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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時代 陶器 硏究

Title
高麗時代 陶器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Pottery during the Koryo Dynasty
Authors
한혜선
Issue Date
2014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이 연구는 고려시대 관련 각종 문헌자료와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를 분석하여 고려도기의 전반적인 양상과 특징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자료의 분석을 통해 고려도기의 범위와 종류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편년을 시도하였으며 도기의 다양한 용도와 성격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문헌과 유물을 통해 고려도기의 개념과 범위를 살펴보면 먼저 문헌에서는 고려도기가 瓦器·陶瓦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분명히 沙器·砂器·瓷器와는 다른 材質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기에는 유약을 시유하지 않은 無施釉陶器와 함께 유약을 시유한 施釉陶器도 포함되는데, 이는 실제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도 1·2·3호선 인양 도기 중에 육안관찰을 통해서 명확하게 시유도기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고려후기인 13세기 중반 이후에는 전통적 도기 제작방식으로 제작하여 타날문이 있고 외면 천제를 녹갈색 유약으로 시유한 녹갈유도기의 제작이 활발해졌고, 고려인들은 이것을 陶器로 인식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려도기 가마의 분석을 통해서는 다양한 구조적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시기 또는 지역에 따라 일정한 양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기본적으로 도기가마는 1개의 번조실로 이루어진 單室窯인 점만 동일할 뿐 세부 구조는 다양하게 변형 조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각 지역에서 생산된 도기는 해당지역을 중심으로 소비되었을 것이지만 당시 王室과 中央官司도 적지 않은 도기가 필요했음이 여러 점의 官司銘 도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같은 도기의 조달은 청자가마와 竝存하는 도기가마의 예를 통해 청자와 세트를 이루어 공급되었거나, 개경 주변에 위치한 중앙관사 소속 기와가마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찰에도 도기가마를 운영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도기가마가 다양하게 설치·운영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제작체계가 다른 수공업품보다 제약이 적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즉, 도기는 국가 기반 수공업 속에 적극적으로 편제되지 않고 제작과 유통 및 소비가 보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기가마에서 시기나 지역에 따른 정형화된 구조를 찾기 어려우며, 이것은 결국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도기가 제작되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도기를 분석한 결과 壺와 甁이 중심을 이루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도기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호는 廣肩壺, 大壺, 短頸壺, 盤口壺, 扁壺, 長身壺, 梅甁形壺, 廣口壺, 二重口緣壺 등이 있다. 호는 시기적으로 변화를 보이는 종류가 있고, 고려 전 시기 혹은 전 지역에 걸쳐 큰 변화없이 사용되는 것도 있어 다양한 양상이 확인되었다. 甁은 고려도기 중에서 가장 형태가 다양하며 시기에 따른 변천과정을 뚜렷이 보이는 대표적인 기종이다. 扁球甁, 扁甁(1면, 2면, 4면), 盤口甁, 小甁, 梅甁, 나팔입병, 瓢形甁, 淨甁, 長頸甁, 筒形甁 등이 있다. 각 기종별로 구연의 형태와 그 밖의 속성에 따라 형식이 나뉘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 선호된 기종과 형태가 존재했다. 소형의 음식기인 碗, 鉢, 楪匙, 盞 등도 적은 수량이긴 하지만 출토되고 있다. 이외에도 동이, 大盤, 香碗, 缸, 長鼓, 시루, 注子, 塔形陶器 등이 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도기로 저장과 운반을 담당한 기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려도기는 모든 기종이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기종이 전기, 중기, 후기의 큰 흐름 안에서 변화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前期는 10~11세기로 통일신라후기의 연속선상에서 도기가 청자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다. 통일신라후기에 주로 제작되었던 편병, 편구병, 줄무늬병이 여전히 제작되고 있으며 특히 편병과 편구병은 11세기 이후 청자 및 黑釉瓷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청자와 도기의 영역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고 도기의 영향이 자기에 비교적 강하게 반영되었던 때였다. 中期는 12~13세기 중반까지로 다양한 도기가 제작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청자를 포함한 여러 재질의 공예품 모두 기종과 품질이 다양화되던 때로 도기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었다. 특히 도기병은 기형상 다른 재질 그릇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는데, 청자 및 금속제품을 번안하거나 모방하여 대체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後期는 13세기 후반~14세기 말까지로 호의 동체가 전반적으로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장신호와 2면편호가 대표적이다. 또한 후기에는 유약을 얇게 시유한 녹갈유도기의 생산이 이전 시기보다 활발해져 운반용이나 분묘 부장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고려도기의 시기에 따른 변천과정은 동시기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었던 靑瓷의 編年과도 대체로 일치해 서로간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고려도기의 성격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 용도에 관한 부분으로 유적출토 상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기의 용도는 크게 저장·운반용, 의례용, 量器로 사용되었을 가능성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도기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인 저장과 운반은 대형호를 땅에 반쯤 박아서 사용하거나 선박에서 물을 저장했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 실제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의례용으로 사용된 도기는 사지와 건물지의 기단과 적심 근처에 인위적으로 묻어서 건물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도로 사용된 鎭壇具를 들 수 있다. 한편, 현재까지 명확히 밝히기는 확정하긴 어렵지만 고려도기의 용도 중 주목되는 것으로 量器의 역할을 들 수 있다. 마도 1·2·3호선에서 인양된 도기호들은 목간자료에 나타난 것처럼 그 크기에 따라 2두, 3두, 4두, 5두가 들어가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비록 고려 국가의 공인된 양기는 아니더라도 당대인들이 합의한 용량을 반영하는 실질적인 양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청자를 비롯한 다른 재질 공예품과 달리 고려도기는 지역적으로 특정 기종이 집중 생산되거나 분묘부장용으로 제작되고 선호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반구형 구연이 특징인 반구호는 전라도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제작·사용되었다. 반구호는 전라도지역의 가마터인 해남 신덕리와 진산리를 비롯하여 강진 삼흥리요지 등에서 제작되었다. 전라도에서 출발하여 서해에 침몰한 배에서도 다수 인양되었는데 완도선, 태안선, 마도 1·2호선이 대표적이다. 도기의 지역적 차이는 분묘부장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點列文 소병은 형태상 통일신라후기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줄무늬병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는 기종으로 경상도지역, 특히 경북에서 집중 출토되었다. 이 지역에 신라의 전통이 뿌리 깊게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후기에 경기도·충청도 일대 분묘에서는 호류의 부장이 늘어나는 반면 같은 시기 경상도지역 분묘에서는 나팔입병의 부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고려중기 이후 향촌사회의 변화로 인해 지역색이 강조되었던 양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려도기는 도기만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동시대 다른 재질의 공예품인 청자 및 銅器와 상당히 깊은 연관성이 확인되는 면도 있다. 고려전기에는 도기가 청자에 영향을 주었지만 고려중기 이후에는 청자와 銅器의 기형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유사하게 제작된 예도 등장하였다. 도기는 고려시대 전시기에 걸쳐 대량으로 생산·소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고려도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문헌과 발굴자료를 분석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복원해보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려도기는 도자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영역임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재질 공예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overall aspects of Koryo pottery by analyzing Koryo Dynasty related various literatures and ruins excavation investigation reports. We identified the range and types of Koryo pottery through the analysis of data, tried chronological recording based on it and examined a variety of purposes and nature of pottery. Looking at the concept and scope of Koryo pottery through literature and excavated artifacts, Koryo pottery is first expressed as pottery·stoneware etc. in the literature and these obviously seem to have been used to refer to materials different from celadon. On the other hand, both non-glazed pottery and glazed pottery are included in pottery and these can be seen in the actual artifacts. Of pottery discovered during the salvage of Mado No. 1·2·3, some pottery can be clearly seen as glazed pottery through visual observation. In particular, the production of greenish-brown pottery that employed the production method of pottery became active after the mid-13th century, the late Koryo Dynasty and it was found that Koryo people recognized it as pottery.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Koryo pottery kilns, various structural elements do not show certain aspects according to time or location. Basically, it is determined that pottery kilns are the same in terms of Dansilyo (one kiln) with 1 Beonjosi (pottery baking room) and detailed structure has been variously created and changed. Pottery produced in each region must have been used around the region but it could be seen that not a few pottery must have been needed in the royal family and central government offices at that time through the presence of pottery on which government office name is engraved. It is estimated that this pottery may have been provided as a set of celadon through the example of pottery kiln coexisting with celadon kiln or produced in the tile kiln belonging to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located near Gaegyeong. Also, there are examples that pottery kilns used to belong to temples. The reason that Koryo Dynasty pottery kilns were variously installed and operated is thought to be because the production system has fewer constraints than other handiworks. That is, it is difficult to find standard structures of pottery kilns depending on the time and area because pottery has been produced, distributed and consumed more autonomously without being actively organized into the country-based handicrafts and this eventually enabled pottery revealing strong regionalism to be produced. Pottery excavated at the Koryo Dynasty ruins was analyzed and as a result, jars and bottles are dominant but there was various kinds of pottery in addition to them. Jars include jar with wide shoulders, big jar, short-necked jar, hemispherical jar, flattened Jar, jar with long and slim body, Maebyeong-shape jar, jar with wide rim diameter, extended rim jar etc. While some jars show changes depending on time, some have been used without any significant change throughout Koryo period or across the region, showing the various aspects. Bottles are a typical model showing the most various detailed features among Koryo pottery and transition process depending on time. There are a bottle with abacus bead shape, a bottle with one, two, four-flattened side, hemispherical bottle, small bottle, Maebyeong, trumpet mouthed bottle, gourd-hape bottle, Kundika, long-necked bottle, bottle with cylindrical body etc. By each model, types are divided depending on the form of rim and other properties and some models or forms were preferred depending on time and area. Though small quantities, small food utensils such as bowl, dish, cup, oil lamp etc. have also been excavated. In addition to them, there are water jar, basin, incense burner, jar, Janggo(double headed drums), steamer, ewer, pagoda-shape pottery etc. As shown above, it was found that there have been various types in Koryo pottery in addition to models responsible for simple storage and transportation. All models of Koryo pottery do not show changes depending on time but it was found that several models have been changed in the flow of early, mid, and late period. The early period are 10th-11th century and in the continuum of the late Unified Silla and the time when pottery affected celadon. bottles with flattened sides, bottles with abacus bead shape, striped bottles that have been mainly produced during late Unified Silla are still being excavated and bottles with flattened sides and bottle with abacus bead shapes were produced as celadon and blackware after the 11th century. During this period, the areas of celadon and pottery were separated to some extent and the impact of pottery was reflected in porcelain more strongly. The middle period is the mid-12th and 13th centuries and a variety of pottery was produced. During this period, both type and quality of porcelain and handicrafts of other materials have been diversified and pottery was also in this flow. In particular, pottery bottles show a lot of similarities in the form to both bowls made of other materials and it was estimated that porcelain and metal products have been used as alternate products through adaptation and imitation. The late period is the end of the late 13th century-14th century and the overall body of a jar becomes longer and the representative jars include jar with long and slim body and jar with two flattened sides. In addition, during the late period, the production of thinly glazed greenish brown pottery became more active than the previous period so it was widely used as for transport or burial mounds. The transition process of Koryo pottery depending on time is also generally agreed with chronological recording of celadon which was in complementary relationship of the same period, showing the close association between the two. On the other hand, what shows the nature of Koryo pottery the most prominently is the part about its usage and can be seen through the ruins excavation situation. The purpose of pottery can be divided into storage·transport, courteous nature, possibility of being used as measuring instrument etc. The most fundamental nature of Koryo pottery is storage and transport and it was found through the actual ruins that large jar was used while dug in the ground halfway or pottery was used to save water in a ship. Pottery used for ritual was used as the purpose of wishing peace of the building by burying the part near the stylobate and small sticks put on top of the mud plaster to give a slope to a Korean roof of building remains and site and its example is Jindangu. On the other hand, though difficult to confirm it, the role of measuring instrument can be noted as the purpose of Koryo pottery. As shown in wooden materials, pottery jars pulled up from Mado No. 1·2·3 were estimated to contain 2 du, 3 du, 4 du, 5 du. Though not measuring instrument approved by Koryo Country, it was highly likely to be used as actual measuring instrument reflecting the capacity agreed by contemporaries at that time. Unlike crafts made of other materials including porcelain, it was found that particular models were locally produced intensively or Koryo pottery was produced and preferred as for tomb burial. Hemispherical jars characterized by hemispherical rim were mainly produced and used around the Jeolla region. Hemispherical jars were produced in the important place of Gangjin Samheungri etc. including the important place of Sindeokri Haenamgun, Jinsanri, the Kiln sites of the Jeolla region. Many of them were pulled up from ships that departed from Jeollado and sank in the Yellow Sea and the representative ships include Wando Ship, Taian Ship, Mado No. 1·2. The regional differences in pottery can be seen more clearly through the analysis of pottery for tomb burial. Jeomyeolmun small bottles are a model in which lingering imagery of striped bottles that were popular nationwide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remains strongly and were intensively excavated in Gyeongsang region, especially Gyeongbuk. It can be seen that tradition of Silla was deeply rooted in this region. In addition, the burial of Horyu increased in tombs in Gyeonggi Province, Chungcheong Province during the late Koryo Dynasty while burial of trumpet mouthed bottles is remarkable in tombs in Gyeongsang Province during the same period and this was considered to be related to the aspect that regionalism was stressed due to changes in rural community after the mid Koryo Dynasty. As shown above, Koryo pottery revealed pottery’s own features strongly and has a fairly deep association with celadon and copper ware which are crafts of different materials during the same period. During the early Koryo period, pottery affected celadon but pottery made by imitating the form of celadon and copper ware as it is or similar to them appeared after the mid-Koryo period. Despite a lot of excavation materials, Koryo pottery has not been the target of interest for a long time and studies have not been done properly. To overcome these limitations, we were to restore the overall appearance of Koryo pottery by analyzing related literature and excavation materials. Through this process, it can be seen that Koryo pottery is not only sure to be the area responsible for one axis in the pottery history but closely related to crafts made of other materials during the sam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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