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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연구

Title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Gilt-bronze Sarira Reliquary from Three-story Stone Pagoda at Biroam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Authors
노재은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동화사 비로암의 석탑과 그와 함께 조성된 사리장엄구는, 그 안에 내장되어 있던 민애대왕석탑사리호의 명문에 의해 863년에 경문왕이 민애왕의 추복을 위해 발원하여 동화사의 원당 앞에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기록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통일신라시대 불교 미술에서 조성 연대와 발원자, 발원 목적이 명확히 밝혀진 의미 있는 자료이다. 동화사 비로암 석탑의 사리장엄구는 1969년에 황수영의 논문을 통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되었다. 특히 비로암 석탑에 내장되어 있던 금동사리외함의 한쪽 면에는 지권인을 결한 여래상이 머리에 보관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 연구에 있어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비로암 석탑의 사리외함은 도굴된 이후 4매로 분리된 채 수습되었기 때문에 매납 당시의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에 금동판 4매를 배치했던 순서와 방향을 연구자마다 서로 다르게 파악한 경우가 발생하여 그 도상 연구에 혼동을 야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동화사 비로암 석탑의 사리외함을 분석하기 이전에 우선 민애대왕석탑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비로암의 석탑과 그에 따른 사리장엄이 조성된 배경을 경문왕대의 재위 초기의 상황과 연관하여 살펴보았다. 헌안왕의 사위로서 그의 유조에 의해 즉위한 경문왕은 왕위를 계승하기에 혈연적인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즉위 과정에서 진골 귀족들의 반발이 있었다. 이에 경문왕은 재위 초기에 분열되어 있던 진골 귀족 세력들을 통합하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심지의 동화사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경문왕은 인겸계의 심지가 주석하고 있던 동화사에서 자신의 조부인 희강왕을 죽음으로 몰고 간 민애왕을 위하여 탑을 세우고 원당을 조성하는 불사를 일으킴으로써 당시 적대관계에 있던 인겸계 귀족들을 회유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불사를 주도한 심지는 헌덕왕의 아들로, 왕족 출신의 승려로서 흥덕왕대부터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심지는 왕족 출신의 승려였기 때문에 신라 하대 왕실에서 왕권 강화를 위한 불사를 일으키고자 했을 때 이에 호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지는 신라 하대 왕실에서 인겸계에 속하는 인물로 민애왕과는 사촌형제 관계였기 때문에, 경문왕이 민애왕을 위한 불사를 일으키고자 했을 때 심지의 동화사를 가장 적합한 장소로 파악했던 것이다. 또한 경문왕은 동화사에 불사를 일으킴으로써 당시 지방에서는 크게 유행하고 있던 진표계 법상종의 미륵신앙을 수용하고 포섭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동화사 비로암에서 이루어진 불사는 궁극적으로는 왕권을 강화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일으킨 왕실 불사였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리외함의 각 면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이를 장치한 방법과 배치한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동화사 비로암 석탑 금동사리외함의 4매의 금동판들은 도금을 하고 문양을 새긴 면이 사리공의 안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지권인 면 – 촉지인 면 – 약기 면 – 합장인 면의 순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사리장엄 형식과의 비교를 통해 비로암 석탑의 사리장엄구는 금동과 납석, 은, 녹색 유리의 다양한 재질로 구성된 중첩된 용기를 사용한 점, 내용기로 당시에 유행하던 납석제 호형 용기를 내장한 점, 무구정경에 근거하여 소탑을 함께 봉안한 점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사리장엄의 시대적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납석제 용기의 표면에 흑칠을 하여 문양과 명문을 새긴 점과 4매의 금동판을 폐쇄적인 함의 형태가 아니라 상하가 개방된 벽의 형태로 장치한 점, 그리고 이전까지는 사리장엄 표면 장식에 활용하지 않았던 여래상의 도상이 최초로 나타난 사례라는 점 등에서는 동시대의 다른 사리장엄과 차별적인 표현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사리외함의 4면의 금동판에 표현된 여래상의 도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는데, 도상의 표현에 있어서도 통일신라시대의 시대적인 양식을 따르면서 동시에 차별성을 추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권인을 결한 여래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도상으로, 금강계 밀교의 주존인 대일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시대의 사방불 표현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특한 요소로, 비로암 석탑의 사리장엄을 조성하면서 특히 차별성을 추구한 부분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 사리장엄의 여래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체계화된 중기 밀교의 사상과 그 도상이 유입되어 있었던 정황을 보여 주는 사례로서도 그 의의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약기인의 여래는 약사여래로, 촉지인의 여래는 석가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사방불 조상의 경향에 따라 당시에 널리 신앙되고 있었던 불격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동화사 비로암 석탑의 사리장엄은 동시대의 시대적 양식을 따르면서도 곳곳의 요소에서 차별성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비로암 석탑 불사가 경문왕의 발원에 의해 이루어졌고 왕족 출신의 승려인 심지가 주도하였던 왕실 불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문왕대에는 왕권 강화를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어느 왕대 못지않은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이 시기에는 불교 조형물이 많이 조성되었으며 중대의 경덕왕대에 버금가는 예술의 발전이 이룩되었다. 동화사 비로암 석탑의 사리장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경문왕대 왕실 불사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유물로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stone pagoda in Donghwasa temple have an inscription ‘Sarira urn from stone pagoda of King Minae(敏哀大王石塔舍利壺)’ within, which confirms that they were produced by King Kyungmoon(景文王) in order to wish for the bliss of King Minae the great(敏哀大王). Since only handful records are remaining, this is a significant resource for Buddhist Arts of Unified Silla Era with its clear record of time, a creator, and a purpose of construction. The stone pagoda and reliquaries were first introduced by Hwang sooyoung’s thesis in 1969, and they have been examined with various perspectives from then on. In particular, the image of Buddha with the Bodhtagri Mudra(智拳印) and a crown on the gilt-bronze plates of Sarira reliquary brought much attention to studies of Unified Silla Era’s Buddhist Arts. Studies of Vairocana Buddha Statues with Bodhtagri, Four-directional Buddha(四方佛) of Five-directional Buddha(五方佛), and arts of Esoteric Buddhism were frequently related for similarities. However, original and burial status of the reliquaries is not identifiable due to the grave robbery and restoration later. 4 gilt-bronze plates were separated and pieces were collected discretely, which caused researchers to design the plates in different directions and orders. Thus different theories over the direction and the order of the plates caused confusion on many studies related to them. In this study, I will first look at the inscription of ‘Sarira urn from stone pagoda of King Minae’ and relate to the era of King Kyungmoon’s reign to observe the background of creating the stone pagoda and the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Donghwasa temple(桐華寺). Succession from King Heonan(憲安王) to his son in law, King Kyungmoon lacked royal legitimacy of blood ties and caused resistance from Jingol(眞骨) aristocrats during the process of accession. Thus the King’s first and most urgent task was to appease and unify these divided Jingol aristocrats. In this process, King Kyungmoon turned to Simji(心地)’s Donghwasa temple. Donghwasa temple was in charge of Simji, whom was sided to Ingyeongye, and the King built a stone pagoda and conducted Buddhist services for the bliss of King Minae of the other world. King Minae led King Kyungmoon’s father, King Huigang(僖康王) to his death, yet King Kyungmoon served for King Minae in order to conciliate Ingyeongye(仁謙系) Aristocrats to his side. Also, Simji, who led the Buddhist service, was a monk with royal ancestry and kept close relationships with royal family of Silla since King Heungdeok(興德王). Because Simji was a member of royal family and a Buddhist monk, he may have accepted the Buddhist services to strengthen authority for late Silla royal family. Furthermore, Simji belonged to Ingyeongye and was a cousin of King Minae. For such reasons, King Kyungmoon chose Simji’s Donghwasa temple as most suitable location to conduct Buddhist services for King Minae. In addition, king Kyungmoon attempted to accommodate Jinpyo(眞表) Line’s Beobsangjong(法相宗, Dharma-character School) and maitreya faith, which was widely spread throughout provinces. Therefore, the conduct of Buddhist services at Biroam of Donghwasa temple ultimately were Buddhist services to strengthen royal authority. Next, I took a close examination each side of the Sarira reliquaries and identified the installation method and the direction. As a result, it came to a conclusion that the 4 plates protecting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were plated with gilt and bronze, pattern sides were faced inwards of rectangular, and plates were connected in the orders of 智拳印 - 觸地印- 藥器印 - 合掌印. In addition, the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Stone Pagoda consist of gilt-bronze, agalmatolite, silver, and green glass. Agalmatolite, prevalent material for container in this era, was integrated at inner side. The reliquaries were enshrined along with small pagodas, which means they were in accordance with ‘Spotless Pure Light Dharani Sutra(無垢淨光大陀羅尼經)’. These features demonstrate that the Sarira reliquaries followed styles of Unfied Silla Era’s Sarira reliquaries. However, the Sarira reliquaries also contain unique features that differentiate from others in this era. Agalmatolite surface was painted black with inscriptions and patterns. The four plates were installed with opened formation, not enclosed. It also is an instance of Buddha statue was engraved on reliquaries surface for the first time in Unified Silla Era. I also looked into inconography of the four directional Budhha in the gilt-bronze plates protecting Sarira reliquaries with both trending style and unique features as well. The Buddha statue with Bodhtagri has coronet on his head, which is a rare instance in Buddhist artifacts of Korea, suggests that it represents Maha Vairocanna of Vajra-yana. Such type of Four-directional Buddha expression has not been found in this era. Therefore the four-directional Buddha differentiates from others with its uniqueness and has a significance in Esoteric Buddhism philosophy and arts spreading throughout Mid Unified Silla Era. In addition, the expression of the Buddha of 藥器印 was Bhaisajyaguru and the Buddha of 觸地印 was Sakyamuni. In accordance with tendency of four-directional Buddha in Unified Silla Era, these features suggests widely worshiped Buddhas of the time.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stone pagoda in Donghwasa temple properly followed a pattern of the era, but also contained distinguishable unique features. This could have been created since Donghwasa temple’s Buddhist services were led by King Kyungmoon and Simji joined to strengthen royal family. During the process of the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King Kyungmoon made full use of Buddhism. Consequently numerous Buddhism services and artworks were created, thus Buddhism Art was able to flourish as grand as King Kyungduk(景德王)’s era of mid Unified Silla. Therefore, Sarira reliquaries of Biroam stone pagoda in Donghwasa temple can be regarded as an significant artifact of royal Buddhism services in King Kyungmoon’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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