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32 Download: 0

북한의 군사주의와 '항일빨찌산' 이데올로기

Title
북한의 군사주의와 '항일빨찌산' 이데올로기
Other Titles
Militarism of North Korea and the ‘Anti-Japanese Partisan’ Ideology: Focused on the period of 1945~1960s
Authors
김미선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차남희
Abstract
This thesis studies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militarism, ‘Anti-Japanese Partisan’, as the governing ideology in North Korea during the period from liberation to 1960s. In North Korea, the establishment of Kim Il Sung’s monolithic system was achieved in line with the process where political power of North Korea converged on Kim Il Sung and his comrades group named ‘Manchu Faction’(or ‘Manju-pa’ in Korean), the anti-Japanese armed struggle group based on Manchuria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members of ‘Manju-pa’ were basically soldiers and they were one of the groups who utilized their anti-Japanese armed movement most actively. They defined themselves as ‘Anti-Japanese Guerrilla Unit’, and with this group identity, they led the creation of Korean People’s Army after liberation from Japan. When founding a standing army in North Korea, they preoccupied the value system that could help them reproduce and infiltrate their group identity and values into society by establishing the military institute called ‘Pyeongyang School’(or ‘Pyeongyang Hagwon’ in Korean). In the process of military education, they emphasized their anti-Japanese guerrilla struggle and tried to make this experience the origin and the ideology of Korean People’s Army. Korean War was an opportunity for Kim Il Sung and ‘Manju-pa’ to be able to expand their power base politically and socially beyond military. In a political aspect, during the war, Kim Il Sung and ‘Manju-pa’ could get rid of their major political rivals; ‘Yanan Faction’(or ‘Yeonan-gye’ in Korean), ‘Soviet-Korean Faction’(or ‘Soryeon-gye’ in Korean) and the ‘Faction of Workers Party of South Korea’(or ‘Namrodang-gye’ in Korean); and seize power in the party. That was achieved specifically through ‘Hwaseon-Ipdang’which was the realignment policy of the party taking soldiers at the battle field as party members. With this strategy Kim Il Sung and ‘Manju-pa’ was able to transplant their power base in military into the party. Furthermore, in a social aspect, war played an important role of building a social foundation of the military mobilization system. With the outbreak of war, North Korean government operated the systems of wartime production and labor mobilization, organizing the whole society in a way of the military organization.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when North Korea was occupied by United Nations Command, the society was reorganized into guerrilla units whose model was ‘Anti-Japanese Guerrilla Unit’ of Kim Il Sung and ‘Manju-pa’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is experience of war socially internalized the personal experience of Kim Il Sung and ‘Manju-pa’ and their anti-Japanese guerrilla movement, which eventually became the governing ideology called‘Anti-Japanese Partisan’ in the process of post-war reconstruction. After the purge in August, so-called ‘August Faction Incident’, which culminated in Kim Il Sung’s monolithic system, Kim Il Sung and ‘Manju-pa’ who seized complete control over party, government and military, started to fabricate history of their anti-Japanese guerrilla struggle, ‘Anti-Japanese Partisan’, and made this experience the founding ideology of the party and the state. The ‘Anti-Japanese Partisan’ ideology transformed military values of bellicosity, patience, sacrifice and obedience into North Korean way of socialism; ‘Socialist Patriotism’ and ‘Juche Ideology’. Consequently, it could be found that the ‘Anti-Japanese Partisan’ ideology is forming a basic framework of the governing ideology in North Korea.; 이 논문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유일지배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이 만주파라고 하는 군사부문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특정 정치세력으로 정치권력이 집중하는 과정과 일치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여 북한에서 통치이데올로기로서 군사주의가 형성·발전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직후 만주파가 군대 창설에 착수하는 시기부터 시작하여, 전쟁을 거치고 전후 경제복구건설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김일성과 만주파의 개인 경력으로서의 항일무장투쟁 활동이 어떻게 활용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내용적으로 체계화·이념화 되어 갔는가를 규명해 보았다. 김일성과 만주파는 남한 정부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의 근거로서 내세워졌었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룹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항일유격대’라고 지칭하였고, 이와 같은 군사집단으로서의 자각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군대의 창설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해방 직후 3·8선 이북지역에 난립하고 있던 무장 세력들을 규합하여 중앙집권적 지휘명령체계를 갖추었으며, 특히 평양학원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함으로써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가치관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체계를 일찌감치 선점하였다. 군사교육과정에서 만주파는 그들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강조하였고, 이를 창군이념화 함으로써 항일유격대를 조선인민군의 기원이자 정신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보였다. 조선인민군의 창군 직후 발발된 전쟁은 김일성과 만주파가 그들의 세력기반을 군대를 넘어 정치적·사회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특히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났다. 우선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전쟁은 만주파가 연안계·소련계·남로당계 등 그들보다 정치적으로 우세한 경쟁세력을 제거하고 당권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조중연합사령부 시기의 ‘화선입당’의 방법을 통한 당 조직의 재정비를 통해서 군대 내 만주파의 세력기반을 당으로 이식함으로써 가능했다. 다음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전쟁은 전시생산체제 및 그에 따르는 전시노동동원체제의 가동을 통해 군대식의 노동동원 시스템이 전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특히 피점령기 동안의 사회의 유격대식 편제는 만주파의 개인적 경력으로서의 항일유격대 경험을 사회적으로 내재화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전쟁의 경험은 전후 경제복구건설 과정에서 ‘항일빨찌산’ 이라고 하는 이념화 된 군사주의 논리로 발전되었다. 전쟁으로 파탄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김일성과 만주파는 중공업우선노선을 견지하였고, 이것은 소련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경공업우선세력과의 정치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56년 김일성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을 순방하는 기회를 틈타 소련계 박창옥 등이 도모한 조선로동당 내 김일성 우상숭배 비판이 결국 ‘8월종파사건’ 이라는 정치적 숙청으로 이어짐으로써 만주파는 당·정·군 내의 이질세력을 일소하고 국가 권력기구를 통일적으로 장악, 김일성 유일지배체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항일유격대활동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체계화 하여 ‘항일빨찌산’ 이라고 하는 군사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었다. 군사주의로서 ‘항일빨찌산’은 전투정신, 인내, 희생정신, 명령과 복종과 같은 군대의 가치를 경제의 복구건설을 위한 노동동원의 이념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및 주체사상과 같은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로 발전, 북한 통치이데올로기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였고, 이와 같은 군사주의에 바탕을 둔 통치이데올로기가 바로 오늘날 북한 체제의 퇴행성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정치외교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