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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陶瓷花盆 硏究

Title
朝鮮時代 陶瓷花盆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ceramic Flowerpot of Joseon Period
Authors
박성미
Issue Date
201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花盆은 花器의 일종으로 동아시아에서 다양한 재질로 번안되어 유행한 도자 기종이다. 동아시아에서 陶瓷花盆은 원예문화를 향유하는 특정계층의 實用性과 玩賞이 반영된 기물이다. 즉, 도자화분은 개인의 이상경을 體現하여 실내·외공간에서 臥遊할 수 있는 玩賞物이다. 또한 원림조성에 대한 대체품이자 當代의 원예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실물자료라는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도자화분은 원예문화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기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명칭에서 花器라는 명확한 용도로 종합적인 연구 성과는 미미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도자화분이 고려부터 이어져온 원예문화라는 점에 착안하여 문헌자료를 분석해 향유계층의 인식과 가치관을 살피고, 유행의 흐름을 파악하여 조형의 특징 및 성격을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화분은 일반적으로 화초와 질그릇을 뜻하는‘花’와‘盆’이 결합된 용어이지만, 순서를 바꾸어 ‘盆’과 ‘花·菊·梅·蘭·竹·松’등 식재된 화훼의 명칭이 결합되어 의미가 강조된다. 즉, 화분의 명칭은 식물을 식재하는 盆의 의미를 뜻한다. 따라서 생활용기의 총칭으로 쓰이는 ‘盆’의 본질적인 연구가 필요함으로 판단된다. 盆의 한자어는 중국 漢代 許愼의 『說文解字』에 따르면 질그릇을 뜻하는 동이‘盎’을 뜻한다. 또 史游의 『急就篇』에 따르면 ‘盆’과 ‘盎’은 모두 한 종류에 속하는 그릇이지만 기형의 변곡점에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盆은 윗부분이 넓고 저부로 갈수록 좁은 기형이며, 도기재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논지의 기본시각은 陶器盆뿐만 아니라 瓷器盆의 조형양식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향유계층의 인식과 가치관이 당시 원예문화의 유행과 결합하여 기형이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도자화분의 성격을 규정했다. 조선시대 도자화분은 도기와 자기로 제작된 재질의 차이로 인식하기보다는 식물이 생장함에 있어 적합한 요소로서 선택하여 사용되었던 점에 주목하였다. 다만, 자기화분은 식물을 키우는 용도를 넘어 다양한 용례가 반영된 기호품이므로 분청사기·청자·백자의 재질을 구분하였다. 한편, 화분의 성격을 규명하는 排水口의 有無는 중요하다. 화분의 배수구는 식재된 식물의 생장을 위해 관수 한 물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식물은 흙 또는 물에서 생육하는 환경으로 구분되며, 한 식물의 생장과정에 따라 화분의 선택이 필요하다. 화분의 배수구는 조선시대 기록에서 명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조선전기 문신 姜希顔의 저서인 『養花小錄』에 따르면 식물의 특성 및 생장과정에서 주의할점 등이 기록되어 있어 배수구의 필요여부에 대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국화뿌리는 물을 싫어하여 간접적으로 물을 주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어 흙에서 생장하는 식물도 때에 따라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이 달라짐이 주목된다. 이를 통해 배수구가 없는 花盆[水盆]은 수생식물뿐만 아니라 흙에서 생장하는 식물도 필요함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즉, 도자화분은 식재된 식물의 생장특성과 시기에 따라 배수구의 유무도 선택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도자화분의 범주를 재질과 배수구의 유무로 단정하기보다는 식재된 식물의 생장환경이 기준이 되는 것으로 논지를 이어나갔다. 도자화분은 시대·제작지역·재질에 관계없이 규격화된 조형양식으로 제작된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도자화분의 조형양식이 제작된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 관요설치 이전과 이후의 공납체계에 대한 문헌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자기화분은 進貢을 위한 체계적인 監造하에 제작되었다. 반면, 도기화분은 『經國大典』에 따르면 工曹에 소속된 옹장이 31명이고, 그 중 掌苑署에 배치된 옹장 8명이 확인되는 것을 통해 필요시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도자화분의 생산 및 소비지유적과 전세유물 총 210점을 분석하여 Ⅰ·Ⅱ·Ⅲ·Ⅳ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 도자화분의 기형은 圓筒形, 多角形, 長方形으로 구분된다. Ⅰ유형은 원통형의 구연돌대문이 있는 도기화분으로 조선시대 전시기 동안 정형화된 형태로 제작되었고, 실용적인 측면이 강조된 기형이다. Ⅱ유형은 원통형의 자기화분으로 조선시대 전시기 동안 규격화된 조형양식으로 제작되었고,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요소가 특징이다. Ⅲ유형은 다각분 아래 足이 있고, 배수구가 없다. 그리고 동체면의 조형양식이 Ⅱ유형과 유사하다. 특히, 이 유형은 現 도자사학계에서‘香爐’로 통용하고 있으나, 본 논문에서는 花盆[水盆]으로 명명하였다. Ⅳ유형은 장방형으로 식물의 생장과정에서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식물이나 괴석 또는 수생식물을 길러 완상의 기능이 강화된 배수구가 없는 花盆[水盆]이다. 도자화분의 장식기법은 상감과 인화상감이 51%로 Ⅱ·Ⅲ유형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구연돌대문은 Ⅰ유형의 전형적인 도기화분의 장식기법이다. 양각기법은 Ⅱ유형의 방형돌대와 Ⅲ유형의 구슬모양으로 貼塑된 연주문이 대표적이다. 음각기법은 도기화분의 동체면 장식 또는 자기화분의 상감과 인화상감기법과 혼용된 양상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인화기법으로 장식된 자기화분이 포함되며, 긴돌대에 연주문이 첩화된 Ⅲ유형과 유사한 기형을 살펴보았다. 청화기법은 Ⅳ유형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확인되지만 Ⅱ·Ⅲ유형에서도 확인된다. 도자화분의 문양은 화분의 식재된 식물을 반영하듯 花卉紋이 주를 이룬다. 또한 雲鶴紋과 蒲柳水禽紋은 고려시대 상감청자에서 파생된 전통적인 문양으로 화훼문과 결합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도자화분은 구획된 공간을 화폭으로 인식하여 이상적 공간과 계절감이 반영되었다. 즉, 도자화분은 회화작품과 같이 실내공간에서 臥遊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완상물이다. 앞서 살펴본 기형·시문기법·문양의 소재 등을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종합해 시기별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第 Ⅰ期에 해당하는 15세기에서 16세기는 신분과 품계에 따라 토지를 분급하는 家垈制限으로 인해 한양 내에서 주택 외에 별서나 원림을 경영하는 것은 특정계층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화훼에 대한 인식이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문학의 소재로 애호된 것으로 확인된다. 자기花盆[水盆]의 기형·시문기법·문양의 소재는 고려말기 상감청자를 계승하는 전통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지속·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第 Ⅱ期에 해당하는 17세기는 玩物喪志로 보던 화훼에 대한 인식이 以物觀物의 사유를 바탕으로 物을 인간과 동등한 가치로 보게 되었다. 조선과 明·淸代의 외교활동에서 외교 일선에 있었던 문인들을 중심으로 원예문화가 유행하였다. 그리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明代 문인들의 원예 취미가 담긴 花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자기花盆[水盆]은 Ⅰ期의 조형양식과 유사하며, 음각기법의 활용이 두드러지면서 연주문 장식이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第 Ⅲ期에 해당하는 18세기에서 19세기는 이전시기의 관물론이 증대된 시기로 종이나 밀랍으로 만든 造花도 문인의 아취로 여겼다. 또한 池圭植의『荷齋日記』에 따르면 궐내에서 사용될 화분을 진상함에 있어 화분의 견본이 있고, 이에 따라 관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分院磁器貢所節目』에 따르면 分院의 목적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자기조달이 우선이지만 민수용 화분과 관련된 정황들이 확인된다. 18세기 이후 신분질서 문란으로 인한 양반 수의 증가로 새로운 사치풍조의 문화가 만연해지면서 완상용 기명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이는 私燔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졌고, 소비층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어 Ⅳ유형의 자기花盆[水盆]이 제작된 요인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 도자화분은 당시 원예문화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기물임에도 불구하고 花器라는 명확한 용도와 명칭으로 인해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또한 그동안 배수구의 유무만으로 성격이 판별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인‘盆’의 범주에서 도자화분을 분석한 결과, 식재된 식물의 생장에 적합한 요소로 선택사용 및 식물을 키우는 용도를 넘어 다양한 용례가 반영된 기호품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배수구의 유무와 관계없이 동일기물이‘花盆’과‘水盆’의 명칭이 혼용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도자화분의 규격화된 기형과 장식기법은 고려의 전통적인 요소가 지속되고, 사회·문화적인 제도 및 수요층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도자화분은 실제 산수경관과 비슷한 이상경의 體現을 통해 臥遊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Flowerpot(花盆) is a type of flower vessel(花器), a popular pottery vessel, which was adapted to various materials in the East Asia. In the East Asia, ceramic flowerpot(陶瓷花盆) is a vessel that implies practicality(實用性) and taste(玩賞) of a specific class who enjoy gardening culture. That is, pottery flowerpot is a tasteful object(玩賞物) that can actualize(體現) an individual’s ideal and enjoy(臥遊) it indoor·outdoor space. Also, there’s an importance regarding that it is a substitution for a garden and a sole and real material that can imagine the gardening culture of the period(當代). However, nevertheless pottery flowerpot is a tool to determine an aspect of gardening culture, overall research output with the concrete use of the name flower vessel(花器) has been insufficient. Here, this research aimed at investigating formative characteristic and nature thereof by researching the awareness and value view of the class of possession by analyzing literature materials by paying attention to the point that Joseon pottery flowerpot was a gardening culture that had been continued since Goryeo Dynasty. Flowerpot is a term combined with‘flower(花)’and‘pottery(盆)’, which means flower and pottery, however the meaning is emphasized when combined with the name of planted flowers such as‘Flower(花)·Chrysanthemum(菊)·Japanese apricot flower(梅)·Orchid(蘭)·Bamboo(竹)·Pine(松)’with‘pottery(盆)’. That is, the name of flowerpot implies the meaning of planted pot(盆). Therefore, the researcher determined a necessity of a fundamental research on ‘pot(盆)’, which is used as the general name of a household item. The Chinese character of pot(盆) is, according to Chinese Han Dynasty(漢代) Xushen(許愼)’s 『Shuowen Jiezi(說文解字)』, it means pottery‘jar(盎)’. Also, according to Shiyou(史游)’s 『Jijiupian(急就篇)』, ‘Bun(盆)’and ‘Ang(盎)’ belong to one type of vessel, however a difference in the curve point of the shape is confirmed. Therefore, Bun(盆) has a wide upper part which gets narrow downward, and the pottery material seemed to have used in the earliest period. The basic view of this dispute point seems to have regularly influenced the formative mode of pottery pot(瓷器盆) besides earthenware pot(陶器盆), and this research determined that characteristic of pottery flower pot in the process of diversification of pottery types based on combination between the awareness and value view of the class of possession and the trend of gardening culture of that period. This research paid attention to the point that pottery flowerpot of Joseon Dynasty was selected and used as a proper factor for growth of plants rather than viewing it as the material difference made of pottery and earthenware. However, this research divided the materials of Grayish-Blue-Powdered Celadon(粉靑沙器)·Celadon·Porcelain, since pottery flowerpot is a favirite item reflected with various uses beyond the use of growing plants. On the other hand, whether of existence(有無) of drainage(排水口) is important to determine the characteristic of flowerpot. Drainage of flowerpot is a necessary factor to discharge the water for the plant’s growth. However, plants are divided according to the growing environment based on soil or water, also, flowerpot should be selected according to growth process. Drainage of flowerpot is not clearly confirmed in the record of Joseon, however according to early Joseon literary subject Gang Heean(姜希顔)’s 『Yanghwasorok(養花小錄)』, there are the characteristics of plants and precautions for growth process, etc., accordingly, whether of necessity of drainage could be determined. Particularly, there’s a direct watering method, since Chrysanthemum rood hates water, it’s remarkable that water amount should be difference according to the plant that grows in the soil. Based on this, awareness could be extended regarding that the plant that grows in the soil also requires the flowerpot(花盆[水盆]) without drainage, besides aquatic plants. That is, pottery flowerpot was determined to have been selected and used along with whether of existence of drainage according to the plant characteristic and period. Accordingly, this research continued discussion based on the standard of plant growth environment, rather than determining the scope of pottery flowerpot according to the material and the existence of drainage. Pottery flowerpot is determined with the manufacture aspect in standardized formative form regardless of period·production region·material. To investigate the production background of formative mode of such pottery flowerpot, this research attempted a literature analysis of tribute system before and after the governmental flowerpot. As the result, pottery flowerpot was produced under the systematic supervision(監造) for production(進貢). On the contrary, earthenware flowerpot, according to『Gyeonggukdaejeon(經國大典)』, there were 31 earthenware craftsmen who belonged to the manufacturing plant(工曹), and 8 among them who were appointed to Jangwonseo(掌苑署), accordingly,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as a system to prepare internally when necessary. Based on such understanding, this research enabled classification into Ⅰ·Ⅱ·Ⅲ·Ⅳ types by analyzing total 210 pieces among the earthenware flowerpot products, consumption remains, and the relics. As the result, shape of Joseon earthenware flowerpot was divided into cylinder shape(圓筒形), multi-angular shape(多角形), and rectangle shape(長方形). Shape Ⅰ was the earthenware flowerpot with cylinder shape of strap work to mouth of flowerpot(口緣突帶文), which was produced in a standardized form during the overall Joseon Dynasty, emphasized with practical aspect. Shape Ⅱ was cylinder shape earthenware flowerpot, which was produced in a standardized formative mode during the overall Joseon Dynasty, characterized with traditional factors succeeded since Goryeo. Shape Ⅲ had feet(足) under the multi-angular pot, with no drainage. Also, the formative mode of its body is similar to shape Ⅱ. Particularly, this type was commonly used as‘Incense Burner(香爐)’ in current earthenware history academic circle, however this research named it flowerpot(花盆[水盆]). Shape Ⅳ was in rectangle, which is a flowerpot(花盆[水盆]) with no drainage, reinforced with treasuring function by growing plant which does not require much water, oddly shaped stone, or aquatic plant. 51% of decorative techniques of earthenware flowerpot were inlaid work(象嵌) and sealing inlaid work(印花象嵌), which were the highest ratio among shape Ⅱ·Ⅲ. strap work to mouth of flowerpot was a decorative technique of typical earthenware flowerpot among shape Ⅰ. As the emboss technique rectangular strap work(突帶) of shape Ⅱ and pearl motif(連珠文) decorated(貼塑) with beads of shape Ⅲ were representative. Intaglio technique was confirmed with body decoration of earthenware flowerpot or combined aspect of inlaid technique of earthenware flowerpot and sealing inlaid technique. Also, earthenware flowerpot decorated with sealing technique is included, and this research investigated the shape similar to shape Ⅲ combining pearl motif with Guindoldae. Cheonghwa technique was confirmed in the highest ratio among shape Ⅳ, however it is also confirmed in shape Ⅱ·Ⅲ. Pattern of earthenware flowerpot is mainly composed of flower pattern like reflecting planted plants. Also, Cloud and Crane(雲鶴紋), Pond landscape(蒲柳水禽紋) show the combined aspect with flower pattern derived from Goryeo Dynasty inlaid work Celadon as the traditional pattern. Therefore, earthenware flowerpot was reflected with ideal space and seasonal sensation by perceiving the divided space as a canvas. That is, earthenware flowerpot was a completed product reflected with the desire to enjoy(臥遊) indoor just like a painting work. When investigating the characteristics of shape·pattern technique·pattern material, etc. per period combined with social·cultural situation were as below. During the 15th century and 16th century, which belonged to the first period(第 Ⅰ期), operating a separate house or garden besides one’s own house in Hanyang was impossible in ordinary class, due to limitation of the number of house(家垈制限) which distributed land according to status and class. Also, it was determined that awareness on flower gardening was enjoyed as a material of literature, at the same time as the target for warning. Shape of earthenware flowerpot(花盆[水盆])·pattern technique·pattern material seemed to have been continued·shared upon reflection of traditional factors that succeeded late Goryeo inlaid work(象嵌) Celadon. During the 17th century, which belonged to the second period(第 Ⅱ期), awareness on flower gardening, which had been considered as Wanmulsangji(玩物喪志), was viewed with the object(物) equal to human based on the idea of Yimulgwanmul(以物觀物). Based on the literary persons in the diplomatic field between Joseon and Ming·Qing(明·淸代), flower gardening culture was popular. Also, due to development in print technique, interest in flower pictures(花譜) that contained Ming Dynasty literary persons’ flower gardening hobby, became higher. During this period, pottery flowerpot(花盆[水盆]) was similar to the formative mode of the first period(Ⅰ期), which showed simplified trend of pearl motif decoration as utilization of engraving technique stood out. Also, during the 18th century and 19th century, which belonged to the third period(第 Ⅲ期), theory of object viewing(觀物論) of the past period was expanded, where artificial flowers(造花) made of paper or beeswax were also considered as the literary persons’ noble taste. On the other hand, according to Ji Gyushik(池圭植)’s『Hajaeyilgi(荷齋日記)』, there was the sample of flowerpot to present a flowerpot to the palace, and it was managed accordingly. Also, according to 『Bunwonjagigongsojeolmok(分院磁器貢所節目)』, the prior purpose of Bunwon(分院) was to provide earthenware necessary for the place and the governmental office, however there were the situations related to private use flowerpots. Since the 18th century, as the a culture of sumptuous moods became prevalent due to increase of the number of noblemen due to disorder of status order, demand for viewing vessels became higher. This was continued to continuous development of Private burning of celamics(私燔), determined as the production factor of shape Ⅳ earthenware flowerpot(花盆[水盆]) reflecting various desire of consumption class. Nevertheless earthenware flowerpot of Joseon Dynasty was the vessel that could determine an aspect of flower gardening culture of that period, it did not receive attention as the research target due to the distinct use and name flower vessel(花器). Also, the characteristic was meanwhile determined only with whether of the existence of drainage. However, as the result of analyzing earthenware flowerpot in respect of the essential ‘pot(盆)’, it was determined that the names ‘flowerpot(花盆)’ and ‘water pot(水盆)’were combined in the same vessel regardless of existence of drainage as a complex factor of favorite items reflected with various uses beyond the selected use for plant growing and the use for growing plants. Particularly, standardized shape of earthenware flowerpot and decorative technique were determined as continuance of traditional factors of Goryeo, and the reflection of social·cultural system and various demands of consumption class. Therefore, this research has a significance that it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 of earthenware flowerpot as a method to enjoy(臥遊) gardening through actualization(體現) of an ideal landscape similar to the actu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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