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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靑畵白磁鳳凰紋壺 硏究

Title
朝鮮後期 靑畵白磁鳳凰紋壺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Design(靑畵白磁鳳凰紋壺) in the late Joseon Dynasty
Authors
남아름
Issue Date
201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청화백자봉황문호(靑畵白磁鳳凰紋壺)는 청화안료로 기면(器面)에 봉황을 시문한 백자 항아리로, 형태에 따라 입호(立壺)와 원호(圓壺)로 구분된다. 입호는 팽창된 견부가 동체부에 이르러 서서히 좁아지면서 살짝 외반하여 저부에 이르는 형태로 기측선이 S자 곡선을 이룬다. 원호는 팽창된 견부가 동체부에 이르러 급격히 좁아지면서 내만하여 저부에 이르는 형태로 기측선이 C자 곡선을 이룬다. 입호는 준(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기면에 용이 시문된 경우에 한하여 용준(龍樽)이라고 한다. 본 논문은 조선후기의 봉황문 청화백자 중에서도 유물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기형과 문양의 양식 분석이 용이한 운봉문 입호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왕을 상징했던 용의 절대적인 위계 때문에 단독으로 용과 짝을 이룰 수 있는 동물은 많지 않았지만, 봉황만은 특별히 용봉(龍鳳)으로 합쳐져 다양한 미술품에 표현되었다. 이를 통해 봉황은 용에 버금가는 위계의 동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봉황은 용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표현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용준과 청화백자운봉문호라고 할 수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기록에 따르면, 봉(鳳)은 신조(神鳥)이며 생김새는 기러기의 앞과 기린의 뒤, 뱀의 목과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머리와 원앙의 뺨, 용의 무늬와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과 닭의 부리, 날개가 오색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봉황의 특징들은 강조와 생략을 거쳐 닭의 머리, 비늘이 덮인 몸, 장식 꼬리로 정형을 이루었다. 봉황은 수컷을 봉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하며, 이 둘을 통칭하여 봉 혹은 봉황이라 한다. 봉황은 현존하는 모든 동물들을 초월하는 신령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조(神鳥)로서 백조의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귀한 것 앞에 수식어로 사용되어 기물, 건축, 자연현상, 사람을 비유적으로 의미하였다. 봉황의 도상은 중국 화보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봉황도(鳳凰圖)>는 명대 화보 『고씨화보(顧氏畵譜)』(1603), 『정씨묵원(程氏墨苑)』(1605), 『삼재도회(三才圖會)』(1607)의 영향이 모두 확인된다. 이때 <봉황도>가 봉황문으로 도안화되어 궁중 유물에 장식된 사례는 중국 청대 예서 『황조예기도식(皇朝礼器图式)』(1766)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왕실에서는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소망하며 봉황을 상서(祥瑞)로 해석하는 한편, 정치적 권력이나 어진 인재를 봉황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에는 직언하는 신하와 부부의 화합에 대한 의미가 추가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강조되었다. 봉황의 도상은 조선의 궁궐 건축과 궁중 유물에서부터 민간 유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인된다. 19세기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의 선발시험인 녹취재(祿取才)에서 가장 많이 출제된 영모(翎毛) 화제는 봉황이었다. 봉황 도상의 사회적 선호는 조선후기의 청화백자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가마터에서 출토된 봉황문 청화백자의 양상은 조선전기 경기도 광주 도마리 1호 가마터에서 출토된 중국 명대 민요(民窯)산 청화백자접시편과 조선후기 경기도 광주 분원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원(分院)산 청화백자편을 통해 일부 확인 가능하다. 국내 소비지 출토품은 경희궁지 출토 <청화백자운봉문호>와 숭례문 출토 <청화백자운봉문시(匙)>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조선후기 분원산으로 추정되므로 궁궐과 그 인근에서 봉황문 청화백자를 소비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써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사대문 안에서 중국 청대 민요산 청화백자와 오채백자가 출토되어 조선후기에 외래자기가 유입되고 소비된 정황이 확인된다. 국내 가마터와 소비지 출토품을 검토한 결과, 조선시대에 봉황문 청화백자는 중국 명대 민요자기의 영향을 받아 조선전기부터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으나 출토유물의 부족으로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으며, 본격적인 생산은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후기의 분원은 더 이상 화원이 파견되지 않았음에도 청화백자에 다양한 문양을 시문할 수 있었다. 회화의 소재인 봉황이 도안화를 거쳐 문양으로써 청화백자에 시문되는 과정에는 화본(畵本)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도화서 화원에 의해 그려진 화본은 상의원(尙衣院)과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에서 공유하여 왕실 공예품의 제작에 활용하였다. 연잉군(延礽君)이었던 영조가 사옹원의 제거(提擧)로서 손바닥 크기의 유지에 수묵으로 직접 그린 산수·난초·국화·매화 그림 6폭을 작은 백자호의 제작에 사용하라고 명한 기록과, 사기(砂器) 화본을 채색하여 숙묘(肅廟)에 봉헌했다는 기록에서 그 정황이 확인된다. 또한 화본의 일종인 궁중복식 수본이 조선후기 청화백자 문양과 양식을 공유하고 있어, 화본의 활용 범위가 공예품의 재질과는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통용되었음이 구체적으로 증명된다. 조선시대의 봉황문은 중국 명대 봉황문의 양식을 수용한 것이며, 봉황문은 고식(古式)적 양식이 표현된 경우와 생략된 경우로 구별된다. 봉황문의 고식적 양식이란, 목의 깃털이 한 가닥씩 둥글게 말려 있다가 뻗어있는 모습이나, 꼬리 깃털이 시작되는 부분에 3점으로 둥글게 말려 있는 묘사를 뜻한다. 이러한 양식은 15세기부터 확인되기 때문에 조선에 전해진 봉황문 도안의 원형으로 판단하여 고식이라 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청화백자운봉문호에 나타난 봉황문의 고식적 양식 묘사 여부에 따라 청화문양의 계통을 화원풍(畵員風)과 화청장풍(畵靑匠風)으로 나눠 제작 집단이 다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조선후기 봉황문 청화백자의 분석은 입호 75점, 병 10점, 접시 6점, 원호 4점, 합(발) 4점, 시 1점, 연적 1점, 지통 1점으로 총 102점의 전세품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의 양상을 중국 명·청시대의 경덕진요(景德鎭窯)·남방민요(南方民窯) 생산품과 일본 에도시대의 아리타요(有田窯) 생산품과 비교한 결과, 조선후기 청화백자운봉문호의 용도는 부장품이나 수출용으로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과는 차이가 있으나, 문양은 중국의 영향을 받되, 조선의 요업상황 및 사회적 선호에 맞게 발전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명대 경덕진 어기창(御器廠)에서 출토된 청화백자의 봉황문에도 목과 꼬리깃털의 말림이 확인되며, 이러한 묘사는 조선시대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에 수록된 <봉선(鳳扇)>을 필두로 여러 궁중 유물의 봉황문에서도 확인되어 주목된다. 그러나 현전하는 조선후기 봉황문 청화백자는 대부분 중국의 청대 남방민요의 생산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봉황문의 하강하거나 회전하는 비행자세, 비늘이 묘사된 날개, 중심이 부각된 꼬리깃털, 다리의 표현에서 외래자기의 유입에 따른 영향관계가 드러난다. 청화백자운봉문호는 17세기의 철화백자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용준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그 상한연대가 18세기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 국산 봉황문 청화백자가 출토된 가마터는 현재까지 경기도 광주 분원리가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이후부터 생산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청화백자운봉문호의 형식은 호의 기형 및 굽의 형태, 운봉문의 양식과 보조문양의 갖춤, 문양의 시문 기법, 높이를 기준으로 분류한 결과, 18세기의 Ⅰ형식과 19~20세기초의 Ⅱ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Ⅰ형식에서 Ⅱ형식으로 변화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 호의 기형이 점차 세장해지며 굽의 형태가 안굽에서 사선굽으로 변화한다. 봉황문은 꼬리깃털의 형태를 기준으로 구불구불한 당초형(唐草形)의 봉과 곧은 장초형(長草形)의 황으로 구별할 수 있다. 대체로 봉황이 구별되어 한 쌍으로 표현되었으나, 점차 봉황의 구별 없이 꼬리깃털의 형태가 동일한 한 쌍이 표현되는 경우나, 단독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봉황문은 세밀했던 묘사가 점차 간략해지며 봉황의 수염 방향이 전환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한편, 자세·날개·꼬리·다리의 표현양식에서 중국 청대 자기의 영향이 감지된다. 문양의 시문기법은 청화로만 시문되던 방식에서 청화에 동채(동화)가 추가된다. 청화 기물은 높이가 20~50cm 사이에 분포하며, 높이 10cm 가량의 소형이 출현한다. 청화동채 기물은 높이가 20~30cm 사이에 분포한다. 18세기의 청화백자운봉문호는 용준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동시에 사령문호나 모란봉문호가 생산되고 있다. 따라서 입호의 기형일지라도, 봉황문의 양식에 따라 용도의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운봉문호의 경우,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중국 청대 『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1766)의 <수병(水甁)>과 『진연의궤(進宴儀軌)』(1902)의 <금수병(金水甁)> 사례를 통해 궁중연향에서 용준에 버금가는 용도의 의례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19~20세기초의 청화백자운봉문호는 높이 10cm의 기물이 출현하므로, 기물의 높이에 따라 용도의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시기에 용준이 본래의 용도와는 달리 쌀뒤주 위에 장식품으로 올려두고 잡곡을 저장하는 등 용도가 변화하였다는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1931)의 기록을 통해, 청화백자운봉문호 역시 민간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조선후기 청화백자운봉문호는 궁중 의례기인 용준과 민간 사치품인 청화백자호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용준에 버금가는 기물로서 궁중과 민간에서 함께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논문은 조선후기 청화백자운봉문호의 시기별 형식 분류 기준을 마련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회화의 소재가 화본으로 도안화되어 공예품에 문양으로써 시문되는 문양의 도안 체계와 사옹원 분원과 상의원의 협력 및 교류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화문양을 시문했던 제작 집단의 주역이 화원에서 화청장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화본의 존재는 청화백자의 생산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본은 궁중 문양을 대중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예품의 전체적인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청화백자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이때, 청화백자운봉문호는 용준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서로 동일한 제작 집단에 의해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들은 18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용도와 양식을 공유하며 서로 영향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design in underglaze cobalt-blue(靑畵白磁鳳凰紋壺) is a white porcelain engraved with Phoenix on the surface(器面) with cobalt-blue pigment. It is divided into the baluster jar(立壺) and the globular jar(圓壺) according to its shape. The baluster jar becomes narrow in the swollen shoulder(肩部) to the body part, reaching the bottom forming(底部) S-shaped curve on the basic line. The globular jar forms C-shaped curve as the inflated shoulder reaches the body part and shrinks rapidly to reach the bottom. The baluster jar is sometimes called Jun(樽), while it is called Youngjun(龍樽 :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design in underglaze cobalt-blue, The most prestigious white porcelain in the Joseon Dynasty) in case when engraved with Dragon on the surface. This research mainly focuses on Blue and White Porcelain baluster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Among Blue and While Porcelain of the late Joseon, the amount of artifacts is highly concentrated, which makes it easy to analyze the shape and pattern. Due to the absolute hierarchy of Dragon that symbolized the king, there are not many animals that can couple with Dragon independently, but Phoenix is especially expressed in various artworks paired with Dragon as Dragon and Phoenix(龍鳳) pattern. Through this, it can be presumed that Phoenix was a hierarchical animal equivalent to Dragon. Phoenix was expressed similarly to Dragon but also in a different way, and the representative examples are Youngjun and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design. According to the record of 『Shuowenjiezi(說文解字)』, Phoenix is defined as a divine bird with the front of a wild goose, the rear of a giraffe, the neck of a snake, the tail of a fish, the head of a stork, the cheek of a lovebirds, Dragon scales, the back of a tiger, the chin of a swallow and the beak of a chicken, and the wings in five colors.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Phoenix are emphasized and omitted, and commonly described by the head of a chicken, the body covered with scales, and the decorated tail. A male Phoenix is called Feng(鳳), and a female is called Huang(凰). A male and female Phoenix are collectively called Feng or FengHuang(Phoenix). Since Phoenix is a divine being that surpasses all existing animals, it was not only described as the king of all birds, but also metaphorically used as a modifier of noble objects, buildings, natural phenomena, and human. A pattern of Phoenix can be found in its origin from Chinese paintings, and it is confirmed that the Painting of Phoenix of Joseon is influenced by the paintings of Ming, such as 『Gushi huapu(顧氏畵譜)』(1603), 『Chengshi moyuan(程氏墨苑)』(1605), and 『Sancai tuhui(三才圖會)』(1607). Here, the case decorated with Painting of Phoenix on the court legacy with Phoenix pattern can be searched with its origin from Chinese Qing Dynasty ornamental seal 『Huongchao liqi tushi(皇朝禮器圖式)』(1766). In Joseon royal family, Phoenix was interpreted as auspicious omen(祥瑞) by wishing a reign of peace(太平聖代), while political authority or benevolent talented person were sometimes likened to Phoenix. In late Joseon, the meaning of righteous retainer and harmony between a husband and a wife was added, and such recognition was socially emphasized. The image of Phoenix is variously found in the palace construction of Joseon as well as in heritages of the court and the private home. Phoenix was the most frequently appeared topic regarding birds and animals(翎毛) in Nokchwijae(祿取才 : the state examination for court painter) of the 19th century Jabidaeryeong Hwawon(差備待令畵員 : a court painter). Social preference of Phoenix image is presumed to have influenced on late Joseon Blue and White Porcelain production a lot. The aspect of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Phoenix pattern excavated from domestic kilns could be partly determined through Chinese Ming Dynasty products of south civilian kiln Blue and White Porcelain piece of dish excavated from early Joseon Gyeonggi-do Gwangju Domari no.1 governmental royal kiln and products of Bunwon(分院) Blue and White Porcelain piece excavated from late Joseon Gyeonggi-do Gwangju Bunwonri governmental royal kiln. Domestic consumption place excavated articles are Gyeonghuigung(慶熙宮) palace excavated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design and Sungnyemun(崇禮門) gate excavated Blue and White Porcelain spoon with Phoenix design, and they are all presumed as late Joseon products of Bunwon. They are very meaningful example that prove the consumption of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Phoenix pattern in the palace and the nearby place. Also, Chinese Qing Dynasty products of south civilian kiln Blue and White Porcelain and overglazed polychrome enamels White porcelain were excavated within the Four Gates of Seoul. It confirms the circumstance that foreign potteries were introduced and consumed in late Joseon. As the result of reviewing domestic kilns and consuming site excavated articles, influenced by Chinese Ming private potteries,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Phoenix pattern of Joseon were produced in the governmental royal kiln since the early Joseon. However, due to insufficient excavated articles, exact aspect cannot be determined. It is believed that legitimate production took place in the late Joseon. Late Joseon Bunwon could engrave various patterns on Blue and White Porcelain, nevertheless court painter was not dispatched anymore. In the process of engraving the pattern of Phoenix, the material of painting, through design on Blue and White Porcelain, Hwabon(畵本 : a pattern for design of all) took an important role. Hwabon, painted by Dohwaseo(圖畵署) court painter, was utilized in a production of royal craft works by being shared by Sanguiwon(尙衣院), Bunwon(分院) of Saongwon(司饔院). This situation can be verified based on the record that the king Yeongjo(英祖), the crown prince Yeoninggun(延礽君), ordered to utilize 6 pieces of pictures of landscape․ Orchid․ Camomile․ Plum, which the king directly drew on hand-sized pieces of paper with ink as Jegeo(提擧 : a third rank government official of Saongwon) onto production of white Porcelian jar, and the record that white Porcelian(砂器) Hwabon was colored and dedicated to king Sukjong's shrine(肅廟). Also, since the court costume Subon(繡本 : a pattern for embroidery), a type of court painter, shared late Joseon Blue and White Porcelain pattern and mode, it is concretely verified that utilization scope of Hwabon was wide regardless of materials of craft works. Phoenix pattern of Joseon period accommodated Phoenix pattern in Chinese Ming Dynasty, and Phoenix pattern is distinguished from the case where the origin mode (古式) is expressed and the case where it is omitted. The origin mode of Phoenix pattern means, the figure of stretch of neck feathers while rolled in circle, or circling in three pieces on the spot where tail feathers start. Since such mode is seen since the 15th century, it was called the origin mode, determined as the original form of Phoenix pattern design that was delivered to Joseon. Based on such analysis, depending on whether of description of origin mode of Phoenix pattern i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this research suggested a possibility of difference in production group by dividing painting style of Blue and White pattern into Hwawon(畵員 : a court painter) style and Hwacheongjang(畵靑匠 : a cobalt-blue painting master of white porcelain) style. The analysis of late Joseon Phoenix pattern Blue and White Porcelain was based on total 102 articles including baluster jar 75 pieces, bottle 10 pieces, dish 6 pieces, globular jar 4 pieces, lidded bowl 4 pieces, spoon 1 piece, water dropper 1 piece, and paper container 1 piece. As the result of comparing their aspects to Chinese Ming·Qing Dynasty Jingdezhen kiln(景德鎭窯)·south civilian kiln(南方民窯) production and Japanese Edo period Arita kiln(有田窯) products, the use of products were different from Chinese and Japanese product because late Joseo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design was not for grave goods or export. It was found that the pattern was influenced by China, and it was developed proper for Joseon ceramic industry and social preference. In Phoenix pattern of Blue and White Porcelain excavated from Chinese Ming Jingdezhen governmental imperial kiln(御器廠), curling of neck and tail feathers are observed, and it is remarkable that such description is also found in Phoenix pattern of various court heritages, beginning from , included in Joseon Dynasty 『Sejong sillok(世宗實錄 : annals of king Sejong』 Five rituals(五禮). However, most of transmitted late Joseon Phoenix pattern Blue and White Porcelain appear to have been influenced by the production of Chinese Qing Nambang private ceramic products. Descending or revolving flight style of Phoenix pattern, wings described with scales, tail feathers where the center stands out, and the expression of legs reveal the influence of the introduction of foreign potteries.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is presumed to have been produced since the 18th century, considering White Porcelain in underglaze iron-brown of the 17th century was not found, and the upper limit thereof does not ascend before the 18th century through mode comparison with Yongjun, and the only kiln that was excavated with domestic Phoenix pattern Blue and White Porcelain is Gyeonggido Gwangju Bunwonri governmental royal kiln so far. As the result of classifying the style of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based on shape of overall and foot, style of Phoenix and Cloud design, side pattern arrangement, pattern engraving technique and the height, it could be divided into pattern I of the 18th century and pattern II of early 19th - early 20th century. The changes from pattern I to II is as follows. Overall shape of Jar gradually becomes slender, and foot shape changes to diagonal foot from inner foot. Phoenix pattern can be divided into curled Arabesque style(唐草形) Feng, cock, and straight long style(長草形) and Huang, hen, based on tail feather form. Generally, FengHuang Phoenix was expressed in one couple by being divided, however the tail feather form was more frequently expressed in one couple equally without division, or was expressed independently afterwards. The biggest change of characteristics of Phoenix pattern was to change mustache direction of Phoenix while detailed description became more simple. The influence of Chinese Qing Dynasty ceramics is detected in the expression mode of attitude, wings, tail, legs. Engraving technique of pattern was added with underglaze copper-red on underglaze cobalt-blue in the method of engraving only underglaze cobalt-blue. The height of White Porcelain jars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in underglaze cobalt-blue are in range of 20~50cm, and some of them are very small, in height around 10cm. The height of White Porcelain jars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in underglaze copper-red are usually between 20 and 30cm.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of the 18th century fully follows the mode of Yongjun, simultaneously, White Porcelain jar with mystical 4 creatures(四靈 : Dragon, Phoenix, Tortoise, Qilin) or peony design were produced. Accordingly, nevertheless shape of baluster jar, it is presumed to have difference in usage depending on the mode of Phoenix pattern. Therefore, nevertheless temporal differenc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was used as ritual vessels next to Yongjun in court banquet based on the case of of Chinese Qing Dynasty 『Huongchao liqi tushi(皇朝禮器圖式)』(1766) and of Chinese Qing Dynasty 『Jinyeon uigwe(進宴儀軌)』(1902). In 19th and early 20th century,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appears to have a height of 10cm. It is assumed that there was a difference in usage depending on the height of the vessels. In respect of this aspect, during this period, it is presumed that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also was used for various purposes in private home. According to the record of 『Joseon doja myeonggo(朝鮮陶磁名考)』(1931), unlike the original use of Youngjun, it is used to store minor cereals being put behind the wooden rice chest. In conclusion, the late Joseo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is determined to have been used both in court and private home, in between Yongjun, a court ritual vessel, and Blue and White Porcelain baluster jar, a private luxury item. This research proposed the classification basis of late Joseo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per period. In addition, this research determined the system of pattern design engraved as the pattern on the craft works based on Hwabon design of painting materials, cooperation between Bunwon of Saongwon and Sanguiwon, and exchange activities. It is presumed that in the process of transferring the main role of production group who engraved cobalt-blue painting of white porcelain pattern from Hwawon to Hwacheongjang, the existence of Hwabon greatly influenced production of Blue and White Porcelain. Hwabon not only popularized court pattern, but also greatly improved overall quality of craft works, and enabled mass production of Blue and White Porcelain. Here,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Phoenix and Cloud design is presumed to have been produced by the same production group through mode comparison with Yongjun. Accordingly, it is determined that they were in mutually influential relationship by sharing the use and mode from the 18th century to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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