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236 Download: 0

조선전기 인화상감자기(印花象嵌瓷器) 연구

Title
조선전기 인화상감자기(印花象嵌瓷器)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Inhwa Sanggamjagi(印花象嵌瓷器, stamped and Inlaid celadon) during the first of Joseon dynasty
Authors
구유리
Issue Date
2016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Inhwa Sanggamjagi’(印花象嵌瓷器, stamped and Inlaid celadon) was produced in the kiln sites of the whole country from the 4/4 quarter of the 14th century to 3/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which has the characteristic of standardizing the material and composition of engraving technique, formation, pattern. This research investigated by classifying into total three groups by aggregating the kiln structure, engraving technique, model and formation, pattern material and composition to search the production background and the actual state of this Inhwa Sanggamjagi. During the 4/4 quarter of the 14th century to 1/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that belongs to group 1 was the historical transition period from Goryeo to Joseon, when ‘Naeyongjagi’(內用瓷器, Porcelain Produced for the Royal Court) such as ‘aseonmyeongcheongja’(司膳銘靑瓷), ‘Deokcheonmyeongcheongja’(德泉銘靑瓷) and some inscribe celadon with royal family’s establishment(王室府銘瓷器) were produced. Since 1380s, the government officials of ‘Saongbang’(司饔房) supervised and received tributary porcelain in turn through Che-a-jik(遞兒職), however the method was changed to the method of individually managing and receiving at each government office since 1417. Kiln structure, engraving technique, formation, pattern material succeeded late Goryeo Sanggamcheongja, and since 1420s, when the formality(式例, the standard and manufacturing method of tributary products) was established, pattern and composition began to show different aspect from the previous time. The period, 1/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to 2/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which belonged to group 2, was operated under ‘Gaksawijeon’(各司位田) system that individually managed Suji(收支) by assigning ‘Wijon’(位田) to ‘Gyeongjunggaksa’(京中各司, the authorities in Seoul), while Inhwasanggamjagi was received as one of the tributes of Wijon. Method of reception was through Joun system(漕運, Marine Transportation System with Public Boat), or was offered to Gyeongjunggaksa at the local government office. Kiln structure mostly succeeded Goryeo cheongja kiln as group 1, some kilns showed the aspect of transition to Baekja kiln structure. According to engraving technique, Inhwa sanggam method [B] showed average 35.4%, the highest ratio. In respect of pattern material, flower group pattern(集團花文), consecutive flower group pattern(集團連續花文, 集團連圈文), Sungryeom pattern(繩簾文, Straw-rope Pattern), Wrinkle pattern, etc. were densely engraved inside·outside of Ⅱ·Ⅲ forms of Bawl and Ⅲ form of dishes. The period 2/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to 3/4 quarter of the 15th century which belonged to group 3, showed the tendency that production quantity of 'Royal family's establishment(王室府) engraving decreased and formative mode declined, as source of revenue, Wijon of Royal family's establishment(王室府) was broken down based on ‘Kukyongjunje’(國用田制), enforced during Sejong 27th year 1445. Kiln structure showed structural change, flat shape of entrance of firing place changed from an oval·egg shape to yeokjehyeong·(rectangle) square, and stair(段) or fire pillar(停焰柱) was established on the Firing Chamber floor, etc. In respect of engraving technique, Inhwa bunjang technique(stamped and White slip Decoration) showed the 40.9%, the highest ratio, ‘Gwiyal’(White slip Painted Decoration)·‘Deombeong’(Dunk in White Slip Technique), and Baekja, which were not found in group 1~2 appeared 28.3%, 19.2%, respectively. Regarding pattern material, Sungryeom pattern(繩簾文, Straw-rope Pattern), wrinkle pattern, etc. were mainly engraved, in respect of formation, Ⅱ·Ⅲ forms of Bawl and Ⅲ·Ⅳ forms of dishes were mainly determined. By suggesting a new opinion related to the above Inhwa Sanggamjagi, historical research significance of this research could be summarized in brief as follows. First, stereotypical pattern structure of Inhwa Sanggamjagi is the result of extracting formative pattern inside various handicrafts, through this status of craft of Inhwa Sanggamjagi could be enhanced. Second, this research considered details of Saong, related to supervision(監造) and reception of tributary pottery from 1380s to 1417s based on『Jurye(周禮)』, and investigated the details of being included in the official system(官制) of Joseon. Third, concretely considered by connecting the background that Inhwa Sanggamjagi was manufactured with standardized formative mode with the process of repairing financial system of early Joseon. Fourth, analyzed state of excavated relics of production ruins and consumption ruins on the whole, and selected detailed chronology based on this.;印花象嵌瓷器는 14세기 4/4분기부터 15세기 3/4분기에 전국의 가마터에서 제작되었으며, 생산요장에 관계없이 시문기법·기형·문양의 소재 및 구도 등이 통일된 양상을 보인다. 이는 인화상감자기가 京中各司에 납입된 ‘供上用 貢納瓷器’라는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본 논문은 이러한 인화상감자기의 제작배경 및 실체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논지의 기본시각은 조선전기 재정시스템이 공납자기의 운영방식뿐만 아니라 조형양식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供上制度가 정비되는 과정 속에서 인화상감자기의 성격을 규정했다. 인화상감자기는 기물의 내·외면을 소형문양으로 촘촘하게 인화한 뒤에 오목하게 음각된 문양부분을 상감한 것으로, 인화와 상감이 결합된 복합적인 시문공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現도자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자기를 ‘인화분청사기’라고 통용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상기 시문과정이 용어에 내포될 수 있도록 ‘인화+상감’자기라고 명명했다. 장식의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규칙성과 반복성을 특징으로 하는 도안화된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공예품에 공유된 탑자도안(搭子圖案)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 또한 특정 기형과 문양소재는 고려말기 干支銘靑瓷의 조형계보를 계승한 것으로, ‘司膳’銘자기와 일부 ‘王室府’銘자기를 거쳐 인화상감자기로 이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인화상감자기가 제작지역에 관계없이 규격화된 조형양식으로 제작된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 자기 제작단계부터 조형양식을 監造하고 收取한 司饔에 대한 문헌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司饔(房)은 元의 宿衛인 怯薛(kesig)로부터 영향을 받아 고려 13세기 중반에 도입된 成衆愛馬의 일원이며, 조선에서는 『周禮』를 전거로 편제되었음을 새롭게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사옹방 소속 差備들이 조선 초기까지 공납자기를 監造하고 收取하는 업무를 교대로 수행했음을 遞兒職制의 운영원리를 통해 규명했다. 이 과정에서 1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사옹방에 祿官이 설치되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사옹방 소속 官員의 구성 및 品階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1380년대부터 사옹방에서 外貢砂器를 수취하던 방식은 1417년 4월에 제안된 分定上納을 계기로 各司에서 개별적으로 漕運을 통하거나 地方各官이 직접 京中各司에 상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당시는 고려말기 왕실 사장고의 財源을 승계한 조선 王室府가 수조지(位田)를 분급 받아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용하는 各司位田 體制로 운영되었으므로, 인화상감자기는 位田稅條 貢物의 하나로 수취되었다. 1426년에는 財源을 일원화하기 위한 일환의 하나로 式例가 제정되었는데, 이때 供用 物産의 규격 및 제조방식[制造之式]도 함께 상정되면서, 정형화된 양식의 인화상감자기가 전국적으로 확대·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世宗27년(1445)에 실시된 國用田制를 계기로 位田이 혁파되고 國用田으로 공속화되면서, ‘王室府’銘자기의 제작비중은 급격히 감소된 반면 司饔院에 官營 沙器所가 설치될 수 있는 재정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인화상감자기를 주로 생산한 가마는 총 183개소 279기로 추산되며, 지역별로는 충청도(37개소, 20.2%)·전라도(62개소, 33.9%)·경상도(69개소, 37.7%)에 집중된 양상을 보인다. 상기 생산요장 가운데 잔존상태가 양호한 30개소 47기를 선별해 가마구조를 분석한 결과 평균 15.1°의 경사면에 입지한 單室登窯로 확인되었다. 반면, 가마의 내부시설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주로 인화상감자기와 백자를 동반 생산한 일부 가마를 중심으로 연소실의 평면형태가 원형·타원형에서 난원형·(장)방형·역제형으로 전환되거나, 번조실 바닥에 불턱이나 불기둥이 조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상기 가마터에서 출토된 기종은 발·접시·잔·잔탁·병·호·고족배·장군 등이다. 본문에서는 이 가운데 높은 출토비중을 보이는 발과 접시를 대상으로, 각각의 세부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발의 경우 총 3형식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Ⅰ형식이 Ⅱ·Ⅲ형식에 비해 선행하며, Ⅱ·Ⅲ형식은 전체 인화상감자기 발의 37.3%, 41.2%의 비율로 확인되어 당시에 선호된 기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접시는 총 4형식으로 분류한 결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Ⅰ)+Ⅱ+Ⅲ형식에서 Ⅱ+Ⅲ+Ⅳ→Ⅲ+Ⅳ형식으로 이행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Ⅲ형식은 전시기에 걸쳐 고루 확인되었으며, 전체 인화상감자기 접시의 약 41.7%라는 높은 비중으로 출토되어 주요 품종으로 양산된 것으로 보인다. 시문기법별로는 음각상감, 인화상감[A]·[B]식, 인화분장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무문백자, 인화백자, 상감백자 등이 소량 출토되었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음각상감→인화상감[A]→인화상감[B]→인화분장으로 이행되는 뚜렷한 경향이 확인되었다. 인화상감자기 문양의 표현방식은 앞서 살펴본 발과 접시에서 특유의 정형화된 문양구도를 보이는데, 시문기법의 종류에 따라 문양의 소재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즉, 고려말기 상감청자에서 파생된 纏枝蓮花文, 雲鶴文, 池塘小景·滿池嬌 등은 음각상감기법과 인화상감기법이 혼용되어 시문되었으며, 학문, 구름문, 3~7원문, 小花文, 구갑문, 연주문, 여의두문 등은 주로 인화상감[A]식으로 시문되었다. 集團花文, 集團連續花文, 集團連圈文, 繩簾文, 주름문처럼 단위문양 자체가 시문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경우는 인화상감[B]식과 인화분장으로 시문되었다. 한편 인화상감자기에는 제작지를 의미하는 지역명과 최종 소비처를 의미하는 관사명이 시문된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근거로 생산지부터 최종 소비지에 이르는 이동경로 및 실제 사용계층의 성격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명문 인화상감자기의 소비유적을 ‘宮闕 및 관아지, 왕실관련 사찰, 해저유적’과 ‘사찰, 시전행랑, 기타유적’으로 양분한 뒤에 각각의 출토현황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인화상감자기는 기존에 알려진 官用 이외에도 다양한 소비층의 수요를 충족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살펴본 가마 구조·시문기법·기종 및 기형·문양 소재와 구도 등을 종합해 인화상감자기 생산요장을 총 세 개의 군집(群集)으로 분류해 세부편년을 설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1군에 해당하는 14세기 4/4분기에서 15세기 1/4분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행되는 역사적 전환기로, 司膳·德泉 같은 內用瓷器와 일부 ‘王室府’銘자기가 제작되었다. 가마구조·시문기법·기형·문양소재는 고려말기 상감청자를 계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2군에 해당하는 15세기 1/4분기에서 2/4분기는 各司에 位田을 분급해 독자적으로 收支를 운용하는 經費自辦의 원리가 한시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인화상감자기는 位田稅條 貢物의 하나로 수취되었다. 또한 1380년대부터 사옹방에서 外貢砂器를 監造·收取하던 방식은 1417년에 제안된 ‘分定上納’을 계기로 各司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수취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가마구조는 1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고려 청자가마를 계승했으며, 보은 적암리의 방형 연소실처럼 일부 요장에 한해 백자가마 구조로 이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시문기법별로는 인화상감[B]식이 평균 35.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集團花文, 集團連續花文, 集團連圈文, 繩簾文, 주름문 등이 발Ⅱ·Ⅲ형식과 접시 Ⅲ형식의 내·외면에 촘촘하게 시문되었다. 이상과 같은 전형적인 인화상감자기의 조형양식은 1426년에 供用 物産의 규격 및 제조방식[制造之式]을 상정한 式例를 계기로 확대·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3군에 해당하는 15세기 2/4분기에서 3/4분기는 세종27년(1445년)에 시행된 國用田制를 계기로 王室府의 재원인 位田이 혁파되면서, ‘王室府’銘자기의 제작량이 감소하고 조형양식은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마구조는 연소실의 평면형태가 타원형·난원형에서 역제형·(장)방형으로 이행되고, 번조실 바닥에는 段을 조성하거나 불기둥을 설치하는 등의 구조적인 변화를 보인다. 시문기법별로는 인화분장기법이 40.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1~2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귀얄·덤벙과 백자가 각각 28.3%, 19.2%의 비율로 확인되었다. 문양소재는 繩簾文, 주름문 등이 주로 시문되었으며, 기종별로는 발Ⅱ·Ⅲ형식과 접시 Ⅲ·Ⅳ형식이 주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화상감자기의 성격 및 연구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화상감자기의 정형화된 문양구도는 다양한 공예품에 내제된 조형패턴이 추출된 결과로, 이를 통해 인화상감자기의 공예적인 위상을 재고해 볼 수 있다. 둘째, 사옹의 연원을 『주례』를 전거로 고찰하고 사옹방의 운영방식을 체아직을 통해 규명함으로서, 공납자기의 운영방식 및 수취체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셋째, 인화상감자기가 규격화된 조형양식으로 제작된 배경을 식례가 상정되는 과정과 연관해 고찰했다. 넷째, 인화상감자기의 쇠퇴를 국용전제의 시행과 관련지어 설명했으며, 사옹원에 관용 사기소가 설치되는 주요 원인으로도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섯째, 생산유적과 소비유적의 출토유물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세부편년을 설정했다. 이상 인화상감자기는 전국에서 공납된 공용물산의 운영방식 및 제작체제를 반영한 현전유물로서, 조선의 관영 수공업체제가 완비되기 이전에 전국에서 공납된 수공예품이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통제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고려말기 강진자기소가 해체되고, 조선의 관요가 설립되기 이전까지 內用 및 官用자기의 제작원리 및 수취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도자사적으로도 연구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인화분청사기(印花粉靑沙器), 탑자도안(搭子圖案), 공납자기(貢納瓷器), 사옹방(司饔房), 체아(遞兒), 식례(式例), 각사위전(各司位田), 국용전제(國用田制)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