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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연구

Title
조선후기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Sundongchuijeokdo (Sundongchuijeok Painting, 仙童吹笛圖) the late of Joseon Dynasty
Authors
박소현
Issue Date
2018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本論文では、朝鮮後期に製作された「神仙圖屛風」の一幅に現れる「仙童吹笛圖」についての製作背景を調べ、それぞれの作品分析を通じて朝鮮時代の仙童に関する認識とその位置づけ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した。 超越的な存在として敬拝の対象となる神と違って、人間が修練を通じて神の境地に到達した神仙は、大衆にとって羨望の対象となる。制作初期の神仙圖は健羨していた神仙を称えるため、道教の宗教的信念を表現する意図で製作された。以降、後代になるほど長寿と幸運をもたらすことを望む吉祥的な目的が浮き彫りにされる神仙圖が製作された。 神仙圖の人物と付属図像群は、中国秦代に制作された『神仙傳』から元代の雜劇である『八仙戲劇』、明・清の時代の神仙小説類などによって指定され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朝鮮では、伝来された中国の神仙圖作品群、『洪氏仙佛寄踪』や『列仙全傳』のような神仙伝の挿絵として神仙圖の図像が定着し、伝播された。これを通じて神仙の像が朝鮮の神仙圖で発現し、これによって人物の外形的特徴や持物で各神仙を把握することができる。しかし、18世紀末になるにつれて、一般的な図像の類型から外れることが増えていく。顔付きまたは持ち物と判断しにく複数の存在たちが登場し、吉祥的な象徴物を組み合わせて一つの絵で表現することに達した。新たな人物と吉祥的な象徴物が一緒に登場するものの一つが仙童吹笛圖である。 朝鮮時代の神仙圖には仙童が一緒に登場する場合が多い。これは中国の神仙圖ではほとんど見つけにくい特徴である。朝鮮時代の神仙圖で仙童は、単に使い走りをする侍童として存在するものではない。儒佛道が複合的に現れる朝鮮後期の時代的雰囲気によって仏教での童子と道教での童子の姿が結合された存在といえる。仏教で童子は、菩薩の化現であり、求法者、そして、神仙と人間の中間的媒介体と助力者の役割をする。道教での童子は人間の本来の純粋さを表現してくれる存在であり、道を体得した聖人の素朴自然を象徴することもある。朝鮮文人の詩文で神仙の乗り物である鶴や白鹿に乗る姿で登場する仙童は、すでに神仙化された存在とされていたことが類推できる。特に詩文或いは、様々な神仙圖の中で仙童が笛や靈芝を持っている姿が発見されることは注目に値する。これは仙童吹笛圖にある人物と素材の関連性を示す根拠になるからである。つまり、吉祥的な象徴物と新しい図像が結合する朝鮮後期の神仙圖だけの特徴に仙童に対する認識が複合された結果で神仙圖という大きな範囲の中で仙童が単独で出るようになった。 朝鮮時代後期には神仙圖のみならず、大衆の認識の中でも、神仙の姿が混在していた。本来なら王子晉は鶴に乗りながら、笙篁を吹かなければならないが、笙と笛を区分せず、笛を吹く仙童吹笛圖の仙童を王子晉と混同する場合が発見される。また, 洞簫が地物の韓湘子が『洪氏仙佛寄踪』に雙髻形頭をしているため、韓湘子と見る見方も存在する。これは朝鮮人が確固とした基準を持っているからというよりは楽器を吹く行為、または顔付きの一部だけで人物を判断していたということが分かった。しかし、金弘道(キム·ホンド)作《神仙圖 8帖屛風》の<仙童吹笛圖>に対する描写と感想を書いた跋文のタイトルが<童仙圖>であることを通じて、笛を吹く姿を見て王子晉と韓湘子だけを考えるのではなく、仙童と考える認識も存在したことが分かった。当時の人々は神仙の特徴を正確に認知することよりは、多様な識見があり、新たな類型の人物像が登場すると、より明確に区分しにくいということがある。しかし、『石農畵苑』に記録された作品のタイトル中に<吹笛仙童圖>が現前しており、金弘道作<仙童吹笛圖>を描写した詩文に<童仙圖>とタイトルを明らかにした点は単独の仙童圖が存在したことを証明する。 また、これは、朝鮮後期の大衆認識における仙童の位置を代弁しているものと見られる。 18世紀末の神仙圖に、新たに登場する人物類型である紫髥道士などとは違って、仙童吹笛象は近代機まで製作される。朝鮮初期から近代期に至るまで呂洞賓や壽星老人が単独像が持続的に製作されることに比べて仙童吹笛圖は作品の数が少ない方だ。しかし、先例のない新しい図像が18世紀に登場して1910年代まで持続的に製作されたということは特記すべきだ。これは朝鮮後期に、中国から流入され定められた規範の神仙圖が製作される一方で、このような新しいイメージが登場して朝鮮だけの特徴となったことを示唆するからだ。また、新しい類型が着実に好まれたという点を通じて仙童吹笛圖は仙童に対する認識とその選好を推知できる美術史的意義がある資料だと言える。;본 논문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신선도병풍(神仙圖屛風)’에서 단 폭으로 나타나는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의 제작 배경을 알아보고 각각의 작품분석을 통해 조선시대에 존재하던 선동에 관한 인식과 그 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초월적인 존재로서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과 다르게 인간이 수련을 통해 신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인 신선은 대중들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제작 초기의 신선도는 건선(健羨)하던 신선을 기리기 위하여 도교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 의도로 그려졌다. 이후 후대로 갈수록 장수와 행운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길상적인 목적이 부각되는 신선도가 제작되었다. 신선도의 인물과 부속 도상들은 중국 진대(秦代)에 제작된 『신선전(神仙傳)』부터 원대(元代)의 잡극(雜劇)인 『팔선희극(八仙戲劇)』, 명·청대의 신선소설류 등을 따라 지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에서는 전래된 중국의 신선도 작품들,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寄踪)』이나 『열선전전(列仙全傳)』과 같은 신선전의 삽화로 신선도의 도상이 안착되고 전파되었다. 이를 통해 신선의 상(像)이 조선의 신선도에서 발현하고, 이 때문에 인물의 외형적 특징이나 지물들로 각 신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말로 갈수록 일반적인 도상의 유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이 많아진다. 생김새 또는 지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신선들이 등장하고, 길상적인 상징물을 조합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인물과 길상적인 상징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선동취적도이다. 조선시대의 신선도에는 선동들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중국의 신선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신선도에서 선동은 단순히 잔심부름을 하는 시동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불도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조선후기의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불교에서의 동자와 도교에서의 동자의 모습이 결합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동자는 보살의 화현(化現)이며 구법자, 그리고 신선과 인간의 중간적 매개체와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도교에서의 동자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표현해주는 존재이며, 도를 체득한 성인(聖人)의 소박자연(素朴自然)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 문인들의 시문에서 신선의 탈것인 학이나 백록(白鹿)을 타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선동은 이미 신선화 된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시문 혹은 다양한 신선도 속에서 선동이 적(笛, 피리)이나 영지(靈芝)를 들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선동취적도에 보이는 인물과 소재들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길상적인 상징물과 새로운 도상의 결합하는 조선 후기 신선도만의 특징에 선동에 대한 인식이 복합된 결과로 신선도라는 큰 범위 안에서 선동이 단독으로 나오게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신선도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도 신선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었다. 본래라면 왕자진(王子晉)은 학을 타면서 생황(笙篁)을 불어야 하는데, 생(笙)과 적(笛)을 구분하지 않고 적을 부는 선동취적도의 선동을 왕자진과 혼동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또한, 퉁소가 지물인 한상자(韓湘子)가 『홍씨선불기종』에 쌍계형(雙髻形)머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상자라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를 통해 조선인들이 명확한 도상을 인식하고 적용하기 보다는 악기를 부는 행위 또는 생김새의 일부만으로 인물을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홍도 작《신선도 8첩병풍》의 <선동취적도>에 대한 묘사와 감상평을 적은 발문(跋文)의 제목이 <동선도(童仙圖)> 인 것을 통해서 적(笛)을 부는 모습을 보고 왕자진과 한상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신선의 특징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보다 다양한 식견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선도에 새로운 유형의 인물상이 등장하면서 더욱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취적도>의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석농화원(石農畵苑)』에 기록된 작품 제목 중에 <취적선동도(吹笛仙童圖)>가 현전하고 있으며, 김홍도 작 <선동취적도>을 묘사한 시문에 <동선도(童仙圖)>라고 제목을 밝힌 점들로, 단독의 선동도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한다. 또한 이것은 조선후기 대중 인식에서의 선동의 위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8세기 말 신선도에 새로 등장하는 인물유형인 자염도사(紫髥道士) 등과 달리 선동취적상은 근대기까지도 제작된다. 조선초기부터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여동빈(呂洞賓)이나 수성노인(壽星老人)이 단독상이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것에 비해 선동취적도는 작품의 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선례가 없는 새로운 도상이 18세기에 등장하여 191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조선후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정해진 기준으로 신선도가 제작되는 한편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여 조선만의 특징이 된 것을 시사한다. 또한 새로이 나타난 선동이 피리를 부는 도상이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선호되었다는 점을 통해서 선동취적도는 선동에 대한 인식과 그 선호를 짐작해볼 수 있는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사료라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background of the production of Sundongchuijeokdo(仙童吹笛圖) which is a part of 'Sinseondobyeongpoong(神仙圖屛風)’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o identify the perception and status of Seondong in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analysis of each artwork. Unlike gods that are worshiped as transcendent beings, Sinseon(Taoist hermit, 神仙), the Taoist hermit with miraculous powers, who used to be a human before reaching the level of a god through training, are the objects of envy of the public. The Sinseon painting of the early stage of production was designed to express Taoist religious beliefs in order to enviously honor Sineon. Since then, the Sinseon paintings emphasizing the purpose of longevity and luck were produced. The figures of the Sinseon paintings and their icons were commonly assigned to the Sinseon novels in the Ming Dynasty and Qing Dynasty, including Sinseonjeon(神仙傳) in the Jin Dynasty and Palseonheegeuk(八仙戲劇), a miscellenous drama in the Won Dynasty. In the Joseon Dynasty, the figures of the Sinseon paintings were defined and propagated the illustrations from the Chinese Sinseon paintings, for instance, Hongssiseonbulgijong(洪氏仙佛寄踪) or Yeolseonjseonjseon(列仙全傳). Therefore, the Sinseon figures were expressed in the Joseon Sinseon paintings, which enabled us to understand each drawing with the physical features of the characters and the objects on the ground. However, at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the figures frequently deviated from the general type of iconography. There were figures that are difficult to judge by their appearance or objects on the ground, and sometimes they were expressed as a single character by combining luck symbols. Seondongcheejeokdo is one of the examples include the emergence of a new character and lucky symbols altogether. In the Joseon Sinseon paintings, young Sinseons frequently showed up together, which is a feature rarely found in the Chinese Sinseon paintings. In the Joseon Sinseon paintings, the young Sinseons did not existed merely as an attendant running little errands. According to the atmosphere of the late Joseon Dynasty with a mixture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Young sinseons were considered as an integration of young monk in Buddhism and young monk in Taoism. Young monk in Buddhism plays a role of mediation and assistance between Sinseons and human beings as a manifest of a Buddhist saint and truth-seeker, Young monk in Taoism expresses the original purity of human beings, symbolizing the naturalness of Taoist saints. In the poetry drawings of the Joseon writers, young monks showed up with cranes or white deers, the transporting animals for Sinseons, implied that they were regarded as Sinseons already. In particular, it was noticeable that young Sinseons held pipes or holy mushrooms in poetry paintings or a variety of Sinseon paintings, since it revealed the association between figures in Seondongcheejeokdo and their objects. That is, it is a consequence of the unique features of the late Joseon Sinseon paintings in which lucky symbols and new figures were combined in addition to the perceptions of young Sinseons, which implied that young Sinseon separately described within a broader framework called the Sinseon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appearances of Sinseons were mixed not only in the Sinseon paintings but also in the public perceptions. Wangjajin(王子晉) was supposed to playing a flute while riding a crane; in some cases, the young Sinseon in Seondongcheejeokdo playing a pipe without distinguishing a flute and a pipe was sometimes misunderstood as Wangjajin. Moreover, since Hansangja(韓湘子) has dual-lined hairstyle in Hongssiseonbulgijoing, he is often viewed as Hansangja, which revealed that the Joseon people determined the figures only based on their musical instrumental play or a part of appearance without strong criteria. Nevertheless, given that Sinseondo Palcheopbyongpung by Kim, Hongdo described Seondongcheejeokdo and its title of appreciation is Dongseondo, it was found that the flute-playing behavior was also perceived as young Sinseon other than Wangjajin and Hansangja. At that time, people had various opinions rather than precisely recognizing the characteristics of Sinseons. Thus, it was difficult for them to distinguish more clearly when a new type of figure appeared. However, the point that Cheejeokseondongdo(吹笛仙童圖) existed among the titles recorded in Seoknonghwawon(石農畵苑) and the title of Dongseondo(童仙圖) was identified in the poetry describing Seondongcheejeokdo by Kim, Hongdo proved that a young Sinseon panting separately existed, which represented the status of young Sinseon in the context of public awareness in the late Joseon Dynasty. Unlike Jayeomdosa(紫髥道士), a newly-emerging character in the late 18th Sinseon paintings, Seondongcheejeoksang was produced till the modern era. Comparing the constant production of single statues of Yeodongbin(呂洞賓) or Suseongnoin(壽星老人) from the early Joseon Dyansty and the modern era, Seondongcheejeokdo did not have sufficient number of artworks. However, It is noteworthy that an unprecedented new image emerged in the 18th century and was constantly produced until the 1910s; it suggests a new image became a feature of Joseon, even though the Sinseon paintings of the standardized specifications from China were introduced and produc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Furthermore, considering that the new types were steadily preferred, Seondongcheejeokdo has a significant implication in art history to investigate the perception and preference on young Sinse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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