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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표현의 해석학적 장치를 통한 시각표현 연구

Title
언어와 표현의 해석학적 장치를 통한 시각표현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Visual Expression through Hermeneutic Device of Language and Expression : focusing on Gadamer's concept of 'game'
Authors
박지현
Issue Date
2017
Department/Major
대학원 디자인학부시각디자인전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김인성
Abstract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서 드러내며 의미를 전달하거나 암시할 뿐만 아니라 현존하게 한다. 이를 통해 예술은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본 연구자는 예술이 인식 사건으로서 해석학 영역에 해당된다고 주장한 가다머(Gadamer, Hans-Georg, 1900-2002)의 주장에 동의하고자 한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작품 해석의 과정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는 검증될 수 없는 인문학 고유의 가치 영역으로 자신의 진리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이 철학 이론이나 학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 안에서 철학적 실천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가다머의 주장은 칸트가 본인의 예술철학에서 서양의 수학적 방법론과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사유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예술은 철학이 결여하고 있는 그 이상의 것들을 전달할 수 있으며, 예술가는 인식한 것을 결코 무관심하게 방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 논문의 연구자는 예술가로서 '철학적 실천운동'을 작품 활동을 통해서 실천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예술이란 객관적인 척도로 설명되지 않으므로 일상사 속으로 철학을 끌어들여 '이해'와 '해석'을 통해 작품에 '적용'하는 무한한 철학적 실천 운동을 하고자 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와 가다머는 지속적으로 서양이 제기하는 '무엇'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존재, 예술, 그리고 해석의 '어떻게' 이해되는가로 전환하고 있다. 환언하면, 그들의 관심은 방법이라기보다 진리를 묻는 존재론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다머의 이해는 존재생성의 진리를 의미한다. 즉, 가다머의 이해란 대상에 대한 이해나 이론에 대한 앎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통해 늘 자신을 새롭게 실현하는 존재생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가다머는 철학함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무한운동으로서의 자기실현은 해석학이자 실천운동으로서의 실천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다머는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 / Fusion of Horizon)'을 통해 무한히 열려있는 이해의 운동을 적용해 나간다. 가다머의 지평융합은 구체적인 현실이라는 삶 안에서 끊임없이 매순간 항상 다르고, 새롭고 구체적으로 적용함과 동시에 실현해 나아가는 시도이다. 그는 이 실현의 진리적 물음을 예술의 경험을 통해서 실시하고자 한다. 가다머에 따르면 이해를 통해서 발생하는 새로운 생성의 존재는 존재의 현현이나 실현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그 지평이 확장된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근본적인 것들에 관한 사유를 원하지 않으며, 실제로도 반드시 그것의 불필요성에 대하여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마틴 루터 킹(1929~1968)은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동일한 흐름에서 연구자는 시각 예술가로써 작품 활동을 통해 철학적 실천 운동의 가능성을 열어 보일 수 있음을 본 논문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예술가는 본인 작업에 대한 자율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현실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어두운 사회의 이면, 모순된 현실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한다. 철학가이자 작가인 알랭드 보통이 2015년 JTBC 뉴스룸에서 진행한 앵커 손석희와의 대담에서 "정말 최고의 언론인이 할 일은 그저 뉴스나 전하면서 모두를 잠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을 재미있게 만들고 또 재미있는 건 뭐든지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물론 어려운 일이다. 예술가와 같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언론인은 아니지만 이 가치 있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존재일 수 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예술가로써 작품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자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1950)라는 논문에서 언어적 물음과 함께 인간의 발언의 의미와 인간의 발언의 조건에 대해 질문한다. 언어는 이전까지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할 뿐만 아니라 비로소 존재하도록 나타나게 한다. 이처럼 예술과 언어는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소통의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와 가다머는 "언어적 존재론"이라는 근본적인 사유에 있어 같은 선상에 있다. 두 사람의 관점에서 모든 것은 언어 사건으로 귀결된다. 또한 그들은 어떤 목적을 지시하기 보다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해석은 한 방향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도록 개방하므로 작가나 관람자는 모두 해석자로서 각자 어느 사물이나 예술작품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예술가가 오랫동안 묻고 사유한 것들을 작품으로 드러내면 감상자는 그것을 다시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칸트나 헤겔이 말하는 추상적 보편성이 아니라 구체적 보편성으로 예술작품에서 비로소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의 창작행위는 그들이 제시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관람자가 수용하고 재인식하며 그들 안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새로운 생성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특정한 목적과 지향점을 갖게 되며 각자 나름으로 정의를 내린다. 가다머는 이것을 '선이해', '편견', '전승'이라 정의한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 특히 시대정신을 지니고 있는 예술가들은 인간의 삶, 그들의 정신세계, 시대상, 그리고 세계에 대한 체험 등을 그들의 창작행위를 통해서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공유한다. 그들의 작품에는 기억이나 사유 또는 비판의 필요성이 있는 인류의 삶이 녹아져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감상자의 정서를 뒤흔들기도 하고 강한 감동과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는 작품을 통해서 표출될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과의 내면적 교류의 소통을 통하여 관람자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완성된다. 본 논문에서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으로 삼은 주된 관점은 가다머의 '놀이 (Spiels)'라는 개념이다. 예술작품도 놀이고, 그 작품을 창조하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는 그 순간도 놀이다. 놀이의 주체가 놀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자체가 놀이 주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놀이하며 형성되는 작품의 존재는 놀이자가 예술 작품을 수용하게 되는 순간에 진정으로 생겨난다. 즉, 놀이한다는 것은 놀이 수행자가 '놀이'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놀이함의 가장 근원적 의미는 중간태적 의미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으며, 주관-객관 개념에 의해 접근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놀이가 놀이자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를 펼쳐 나간다. 그것은 표현되지 않으면 계속 숨겨지고 은폐될 것을 표현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가다머는 이 놀이를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 / Fusion of Horizon)'으로 열어가며 단순히 자기 현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놀이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기준이나 목표로 고정되어있지 않고 무한히 개방된 현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매 순간순간 달리 이해하며, 항상 새롭게,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예술가나 관람자 나름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실현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미메시스로 규정됨에도 불구하고 영향작용사와 적용의 문제에 의해 항상 달리 이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의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선 이해'에 의한 연결선상에서 이해된다. 해석학적 의식은 계속 변화하는 융합의 과정으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의식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다. 본 논문에서 예술이란 과거가 아닌 현재와 텍스트와의 긴장관계로 과거적 성격에 정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의 단계를 넘어 더욱 고차원적인 이해지평으로 인식의 문을 열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그것이 재현하고자 하는 오브제와 만남에서 그 터전을 진리자체로 만나는 긴장관계이며 이것이 다름 아닌 해석학적 지평이다. 예술은 언어와 표현의 매개체적 기능으로 사유와 존재의 융합을 시도함으로써 다른 차원으로 움직인다. 작가나 관람자는 살아온 삶의 궤적이 상이하지만 서로에게 공통감각이란 동일성의 요소가 존재하므로 공감과 차이를 반복하며 해석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해의 운동이란 작가나 관람자가 양자의 만남에서 자신과의 동일성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이성을 통해 새로운 존재 생성의 힘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존 듀이는 인간사회의 일상적인 활동을 예술과 관련시킴으로서 예술이란 일상에 대한 참여와 성장의 과정으로 인식하였다. 예술가는 일상의 부분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남다른 시각으로 읽어내고 소통한다. 본 논문은 언어와 표현의 해석학적 장치를 통한 시각표현 연구로 가다머의 '놀이' 개념인 무한한 이해의 운동을 통하여 해석적이면서 철학실천적인 실험 작품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언어와 표현을 통하여 작가의 '철학함'을 드러내고, 관람자는 작품과의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으로 이해하며 해석한다. 언어와 표현의 해석학적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드러남과 감춤'이라는 실험적인 시각 표현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움의 사건에 문을 열어주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예술 작품을 통하여 기존의 세계에서 은폐되어왔던, 그리고 은폐되고 있는, 혹은 은폐의 위험에 처해 있는 진리들을 세상에 재현한다. 그리고 이번 논증을 통해 철학적 해석학의 한 전범으로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드러나는 존재들에 대해 재조명하고 통찰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또한 연구자는 매순간 새롭게 해석되면서 존재되는 예술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유의미를 둘 것이다.;In the whole area of our society, a variety of fusion phenomena can be found. All over the whole society, this phenomenon of crossing boundary is forming a new viewpoint beyond individual genre and ideology. Especially, in the area of art, which has been the most sensitive to the trend, mutual fusion and complementation of various artistic genres are adding our interests doubly. As the fusion among genres comes to be obvious, artistic works that are difficult to classify their genres are appearing. The division of genre comes to be meaningless no more, furthermore the concept of art itself is changing. Now, it should be more accentuated how to make what contexts with what contents. Contexts which are decided according to the strategy of artists are regarded as the level of higher truth than the contents or the forms of sensitive arts. Artistic works can let the spectators to get the truth through the experiences of art, which can be evaluated as the formation of philosophical meaning by means of art. In this research, I intend to study experimental and conceptual works which stress intellectual meaning and thought among the trend of modern art. Gadamer suggests that the function of art to supply a certain of recognition, as the accident of recognition, belongs to the area of hemeneutics. According to Gadamer, art can be said to express universal truth of human spirits. This study is based on Gadamer's philosophical hemeneutics with infinite movement by which we can understand texts composed of artistic works using language and apply and reinterpret them ceaselessly. By doing so, we can attempt to compare our present situations with given inheritances and to open new ways different from previous ones. Gadamer as the originator of 'philosophical hemeneutics' takes advantage of the concept of game as important motive of existence for art. 'Games' in the works can play the role to open the door of recognition toward higher level of understanding in the relation of tension between the present and texts. In this research, I, as a artist, intend to make a speech against social contradiction, absurdity and anti-cultural reality. I regard artistic works, social by-products, not only as poetic, political, social, individual and cultural speeches, but also as the discourse about contemporary problems. Heidegger, Gadamer's teacher, asked about the meanings and conditions of human speeches together with linguistic questions in his thesis, Language (1950). Language enables hidden things until now not only to reveal themselves, also to let them exist eventually. When social speeches of artists include truth or facts, they are liable to degenerate into the level of news, topics or description of crimes happened really. I, as an artist, would like to develop contents to convey to artistic context by means of Gadamer's concept of 'game'. In this thesis, artists' creative behaviors include spectators' reception and reinterpretation of their suggestions and creation their meanings in a new way. That is to say, art can reveal existence of objects at last. The truths revealed in the works in this thesis do not always mean the true things. Truth and non-truth are coincided like front side and backside of coins, which can not be explained in view of absolute spirit. Rather, they maintain the position of intermediate state objectively with coincidence of revelation and hiding. In this thesis, I intend to suggest that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are existing at the same time evidently with breathing together in the reality. We used to suggest the visible to make and enjoy sensitive art and let the spectators to discover a certain meaning from the invisible. I try to find true meanings by means of reinterpretation of our past, history and present happenings which are forgotten through veil and unveil, being and non-being, existence and non-existence. And I continued to make works with the hope that the world can be changed and developed through hidden meanings. I tried to communicate with many people by maintaining the tension by not accepting the objectivity and the absolute as well as by keeping tension subtle balance not sided to one direction to the most. Therefore, this thesis is intended to think critically for various views with open-minded attitude rather to lead to one direction, and to make discourse for the social alternative for los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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