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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dvisor남궁곤-
dc.contributor.author박정민-
dc.creator박정민-
dc.date.accessioned2017-08-27T12:08:45Z-
dc.date.available2017-08-27T12:08:45Z-
dc.date.issued2017-
dc.identifier.otherOAK-000000139168-
dc.identifier.urihttp://dcollection.ewha.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139168en_US
dc.identifier.urihttps://dspace.ewha.ac.kr/handle/2015.oak/236355-
dc.description.abstract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provide a new perspective in the outbreak of the Franco-Prussian war. Most of the studies concerning the causes of the Franco-Prussian war focus on Bismarck's diplomatic art and scheme. However, this study gives considerable emphasis to the French decision makers who finally declared the war. It is very natural that political leaders do not proclaim war under the circumstances where the nation's defeat is so obvious. Therefore, this study suggests an assumption that French leaders failed expecting the defeat of the war due to their misperception. The study takes advantage of the theoretical framework by Jack S. Levy. The framework provides a conceptualization of the forms of misperception and the theoretical linkage between war and misperception. Levy categorizes the forms of misperception as follows: misperceptions of the adversary's capabilities and intentions, and misperceptions of third-state capabilities and intentions. The subjects are four French political leaders: Napoleon III, Émile Ollivier, Antoine Alfred Agénor duc de Gramont and Eugénie de Montijo. In order to examine the effects of misperception among them, this study investigates articles of each person and documents from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and Le Quai d'Orsay. In a nutshell, the war was waged by French Policy makers' declaration in 1870 because they expected a landslide victory over Prussia. However, it was thier misperception to cause a war: military overconfidence over Prussia and underestimation of the Prussia’s hostility.;본 연구의 목적은 프랑스-프러시아 전쟁(Franco-Prussian War)이 프랑스 정책결정자 측의 오인으로 인해 발발했음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그 동안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원인에 대한 연구는 비스마르크의 고도의 외교술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볼 때 전쟁에 참패할 것을 예상하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패전국 프랑스가 왜 먼저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는지에 집중해, 전쟁 발발원인을 다른 각도에서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본 연구는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에 주목해, 프랑스 측이 전쟁의 결과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전쟁과 오인의 관련성에 대한 잭 레비 (Jack S. Levy)의 견해에 따르면, 승리에 대한 예측에 오류가 있어 오히려 공격을 개시한 국가가 패한 경우, 이는 자국의 군사력에 비해 적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며 이는 바로 전형적인 오인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은 비스마르크에게 속아서 무모한 전쟁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자국이 승리할 거라 오인하고 개전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본 연구는 프랑스-프러시아 전쟁 개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폴레옹3세(Napoleon III), 올리비에 수상(Émile Ollivier), 그라몽 외무상(Antoine Alfred Agénor duc de Gramont), 외제니 황후(Eugénie de Montijo)를 연구대상으로 한정하고, 이 4명의 오인을 중심으로 오인과 전쟁개시의 상관관계를 논한다. 가설검증을 위해 전쟁과 오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레비의 이론 틀을 차용한다. 레비는 오인을 능력에 대한 오인, 의도에 대한 오인, 제 3국에 대한 오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오인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세 차례의 독일통일전쟁 즉, 프러시아-덴마크 전쟁(1864),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1866), 프러시아-프랑스 전쟁(1870)시기 동안 드러난 나폴레옹3세, 그라몽 외무상, 올리비에 수상, 외제니 황후의 인식, 태도와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남부독일연맹의 행보를 대상으로 관련 문헌자료를 연구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과 프랑스 외무부(Le Quai d’Orsay) 자료를 활용했으며, 1871년 전쟁 직후, 올리비에 수상이 직접 저술한 자료, 1872년 그라몽 외무상이 직접 저술한 자료, 프러시아 총사령관 몰트케((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장군, 엠스전보사건 관련자인 프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 베네데티가 직접 저술한 자료, 프랑스 장군 메르시에(Auguste Mercier)와 그라몽 외무상이 프랑스-프러시아 전쟁 직전 주고받은 전보모음과 같은 1차 자료를 위주로 문헌연구를 수행하고, 그 외 2차 자료를 보충적으로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은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이 자국의 군사력을 프러시아의 군사력에 비해 과대평가하고, 프러시아가 프랑스에 대해 갖는 적대감을 과소평가하여 선전포고함으로 인해 발발한 것이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끝난 후 작성된 문헌을 살펴보니 프랑스는 소총·기관총기술, 전시물자동원력 측면에서는 우위에 있었지만 이를 조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군사지휘체계 및 군사제도, 대포기술, 철도수송능력, 예비군을 포함한 동원능력 등의 면에서 프러시아보다 열위에 있었다. 무기기술과 물자의 우위는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군사전략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수송능력이 부족한 경우 진정한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군사적 과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선전포고를 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프랑스 정책결정자 측에 나타나는 오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의도측면에서도 프랑스는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의 성향을 간과했고, 프러시아의 독일 통일에 대한 오랜 열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프러시아의 적대감을 과소평가해 다가오는 전쟁을 예측하지 못하고 군비를 축소해와 결국 패배에 이르렀다. 제 3국과 관련해서는 능력 측면에서는 크림전쟁을 치른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모두 적극적인 군사적 도움이 어려운 상태였고, 보오전쟁을 치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도 군사적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태였다. 의도 측면에서는 이탈리아와 남부독일국가들은 프러시아 편에 가담하였고 러시아,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모두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전쟁 전 나폴레옹3세 비롯한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은 러시아,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가 프랑스 편에 가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잭 레비가 예측한 바와 같이 남부독일국가들의 능력과 가담가능성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희망을 품었다. 이처럼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데에는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의 오인이 큰 역할을 했다.-
dc.description.tableofcontentsⅠ. 서론 1 A. 논문의 목적 1 B. 연구대상: 프랑스 주요 정책결정자 4인 5 C. 연구목적 및 논문의 구성 8 Ⅱ. 이론적 틀 10 A. 전쟁과 오인 10 1. Jack S. Levy의 이론 틀 10 2. 오인의 개념화와 분류 10 B. 전쟁의 원인으로서 오인 11 1. 적의 능력에 대한 오인 11 2. 적의 의도에 대한 오인 13 3. 제 3국의 능력과 의도에 대한 오인 14 Ⅲ. 프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프랑스 정책결정자 측의 오인 16 A. 군사적 과신의 존재여부 16 1. 전술(tactics) 16 2. 군사제도(military system)와 군사개혁 23 3. 병력(兵力)과 무기체계 26 4. 철도수송력과 기동력 31 5. 국력을 기반으로 한 전시물자동원능력 35 B.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의 군사적 과신으로 인한 전쟁 개시 37 Ⅳ. 프러시아의 전쟁 수행 의도에 대한 프랑스 정책결정자 측의 오인 38 A. 프러시아의 적대감 과대평가 여부 38 B. 프러시아의 적대감 과소평가 여부 38 1. 프러시아의 사활적 이익과 그에 가해진 위협에 대한 오인 39 2. 프러시아의 적대적 성향에 대한 오인 40 3. 프러시아의 적대감을 과소평가한 장기적 결과: 군축 40 4. 프러시아의 적대감을 과소평가한 단기적 결과: 전쟁억지실패 41 Ⅴ. 제 3국가들의 능력과 의도에 대한 프랑스 측의 오인 43 A. 제 3국가들의 능력에 대한 오인 43 1. 크림전쟁 참전국: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사르디니아) 43 2.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44 B. 제 3국가들의 개입 의도에 대한 오인 44 1. 러시아: 중립 45 2. 영국: 중립 46 3. 이탈리아: 친(親)프러시아 47 4. 남부독일연방: 프러시아와 동맹결성 47 5. 오스트리아-헝가리: 중립 49 Ⅵ. 결론 50 참고문헌 52 ABSTRACT 61-
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1795208 bytes-
dc.languagekor-
dc.publisher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c.subject.ddc300-
dc.title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서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의 오인 연구-
dc.typeMaster's Thesis-
dc.title.translatedA Study on the Misperception of French Policy Makers in the Outbreak of the Franco-Prussian War-
dc.format.pagevi, 62 p.-
dc.identifier.thesisdegreeMaster-
dc.identifier.major대학원 정치외교학과-
dc.date.awarded201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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