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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의 국풍81

Title
전두환 정부의 국풍81
Other Titles
“Gukpung 81” of Chun Doo-Hwan Regime : Mobilization of Cultural Resources by the Authoritarian Government
Authors
김지연
Issue Date
2014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윤지환
Abstract
From May 28 to June 1, 1981, a large-scale traditional cultural festival was held in Yeouido plaza, attracting approximately ten million people. This state-run cultural event, named as “Gukpung 81”, was hosted by the Chun Doo-hwan regime. What did the Chun administration attempt to gain by hosting this great festivity? Why did Gukpung 81 fade away as a one-off event despite the ten million audience? This paper analyzes the “Gukupung 81” as the case in which the authoritarian government mobilized cultural resources from its society. Most of the previous studies have paid attention to political or economic aspects of the Chun regime, yet few employed a cultural perspective. Specifically, moving away from the statist approach toward authoritarian governments, it is necessary to question whether the authoritative government had indeed control of social resources as elaborate as intended. With such in regard, this paper provides an analytical framework to investigate the overall process of cultural resource mobilization by the authoritarian government, including the Chun regime's “Gukpung81." As a background, first, the paper examines the legitimacy of Chun Doo-hwan. After having seized power by staging the coup, the Chun administration took military action against the May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of citizens. Moreover, Chun was a president elected indirectly from the National Conference for Unification, organized based on the Yushin Constitution. Chun could gain power but was severely questioned of his legitimacy. Thus Chun lacked political legitimacy without any connection with society from its initial years. However, Chun desired for his government to be embedded within society. To overcome legitimacy issues, Chun chose to mobilize cultural resources. His presidential speeches in the early 1980s show that he sought active participation based on the stability of the nation and the unity of its people. It was a desire for a strong government that did not face social resistance. As university students were particularly the major resistance forces at the time, Chun’s government planned to engage with the students. Utilizing the then popular traditional culture, the government tried to win the support of university students. Chun promoted “Gukpung 81” in diverse areas, especially because its success would be an opportunity to prove civic society of the government’s capability. “Gukpung 81” did not turn out as planned. The event turned out to be authoritarian, sloppy, and coercive, just as much as the government itself was. In every step of the way as the event was conducted, problems arose, from planning, execution, and to follow-up. Two greatest problems at the planning stage was centralized decision making, and coercive and conciliatory mobilization of participants. “Gukpung 81” was hosted by the sole decision of President Chun and was planned out by a single individual, Heo Mun-do. To bring in more participants, the government on one hand, tried to appease university students who were most adamantly against Chun, and on the other, forced soldiers and public servants to engage in the event. In its execution, “Gukpung 81” faced troubles in its context and finance. Many subparts of “Gukpung 81” festival actually had no relevance to the original intention of developing and promoting traditional culture for university students. Items unrelated to traditional culture were most popular. The supposedly main agents of the festival, university students showed low participation rate. Furthermore, the governmental account of “Gukpung 81” budget was unclear at best. “Gukpung 81” eventually ended as a one-off event. The government failed to institutionalize it as a national festival. In the end, very little discussion was made regarding “Gukpung” as the follow-up festival. Chun’s government embarked on liberalization measures after “Gukpung 81”, but this only propelled social resistance. Chun failed to gain public support and thus lost authority. In an effort to regain tight control over society, Chun responded to continuous resistance with coercion and force, but at this point, the demand for continued liberalization measures and democratization could not be quelled. As a result, the government enforced both liberalization measures and control measures without consistency and coherence, building a contradictory state. The government once again became disembedded from society, but in a different form. Chun’s government utilized culture as it came to power. This paper examines “Gukpung 81” to find how authoritarian governments control and manipulate society, and how they mobilize culture to achieve goals. An analysis of the procedural process of ‘Gukpung 81’ may show the dynamics between a government action and social response. Moreover, this paper provides an analytical framework that gives an overview of the cultural mobilization of Chun’s regime to reconstruct and structuralize ‘Gukpung 81’.;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여의도 광장에서는 대규모 전통문화 축제가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10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것은 ‘국풍81’이라는 이름으로 전두환 정부가 개최했던 국가 주도의 대규모 전통문화 축제였다. 전두환 정부는 1980년대 초 정권을 획득한 직후에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전통문화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하였는가? 1000만명이라는 사람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인 행사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본 논문은 전두환 정부의 ‘국풍81’을 권위주의 정부의 문화적 자원동원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전두환 정부에 대해 문화적인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기존에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이루어진 권위주의 정부들에 대한 연구를 보완한다. 특히 본 논문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국가주의적이고 통제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였다. 권위주의 정부가 모든 것을 의도한 대로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는 국가였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 논문은 전두환 정부의 ‘국풍81’을 비롯한 문화적 자원동원 과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한다. 먼저,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가 집권하게 된 과정과 정당성의 문제를 살펴본다.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고,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과도한 군사적 폭력으로 진압하였다. 또한 전두환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기반으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선거 제도를 통해 당선되었다. 이로써 전두환 정부는 강한 권력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정당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정당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두환 정부가 선택한 것은 문화적 자원의 동원이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대통령의 연설들을 살펴보면, 전두환 정부는 국가적 안정과 국민들의 단합을 기반으로 하는 적극적인 참여를 추구했다. 이것은 사회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하지 않는 동시에 여전히 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의 모습을 의미한다. 특히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주요 저항세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를 기획한 것이다. 즉, ‘국풍81’을 개최함으로써 대학생들을 체제 내로 포섭하고자 했다. 또한 전두환 정부는 ‘국풍81’을 개최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국풍81’의 성공은 전두환 정부가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에게 정부의 능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는 의도했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국풍81’을 개최한 전두환 정부는 권위주의적이고 허술한 점이 많았으며, ‘국풍81’ 또한 정부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풍81’의 추진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은 기획, 진행 그리고 후속조치의 각 단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풍81’의 기획단계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대통령 중심의 의사결정과 회유 및 강제를 통한 참여자 동원을 들 수 있다. ‘국풍81’은 전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개최되었으며 허문도 개인에 의해 기획된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저항세력의 중심이었던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민중운동세력을 회유하거나 군인, 공무원들에게 참여를 강요함으로써 ‘국풍81’의 참가자들을 동원하였다. 또한 진행단계에서 ‘국풍81’은 내용적, 재정적 측면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국풍81’의 내부 행사에는 전통문화의 발전과 계승 및 대학생들의 축제라는 본래 취지와 어긋나는 행사들이 많았다. 전통문화와 관련 없는 행사들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주체가 되었어야 할 대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하였다. 또한 정부에 의해 발표된 ‘국풍81’의 예산은 신뢰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국풍81’은 일회적인 행사로 끝이 났다. 정부가 처음 목표했던 것처럼 국가적, 민족적 축제로 제도화되지 못한 것이다. ‘국풍81’이 막을 내린 후, 후속 축제로써 ‘국풍’과 관련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풍81’을 개최한 이후 전두환 정부는 자유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의 저항을 본격화시켰다. 즉, 전두환 정부는 사회로부터의 자발적인 동의도 얻지 못했고 정부의 권력도 약화되었다. 결국 전두환 정부는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사회에 대해 다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통제를 다시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미 시행된 자유화 조치들과 시민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두환 정부는 자유화 조치와 통제조치가 일관성 없이 시행되는 모순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구축된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는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전두환 정부의 ‘국풍81’을 통해 권위주의 정부들이 사회를 통제하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문화를 조작하고 동원하는지 살펴본다. 특히 ‘국풍81’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국풍81’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행위와 사회의 반응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전두환 정부의 문화적 자원동원의 전체 과정을 조망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하여, ‘국풍81’을 재구성하고 전개과정을 구조화하여 보여주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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