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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의 중일관계

Title
인정투쟁의 중일관계
Other Titles
Struggle for Recognition in the Sino-Japanese Relations : Japan's Foreign Policy toward China's One China Policy(1949-1972)
Authors
오승희
Issue Date
2016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최은봉
Abstract
본 연구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론에 대한 일본정부의 전후 외교정책을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국가 승인을 둘러싼 정치성에 주목하고, 승인을 확대한 인정 개념으로 전후 중일관계를 설명하였다. 일본의 자기 인정투쟁이 중국 승인 정책에 미친 영향을 네 가지 사례연구를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일본정부의 국제규범을 중시하는 자기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중국 인정정책의 변화가 나타났다. 일본의 중국 인정정책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의 영향을 받는다. 즉,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상대방에 대한 인정의 심화가 나타날 수 있다.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이상적 주권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의 맥락에서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외교정책 결정자들은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주권 회복과 강화를 내세우는 대내적 자기정당화를 강조하였고, 대외적으로는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중시하겠다는 대외정당화도 일반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일본의 자기정당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본정부의 외교적 위선은 패전국 일본의 인정투쟁 특징을 보다 잘 드러낸다. 일본의 자기정체성은 주권국가라는 이상적 자아와 패전국으로서 제한된 주권국가인 현실적 자아의 간극을 좁히려는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확인된다. 또한 일본의 대중국 정책은 중국이라는 타자가 가진 ‘하나의 중국’ 주장과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외압과 기회 사이의 간극이 중첩되면서 보다 복잡한 사고과정을 요구한다. 전후 중일관계에서 나타나는 복합적 괴리는 일본정부가 국가행위자로서의 인식과 국내 인식의 괴리를 조화시키기 위한 자기정당화에 내재된 자기정체성 확인으로 표현된다. 본 연구의 사례 분석에서 확인한 결과,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패전국에서 독립국으로,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 전후에는 아시아 경제선진국으로서, 1971년 유엔에서는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1972년에는 평화적 우호국가로서 일본의 자기 인정투쟁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중국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인정투쟁의 맥락에서 중국에 대한 인정 혹은 불인정을 행사한다. 1950년 초반부터 일본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정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일본은 항상 하나의 중국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언급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나의 중국론을 인정하면서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본 연구의 세분화된 인정개념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아시아 일본의 자기정체성이 자유세계 일원인 일본의 정체성과 중층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인정 단계를 심화하였다. 그러나 아시아가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제3자화되면서 아시아로의 협력이 중화인민공화국 승인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아시아 일본’과 ‘이웃국가 일본’의 자기정체성이 부각되어 나타났다.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교정상화가 아시아의 안전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함을 강조하면서, 아시아 속의 일본과 중국이 재확인된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 내의 위계서열에서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지역인식이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되어 나타난 것에서도 일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를 포함한 보다 넓은 차원에서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전후 극복을 위해 인정투쟁 중이다. 일본은 ‘비정상’ 국가에서 ‘정상’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일본과 중국이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지,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상호 인정을 심화시켜나갈 수 있을 때,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가능성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This research explains Japan’s foreign policy toward China in terms of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It focuses on the politics of recognition on the level of Sino-Japanese relations. The research analyzes Japan’s struggle for recognition and the recognizing of the China policy with four case studie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 in 1949, the issue of “Recognizing China” has been problematic due to the claim to the legitimacy of the Chinese government by both the PRC and the Republic of China (ROC). Both governments required that the international society recognize only one government as the Chinese representative government, the so-called “One China Principle.” However, Japan tried to recognize both governments based on the diverse interpretations of the One China principle. This research focuses on Japan’s original ideas on the recognition policy and its variation from 1949, the establishment of the PRC, to 1972 Sino-Japanese normalization. Japan’s policy on recognizing China seemed inconstant and ambiguous. To make it clear, this research specifies the concept of recognition based on the theories of recognition of Hegel, Mead and Honneth. Then, it draws on an analytic framework with the concepts of “struggle for recognition,” “self-justification” and “diplomatic hypocrisy.” Self-justification is analyzed with four classified types insisting on international morality (IM), Cold War ideology (CI), regional cooperation (RC), and history and culture (HC). And diplomatic hypocrisy came from the concept of organized hypocrisy by Stephen Krasner, and it is elaborated with four techniques―shelving, layering, demarcation, and iridescence. There are four case studies applying the research frameworks to Sino-Japanese relations. In the first case, the Japanese government was faced with the issue of determining one Chinese government to sign the San Francisco treaty in 1951. The second case is about the participation of PRC in the 1964 Tokyo Olympics. The third case deals with Japan’s position on the PRC’s entry into the UN in 1971. And the fourth case is Japan’s recognizing China in the 1972 Sino-Japanese normalization. As the results of the research, Japan’s recognition of China could be understood in the process of its struggle for recognition, from a defeated nation to a member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And Japan’s self-identification led to the policy of recognizing China. Japan acknowledged PRC’s existence in 1949 and PRC’s rights in 1962. And Japan accepted PRC’s lawful rights from 1971. On the other hand, Japan accepted ROC’s lawful rights with the Japan-ROC peace treaty in 1952, respected ROC’s rights in 1971, and then tried to preserve its rights in 1972. And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Japan acknowledged the One China Principle, but it tried not to accept the principle. But Japan had no choice but to accept the legal requirement of the One China Principle with the Sino-Japanese Joint Communique in 1972. In terms of the self-justification, the IM type had been fundamental in every case study. IM was combined with CI (1952), RC (1964) and HC (1972), and led to the change of the recognition policy. And IM-centered self-justification reflects Japan’s diplomatic hypocrisy. Finally, this research reveals that diplomatic hypocrisy has played ambivalent roles―as a facilitator and an obstacle―in Sino-Japanese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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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정치외교학과 > Theses_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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