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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18~20世紀 白磁 高足楪匙(고족접시) 硏究

Title
朝鮮 18~20世紀 白磁 高足楪匙(고족접시)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from the 18th to 20th century
Authors
정다혜
Issue Date
2014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백자 고족접시는 편평한 접시면에 높은 굽이 달린 형태로 조선후기에서 말기까지 제작되었다. 높은 굽을 갖추고 있어 일반적으로 '제기'로 인식되어 왔으나, 구체적인 실상과 용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고족접시는 문양이 없는 것을 비롯해 ‘壽’, ‘福’자문, 여러 길상소재의 문양 시문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유적 출토품, 문헌자료, 회화 및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의 검토를 통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고족접시가 제례용 이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 특징과 성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고족접시의 개념, 명칭 및 연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편평한 접시면에 높은 굽이 달린 형태의 기명을 '백자 고족접시'로 부르게 된 근거는 19세기 연향의궤에 등장하는 '高足磁器'에서 비롯되었으며, 왕실 연향 기록화의 상차림에서도 확인되었다. 고족접시는 일반적으로 금속제로 만들어진 '우리대' 또는 '금속 접시'가 도자제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祭器都監儀軌』(1611)의 도식화된 조형을 예측할 수 있는데 편평한 접시면과 높은 굽이라는 공통적인 요소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종로 청진 지구 17세기 문화층에서 '금속 접시'가 출토되어 유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백자 고족접시가 널리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기물이 확대 수용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본래 제례의 용도였으나 점차 손님 접대나 연회 등에서 사용되었고, 사용 주체가 왕실에서 사대부와 일반 계층으로까지 확대되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왕실에서 베푼 賜饌으로 인해 백자 고족접시를 비롯한 왕실 연향 문화가 사대부가에 유출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분제의 동요와 양반층의 증가에 따라 제례가 증가하면서 백자 고족접시의 사용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상공업, 유통, 교통의 발달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반 계층에까지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Ⅲ장에서는 생산지 및 소비지 출토 백자 고족접시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백자 고족접시는 17세기의 과도기를 거쳐 18세기 전반 금사리 관요에서부터 이전 시기보다 높은 굽의 고족접시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분원리에서 대량 생산되었다. 지방 가마터에서도 과도기를 거쳐 군포 산본동 등지에서 고족접시가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 말에 이르러 전국의 가마터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고족접시의 소비 양상은 궁궐 유적, 제사 유적, 주거 및 생활 유적, 지방 관아 및 읍성 유적을 중심으로 확인되었는데, 전국의 각종 소비지에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지 출토품 분석을 통해 고족접시 내저면에 시문된 문자문에 따라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시문된 문양 중 '祭'자문은 확실히 제례 관련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문양이 시문되지 않은 경우나 '福'자문이 시문된 경우 소비지 출토품 사례 등을 통해 제례 뿐 아니라 기타 용도로도 폭넓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壽'자문이 시문된 고족접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며 대부분 굽이 낮은 기형으로 제작되어 잔치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Ⅳ장에서는 백자 고족접시의 문양 시문 여부, 접시면의 형태, 굽 형태에 따라 유형 분류를 하고, 유형별 특징을 살펴보았다. 문양에 따라 접시면과 굽 형태의 조합을 살펴보면 무문과 '祭'자문이 시문된 경우 가장 다양한 양식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원형과 사각형의 접시면이 나타나며, 각각의 접시면에 원형, 각형, 사각형의 굽이 모두 제작되었다. '壽', '福'자문이 시문된 경우에는 대부분 원형의 굽에 원형의 접시면을 갖추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형 분류를 토대로 고족접시 제작 양상의 변화를 세 시기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기는 18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시기로 금사리와 군포 산본동 출토품이 이에 포함된다. 굽 높이는 평균 1.5~2cm로 높지 않은 편이며 크기는 대․중․소형이 다양하게 제작된 양상을 보인다. 접시 내저면에는 '祭', '福', '壽'자문을 원문 1줄과 함께 주로 행서나 해서체로 시문하였고 굽의 형태는 원형굽과 각형굽이 모두 나타나나, 무문 고족접시의 경우 원형굽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 2기는 가장 다양한 백자 고족접시가 생산된 시기로 광주 분원리, 양구 칠전리 등이 이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고족접시의 굽 높이가 3cm 이상으로, 1기 보다 높게 제작된 경향을 보인다. 또 일부 요장에서는 높은 굽과 함께 비교적 낮은 굽의 고족접시도 함께 생산되었다. 문양은 1기와 유사하게 '祭', '福'자문을 행서체나 해서체로 1줄의 원문과 함께 시문하였으며, 시기가 늦어지면 2줄의 원문이 나타나기도 한다. '福'자문의 경우 2줄의 원문 안에 보통 전서체로 시문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壽'자문은 대부분 2줄의 원문과 함께 전서체나 도안화된 문양으로 시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시면은 원형뿐만 아니라 사각형도 등장하며, 운두가 깊은 경우도 있다. 굽 형태에 있어서는 원형굽 또는 각형굽으로 제작되는데 원형굽의 경우 투각을 한 굽도 확인되었다. 한편 접시 내저면에 문자문 대신 모란문, 산수문, 율문, 석류문, 운학문 등 길상의 소재가 되는 문양이 시문되는 경우가 드물게 나타났다. 길상성이 강하고 조형적으로도 화려한 문양이 시문된 백자 고족접시는 제례용 보다 연향용이나 손님 접대용 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3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해당하는 시기로 대부분 지방 가마터에서 제작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굽의 높이는 평균 3~4cm로 더욱 높아지고, 일부 가마터에서는 평균 4cm 이상의 높은 굽과 평균 2cm의 낮은 굽이 양분화 되어 제작되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한편 이전 시기와 달리 소형 고족접시 위주로 제작되었고, 대부분 문양이 시문되지 않았다. 굵은 모래 받침에 포개구이를 하여 대량으로 번조하는 경우가 늘어나 대부분 조질의 경향을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백자 고족접시를 그동안 사용된 '제기'라는 한정적인 용어에서 벗어나 다양한 용도를 포괄하는 기명으로 그 명칭을 재설정하고, 용도와 성격을 확장하여 재고찰 하였다. 사용 주체가 왕실에서부터 사대부, 일반계층으로 점차 저변화되어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으로 소비되는 점이 주목된다. 이에 따라 백자 고족접시의 '高足'은 차별화된 예를 상징하는 것으로 조상이나 신을 높이 받드는 의미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귀한 손님을 대접하고, 공경과 존경의 의미를 함축하며 조선 후기에 대표적으로 사용된 기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白磁 高足楪匙) is a form of porcelain formed in the shape of a flat-surfaced dish and a high foot to support, a particular form of white porcelain mainly produced in during the Joseon dynasty(18th to the 20th century). While commonly recognized as ritual vessels because of its tall foot, thus having some studies name the particular form of porcelain as the 'high-footed dish,' little is known about its reality and specific usage. However, various excavated artifacts as well as existing literature, royal protocols, paintings, and modern photographs are valuable references that add to the possibility of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used for various occasions, such as ceremonies in addition to the widely known usage, ancestral or religious rituals. First and foremost, the second chapter examines the definition, concept, terminology, and the origin of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The origins of calling a flat dish with a high foot as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traces back to the “gojok-jagi”(高足磁器) which appears in the royal protocols written during the 19th century, and can also be observed among the table settings depicted in the court paintings of the royal family’s banquets. The vessels are assumed to have appeared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where metal vessels such as “uri-dae”(亏里臺) or “metal dishes” evolved into porcelain. Schematizing from the illustration “Jegidogameuigwe,”(祭器都監儀軌) it is possible to infer that these metal ware possess similar attributes, such as the flat-surfaced dish and the tall foot supporting it. In examining the historical social purpose of the high-footed white porcelain dish‘s usage, we have focused on the aspects of how consumption expands. From a usage perspective,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situations in which the dish would be used for serving guests or at banquets through literary records and picture data. It could also be observed that the main consumers of the dish were first from the royal palace, but gradually expanded to the gentries, followed by the commoners. Specifically, it is possible to infer that the waver of the status system and the increase of the yangban class led to increased rituals in the peninsula, which resulted in the increase in the usage of such dishes, as well as the development of trade, distribution and transportation led to the common class. The third chapter will examine the various characteristics between dishes excavated from different historical manufacturing and consumption sites.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is assumed to have undergone a transitional period in 17th century, then becomes taller in average during the 18th century overall, as can be observed from the state kiln at Geumsa-ri. After this period, it is assumed that mass production began at the state kiln in Bunwon-ri and continued throughout the mid-18th to 20th century. Rural kiln sites such as Sanbon-dong in Gunpo have been found to also create such dishes after a transitional period, and the dish has become mass-produced in all areas of the peninsula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patterns in which the high-footed dishes were consumed was observable through historic sites such as palace, ritual, living and dwelling remains, and rural government offices and fortresses, which showed the wide usage of such dishes in various consumption sites within the peninsula. Examining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se sites, it was further observable that the dishes would have been used for different purposes according to the different characters painted on the dish plate. The character ‘je’(祭) seems evident that it was used in ritual related situations, however dishes without patterns or in the case of the character ‘bok’ (福) seems to have been used widely in other occasions in addition to rituals, as can be inferred from such excavated artifacts from sites of consumption. It is rare to find such forms of high-footed dish with the ‘su’(壽) character painted, and most were produced to have a short foot, which implies its usage during occasions of celebrations and feasts. The fourth chapter classifies the high-footed dish according to the decorative motifs, the shape of dish surface, and the form of the foot. While examining the different combinations of the design of the plate and foot according to the painted characters, the dishes with no pattern or with the ‘je’(祭) character possessed the most diverse types of forms. Specifically, round and square plates were found, and round, squared, and polygonal-shaped foots were discovered. In the case of plates with the ‘bok’(福) and ‘su’(壽) characters, most were produced in the form of round foots and round plates. Based on this division according to the form of the high-footed porcelain, it is possible to divide the production conditions into the following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 is throughout the 18th century, in which the excavated sites are kilns at Geumsa-ri and at Sanbon-dong in Gunpo. The average height of the foot is relatively short, 1.5~2 centimeters, and comes in various sizes, from large, medium to small. When center motifs were painted into the plate, the Chinese characters ‘je’(祭), ‘bok’(福), or ‘su’(壽) is painted into a circle form using a single line. The second period shows the most various forms of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produced, which were discovered in kiln sites at Bunwon-ri in Gwangju and Chiljeon-ri in Yanggu. The average height of the foot in this period is larger than 3 centimeters, which makes the dish taller than those produced during the first period. Patterns are similar to the first period in that ‘je’(祭) and ‘bok’(福) characters are painted in the center along with a line around the Chinese character in a round shape, and later in the period two lines are also observable. Few but existing cases were found where instead of characters, decorative motifs such as peonies, landscapes, chestnuts, pomegranates, and cranes would be painted as a center motif. These forms of dishes in which contain strongly auspicious and decorative patterns can be assumed to have been used for the purpose of banquets or to serving guests, rather than for rituals. The third period is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where most are produced in rural kilns sites. The foot becomes an average of 3~4centimeters taller to previously produced porcelain. Most have been produced without any patterns painted, and both round and polygonal foot shapes have been produced. It is also possible to observe traces of sandy supports and evidence that they have been fired in stacks, and more cases are seen which are massed produced, attributing to its low quality.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is a name that escapes the limited scope of meaning the word “ritual vessel” can convey and instead encompasses many different types of usages, therefore the study re-identifies its name and elaborated on its purpose and characteristics through re-contemplation. The peculiar type of dish is noticeable in that the usage has increased from the royal families, literary class to the common class, and becomes a dish consumed across the whole Korean peninsula. The tall-footed form of the dish also symbolizes distinctive courtesy, which is used not only to honor the ancestors and gods but also to hospitably serve welcome guests and symbolize respectfulness and reverence. Henceforth, the white porcelain high-footed dish rests its significance in that it was a representative form of porcelain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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