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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朝明 詩文外交와 倪謙의 文學에 대한 연구

Title
15세기 朝明 詩文外交와 倪謙의 文學에 대한 연구
Authors
YANG SIMIN
Issue Date
2019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동준
Abstract
이 논문은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시문외교를 조명하려는 맥락에서, 1450년 조선에 출사한 예겸과 그의 시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자료로는 예겸 자신이 편찬한 『遼海編』, 조명 문인들이 현장에서 지은 『奉使朝鮮唱和詩卷』, 훗날 조선에서 편찬된 庚午本 『皇華集』, 신숙주 개인의 문집인 『保閑齋集』과 성삼문의 『成謹甫集』, 그리고 정부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등을 이용하였다.『皇華集』 및 예겸의 시문에 대해서는 선행연구가 매우 많아 본고도 여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본고는 외교와 문학의 상관성에 초점을 맞추어, 외교적 맥락에서 문학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살피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이를 두려고 하였다. 논문의 제2장에서는 1450년 예겸의 조선 출사 직전의 명과 조선의 정치사회적 배경, 그리고 예겸 사행 당시의 시문수창의 현장을 정리하였다. 명나라는 1449년의 土木之變으로 인해 明 英宗이 포로가 됨에 따라 새 황제 明 景帝가 등극하게 되었다. 당시는 조선도 변방 영토 문제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는 한림원에서 문인인 예겸을 발탁하여 조선으로 파견하였고 조선도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최고의 문인을 택하여 이들을 접대하였다.『朝鮮王朝實錄』과『朝鮮紀事』에 따르면 사신을 대접하는데 연회가 거의 매일 두 번씩 베풀어졌고 빈번하게 관원을 파견하여 사신을 접대하였다. 제3장 제1절에서는 예겸의 시문에서 드러난 사신으로서의 임무, 즉 復命 및 諮詢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명나라의 대표임을 자각하고 사신으로서의 업무와 책임을 명심하고 있었다. 한림원에서 파견된 첫 번째의 사신이라는 점을 자각하면서 사행에서 발생한 여러 사태를 자세히 기록하였던 것이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시를 풍부하게 이용하면서 사행 여정, 조선 풍속, 조선의 정치 사회 상황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요해편』은 예겸이 개인적 사행에서 작성한 개인 문집이라기보다는 황제에게 제출해야한 공적인 보고서의 성격을 겸하고 있다. 이어 제2절에서는, 조명 문인들이 현장에서 지은 『奉使朝鮮唱和詩卷』을 중심에 두고 이것이 여러 문집과 어떤 차이가 존재하며, 이런 차이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외교적 맥락에서 밝히고자 하였다. 『奉使朝鮮唱和詩卷』을 약간씩 바꾼 다른 문집간의 차이는 대략, 1) 각국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시 제목을 바꾼 경우, 2) 시 원문 속의 글자를 약간 바꾼 경우, 3) 예겸이 중국으로 가서 자신의 시 아래 自註를 단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수창이 양국 문인들이 자존심을 건 경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의 긴장된 상황을 고려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시문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예겸과 조선 문인은 친밀해지면서 서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 제3절에서는, 경쟁을 넘어선 양국 문인들의 교감에 주목하였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으로서의 임무와 경쟁을 이어나가면서 그들은 한편으로 상호 우호감과 친밀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겸은 조선 학자들에게 조선 상황에 관해 질문하고, 조선 학자들은 예겸에게 중국의 음운과 다른 학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선물도 주고받았다. 선물에는 양국 간의 공식적인 선물 외에 개인 선물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정신적 · 물질적 교류를 통해 조선과 중국의 학자 간의 관계는 점차 긴밀해졌고, 양국 관계의 조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1450년 조선에 출사한 예겸의 문학은 외교적 맥락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이루어진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임무를 분명하게 자각한 상태였으며, 조선의 사신들과 교유하거나 사행의 일정을 수행하면서도 외교적 본분에서 어긋나는 행동은 삼가고자 하였다. 그에 따라 그가 지은 시문도 외교적 성격을 짙게 보유하고 있었다. 사신으로서의 임무 자각과 공적인 감회를 다룬 시들은 외교관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했음을 증명해주는 시들이며, 조선문사와의 경쟁과 교감을 보여준 시들도 외교적 맥락을 반영한 시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호 우호감과 친밀감을 표현한 작품들의 경우도, 개인적인 감정 변화에 따른 결과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양국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고 할 만하다. ;在朝鲜和明朝的诗文外交历史长河中,本文主要研究了1450年出使朝鲜的倪謙及他的诗文。本文以倪謙个人文集『辽海编』,朝明文人现场所作『奉使朝鲜唱和诗卷』,朝鲜政府刊行的『皇华集』,朝鲜文人申叔舟个人文集『保闲斋集』以及成三问『成谨甫集』和朝鲜史料『朝鲜王朝实录』等为主材料进行了研究。在以往的研究史中,虽然对『皇华集』和倪謙的个人文集研究较多,但本文与其他研究不同的是着重分析了朝明之间在外交上与文化的融合点,即在外交中如何运用文学达到外交目的。 第二章,整理了1450年倪謙出使时,明与朝鲜的政治社会背景,以及倪謙此次出使时现场的诗文酬唱情况。在1449年,明朝因土木之变,明英宗被捕后,新皇帝明景帝登基。当时朝鲜边境因领土问题也处于社会变动期。正因为两国同时处于需要依靠对方的状态下,倪謙以翰林院侍讲的身份被派往朝鲜,与郑麟趾,申叔舟,成三问等朝鲜最高等级的文人进行了交流。依据『朝鲜王朝实录』和『朝鲜纪事』的记载,当时朝鲜世宗每天两次频繁地派大臣与明朝使臣举行了宴会。通过明朝派出翰林院文臣,以及朝鲜积极招待使臣的态度,都充分体现了两国希望进行友好交流的愿望。 第三章第一节,主要研究了倪謙诗文中体现他作为使臣的任务,即复命和咨询。倪謙作为出使朝鲜的第一位翰林院文臣,他一直铭记着自己作为使臣的任务,并详细记录了此次出行的所有信息,作为诗人的他用诗的形式记录了使行的路程,朝鲜的风俗以及朝鲜的政治社会。所以,『辽海编』虽然是以他的个人名义发行但却可以看做是交给明景帝的报告书。 第二节,以朝明文人现场所作的『奉使朝鲜唱和诗卷』为中心,研究了它与其他文集之间形成差异的原因,以及这些差异在外交史上存在的意义。现场创作的作品与再编辑后的作品之间的差异可以总结为以下几点:1)各文集发行国以本国立场为中心对诗题进行了编辑,2)诗中个别字的更换,3)倪謙作为诗作者,后期编辑时加入的自注。另外还分析了在现场进行诗文酬唱时,两国文人分别作为各自国家代表所肩负的两国荣誉,本文从两方面对现场进行了研究,一是现场的紧张气氛,二是现场中双方表现出的友好氛围以及个人情感。 第三节,从双方的竞争关系中,作者关注到双方文人的感情交流。虽然他们作为国家的代表肩负重任,却也在每日的相处中产生了友情。倪謙会向朝鲜学者询问朝鲜的一些情况,朝鲜学者也会询问倪謙一些关于音韵等方面的学术问题。同时,倪謙与朝鲜文人还互赠了一些礼物。学术交流以及礼物互换使两国的关系更加友好紧密。 总结来说,1450年出使朝鲜的倪謙充分体现了文学外交的成果。倪謙一直谨记自己的任务和职责,在与朝鲜文人交流时克己奉公,所以,他的诗文中外交色彩非常浓厚。作为外交官时,所作的诗充分体现外交官的职责;作为文人时,与朝鲜文人的感情交流也是充满人格魅力。正因为他出色的完成了此次使行,所以给未来明与朝鲜的友好关系奠定了基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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