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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복식에 사용된 종이심에 관한 연구

Title
조선시대 복식에 사용된 종이심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Jongi-sim used in the costumes of Joseon Dynasty
Authors
오숙경
Issue Date
2015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This study is about Jongi-sim(Paper used for interlining)used in costumes of the Joseon Dynasty. Literature review was performed to examine terms related to Jongi-sim,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papers, and compositional method of Jongi-sim used by the royal family. Composition and usage trend of Jongi-sim used by Yangban were discussed through excavated costumes. Terms related to Jongi-sim include 'Anji (按紙)', 'Soh (槊)' and 'Gyeok (隔)'. Anji is a term that refers to Jongi-sim used on cotton-padded clothes, and paper was used to sink cotton down. Soh refers to stiff and thick paper inserted between fabrics, and this term is mainly used for Dae (帶, belt) and Gamtu [甘吐]. Gyeok is predicted to be a term that refers to the use of paper as both interlining and lining of Yangyieom (凉耳掩, A type of winter cap made using fabric). Types of papers used as Jongi-sim include Chojuji (草注紙, Paper for royal ceremonial attires), Jeojuji (楮注紙, Paper for royal women's ceremonial attires and men's daily costumes), Doryeonji (搗鍊紙, Paper for royal women's Dae and court ladies' Dae and Yangyieom), Hapumdoryeonji (下品搗鍊紙, Paper for the Crown Princess's Dae), Doryeonjeojuji (搗鍊楮注紙, Paper for Sangung's Dae), Gongsangji (供上紙, Paper for court ladies' Yangyieom), and Baekji (白紙, Paper for court ladies' Yangyieom). They were mostly used as papers for documents by royal families. Considering size, thickness and price of papers, quality of these papers is in the order of Gongsangji > Hapumdoryeonji > Doryeonjeojuji = Doryeonji > Chojuji > Jeojuji > Baekji. Among men's royal costumes, Jongi-sim was used in Po (袍, coat) such as Cheolik [帖裏, Men's coat with pleats], Aekjureum [腋注音, Men's half-coat with underarm pleats], and Gwadu (裹肚, Men's long inner jacket), as well as Baji [把持, pants], Dae, Yieom (耳掩, winter cap), and Gamtu. Chojuji was used in ceremonial costumes of kings and crown princes, and Jeojuji was used in the daily costumes. Jongi-sim was inserted into cotton-padded clothes for Po and Baji, overlapping 1~2 papers throughout the entire clothes. Especially, cotton and paper were used inside ceremonial costumes to increase thermal insulation regardless of season, and external appearance of costumes was emphasized to show dignity of royal families. Among women's royal costumes, Jongi-sim was used in Jeogori [赤古里, Traditional jacket], Hosu (胡袖, Inner jacket worn under Jeogori), Chima [赤亇, skirt], Dae, Dodaikdae (都多益帶, Fabric belt decorated with gold imprint), and Yangyium. Chojuji was used in costumes of queens and crown princesses, and Jeojuji was widely used from queens to court ladies. Especially, Hosu worn under Jeogori had more Jongi-sim than the coat to increase thermal insulation and improve appearance of clothes. Thick papers were stacked in Dae and Dodaikdae. Gongsangji was used in Yangyium, and looking at the fact that the literature only records upper fabric and interlining, paper was probably used as lining. There is no clear difference in the usage trend of Jongi-sim shown in excavated costumes before and after the Imjinwaeran (壬辰倭亂,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mjinwaeran was used for the whole or part of clothes prior to the Imjinwaeran, but the usage of Jongi-sim for the whole of clothes disappeared after the Imjinwaeran to only leave the method of inserting Jongi-sim into parts of Git (collar), Geodeulji (cuffs), and Mu (gusset). The reason for such decrease in the amount of papers used is believed to be the decline of paper handicraft and increase in the use of cotton fabric and cotton by the common people after the Imjinwaeran. There was no large difference in social class and economic status of excavated costumes that used or did not use Jongi-sim. Higher social class or economic status did not show increased use of Jongi-sim. This implies that paper was not a means of extravagance or symbol of wealth. Excavated men's costumes that used Jongi-sim for the entire clothes are Cheolik, Dapho [褡護, Coat with half sleeves or no sleeves], Jikryeong (直領, Coat with straight collar), Dopo (道袍, Coat worn for everyday wear or outdoor activities), Daechangyeui (大氅衣, Coat with wide sleeves and slits in its back panel), Jungchimak (中致莫, Coat with wide sleeves and side slits), and Banbi (半臂, Upper garments with short sleeves or no sleeves). Jongi-sim was mainly used in double layered clothes for Cheolik, and pleats of Cheolik were formed as a single layer for outer pleats and lining and Jongi-sim for inner pleats. Women's costumes that used Jongi-sim for the entire clothes are Jangot [長衣, Coat for everyday us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Jeogori, and Chima. Ceremonial Jeogori with double layers used more Jongi-sim than ordinary Jeogori. In case of cotton-padded Jeogori, decorative saddle stitch was performed along the edges of clothes in order to make them appear well padded. Here, paper was only allowed to reach inside the sewing line for easy sewing. There were cases of Chima that used Jongi-sim in Nubi (quilt). This means that paper could be washed in water. Jongi-sim placed in Git (collar) was sometimes placed together with cotton. Geodeulji (cuffs) of Jangot (Women's cloak-shaped veil in the late Joseon Dynasty) used paper in invisible parts as to replace fabric by paper. Danryeong (團領, Official's robe with a round collar) and Dapho attached Jongi-sim to Mu (gusset), and stiff paper was inserted. In addition to the purpose of increasing functionality of clothes, Jongi-sim was also inserted between fabrics after writing a passage on paper to wish for good fortune of the wearer. This was probably a custom handed down among people.; 이 연구는 조선시대 복식에 사용된 종이심에 관한 것으로 왕실 문헌 기록과 출토복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종이심에 관한 연구는 출토복식을 통해 심감의 구성법을 밝힌 것이 있으며, 충전재의 일종으로 솜과 함께 종이를 언급한 것이 있다. 반면, 의복 소재로 쓰인 종이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나 왕실과 민간에서 사용된 종이심의 구성 방식을 분석한 예는 없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종이심에 관한 용어부터 종이의 종류별 특징을 살펴보고, 왕실과 민간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종이심을 사용하였고 그 경향은 어땠는지 밝히고자 하였다. 문헌에 기록된 종이심에 관한 용어는 ‘안지(按紙)’, ‘소(槊)’, ‘격(隔)’이 있다. 안지는 솜옷에 사용된 종이심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때의 종이는 솜을 잠재우거나 처지지 않게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솜과 함께 종이를 옷감 사이에 넣어 제작했다. 소는 복식의 형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심을 채워 넣을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는 주로 대(帶)나 모자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격은 양이엄에 사용된 심감을 말한다. 양이엄과 유사한 형태로 추정되는 가리마의 유물을 통해 볼 때 종이는 겉감 안쪽에 배접되어 있어 심감의 역할을 하면서 별도의 안감이 없는 구성임을 볼 때 안감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격은 종이심이 심감 혹은 안감의 역할을 겸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보인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된 종이는 종이심 외에도 문서지, 외교 물품, 하사품, 서책 인출, 지의(紙衣) 등 다양한 용도가 있었다. 종이심으로 사용된 종이는 초주지(草注紙), 저주지(楮注紙), 도련지(搗鍊紙), 하품도련지(下品搗鍊紙), 도련저주지(搗鍊楮注紙), 공상지(供上紙), 백지(白紙)가 있다. 종이의 크기와 두께, 가격을 고려해 볼 때, 지품(紙品)은 공상지>하품도련지>도련저주지=(추정)도련지>초주지>저주지>백지 순으로 확인된다. 왕실 남자복식 중에는 철릭과 액주름, 과두(裹肚), 바지, 대, 이엄, 감투[甘吐]에 종이심을 사용했다. 초주지는 왕과 왕세자 의례용 의대에 사용되었고, 저주지는 평상복에 넣었다. 포(袍)나 바지와 같은 의복에는 모두 솜옷에 종이심을 두었다. 의복의 종류에 따라 옷 전체에 1~2겹의 종이심을 사용했다. 왕실 여자복식 중에는 저고리, 호수(胡袖), 치마, 대, 도다익대(都多益帶), 양이엄에 종이심을 사용했다. 초주지는 왕비와 세자빈의 의대에 사용되었으며, 저주지는 왕비부터 궁녀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특히, 저고리 안에 받쳐 입는 호수에는 웃옷보다 많은 양의 종이심을 두어 보온성을 높이고 태를 보완하였다. 대와 도다익대에는 도련한 종이를 넣었는데, 이는 여러 겹으로 된 합지(合紙) 형태로 두꺼운 종이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이엄에 사용된 종이심은 인조장렬왕후가례까지 도련지와 백지였다가 이후 공상지로 바뀌었다. 특히, 『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된 양이엄의 옷감과 심감의 크기는 가리마 출토 유물의 것과 형태와 크기가 흡사해 양이엄이 가리마일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출토복식에 나타난 종이심의 사용 경향은 임란을 기점으로 조선 전·후기에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에는 옷 전체 또는 일부에 종이심을 둔 형태가 공존했다가 후기에는 의복 전체에 종이심을 사용하는 방식이 사라지고 의복 일부에 종이심을 넣는 방식만 남았다. 이러한 경향의 요인으로는 임란 이후 경제적 상황의 악화, 제지수공업의 쇠퇴와 17세기 이후로 기후의 변화, 누비의 유행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심을 사용한 묘주와 사용하지 않은 묘주를 비교해 볼 때, 묘주가 고위직이거나 경제력이 높다고 하여 종이심의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종이가 사치의 수단이나 고급스러운 의복을 나타내는 기준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자 출토복식 중 옷 전체에 종이심을 사용한 것은 철릭, 답호, 직령, 도포, 대창의, 중치막, 반비류가 있다. 철릭은 주로 겹옷에 종이심을 사용했다. 심감의 구성방식을 보면 치마의 도련은 겉감의 안쪽에 종이심을 두었으며, 주름 쪽은 안감의 안에 두었다. 주름 잡은 방식은 겉주름은 홑으로 잡아 세밀한 주름을 만들었고, 안주름은 종이심과 안감을 함께 주름잡았다. 여자복식 중 옷 전체에 종이심을 사용한 것은 장옷과 저고리, 치마가 있다. 의례용 저고리는 평상복 저고리보다 종이심을 넣은 비율이 높았으며, 주로 겹옷이 많았다. 솜저고리의 경우 옷의 가장자리를 도톰하게 보이기 위해 가장자리를 따라 상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종이는 솜의 완성선에 못 미치는 부분까지만 두어 상침을 수월하게 했다. 치마의 경우 누비에 종이심을 사용한 사례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세탁 시 종이가 물속에서도 물리적 작용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복 일부분에 종이심을 사용하는 경우는 깃, 끝동이나 거들지, 무에 있다. 깃에는 종이뿐만 아니라 솜과 종이를 함께 넣는 경우가 있어 깃의 형태를 안정감 있게 유지했다. 장옷의 소매단은 안으로 접어 들어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옷감 대신 종이를 사용했다. 무에 종이심을 댄 경우는 단령과 답호가 있고 빳빳한 종이를 넣었다. 종이심은 의복의 기능성을 높이는 목적 외에 착용자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종이에 글을 적어 옷감 속에 넣기도 했는데 이는 민간에서 행해지던 풍속 중 하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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