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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 대례용(大禮用) 수식(首飾) 제도의 성립과 변천

Title
조선시대 궁중 대례용(大禮用) 수식(首飾) 제도의 성립과 변천
Other Titles
The Development of Royal Hairdress(Susik) System for Grand Ceremony in Joseon Dynasty
Authors
오선희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 궁중 대례용 수식 제도에 관한 것으로, 책례와 가례에 사용된 왕실 여성의 수식을 대상으로 하였다. 의례의 절차 및 사여 적관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책례도감의궤』‧『가례도감의궤』‧『가례등록』‧「궁중ᄇᆞᆯ긔」의 기록을 종합 고찰함으로써 고유양식으로서 궁중 수식 제도의 체계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왕비와 세자빈이 최고의 예복인 적의(翟衣)를 입을 때 갖추는 가장 성대한 머리양식인 수식은 비 ‧ 빈의 신분과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요소로서 책례(冊禮)와 가례(嘉禮)에서 사용되었다. 가례는 혼례를 통해 사대부가 여인에서 왕실 여인이 되는 의례였으며, 책례는 가례 이후 더 높은 신분으로 책봉되는 의례였다. 『세종실록 오례』‧『국조오례의』 등에는 왕비는‘翟衣加首飾’, 세자빈은‘命服加首飾’으로 예복의 종류는 다르지만 수식은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의례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수식제도의 시행 양상은 달랐다. 먼저 왕과 왕비의 등극에 있어 명(明)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조선 전기의 책례와 가례에서는 명에서 사여받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과 우리 고유의 수식 제도가 혼용되었다. 주취칠적관은 명의 친왕비 관제(冠制)에 준하는 것으로서 명으로부터 고명과 명복을 받는 대외적 책봉례에서 착용되었으며, 적관 사여 이전에 치러진 조선 내에서의 대내적 책봉례에서는 우리 고유의 수식으로써 의례를 행하였다. 이렇게 혼용되던 양상은 명의 멸망과 양란(兩亂) 이후 고유의 수식 제도로 일원화 되었으며, 시기에 따른 변화를 거쳐 국말의 새로운 국속제(國俗制)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수식 제도는 의례의 종류에 따라서도 달리 시행되었다. 체발(髢髮)을 바탕으로 하여 각종 머리꽂이와 댕기류를 장식하였으며 그 차이는 주로 체발량과 구성요소의 종류에서 발생하였다. 먼저 체발량에 대해서는 책례와 가례가 서로 상호 영향관계를 이루면서 각각의 제도를 마련해가는 양상을 보였다. 매 의례 때마다 전례를 상고하고 논의를 거듭하여 체발량을 결정하였는데, 이와 같은 혼란 속에서도 책례 40단(丹) ‧ 가례 48단(丹)이 나름의 양식으로 유지되어 가례시의 체발 규모가 책례보다 컸음을 짐작케 한다. 구성요소에 있어서는 두 의례의 양식에서 좀 더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책례의 수식에는 흑각잠만이 사용되었으며 그 밖의 장식비녀나 댕기류는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인조비(仁祖妃) 인선왕후(仁宣王后) 책례에서 제정된 흑각잠 50개(1尺3寸簪 6개 ‧ 9寸簪 9개 ‧ 8寸簪 2개 ‧ 5寸5分簪 12개 ‧ 無頭5寸5分簪 5개 ‧ 5寸簪 9개 ‧ 4寸簪 7개)의 구성은 이후의 책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물목을 가감하는 전례의 기준이 되면서 견양(見樣)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가례의 수식 제도는 칠보장잠(七寶長簪) ‧ 소잠/소(小簪/召) ‧ 채(釵)의 장식비녀류와 대요(帶腰) ‧ 마리사기[首沙只]의 댕기류, 흑각잠이 함께 사용되는 양상을 보이며, 왕비와 세자빈의 물목에서 차이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전 왕비 가례의 물목인 〈가례의대식포진질(嘉禮衣襨式鋪陳秩)〉의 제도에서 장잠 ‧ 채 ‧ 대요 ‧ 마리사기를 모두 세 종류씩 사용하며 매우 화려한 모습이었던 수식은 장식요소들이 순차적으로 감해지면서 홍라대요(紅羅帶腰)와 자적라마리사기[紫的羅首沙只], 흑각잠만이 사용되는『국혼정례(國婚定例)』의 제도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수식에 소용되는 장식비녀와 댕기류는 비단 궁중에서만이 아닌 기녀(妓女)와 명부(命婦) 계층에서도 사용되어 온 국속제 예장(禮裝)의 중요 요소였다. 장식의 종류는 신분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가하였다. 장잠과 채는 기혼녀의 수식으로서 명부 계급에서 사용하였으며, 기녀의 수식에서는 이것을 염발기(歛髮妓, 머리올린 나이든 기녀)의 수식으로 사용하고 대요와 마리사기는 피발기(被髮妓, 머리내린 나이 어린 기녀)의 장식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왕녀(王女) 이상의 계급에서는 이를 모두 합하여 가례시의 수식으로 사용하였는데, 장잠 ‧ 채 ‧ 대요 ‧ 마리사기의 장식재료와 종류 및 구성품의 수량에서 신분별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떨잠은 왕비와 세자빈 계급에서만 사용했던 가장 높은 단위의 구성요소였다. 전 계층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장잠은 형태적 조형미와 장식칠보의 화려함에서 상반된 양식으로 나타났는데, 높은 계층의 것일수록 복잡한 형태미보다는 고급의 장식 재료를 사용하여 신분을 차별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대 『국혼정례』의 제도를 지나 화려한 모습으로 재탄생된 「궁중ᄇᆞᆯ긔」의 수식칠보(首飾七寶)는 시기별로 그 구성이 조금씩 변화하고 추가되어 영친왕비(英親王妃) 수식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어 온 우리 고유의 양식을 계승함과 동시에 재창조한 제도로서, 장잠 ‧ 원형떨잠 ‧ 진주동곳 ‧ 홍라대요 ‧ 자적마리사기는 그 종류와 구성에 있어서 고유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양식의 기준으로서는 세자빈 가례시 수식의 고유양식과 『국혼정례』의 왕비 수식, 〈가례의대식포진질〉 또는 『악학궤범』등의 다양한 제도를 취사선택함으로써 조선 전기 수식의 화려했던 구성요소를 복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봉잠과 용잠, 나비떨잠 등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서 당시 조선 왕실에서 사용되었던 다양한 장식비녀들의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지엄한 신분을 상징하는 봉황과 용의 모티브를 추가함으로써 비 ‧ 빈의 대례용 수식으로서의 위엄을 높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련된 수식칠보는 고유양식의 일치성을 기준으로 볼 때 가례시 수식의 양식이었던 거두미체발(擧頭美髢髮)의 유제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국말의 기록에서 ‘大首’는 다양한 예장용 머리 양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공통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여머리에 목제 가발을 얹은 형태는 일반적 학설에 따라 큰머리[거두미, 巨頭味]로, 수식은 문자 그대로의 대수로 부르면서 그간 학계의 정설로 통용되어 온 ‘수식칠보 = 대수(大首)’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말의 궁중 기록과 유물 명칭에서의 사용례를 고려할 때, 국말 시기 대례용 머리양식을 부르는 고유명사로서의‘수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논문에서는 궁중 기록의 면밀한 고찰을 통해 선행연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의례의 종류와 시기에 있어 연구가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고유의 양식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대의 제도를 고찰하여 궁중 대례용 수식 제도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하나의 자주적인 흐름으로 체계화 했다는 데 연구의 의의를 둔다. 앞으로 새로운 시각자료를 바탕으로 한 후속연구가 이루어져 우리 고유의 수식 제도에 대한 깊이가 더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transition of Susik(首飾, ceremonial hairdress for royal women) in Chaekrye(冊禮, investiture ceremony) and Garye(嘉禮, court wedding ceremony) as the biggest royal ceremonies in the Joseon Dynasty. By reviewing the records of 『Chaekryedogamuigwe(冊禮都監儀軌)』, 『Garyedogamuigwe(嘉禮都監儀軌)』 and 「Gungjungbalgi[宮中件記]」in overall aspect including the procedure of ceremonies and the relationship with Jeokgwan(翟冠, a crown decorated with pheasant motif), this study focuses on how to establish a royal Susik system as an indigenous style of Joseon. Susik, the most magnificent hairstyle to be worn by a queen and crown princess with Jeokui(翟衣, grand ceremonial robe), was used in Chaekrye and Garye to symbolize their identity and dignity. Through Garye, noble family women became royal women, and Chaekrye was another ritual for higher status after Garye. In records of 『Sejongsilok-Orye(世宗實錄 五禮)』and『Gukjo-oryeui(國朝五禮儀)』, ceremonial dresses for queen and the crown princess were described differently, but the description of the susik remained identical for both ladies. However, the susik system was different depending on the time of the ritual and its circumstances. Juchwichiljeokgwan, as an equivalent crown to the Ming dynasty's Chinwangbi(親王妃, a wife of emperor’s son or brother), was used in the external Chaekrye which was a ritual of receiving Gomyung(告命, a written appointment) and Myungbok(命服, ceremonial dress) from Ming dynasty. But in internal Chaekrye which was held prior to be given the Jeokkwan, Joseon’s own Susik was used. This mixed aspect became an outcome of a unified Susik system after the fall of the Ming dynasty and the war of Imjinwaeran(壬辰倭亂) and Byeongjahoran(丙子胡亂). Through some changes by times, the Susik system was been completed to the new style at the end of the era. The Susik was performed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types of ceremony. The difference mainly depended on the amount of Chaebal(髢髮, hair) and components of decoration. Unlike a clear difference in components, there were an interrelation in preparing Chaebal. In every event, Chaekrye and Garye set the amount of Chaebal by referring former ritual. 40 Dan(丹) in Chaekrye and 48 Dan in Garye were maintained as their own Chaebal system in very confused process. Looking at the differences in the components, only Heukgakjam(黑角簪, a hairpin made with black horn) were used, and any other decorative elements were not included. Especially the composition of fifty Heukgakjam made at queen In-reoyl’s Chaekrye had became a standard. In Garye 's susik, Chilbojangjam(七寶長簪, a long hairpin decorated with gemstone), Ddeoljam(a short hairpin with fluttering ornaments), Chae(釵, a short hairpin with dual sticks), Daeyo(帶要, a kind of headband), and Marisagi(首沙只, a kind of hair ribbon made with several strands)' were used as decorative ornaments with Heukgakjam. In these kinds of components,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queen and crown princess. In 〈Garyeuidaesik(嘉禮衣襨式)〉 as a record written before Imjinwaeran, jangjam, Chae, Daeyo, and Marisagi were all splendidly used with three kinds. But as those ornamental elements were sequentially declined, it just remained as Hongradaeyo(紅羅帶腰, Deayo made with red silk), Jajeokramarisagi(紫的羅首沙只, Marisagi made with violet silk), and Heukgakjam in 『Gukhonjeongrye(國婚定例)』. Meanwhile, these decorative elements of the Susik were not only used in court, but also in Gi-nyeo(妓女) and noble women classes as elements for ceremonial decoration with national manners. The type of decoration element was gradually decreased according to the status. Jangjam and Chae were used for Myeonbu(命婦) class as a married women’s Susik, and they were also used as Susik for elder Gi-nyeo. Otherwise Daeyo and Marisagi were dividedly used as ornaments for younger Gi-nyeo. In the higher rank of the princess, all of them were used together as Garye's Susik. Jangjam's type, numbers of Daeyo and Marisagi showed some difference by class. Ddeoljam was only allowed for queen and crown princess classes as the highest unit. In the style of Chilbojangjam which was commonly used in all layers, there was a tendency to reverse in the splendor of formative beauty and decorative materials. It seems that the higher the level, they had used more high-quality materials rather than the sophistication on details to distinguish the class levels. 「Gungjungbalgi[宮中件記]」's Susikchilbo(首飾七寶) which was reborn with flamboyant appearance at the end of the dynasty, had been gradually transformend into the form of crown princess Young-Chin’s Susik. This inherited the system of our own which has been used from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especially in types and composions of Jangjam, round Ddeoljam, pearl Donggot[釵], Hongradaeyo, and Jajeokramarisagi. As the standard for recovering the splendid system of early Joseon, the own style of crown princess’s Susik, queen’s Susik in 『Gukhonjeongrye(國婚定例)』, 〈Garyeuidaesik(嘉禮衣襨式)〉 or 『Akhakguebeom(樂學軌範)』 were choosen by needs. Elements of Bongjam(鳳簪, a hairpin decorated with phoenix motif), Yongjam(龍簪, a hairpin decorated with dragon motif), and Butterfly-shaped Ddeoljam were newly added. Especially phoenix and dragon were used as symbolic motif presenting the highest class. This study is to correct the mistakes of the previous researches through a close examination on Royal court's record, and to reinforce the empty areas of study which were not studied before at the kind and time of ritual. Through these process, our own system of Susik in early Joseon period are found. From that, the procedure of developing Susik systems can be also interpreted in a single independent stream. Hopefully, the depth of our unique Susik system can be enhanced by further studies about some incomplete asp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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