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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본 청구영언」소재 만횡청류의 존재 양상 연구

Title
「진본 청구영언」소재 만횡청류의 존재 양상 연구
Other Titles
The Study of the Presence Aspect of Manhuingchunglyu in ≪Jinbon Chungguyoungun≫
Authors
신윤경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최재남
Abstract
본 논문은 『진본 청구영언』의 편찬 체재와 김천택의 작품 수집 태도 그리고 수록 작품의 분석을 기반으로 하여 18세기 초, 문자로 정착되기까지 구비 전승 형태로 향유되던 다양한 노래들의 모음인 만횡청류(蔓橫淸類)의 연원을 추정하고 그 존재 양상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횡청류(蔓橫淸類)는 영조4년(1728) 김천택이 편찬한 『진본 청구영언』에 수록되면서 시가사(詩歌史)에 편입된 노래들의 모음으로, 내용이나 형식 차원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116수의 노래들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 연행의 현장에서 향유되던 구비 전승물로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가집 편찬자인 김천택이 직접 쓴 만횡청류서(序)에 의거, 만횡청류를 노래의 역사성과 향유의 현재성을 아우르는 가창물로 보고 그 생성과 전승, 향유 차원에서 접근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즉, 만횡청류에 대한 논의는 『진청』이 편찬되던 18세기 초 사회ㆍ문화적 맥락과 편찬자 김천택의 편찬 의도를 살핌과 동시에 문헌기록 이전의 형태 즉, 당시 가창물로 연행되던 다양한 형태의 노래를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진청』의 편찬 체재는 김천택의 편집자적 태도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만횡청류 또한 그의 적극적 수용 태도를 기반으로 가집에 수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던 김천택이 시대ㆍ악곡ㆍ작가라는 세밀하고 엄정한 기준을 마련하여 일련의 노래를 배치한 후 별도의 서(序)를 스스로 쓰고 만횡청류 116수를 따로 수록한 것은 이 노래들이 같은 가집의 앞 부분에 실린 464수와 다르다는 인식에 따른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116수의 노래가 분류될 수 있는 정연한 가곡이었다면 이미 분류 체계 속에 편입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당대 가곡창의 범주에 전적으로 편입시킬 수 없는 가곡창의 경계 지대에 모호하게 머물던 노래들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 지대에 있던 노래들은 이후 가곡집에 무리 없이 편입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만횡청류가 시가사에 등장함으로써 가곡창의 영역을 넓히는 활로가 되어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진청』이 정연하게 편제되었다는 것은 김천택의 능동적인 편집자의 역할을 자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횡청류의 116수 작품 또한 『청진』을 편제한 원리 즉, 가창물로서 노래가 가지는 향유 상황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편제 원리로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대의 명사(名士)와 종친(宗親) 신분이었던 정래교와 이정섭의 글은 신분적 한계로 인한 김천택의 염려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전통적 시교론(詩敎論)의 초점이 선악(善惡)의 미추(美醜)를 함께 보여 민풍(民風)을 교화(敎化)하고자하는 목적에 있음에 비해, 그들의 경우 노래의 효용을 진기(眞機)의 표출, 그 자체에 두고 있다. 이는 김천택이 노래의 향유 기반에 관심한 것과 같은 시각이다. 흔히 만횡청류를 ‘사어음왜(辭語淫哇)’나 ‘의지한루(意旨寒陋)’라는 평어로 이해하려 하지만 만횡청류를 가집에 편입시키는 데 작용한 중요한 평어는 바로 ‘유래이구(流來已久)’와 ‘표표성행어세(表表盛行於世)’이다. ‘유래이구’는 오랜 시간 유전된 노래에 담긴 시간의 역사성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고 ‘표표성행어세’는 가집 수록 당시까지 세간에서 널리 불리던 향유의 현재성을 뜻한다. 특히 ‘표표’하다는 의미는 당대 여러 노래들 중에서 눈에 띠게 돋보이는 노래들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므로 만횡청류에 수록된 노래들의 존재 양상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만횡청류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기존 시가에서 노래의 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있으며 민요와의 친연성을 드러내는 것 또한 확인된다. 민요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집약되어 노래로 불릴 때 발생한다. 따라서 민요는 개인의 노래가 아니라 만인의 노래이다. 『진청』에 수록된 만횡청류는 김천택에게 ‘작가를 개인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문학적 성격이 강한 시조’에 포함되지 않으며 이미 정형화되고 세련된 형식의 가곡창에 얹어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가창물로 인식되었다. 다시 말하면 전 세대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까닭에 그 생성 차원의 향유 상황을 알 수 없는 노래이며, 지은이를 정확히 상고(詳考)할 수 없는 노래들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여전히 향유되는 노래들로서 당대 가곡창계 악곡과는 다르게 불린 노래를 모아 놓은 것이 바로 만횡청류라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청진이 편찬된 18세기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기록문학으로 존재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그 근거가 된다. 형식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만횡청류와 구조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노래가 16~17세기경에 이미 기록 문학으로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만횡청류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는 만횡청류서(序)에 언급되어 있는 ‘성행어세’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창작 배경에는 작가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 중심 모티프로 작용하는데, 그 상황이 풍류의 자리를 위한 노래와는 거리가 있어 일반 사람들에게 가창물로 향유되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반면, 만횡청류에 보이는 민요와 친연성을 보이는 노래들(인간 보편의 내면을 토로하는 것, 대화체로 상황을 진술하는 것, 속신이나 무속 행위가 배경이 된 것)이나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 중심의 노래 등은 대중이 향유 주체가 된다. 결국 ‘성행어세’라는 구절에는 당대 만횡청류의 존재 양상과 만횡청류를 받아들이는 향유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횡청류에 수록된 각 작품은 표기와 언어 운용 체계에서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작품 내적으로도 내용과 형식이 이완되거나 혼종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 작품 내에 이질적인 문체 혹은 세계관이 공존하기 때문인데 그 원인 또한 창작과 전승의 차원에서 각기 다른 양식으로 존재했던 노래가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졌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각기 이질적인 형식과 주제적 특징이 융화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은 가창과 연행이라는 문학 외적 조건과 깊이 관계되는데 그것은 만횡청류의 연행 담당층이 상층 사대부부터 하층의 실제 연행자에까지 그 층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만횡청류에 빈번하게 드러나는 지명(地名)과 노래의 내용을 주목할 만하다. 일상과 밀착된 체험으로서의 삶이 반영된 민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기반하기 마련이다. 특히 만횡청류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열린 공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역과 긴밀하게 연관된 당대의 삶과 민속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만횡청류를 제대로 해독하고 나면 당대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일상의 면면을 느낄 수 있다. 삶을 영위하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 실상은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한 부분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평범한 대상이 문학의 소재가 되었을 때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상의 층위는 결코 얕지 않다. 만횡청류는 이미 그 유래가 오래되었고 수록 당시 세간에서 불리고 있던 가창물로서, 즉 음성언어로 존재했다. 그것을 김천택이 문자언어로 정착시킨 것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을 통해 백성의 삶을 헤아리는 것은 바로 채시(採詩)의 전통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사어음왜(辭語淫哇)나 의지한루(意旨寒陋)라는 평어는 사리부재(詞俚不載)의 관습을 지지하던 당대 도학자의 시각을 의식한 것일 뿐, 김천택이 만횡청류 싣기를 꺼려한 것이라 단정 짓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에 대한 백안시가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직시한 김천택은 ‘그 유래의 역사성’과 ‘연행의 현장성’을 가집 편찬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만횡청류를 가집에 수록함으로써 18세기 이전 구비 전승 형태로 존재했던 다양한 우리말 노래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This thesis aims at inferring origin of Manhuingchunglyu(蔓橫淸類) which was enjoyed in orally transmitted forms in 18th century before settled in written forms and studying its presence aspect by having the roots in analyses of the establishment format of ≪Jinbon Chungguyoungun(珍本 靑丘永言)≫, the attitude of Kim Chuntaek's collecting, and contained works of Manhuingchunglyu. Manhuingchunglyu is a group of songs which were included into the history of poetry by being held in ≪Jinbon Chungguyoungun≫ which was established by Kim Chuntaek in 1728. This group includes various songs that cannot be defined by same standards at contents or forms. This 116 songs are thought as oral heritages that people had enjoyed in play site before being recorded as words. Thus, the discussion of Manhuingchunglyu has to be progressed with consideration of social·cultural context in 18th century when ≪Jinbon Chungguyoungun≫ was established and the intend of establisher Kim Chuntaek, and also with consideration of various forms of songs before recording in words. The fact that Jinbon Chungguyoungun has been organized in arrangement means that Kim Chuntaek set himself up as active editor. Thus, this shows that Manhuingchunglyu's 116 poems also have been included with the principle of 'enjoyment situation'. Jung Raegyo and Lee Jungseob was the celebrities and the royal family of the time, so their letters could help to overcome Kim Chuntaek's limit of his status. Yet the focus of traditional 'Edification of poetry(詩敎論)' was on the goal to educate folkways by showing beauty and ugliness of good and evil, they focus the song’s function on expressing the essence of real humanity itself. This is the same point of view that Kim Chuntaek had when he was interested in the basis of song’s enjoyment. In common, people try to understand Manhuingchunglyu by comments that 'Saeoumwoi(辭語淫哇;songs with obscene lyrics)' or 'Uijihallu(意旨寒陋;containing vulgar material)', but the key comments that affected including Manhuingchunglyu into the anthology were 'Yuraeigu(流來已久)' and 'Pyopyoseonghaengeosae(表表盛行於世)'. 'Yuraeigu' means giving value to the historicity of old, orally transmitted song's time, and 'Pyopyoseonghaengisae' means nowness of enjoyment of songs that was widely sung till the including moment. Especially 'Pyopyo' can be understood by the meaning of 'standing out' from the time's songs, so this helps understanding how the songs in Manhuingchunglyu‘s presence aspect was. There are some pieces in Manhuingchunglyu thereof origin can be found at existing poetries(Korea Sokyo(高麗 俗謠), Song of Prasing and Blessing(樂章),etc) and also affinity between folk songs is recognized. Folk song is not made by one individual but is formed when many people 's feelings and thoughts are gathered and sung by song. Therefore folk songs is not an individual's song but everyone's song. Manhuingchunglyu in Jinbon Chungguyoungun was recognized as the poetry that is not included into the poems which have literature character that can vest poets to individuals, and cannot be sung with formal and elegant formed Gagokchang. In other words, they are songs that was orally transmitted from previous generation, so we cannot know the enjoying situation in creation level, and cannot figure out the original poet. Yet Manhuingchunglyu is the songs that were still enjoyed in the time and differently enjoyed from the time's songs of Gagokchang. In terms of form, there already was a song in documentary literature that has similarity between Manhuingchunglyu in formal level in 16~17th centuries, but it was not included into Manhuingchunglyu because it did not coincide with 'Seonghaengeosae(盛行於世)' which was commented in the introduction of Manhuingchunglyu. In this kind of song's background of its creation, the author's specific situation worked as a key motif, and the situation has a distance from the song for enjoy, and hence it couldn't have been played by normal folks in the form of song. Otherwise, the songs in Manhuingchunglyu that show affinity with folk songs - expressing human's common inner side, stating the situations in dialogical style, and setting folk believes and shaman rituals for background - or that tout Chinese historic characters have public for their main agent for enjoyment. Thus, in the phrase 'Seonghaengeosae' is information of Manhuingchunglyu's presence aspect in the time and appreciator who accepted Manhuingchunglyu. Each piece in Manhuingchunglyu has various forms in transcription and language operating system, and there are some cases that contents and forms are relaxed and confused in one piece. This is because there are different styles of writing or views of the world in one piece, and this seems because two different pieces in creation and transmission levels are joined together in one piece. This could be possible because Manhuingchunglyu's performing class in charge was various, from upper noblemen to lower actual performers. In that point, the toponyms and contents of the songs which appear frequently in Manhuingchunglyu are noticeable. Folk songs reflect people lives as experiments sticked to everyday lives and they are based on the author's background region. Especially, the toponyms that frequently appear in Manhuingchunglyu are almost open places to public. And the reason why we have to give attention to there pieces is that there are the time's perception - figures of lives folk traditions which are bound in the region. After comprehending Manhuingchunglyu rightly, various sides of everyday lives from the time's people can be felt lively. The concrete reality of the spce where people led lives is exposed on normal parts of everyday lives. And when this normal one becomes a material for literature, the depth of appreciation from that is never shallow. Manhuingchunglyu already presented in vocal language, this means it was sung in songs by public of the time. And Kim Chuntaek settled it to the written language. Figuring out the people's lives throw the words to the world meets the tradition of collecting songs. The comments like 'Saeoumwoi' or 'Uijihallu' was just for awaring of moralists' view of the time who agreed the tradition of Saribujae(詞俚不載;not including obscene words), not the reason that confirmed Kim Chuntaek had not liked to include Manhuingchunglyu(蔓橫淸類) into the anthology. Rather he squarely faced that stereotype of the love song between male and female cannot be a eternal truth. Kim Chuntaek had 'the historicity of the origin' and 'nowness of performing' for key principle in establishing the anthology and included Manhuingchunglyu(蔓橫淸類) in the anthology. His work can be appraised as having achievement in presenting various Korean songs whish are presented in oral transmitted from before 18th century to the surface of the history. The establishment format of ≪Jinbon Chungguyoungun≫ was composed by the editorial intend of Kim Chuntaek, and Manhuingchunglyu was also included in the anthology based on his attitude of positive acceptance. The fact that Kim Chuntaek whose musical competence was recognized set the rigid and detailed standards - age, form, poet - and arranged a series of songs, wrote extra introduction of Manhuingchunglyu himself and contained Manhuingchunglyu’s 116 poems separately is because of the recognition that these songs are different from the same anthology's previous 464 poems. If these 116 poems were well organized so that can be arranged, they already have to have been included into the classification system, but actually it is not. This is because the songs were recognized as vague as that cannot be included into the range of Gagokchang(歌曲唱) of the time. However, these vague songs could be included into anthologies later, this is because Manhuingchunglyu appeared in the history of poetry and it became a way out to widen the range of Gagok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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