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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海 안창호 支持勢力의 형성과 분화 (1919-1924)

Title
上海 안창호 支持勢力의 형성과 분화 (1919-1924)
Other Titles
Formation and Division of An Changho′s support group in Shanghai
Authors
송하연
Issue Date
201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정병준
Abstract
On June, 28, 1919, An Changho was appointed as the domestic affairs chancellor of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His field of activity was actually America. There was no organization related to An Changho in Shanghai. There were a few persons to communicate with him. Nevertheless, An Changho formed a power based on him as soon as his appointment. After 1 year, he formed the biggest power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 July, 1920. This research treated the process of power formation based on An Changho in Shanghai. Also, treated the aspect of division of An Changho’s power. Before An Changho’s arrival, there was no leader in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An Chanho became a sole leader of provisional government since his appointment. However, he had fund supported by Korean people in America and born organizational power. As An Changho exerted his leadership, provisional government began to prepare the system of a government. In September, 1919,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was united with Hanseon government of Joseon and Korean National Assembly in Russia. A united government was established. 3 powers participated in the united government. They were Lee Seungman power, Lee Donghwi power, and An Changhoo power. Lee Seungman power intended to become independent with the diplomatic support of powerful nations as America. Lee Donghwi power intended to achieve independence upon raising a war against Japan with the support of Russian military· financial support. An Changho viewed that independence was impossible since the people had insufficient knowledge. Accordingly, he insisted that the people should be educated firstly. In order to realize his insistence, he established Wondong-wi in Shanghai in January, 1920. Heungsadan Wondong-wi was composed of the young adults in the age of 20s. An Changho recommended them lecture, discussion, and reading, etc. He considered that making one person an intellectual was to furthermore upgrade the level of the whole nation. His insistence was enough to gather young generation. By the way, Lee Gwangsoo, a core person of An Changho power, returned to Joseon from Shanghai in February, 1921. After Lee Gwangsoo, several young adults returned to Korea from Shanghai. They organized an association in Joseon. The association intended to realize An Changho’s insistence in Joseon. However, Joseon was a colony of Japan. It was difficult to conduct education aiming for independence under the surveillance of Japan. Finally, some members of the association became pro-Japanese. Accordingly, the association came to have completely different character from An Changho power in Shanghai. During this period,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became inactive. Young adults gradually returned to Korea. Wondong-wi became contracted. An Changho enlisted those who were his political basis in Wondong-wi. An Changho power became stable based on Wondong-wi. Eventually, the factors that formed An Chanho power young adults. For An Changho, young adults were the target to grow through education. Educated young adults were the talented persons to achieve independence of the homeland. Rather than appeal to powerful nations or war against Japan, An Changho’s insistence was most realistic. Some adults, who were not able to stand Japanese suppression, adapted to the system by returning to Joseon leaving An Changho. In that respect, An Changho’s insistence can be said to be too ideal.;1919년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될 당시 미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던 안창호는 상해에 관련 조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안창호와 그의 세력은 수립 초기 임시정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이를 가능하게 한 요인과 과정에 대해서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안창호 세력의 형성 과정 및 분화 양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미주에서 상해로 건너온 안창호는 각 부 총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청년 세대 중심의 차장들로 내각을 구성하고 미주에서 가져온 독립운동자금으로 임시정부의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이를 통해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안창호는 임시정부 산하에 설치된 ‘임시사료편찬위원회’와 그의 주도로 창간된 『독립신문』을 통해 자신의 인적 기반을 구축했다. 안창호가 세력을 형성하는 동안 임시정부는 3개의 세력이 정립하게 되었다. 1919년 말 통합 임시정부에는 이승만 중심의 기호 세력, 안창호 중심의 서북 세력, 이동휘 중심의 한인사회당 세력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3개의 세력은 노선과 지역적 차이로 인해 단합되지 못했다. 이동휘와 이동녕 등 기호 세력 간에는 점진주의와 급진주의적 성향의 차이로 인하여 통합 정부의 출범 과정부터 마찰이 있었다. 안창호와 이동녕 등은 서북과 기호라는 지역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1920년 안창호 세력은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설립하면서 조직화를 시도했다. 흥사단 원동위원부의 단원들은 대부분 임시정부에서 실무를 맡고 있던 20대 청년층이 주를 이루었다. 안창호는 실력양성론을 주창하였는데, 원동위원부는 이러한 기치를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양·훈련 단체였다. 안창호의 실력양성론은 개인과 민족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나아가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서북 출신 인사 뿐 아니라 상해의 여성을 비롯한 청년들도 호응하였다. 상해애국부인회의 여성들과 비흥사단 계열 청년들도 안창호의 활동에 정치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력양성론과 더불어 안창호는 즉각적인 대일 개전보다는 先준비에 역점을 둔 독립전쟁론을 주장했다. 독립전쟁준비론의 일환으로 간호사나 비행사 등 여성을 비롯한 청년층에게 근대적인 역할과 지위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던 당시 독립운동계에서 안창호의 독립전쟁준비론은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결국 안창호의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준비론은 상해의 청년들과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중심으로 점진적인 형태로 실현되어 갔다. 1920년대 초 통합 임시정부는 활동이 미비해졌다. 외교독립노선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임시정부의 존폐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국민대표회의가 제기되었다. 안창호는 5월 노동국총판을 사직하고 국민대표회의 소집 운동에 참여하였다. 국민대표회의를 바탕으로 임시정부를 개조하여 최고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자는 것이 안창호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1921년 2월 안창호 세력의 대표 인물이었던 이광수가 귀국했다. 그는 국내에서 1922년 2월 12일 흥사단의 성격을 이어받아 ‘수양동맹회’를 설립했다. 수양동맹회는 안창호의 개조 사상을 표방하여 독립을 목적으로 장기적인 실력 양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대상을 회원으로 국한함으로써 안창호의 실력양성론과는 차이를 보였다. 한편 1923년 개최된 국민대표회의는 임시정부 존폐 문제에 대하여 개조파와 창조파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되면서 안창호 세력은 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째, 이유필·김철 등 안창호와 개조파로서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이들은 임시의정원에 의원으로서 다시 참여하여 안창호의 주장대로 임시정부를 개조했다. 1925년 이승만을 대통령직에서 탄핵시킨 뒤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이후 1932년 안창호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는 순간까지 함께 했다. 둘째, 정인과·주요한·김여제 등 흥사단 원동위원부의 청년들이 조선으로 들어갔다. 국내의 수양동맹회는 이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은 안창호의 준비론을 국내에서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총독부의 감시와 1937년 ‘동우회 사건’을 비롯한 탄압으로 인하여 친일로 전향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안창호 세력은 임시정부에서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임시정부가 쇠락하자 안창호 세력도 중국과 국내로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분화된 두 세력은 일제와의 근접성으로 인하여 지향점도 달라졌다. 안창호 세력이 분화된 또 하나의 이유는 안창호의 독립운동노선이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가장 현실적이었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이상적이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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