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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 제기(祭器) 연구

Title
조선시대 왕실 제기(祭器)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Royal Court Ritual Vessels of the Joseon Period
Authors
구혜인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朝鲜王室祭器是朝鲜时代王室的仪礼中使用于吉礼和凶礼的仪礼用器皿和工具。 祭器是装入祭物后摆放在祭桌的器皿,也是通过造型样式表达祭祀之意的象征物。祭器的形态和纹样并非只有装饰作用,也是表达祭需种类和性格的媒介物以及包含时代政治思想和哲学的社会物质。本研究将朝鲜王朝祭器范围扩大到吉礼的正祭以及属于丧葬礼的凶礼所使用的祭器。吉礼的正祭是儒家经典里面记载的祭祀,主要上血食俗祭是根据惯例或家族之间情谊的祭祀,不使用血食,而是使用油蜜果凶礼是国王和王妃的丧葬礼,是从国丧到祔庙为止,一共27个月摆奠和祭的仪礼。朝鲜王室的祭器按照祭祀性格,可区分为吉礼正祭用祭器、吉礼俗祭用祭器以及凶礼用祭器。通过分析吉礼和凶礼所使用的各种祭器,可宏观地了解朝鲜王室的祭器使用体系,而且能比较祭器的造型样式和性格。 朝鲜王室的祭器制度可区分为四期。第一期(太祖-明宗)是建立兼备基于中华的普遍性和朝鲜独自性的朝鲜王室独有祭器制度的时期;第二期(宣祖-显宗)是两乱之后体系化地整备和制作祭器制度的时期;第三期(肃宗-高宗)是祭祀种类增加,编撰新的仪礼书和仪轨,并对祭器制度进行再次整备的时期;最后的第四期也就是大韩帝国时期,这一时期是维持原有祭器制度框架的同时按照皇帝国祭器制度更改一部分祭器制度的时期。 朝鲜王室祭器的性格和意义具有以下几种特点。第一,朝鲜王室的祭器范围包括吉礼和凶礼祭器,朝鲜王室按照各祭祀性格区分使用了祭器。朝鲜王室的祭器用各自的器种、材质、样式表达了祭祀性格。通过祭器的器种和造型样式,精巧区分祭祀属性是朝鲜王室祭器的主要特点。第三,正祭用祭器是儒教相关礼书(与仪礼有关的书籍)记录的祭器,每个祭需有一对一配对的祭器,从朝鲜初期到大韩帝国时期为止造型样式很保守,没有重大变化。 吉礼正祭用祭器是文庙祭器和宗庙祭器这两个轴融合而形成。朝鲜王室正祭用祭器是追求中华普遍性的同时,传承朱子的权威,并在结构化祭器的阶段考虑到朝鲜的判断的独有祭器。吉礼正祭用祭器是儒教制度的核心-礼致的结晶体以及儒教等级制度所派生的物质,具有从大祀到小祀为止使用相同祭器的综合型特点以及按照先行体系减少祭器的器种和数量并按照层级进行区分的特点。第四,俗祭用祭器以从高丽时代开始传承的非儒教式仪礼器皿和朝鲜王室的日常器(日常生活中使用的器皿)及宴享器(举行宴会时使用的器皿)组成,大部分制作成正祭不使用的器种和样式。还有,俗祭用祭器是集中当代最高工艺技术而制作的仪礼器皿,在朝鲜王室的祭器中造型水平和种类丰富,艺术价值高。第五,凶礼用祭器是丧葬礼期间使用正祭用祭器的一部分和俗祭用祭器的一部分,等凶礼结束后,用吉礼的正祭和俗祭区分使用祭器。凶礼用祭器是生和死、吉和凶分段和连接的过程中使用。第六,王室祭器的样式区分为正祭和俗祭用祭器的标准是按照在凶礼和嘉礼中更接近哪一个来决定。 最后,朝鲜王室祭器是在仪礼体系中形成精巧结构化的王室文化核心因素,可以说是包含当代的思想和哲学、文化和技术、政治和宗教等多种因素。;李朝時代の祭器とは、朝鮮王室の儀礼のうち、吉礼と凶礼に用いられた器皿と祭具である。祭器は供物を盛り付けて祭壇に載せる器であり、また造形様式を通じて祭祀の意味を伝える象徴物でもある。祭器の形態と文様は単なる装飾にとどまるものではなく、祭需の種類と性格を伝える媒介物であると同時に、その時代の政治思想・哲学がこめられた社会的物質でもある。 本研究では、朝鮮王室の祭器の範囲を、吉礼である正祭と俗祭、そして凶礼である喪葬礼において用いる祭器にまで拡大した。吉礼のうち、正礼は儒教経典に基づく祭祀であることから血礼を行い、俗祭は慣習や家族間の情に基づく祭祀であるため血礼を用いず油蜜果を用い、凶礼は王および王妃の喪葬礼として、国喪から祔廟に至るまで27ヵ月間、奠と祭を供える儀式である。祭祀の性格により、朝鮮王室の祭器は、吉礼・正祭用祭器、吉礼・俗祭用祭器、凶礼用祭器に分類できる。これら、吉礼や凶礼に用いられた多種多様な祭器を分析した結果、朝鮮王室の祭器の使用体系を巨視的に展望し、祭器ごとの造形様式および性格を比較することが可能である。 朝鮮王室の祭器制度は、全4期に区分できる。第1期(太祖-明宗)は、中華に基盤を置く普遍性と、朝鮮の独自性を兼備する朝鮮王室ならではの祭器制度が構築される時期であり、第2期(宣祖-顕宗)は、両乱(壬辰倭乱・丙子胡乱)以降、祭器制度を体系的に整備・製作した時期、第3期(粛宗-高宗)は、祭祀の種類が増え、新たな儀礼書や儀軌が編纂されたことで、祭器制度の再整備が進められた時期である。最後の第4期である大韓帝国期は、既存の祭器制度の枠組みをそのまま維持しつつも、皇帝国の祭器制度に合致せしめるべく一部の祭器制度を変更した時期である。 朝鮮王室の祭器の性格と意味についての分析結果は、次の通りである。第一に、朝鮮王室の祭器の範囲は、吉礼と凶礼の祭器を含み、朝鮮王室においては各個の祭祀の性格によって祭器を使い分けていた。第二に、王室祭器はそれぞれの器種、材質、様式によって祭祀の性格を表象する。祭器の器種と造形様式を通じて祭祀の属性を精巧に区分することが、朝鮮王室の祭器の重要な特徴である。第三に、正祭用祭器は儒教関連の礼書に記録された祭器であり、それぞれの祭需とそれにふさわしい祭器が一対一に対応してことごとく定められており、その造形様式は李朝初期より大韓帝国期まで、大きな変化なく保守的に維持されている。吉礼・正祭用祭器は、文廟祭器と宗廟祭器という二つの軸が融合して構築されたものである。朝鮮王室の正礼用祭器は、中華の普遍性を追求しつつ朱子の権威を受け継ぐと同時に、祭器を構造化する段階において朝鮮の判断が考慮された独自の祭器である。吉礼・正礼用祭器は儒教制度の核心である礼治の結晶体であり、儒教的位階体系が発現した物質として、大祀から小祀に至るまで同一の祭器を用いる統合的特徴と、祀典体系に従って祭器の器種と数を減らしつつ位階ごとに区分する特徴をすべて供えている。第四に、俗祭用祭器は、高麗時代より伝わる非儒教的儀礼器名と、朝鮮王室の日常器および宴享器によって構成され、ほとんどが正祭では用いない器種と様式で製作されている。俗祭用祭器はまた、当代最高の工芸技術を集約して製作した儀礼器であり、朝鮮王室の祭器の中で、造形的水準と種類が豊かで、芸術的価値が高いものである。第五に、凶礼用祭器は、喪葬礼の期間中、正祭用祭器の一部と俗祭用祭器を併せて用い、凶礼が終われば吉礼の正祭と俗祭というように区分して用いられた。凶礼用祭器は、生と死、吉と凶が分節し連結する過程において用いられたのである。第六に、王室祭器の様式が正祭用と俗祭用の祭器に区分される基準は、凶礼と嘉礼のどちらに近接しているかによって決定される。最後に、朝鮮王室の祭器は、儀礼体系の中で精巧に構造化された王室文化の核心的要素であり、当代の思想と哲学、文化と技術、政治と宗教等の多様な因子が凝縮されたものであると要約できる;조선왕실 제기는 조선시대 왕실 의례 중 吉禮와 凶禮에서 사용한 기명류와 도구들이다. 좁게는 제사가 설행된 공간의 祭床과 樽所床에 올라가는 기명들로부터 넓게는 제례 과정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구들을 모두 포괄한다. 제기는 제물을 담는 그릇이자 조형양식을 통해 제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물이다. 제기의 형태와 문양은 단지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수의 종류와 성격을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시대의 정치사상과 철학이 함축된 사회적 물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왕실 제기의 기종 ․ 기형 ․ 문양은 제사의 성격과 제수의 종류에 따라 엄격히 선별되나, 여러 조건(재료조달, 제작기법, 도설의 수용과 이해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실 제기의 범위를 길례의 正祭와 俗祭그리고 喪葬禮인 흉례에서 사용하는 제기로까지 확대하였다. 길례와 흉례에서 사용한 다양한 제기들을 분석한 결과 조선왕실 제기의 사용체계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고 제례별 제기의 조형양식 및 성격을 비교할 수 있었다. 조선왕실의 제기제도는 총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 1기(태조-명종)는 중화의 보편성과 조선의 독자성을 겸한 조선왕실만의 제기제도가 구축되는 시기이다. 태종대 편찬한 許稠의 󰡔諸祀序例圖󰡕에 조선왕실의 길례용 제기도설이 실렸으며 이 제도가 그대로 󰡔世宗實錄󰡕「五禮」에 이식되어 대한제국기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왕실 제기의 구성과 양식은 중국 송대 朱熹가 편찬한 󰡔紹熙州縣釋奠儀圖󰡕의 文廟제기와 陳祥道의 󰡔禮書󰡕에 실린 宗廟제기를 융합하여 형성되었다. 2기(선조-현종)는 양란 이후 제기제도를 체계적으로 복구한 시기로 특히 선조-광해군 시기에 본격적인 제기 鑄成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3기(숙종-고종)는 제사의 종류가 증가하고 새로운 의례서와 의궤들이 편찬되면서 제기제도의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숙종대의 󰡔宗廟儀軌󰡕 편찬과 종묘제기 정비, 永禧殿에서 사용하는 眞殿제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제와 속제용 제기를 재정립하였다. 이어 영조대 󰡔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여 흉례용 제기제도를 정비하였다. 정조대에는 제기관리 체계가 강화되었는데, 陵 ․ 園 ․ 墓에서 사용하는 제기에 陵號와 年條를 표시하도록 하고 재질(자기 ․ 목기 ․ 유기)에 따라 사용기간을 구분하는 내용의 󰡔祭器年限冊󰡕을 편찬하도록 했다. 더불어 영흥과 함흥의 本宮에서 사용하는 제기의 재질과 器品을 정하여 제작하는 등 다양한 제기제도를 수립하였다. 고종대에는 제기 진설장면을 병풍으로 제작하는 경향이 생겨나 대한제국기까지 이어졌다. 대한제국기에는 황제국의 제기제도에 걸맞도록 제기제도를 정비하고자 했으나 단기간에 모두 바꾸기가 어려워 부분적으로 변화하였다. 제천례가 다시 설행되어 원구단圜丘壇용 제기가 사용되었고, 경운궁으로 선원전을 옮기면서 선원전 제기를 다시 제작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影幀摹寫都監儀軌󰡕에 실린 선원전 제기도설들로 기존에 문자로만 확인되던 속제용 진전 제기의 조형양식과 왕실 제기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실 제기의 양식은 길례 정제용 ․ 길례 속제용 ․ 흉례용 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정제용 제기에 대해 살펴보면, 국가 祀典(大祀 ․ 中祀 ․ 小祀)체계로 나뉘는 정제에서 정제용 제기를 대표하는 제기는 대사에 속한 종묘대제의 제기로 가장 다양한 기종과 최대수의 제기가 진설된다. 정제용 제기는 종묘제기와 동일한 기종과 양식을 공유하지만 정제의 위차와 성격에 따라 점차 개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설한다. 대사용 제기 중 조선 초 제천례에 사용된 분청사기 제기나 숙종대 대보단 제기의 특징을 비교해보면, 대사용 제기들이 정제용 제기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제사의 성격에 따라 재질과 양식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사용 제기에 속하는 악해독 제기 ․ 문묘제기 ․ 경모궁 제기 등이나 소사용 제기도 마찬가지로, 제기는 제사라는 큰 틀과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정제용 제기는 용도에 따라 饌器 ․ 酒器 ․ 香器 ․ 照明器 ․ 洗淨器 ․ 調理器로 나뉜다. 찬기용 제기 중 籩과 豆는 정제의 기본이 되는 제기로 종묘대제의 경우 좌우로 12개씩 총 24개를 올려 제례의 풍성함과 정갈한 구성을 연출하며, 서로 같은 크기로 제작하여 제상의 조화와 균형을 갖추게 하는 제기이다. 제기는 문양의 의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변의 縢이나 두의 獻豆의 문양 그리고 보와 궤의 饕餮文 ․ 龜甲文 ․ 四目文 등의 문양을 통해 제기의 용도에 부합하는 각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豋과 鉶 가운데 등은 조선시대 내내 도기로 제작되었고 대한제국기에 두와 닮은 형태의 유기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확인하여, 현재 종묘대제에서 사용하는 등의 자리에 등이 아니라 형을 진설하고 있어 재고가 필요하다. 주기용 제기 중 가장 중요한 기종은 爵으로 적은 용량을 귀하게 여기는 관념에서 종묘제기의 주기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제천례의 작은 특별히 匏爵이나 磁爵을 사용하여 조선 초기 제천례에서 사용된 도자재질의 작이 제작된 사실과 관계가 있다. 주기 중 彛는 尊罍와 비교하여 종묘나 종묘에 버금가는 제사에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제기이다. 종묘대제에는 네 종류의 이(鷄彛 ․ 鳥彛 ․ 斝彛 ․ 黃彛)를 사용하지만 종묘대제의 왕의 冕服에서 虎彛와 蜼彛가 포함되어 결국 六彛가 모두 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종묘 앞 광장에서 발굴된 조이는 󰡔제기도감의궤󰡕의 도설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1612년에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이의 舟, 犧尊과 象尊의 조형적 원류, 四尊의 하나인 著尊에 장식된 매미문, 6준 1뢰의 하나인 山罍에 장식된 뇌문의 모양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등을 통해 제기의 조형양식을 제작 시기 구분의 단서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의례기로써 갖는 문화상징적인 의미와 가치까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제용 제기는 유교경전에 실리지 않고 조선의 時俗과 人情에 따라 거행되는 제사인 속제에 사용되는 제기이다. 속제를 지내는 장소는 文昭殿 ․ 진전 ․ 본궁 ․ 始祖廟 ․ 宮廟 ․ 山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제용 제기와 대비하여 다양한 재질과 양식의 제기를 사용하였다. 정제용 제기가 기본적으로 종묘제기를 최정점으로 하여 기종과 개수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점차 줄여가면서 진설된다면, 속제용 제기는 성격이 다른 제사공간들에 진설되며 공간의 성격이 제기에 반영된다. 속제의 문소전 제기는 평상시에 사용하던 재질을 제기로 사용하는데 시기마다 재질을 바꾸어 선택하였다. 세종대에는 銀器를 사용하다가 이후 국내의 백자 기술이 발전하자 모두 백자로 교체했다. 백자가 더 이상 최고급의 재질이 아니게 된 16세기 중반에는 내구성을 이유로 銅器로 교체한다. 또 문소전에서는 沙尊과 萬樓臺盞을 사용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문소전은 재건되지 않았지만, 숙종대 영희전과 이후 진전들에서 사준과 만루대잔을 사용하는 전통으로 계승된다. 제기도설에서 속제용 사준은 백자 호의 기면에 雲龍文을 장식한 모습으로 일명 白磁龍樽이라 불리는 양식이다. 고종대 󰡔太常志󰡕의 백자용준의 경우, 가례용 백자용준의 하부에 장식되던 山文이 속제용 백자용준에도 장식된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양식적 공유는 吉과 嘉의 속성이 서로 상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속제 중 선원전 제기는 󰡔영정모사도감의궤󰡕에 도설로 실렸는데 玉盞 ․ 銀甁 등의 기종은 가례의 尊爵圖說과 진연진찬의궤에도 등장하는 기종이므로 선원전 제기는 왕실 잔치용 기명과 일치한다. 산릉의 제기는 魂魄을 모시는 종묘와 대비하여 體魄을 모시는 장소로 종묘와 다른 제향을 보여주어야 했기에 속제용 제수를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기종으로 油蜜果를 담는 于里를 사용하였고, 정제에는 올리지 않는 발 ․ 탕기 ․ 접시 등을 사용하였다. 산릉용 제기 중 수라기를 통해 왕실의 일상 식기도 유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宮園廟墓제기는 국왕의 생친 중에서 종묘에 들지 못한 이들의 사당과 무덤인 궁묘와 원묘에 사용하는 제기로 속제와 정제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제기이다. 찬탁은 속제용 제기로 차리고 주기는 정제용 제기를 차리는데, 이러한 혼합 방식은 비록 속제이나 주기를 통해서라도 종묘의 의례를 갖추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毓祥宮 ․ 宣禧宮 ․ 景祐宮 ․ 慶壽宮의 제기들에 관한 기록과 현전유물을 분석한 결과 궁묘제향의 제기는 제향의 공간과 성격이 시대에 따라 크게 변하는데 이런 변화의 진폭이 궁묘제향 제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흉례용 제기는 왕과 왕비가 임종하는 국상부터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祔廟기간에 올리는 제기이다. 27개월에 걸친 흉례 기간 동안 흉례의식은 哀에서 吉로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례 공간(殯殿 ․ 산릉 ․ 魂殿)이 달라지고 각종 의장 뿐 만 아니라 제기들도 함께 변화한다. 흉례용 제기는 素器와 吉器로 나눌 수 있고 󰡔국조상례보편󰡕 에 근거하여 상장절차에 사용된 제기의 종류와 재질을 알 수 있다. 상을 당한 직후에는 차마 일상식을 거두지 못하여 길기를 사용하고 小斂奠 이후부터는 소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발인 이후에는 정제용 제기와 속제용 제기를 함께 사용하여 점차 흉에서 길로 변하는 전이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흉례 기간의 산릉에서 사용하는 산뢰 ․ 잔 ․ 작 등은 길례의 산릉제기와 문양, 기종에서 차이가 있다. 또 󰡔국조상례보편󰡕에 실린 혼전용 靑磁尊의 양식적 특징을 통해 의례의 성격에 따라 다른 양식의 백자용준을 사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기반으로 조선왕실 제기의 성격과 의미는 첫째, 조선왕실 제기의 범위는 길례와 흉례의 제기를 포괄하며 조선왕실에서는 각 제사의 성격에 따라 제기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둘째, 왕실 제기는 각각의 기종 ․ 재질 ․ 양식(조형과 문양)으로써 제사의 성격을 표상한다. 제기의 기종과 조형양식을 통해 제사의 속성을 정교하게 구분하는 것이 조선왕실 제기의 주요 특징이다. 셋째, 정제용 제기는 유교 관련 예서에 기록된 제기들로 각 제수마다 상응하는 제기들이 일대일로 대응하여 모두 정해져 있고 조형양식이 조선 초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큰 변화 없이 보수적으로 유지된다. 길례 정제용 제기는 문묘제기와 종묘제기란 두 축이 융합하여 구축되었다. 조선왕실 정제용 제기는 중화의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주자의 권위를 이어받았고 동시에 제기를 구조화하는 단계에서 조선의 판단이 고려된 독자적인 제기이다. 길례 정제용 제기는 유교제도의 핵심인 예치의 결정체이자 유교적 위계체계가 발현된 물질로 대사부터 소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제기를 사용하는 통합적인 특징과 사전체계에 따라 제기의 기종과 수를 줄여나가면서 위차별로 구분하는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넷째, 속제용 제기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비유교식 의례기명과 조선왕실의 일상기 및 연향기들로 구성되어, 대부분 정제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종과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또 속제용 제기는 당대 최고의 공예기술을 집약시켜 제작한 의례기로, 조선왕실 제기 중 조형적 수준과 종류가 풍부하여 예술적 가치가 높다. 다섯째, 흉례용 제기는 상장례 기간 동안 정제용 제기 일부와 속제용 제기 일부를 함께 사용하다가 흉례가 끝나면 길례의 정제와 속제로 나뉘어 사용된다. 흉례용 제기는 삶과 죽음, 길과 흉이 분절되고 연결되는 과정에서 사용되었다. 여섯째, 왕실 제기의 양식은 정제와 속제로 양분되고 흉례와 가례 중 어느 쪽에 근접하는가에 따라 정제용 제기와 속제용 제기를 나누어 쓰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왕실 제기는 의례 체계 속에서 정교하게 구조화된 왕실 문화의 핵심요소로 당대의 사상과 철학, 문화와 기술, 정치와 종교의 다양한 인자들이 함축되어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Ritual vessels of the Joseon royal court were used at both auspicious and funerary rituals. They functioned both as vessels for holding sacrificial and food offerings placed on ritual tables, and as symbolic objects, conveying the meanings of rituals through their shapes and patterns. These shapes and patterns were not just decorations but media for conveying the type and nature of ritual food offerings; they also served a social function, implying the political ideology and philosophy of their age. In this study, I have extended the scope of ritual vessels to include both auspicious rituals such as official and local ancestral rituals, and inauspicious rituals such as funerary rites. Official auspicious rituals are those described in Confucian scripture, in which tables with raw meat were offered, while local ancestral rituals were based on custom and affection for family members; these rituals featured not raw meat but oil-and-honey pastries. Inauspicious rituals were funerals for kings and queens, and included jeon and je ceremonies carried out over the 27 months from the state funeral to the enshrinement of mortuary tablets at Jongmyo Shrine. Ritual vessels from the Joseon royal court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according to type of ritual: auspicious official ritual, auspicious local ritual and inauspicious ritual. Analysis of the various vessels used in auspicious and inauspicious rituals has enabled an overview of their system of use, and allowed comparison of the respective forms, styles and characters of each type of vessel. The ritual vessel system of the Joseon royal court can be divided into four periods. The first period (from the reign of Taejo to that of Myeongjong) was one in which an exclusive Joseon vessel system, combining universality Sino-centric cultural elements was combined with unique Joseon identity. The second (Seonjo-Hyeonjong) was one in which the vessel system became more systematically organized following the Japanese and Qing invasions of Korea. The third (Sukjong-Gojong) saw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types of ancestral rite; the compilation of new ceremonial texts and royal protocol guides at this time resulted in reorganization of the ritual vessel system. The fourth and final period, at the time of the Daehan Empire saw the existing framework of the ritual vessel system maintained, but changed partially to accord with the imperial system. In terms of character and meaning, Joseon royal ritual vessels show the following traits. Firstly, their scope includes both auspicious and inauspicious vessels; in the Joseon royal court, vessel types were characterized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 ritual in which they were used. Secondly, royal court ritual vessels symbolized the nature of each respective ritual in terms of their type, material and style. Using vessel type and form in a system of elaborate classification according to type of ritual was a key characteristic of Joseon royal ritual vessels. Thirdly, vessels used in official rituals were recorded in Confucian texts; each vessel corresponded to a specific ritual food. All these correspondences were fixed, and the forms of these vessels were maintained in conservative fashion, with no major changes, from the early Joseon period all the way to the Daehan Empire. The body of official auspicious ritual vessels consists of two amalgamated streams: those used at Munmyo (the country's main Confucian shrine) and those used at Jongmyo (the main royal shrine). These official vessels inherited the authority of Zhu Xi while seeking to establish the universality of Sino-centric culture; at the same time, they reflected independent Joseon considerations at the organizational stage. As embodiments of the core Confucian principle of li (禮) and of Confucian hierarchical order, official auspicious ritual vessels were characterized by their uniform use in both major and minor ancestral memorial services, by a gradual decrease in their type and number according to the 사전체계, and by their hierarchical categorization. Fourthly, local ritual vessels consisted of those used in non-Confucian ceremonies that originated in the Goryeo period, as well as those used in everyday life and at court banquets. Most of these vessels were produced in types and styles not used at official rituals. Local ritual vessels featured the finest craftsmanship of their time; as such, they are abundant in type and possess the highest formal standards and artistic value of all Joseon royal ritual vessels. Fifthly, inauspicious ritual vessels consisted of a mixture of some official and some local ritual vessels used together during the funeral period. Once the funeral period was over, these vessels were once again divided for respective use in auspicious official and local rituals. Funerary vessels were used in a process of separation and connection of life and death, auspiciousness and inauspiciousness. Sixthly, official and local royal court ritual vessels can be distinguished in terms of style according to whether they were closer to inauspicious or auspicious ceremonies. Finally, Joseon court ritual vessels were a core part of royal court culture, integrated elaborately into the structure of the ritual system. As such, they can be said to connote the ideology, philosophy, culture, technology and various political and religious factors of thei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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