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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북벌정책의 전개와 정치적 의미에 관한 연구

Title
17세기 북벌정책의 전개와 정치적 의미에 관한 연구
Authors
안명진
Issue Date
2002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최완기
Abstract
In the 17 century, the extension of Ch ing s power and the two wars - that is, the Manchu war in 1627 and 1636 - had a great impact on the Joseon Dynasty presenting the title of Admiring the Ming Dynasty, and thereby a sense of crisis on the dynastic existence was embodied as the Conquest of the North as soon as the King Hyojong ascended the throne. It seems that in the 17C Conquest of the North, two critical figures of the King Hyojong and Song Si-yeol forced the Conquering the North with different political aims. For that reason,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Conquest of the North in the Song Si-yeol s political stand who had restrained the consolidation of regal power by the King Hyojong, focusing on the then political situation when Sarim politics was executed. Since the King Hyojong s accession to the throne went against the head-family lineage discipline of primogeniture among the legal wife s sons, he had thought hard about the justification of his reign and the consolidation of his power from the early his period. In order to remove the pro-Ch ing power which had been an obstacle to the regal power in the early his enthronement, the King had went hand in hand with the anti-Ch ing Sarim faction and labored for the union with the anti-Ch ing faction by emphasizing the need of Conquest of the North. However, intentions of the two parties to conquer the North were fundamentally different. Focusing on the Conquering the North itself, the King Hyojong had the intend for consolidation of his regal power by the strategy of treating martial ministers favorably and building up the military. In fact, the Conquering the North granted him justification of the reign, enabled him to win the Sanrim faction over to his side by forming the sympathy with them who could affect negatively his legitimacy, and ultimately opened the way to achieve the consolidation of his regal power. But, the Sarim who had traditionally restrained regal power divined such King s thoughts and opposed the military buildup. The factions in power were worried about infringement of their vested rights caused by such military politics and the settlement of powerful regal power. After all, realizing the Sarim s support was inevitably required to administer the political situation, the King Hyojong entrusted the Sanrim with overall powers to administer state affairs in the his latter period so as to mitigate the Sarim s criticism of the military buildup. Then, Song Si-yeol assumed the leader. Based on the Chronicles of Lu that means Admiring Sinocentrism and Rejecting North Barbarians, Song Si-yeol s argument for Conquering the North originated in the subordinate notion which stressed the lord-vassal relationship with Ming. Accordingly, his conquest of the north implied the intent rather to take revenge for Ming s downfall by laying weight on the Neo-Confucianism itself than to conquest Ch ing through expansion of the military force. The Conquest of the North was a possible thing only after stirring up the discipline, and the concrete means was not building up the army but supporting the people. Song Si-yeol thought that the King Hyeojong s reign had deep significance in supporting the people and achieving justice administration, and was to renovate the legitimism by adoring classical scholars; which means that the rule of a king should be executed within the range of justic administration, that is, to emphasize the practical Confucian ethics in the Sarim politics. Dislike the King Hyeojong who highlighted the ruler s right, Song Si-yeol argued the theory of the Conquest of the North pursuing more fundamental and justificatory position centered on the cultivation of king s own virtue, and put value on cultivating the king s virtue and supporting the people that were essential prerequisites rather than conducting concrete preparation. The other side of his argument for Conquering the North veiled his intent to restrain the consolidation of regal power by the King Hyeojong and virtually, the true motive of Song Si-yeol who had participated in politics in the latter period of the King Hyeojong s reign was to complete the Sarim politics by restraining the regal power around the king and embodying the Neo-Confucian political ideology.; 17세기 淸의 세력 확대와 두차례의 胡亂은 尊明事大를 명분으로 하는 조선에 큰 충격이었으며, 이로 인한 王朝存立의 위기의식은 효종의 즉위와 함께 北伐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17세기 북벌정책에 있어서 효종과 산림계 서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입장의 규명은 그 성격의 파악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산림의 영수로서 조야의 여론을 주도한 송시열은 효종 말년에 이조판서로 기용되면서 정국운영의 핵으로 등장하였고, 북벌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효종과 산림은 북벌의 방법론상에 있어서 異見이 있었으며, 따라서 본 연구는 양자간에 서로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본 연구자는 사림정치가 시행되고 있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주목하여, 17세기 북벌정책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효종과 송시열을 중심으로 부각시키고 관계사료를 분석하여, 효종의 왕권강화에 대한 집권 서인의 견제라는 입장에서 북벌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효종과 송시열의 북벌론이 갖는 각각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그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밝히고자 하였다. 효종의 즉위는 嫡長子 상속의 宗統秩序를 거스르고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즉위초부터 재위명분의 확보와 왕권의 강화에 부심하였다. 그의 왕권강화를 위한 궁극적 방향은 김자점 세력의 제거와 산림세력의 견제, 군비의 확충으로 크게 요약된다. 효종은 즉위초 왕권의 장애요인이던 친청세력의 제거를 위하여 반청적 사림세력과 제휴하였고, 북벌을 강조하여 반청세력과의 합일점을 유도하였지만 양자가 의도하는 북벌의 근본 성격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효종은 북벌에 초점을 맞추어 무신을 우대하고 군비를 강화하는 등 그 이면에 왕권의 강화를 위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北伐은 효종에게 재위명분을 부여해주고, 자신의 정통성에 흠을 내는 산림과의 공감대를 형성해 그들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편이었으며, 그럼으로써 왕권의 강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교적 명분과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왕권견제의 전통을 가진 사림들은 북벌사업을 하는 효종의 의도를 간파하고, 군비확충에 반대하였다. 사림들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군왕의 역량을 제한하여 君臣의 共治를 이루고 도학정치를 지향하는 사림정권을 확립하는 것이었기에, 효종의 군사정책으로 인한 강력한 國王權의 확립을 염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북벌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못하였는데, 조선조 사림정치의 주체성은 義理정신에 있었고, 淸에 의해 강요된 主從관계의 국가적 수치심과 明에 대한 복수의 기운은 북벌로서 타올랐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효종은 북벌사업에 사림들의 동참을 요구한 것이고, 그들이 군비확장에 북벌이라는 명분을 제공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효종은 사림정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실제적인 측면에서 그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림의 지지없이는 정국운영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효종은 국방력 강화에 대한 사림의 비판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말년에 이르러 국정운영의 전반을 산림에게 위임하게 되고, 그 선두에 송시열이 서게 되었다. 송시열의 북벌론은 尊中華양夷狄이라는 春秋의 원리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明과의 君臣관계를 강조하는 종속관념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북벌은 실제적인 군비확충을 통한 무력적인 청의 정벌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성리학적 원리에 충실하여 正心함으로써 明에 대한 원수를 갚는 것이었다. 북벌은 기강을 진작한 연후에 가능한 것이고, 그 구체적 방법은 養兵에 있는 것이 아니라 養民에 있는 것이었다. 또한 송시열은 효종의 재위를 養民하고 王道政治를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며, 선비를 추향함으로써 正統의 설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군왕의 통치는 王道政治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다시말해 사림정치의 道學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송시열의 북벌론은 治人을 강조하는 효종에 대해 修身이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명분적인 입장에서 추구된 것으로써,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보다는 그 先行條件이었던 君德의 함양과 養民에 치중하였다. 북벌의 이면에는 효종의 왕권강화에 대한 산림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집권 서인의 견제라는 의도가 있었으며, 효종 말년에 정치에 참여했던 송시열의 진의는 왕의 측근에서 왕권을 견제하고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구현해서 사림정치를 완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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