet Split, North Korea could receive aid by taking either a pro-China or a pro-Soviet action for different issues. North Korea acquired aid through the negotiation with the Soviet Union by taking advantage of the patron-client state relationship, ironically showing the power of the weak nation. North Korea at that time adopted a diplomatic policy based on utilitarianism to pursue diversity and practical advantages beyond the encampment diplomacy, which allowed the state to obtain the aid. The North Korea-China relationship, often referred to as ‘blood alliance,' is actually a pragmatic one where the priority is put on the state's profit. China provided a lot of aid to North Korea, because the geopolitical location of North Korea had an important strategic value to China as a buffer zone. The strategic value of North Korea was high, because of the military threat of the US and the potential risk of the inclination of North Korea to the Soviet Union. The withdrawal of the People's Volunteer Army of China in 1958 and the North Korea-China Treaty in 1961 were the results of the shared interests of the two countries. China supplemented the insufficiency of workforce in North Korea after the war by providing human resources through the People's Volunteer Army of China, orphan nursing, and the project of returning the Koreans living in China to North Korea. Khrushchev's policy of peaceful coexistence announced in the 20th Congress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in 1956 triggered the liberalization of the socialist camp. The stance of China was elevated, as China helped the Soviet Union in resolving the incidents in Poland and Hungary. From that time, Mao Zedong revealed the ambition of not only being a leader in Asia but also expanding the power to East Europe. As a result, the Sino-Soviet Split came into the stage of sharp opposition. Such an international political situation rather helped North Korea to obtain aid from China. The attitude of China and the Soviet Union started to be changed from the Sino-Soviet Split. China and the Soviet Union positively provided aid to North Korea to gain its support. When North Korea took a pro-China position, the Soviet Union attracted North Korea to come closer to the Soviet Union by providing much aid or gave pressure by discontinuing the aid. When it was difficult to choose either China or the Soviet Union, Kim, Il-sung employed a hedging strategy by taking a reserving attitude. North Korea minimized the autonomy-security trade-off by concluding dual alliances with China and the Soviet Union one by one in 1961.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East Europe was dependent on the Soviet Union, because most of the East European countries were satellite states of the Soviet Union. The East European countries provided aid to North Korea in the early stage on the basis of the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but they later decreased or discontinued the aid in the Sino-Soviet Split period if North Korea took a pro-China attitude.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made from the analysis of the implication of the aid that North Korea received from the socialist countries during the Cold War. First, to North Korea, the recipient of the aid, the post-war aid was the outcome of the politics and diplomacy of the Cold War. Reminding that the critical factors to an aid are diplomatic policy and political relationship, the aid to North Korea was a typical one in the period of the Cold War. Second, in the post-war period of the Three-Year Plan for the Restoration and Development of People's Economy, the aid had a positive microscopic effect on the economic growth, as indicated by the economic growth rate of about 40% in the manufacturing industry, as well as a positive macroscopic effect as the growth rate was about 30% between 1954 and 1956. Therefore, the ‘micro-macro paradox' of aid is not applicable to the period. Third, as aid does not give a positive effect on economic growth in countries adopting a bad policy, North Korea's post-war economic policies absolutely devoted to heavy industry may be considered as a bad policy, because it caused a bottleneck effect following the initial growth of the industrial scale. This indicates that the aid was affected by the policies that were highly regarded by those who had power. Fourth, the aid was the result of a highly political negotiation process between the givers and the recipient. While the previous relevant studies were limited to a microscopic research enumerating simple facts about the aid, the present study is significant because the aid was re-interpreted in a macroscopic view by analyzing the aid provided by the socialist countries to North Korea in view of the trend of the international political history. During the period of the Sino-Soviet Split, Kim, Il-sung was able to avoid the crisis of the superiority fight between the two socialist countries by employing the double-dealing policy, successfully acquiring the aid and stabilizing his political power. However, the international political environment that Kim, Jong-un is facing in 2018 may seem similar to but is different from the past. Currently, it is not sure at present what strategic policies Kim, Jong-un will employ to take advantage of the superiority fight between the US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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