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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이미지

Title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이미지
Other Titles
The Korea image produced since the modern age : Focus on picture postcards
Authors
오윤빈
Issue Date
2014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본 논문은 한국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국가’ 이미지들이 언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강화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 연구이다. 한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들은 한복을 입은 여인이나 궁궐, 한옥 등 현재 한국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전통적인 이미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이미지는 다른 국가와의 왕래가 본격화되면서 국가적 이미지가 필요하게 된 개항기의 조선시대에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 매우 초기의 이미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반복・재생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서구 열강과의 접촉이 이루어진 19세기 말엽이다. 이 시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인 서구열강들이 비서구권 국가를 향해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로서 비서구권 국가의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모습이 인류학이라는 연구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개항을 한 조선 역시 연구 대상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때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한국이미지의 첫 번째 수요자로 등장했다. 다만 개항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체류기간이 짧아서 다양한 인물이나 풍속을 볼 수 없었고, 휴대가 가능한 여행용 카메라 또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었던 사진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인들이 구매한 조선에 관한 풍속사진의 대부분은 1880년대부터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전문 사진가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조선보다 앞서 서양인들에 의해 풍속사진이 제작되었는데, 주로 요코하마에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 ‘요코하마 사진’이라고 불린다. 요코하마 사진은 서양인이 선택한 옛 일본의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풍속들이 담겨있는데, 이와 같은 서양의 우월적인 시각을 일본인이 그대로 조선에 적용시켜 각종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조선에 관한 풍속사진은 1900년 이후 사진엽서로 제작되어 더욱 빠르게 유포되었다. 그리고 한일합병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관광유치정책에 의해 사진엽서가 관광기념품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조선에 관한 이미지는 <조선풍속>이나 <조선명소> 엽서처럼 상업적으로 카테고리화 되는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엽서는 1930년대까지 생산되었으나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근대화된 모습은 엽서에 게재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초기의 전근대적인 몇 가지의 소재만이 지속적으로 게재되었다. <조선풍속> 엽서에 나타난 대표적인 소재들은 관료나 기생 등 일부 상류층의 조선인과 노동을 하는 하층계급의 조선인으로 나눌 수 있다. 상류층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복식을 보여주기 위해 주로 초상사진의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고전주의 초상화의 양식을 모방한 초기 유럽 초상사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하층계급의 이미지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전형적인 모습으로 연출된 사진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한편 <조선명소> 엽서는 정치적인 색을 더 띠고 있다. <조선명소>는 엽서의 한 지면에 근대화된 도시 경관의 모습과 전근대적인 조선인이나 전통적인 유적이 이중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이중적인 배치를 통해 근대와 전근대를 비교함으로써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고 정당화하는 정치적인 의도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조선명소>에 게재되어 있는 풍경 사진의 구도를 살펴보면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회화적 구도를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우키에나 메가네에의 과장된 일점투시법이 근대적인 도시 경관을 표현하는 구도로 자주 사용되었고, 양풍화의 근상 위주의 구도는 넓은 자연 경관을 담는데 자주 쓰였다. 그리고 엽서를 통해 유포된 경관 이미지는 반대로 회화의 풍경화 제재와 구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사진엽서를 통해 대표적인 한국이미지로 자리 잡은 소재는 관광안내서, 관광印, 조선풍속인형, 조선情詩 엽서, 아리랑 엽서 등 각종 관광 자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풍속>에서 반복되었던 전형적인 소재들이 다른 관광 자원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면서 대표성을 강화시켜 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담은 상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조선인들조차 타인이 만든 이미지를 스스로 내면화시켜갔다. 지속적인 강화 과정을 통해 <조선풍속>류의 전형적인 소재들은 점차 국・내외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었다. 먼저 국외에서는 초기에 유포된 사진들이 1900년대에도 계속해서 조선에 관한 텍스트의 삽도로 쓰였다. 나아가 초기의 사진을 저본으로 한 목판화와 동판화들이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등 외국에서 <조선풍속>류의 특정한 소재들이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굳어져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근대화가 많이 진척된 1920년대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 화가들조차 모두 <조선풍속>의 대표적인 소재를 작품으로 제작하였으며, 근대화된 모습은 작품의 주제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전통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조작을 가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미 학습에 의해 인지하고 있었던 특정한 한국이미지가 존재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사진엽서와 유사한 소재와 분위기가 조선의 정서를 잘 나타내 준다하여 ‘地方色’, ‘鄕土色’, ‘朝鮮色’으로 명명되며 회화와 사진 공모전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되었다. 대표적인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나 사진살롱에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사진엽서와 소재적인 측면에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아예 사진엽서를 모본으로 하여 그려지거나 촬영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모전의 현실적인 수혜를 거부하기 어려웠던 아마추어 작가들이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일본인의 시선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향토적인 제재들은 이방인에게는 이국적인 정취로, 조선인에게는 향수 어린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소재들로 유형화되고 정착되어 1970년대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다. 근대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한국이미지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을 대표할 독자적인 이미지가 필요하게 된 때는 1970년대-80년대였다. 이 시기는 고유한 전통 만들기를 통해서만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위계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고, 한국은 서구적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색적이고 토속적인 설명방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만들었던 옛 이미지들이 다시 한국인의 손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한국이미지로 골라지게 되었다. 다만 <조선풍속>류의 소재들 가운데 낙후된 모습은 제거되고 미적으로 표현하기 용이한 소재들, 예를 들면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나 무용을 하는 여인 등이 자주 선택되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여성이미지에 편향되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의 풍속 이미지가 식민지 이후 ‘전통의 발명’ 시대에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This study shows when the images of South Korea began to be developed and how it has been changed. Most of the representative images of Korea are the traditional which is far from the current presentation of Korea. These traditional models are very first symbols that were made in the late 19th century of Joseon Dynasty when Korea made its first debut in the world. Nevertheless, those images are reproduced over and again until now.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Korea began to contact with the Western countries, the first image that represented Korea was made. These imperialist countries had expanded their influence towards non-Western countries, and, therefore, the primitive and exotic appearance of non-Western countries was treated as the subject of anthropologist. Joseon was also one of the studies, and the people who visited Joseon from the Western countries became the first consumer of the image of Korea. However, because of the short period of their staying, they had a hard time to experience a variety of people and culture. Also, the portable camera was not enough to be developed, most of the Western visitors purchased the photo in Joseon. Japanese artists who stayed in the 1880s provided Most of the photos that Western people bought from Korea. Ahead of Korea, the photos of Japanese scenery and society were made by Westerners. It was called 'Yokohama Picture' because they were mainly produced in Yokohama. A western view for Japan affected to the ‘Yokohama Photo' which contains exotic and primitive Japanese customs. Japanese photographers applied the same viewpoint to Joseon and produced a variety of pre-modern photos of Joseon. The photos of Joseon were spread more quickly after 1900 by the picture postcards. After beginning Japan's colonial rule,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s policy that used the picture postcard as the tourist souvenir to attract more visitors, the images of Joseon were rapidly categorized as commercial use such as and postcards. These postcards were produced until 1930s, but the changing and modernized image was not reflected on the cards. Postcards can be divided into two kinds based on their topics; the one is focused on the upper class people such as the bureaucrats and Gi-saeng***; the other one is with the lower class people. Most of photos of the upper classes were mainly produced as the portrait for showing the traditional costumes, and they followed the style of early European portrait photo which imitated the classicism European portrait. Many pictures of the lower classes taken at the indoor studio contained the typical and staged shots. Postcards have more political opinion than . Two different models -the view of modernized city and pre-modern people or historic sites- placed in one postcard. This dual arrangement comparing the modern and pre-modern model expressed the political intent to justify and praise Japan's colonial rule. On the other hand, the composition in landscape photography of was referred from the famous pictorial form in Japan. Uki-e(浮絵) or Megane-e(眼鏡絵)'s exaggerated one point perspective was commonly used for expressing modernized city landscape, and the photos of extensive natural landscapes used the form of 'yofuga(洋風畵)' which is focused on the near subjects. Moreover, on the opposite side, publicized postcard view images made a significant impact to landscape painting especially in choosing themes and forming the composition. Likewise, the subject that had been settled as the typical Korean image through picture postcards were used for several resources such as tourism information guide, tourism stamp, Joseon Folk Dolls and ‘Arirang postcard.' The subjects of reinforced their representative by being used for the tourism goods. The usual subjects of images like had become as the symbols of Korea in both of domestic and overseas. First in overseas, the photographs that were covered in the early part was still used for the illustration of the text that relates to Korea in 1900. In addition, woodcut and copperplate print which were based on the earlier photographic were produced. It is considered that particular subjects like were regarded as a typical Korean image. Although Joseon had proceeded modernization in 1920s, Even Westerner artists who visited Joseon by this time also produced the artworks by using the classic materials of , but contrastively, the modernized figure was scarcely chosen as the subject of the work. Meanwhile, the similar subjects and atmosphere with the postcard were encouraged for the painting and photographic contests and were named as ‘Local Color’ or ‘Joseon Color’ because they express a feeling of Joseon well. When it comes to the artworks which were participated in the representative exhibition, for example, ‘Joseon Art Exhibition’ or ‘Joseon Photographic Salon,' not only they have the same theme with the existing postcard, but also, they are painted or photographed by imitating the original one. Because it was difficult for the amateur artists to deny the practical benefit, so they internalized the viewpoint of Japanese without any criticism. The indigenous materials were classified as the exotic subjects for the foreigner and the subjects which arouses ethnic feeling for Korean. These materials were kept using for the work by the time of 1970. The typical Korean image which was formed by pre-modern time is still remain until now. After independence, it was from 1970-80 that Korea needed its own image that represents the nation. Because it was the only way to get its own identity through only inherent culture, so Korea needed an explanation exotic and traditional way from the Western view. Therefore, the old images which had been created by Japanese started to reformed to official Korean image by Korean. However, the backward image among the subject of has been eliminated and easy subjects to show has been often selected, for example, a lady who is wearing traditional costume. It led Korean traditional image to be biased to only female. The Korean image which has been formed by pre-modern time is replaced to the inherent aesthetic in’ the age of the invention of tradition’ after the colony time. * Pungsok: Pungsok means the traditional lifestyle and customs which has been maintained for long time. ** myeongso : myeongso means famous place for tourism. *** Gi-saeng: Gi-saeng was officially sanctioned Korean female entertainers or sometimes prostitutes.(from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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