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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매체를 통해 고찰한 우리나라 근대 수편물

Title
인쇄매체를 통해 고찰한 우리나라 근대 수편물
Other Titles
A study on Korea’s hand knitting from the 1886 to 1945 displayed in printed media
Authors
이정민
Issue Date
2014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이 연구는 개항 이후 근대 수편물의 국내 유입에 따른 우리나라 의생활의 변화에 대해 고찰한 것으로 편물의 변천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발행된 신문, 잡지 등의 인쇄매체의 기사와 사진, 지면 광고를 통해 수편물의 수용 및 보급 요인에 대해 분석하였다. 편물의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약 7세기에 이집트에서 발생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스페인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된 이래로, 편물은 서양 문화권에서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러한 편물은 1870년대에 선교사를 통해 양말의 형태로 국내에 유입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본격적으로 편물이 가정 내에 보급될 수 있었던 시기는 손뜨개법이 교육되기 시작하게 된 1900년대로, 이 시기에는 새로 설립되는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기관 내에 여성교육으로써 편물이 포함되어 학생들에게 기술이 전수되었다. 1920년대가 되면 일반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편물 강습회를 통해 일반 부녀자들에게도 제작법이 알려져 여성들은 각 가정에서 털실을 재료로 하여 양말, 스웨터, 목도리 등의 편물을 손으로 직접 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근대의 편물은 주로 방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털실을 이용하여 의복을 제작했다. 국내에서 사용된 털실에는 앙고라와 낙타가 있으나 대부분 양모를 사용하였다. 털실을 이용한 대바늘의 뜨개 기법에는 메리야스뜨기와 가터뜨기, 고무뜨기, 교차뜨기가 있다. 용어는 編을 ‘아미(あみ)’로 표기하거나 발음하는 등의 차이는 있었으나 기법면에서는 현재와 차이가 없었다. 개항 이후부터 1910년대까지는 수편물의 유입기로 볼 수 있다. 편물은 1800년대 후반에 서서히 우리 의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며 1900년대가 되어서야 수편물의 기술이 보급되고 기계로 편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1910년대까지 나타난 양말, 장갑, 스웨터 등은 외국으로부터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920년대는 편물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착용자의 범위는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확장되었다. 스포츠가 유행됨에 따라 신축성이 좋은 스웨터의 착용도 증가했다. 그러나 장갑, 모자, 목도리 등 방한용 소품이 증가됨에 따라 남바위, 풍차, 토시 등 전통 방한 용품의 착용은 점점 감소하였다. 1930년대는 편물이 가장 호황을 누렸던 시기로 편물의 착용범위는 일반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더욱 확대되었다. 이 시기는 카디건, 풀오버 스웨터 등 스웨터의 착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또한, 스웨터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졌고 특히 실의 색깔을 달리하여 무늬를 나타낸 것은 이 시기 스웨터의 특징이었다. 편물은 보온성이 좋아 가을 겨울철 의복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신축성이 있어 스포츠나 야외활동에 적합한 의복이었다. 편물은 재료의 낭비가 없어 경제적이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제작이 가능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부인들이 수편물을 제작함으로써 부업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이점이 있었다. 수편물의 기술이 보급된 경로는 학교 교육과 강습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편물은 여학생의 수예과목을 통해 보급되었고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통해 전파되었다.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은 1900년대 초반부터 편물 교육을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었으며 1906년에 보통학교령과 여학교령을 통해 수예과목이 지정이 되어 공식적으로 여학생의 수편물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또 다른 수편물의 보급 방법으로는 신문사와 YWCA 주최의 편물 강습회가 있었다. 1920년대부터 재봉, 자수, 편물 강습회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 중에서 편물 강습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강습회는 1920년대 후반부와 1930년대 전반부에 가장 성행했으나 1930년대 후반이 되면서 서서히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전시 분위기와 함께 재활용, 폐물을 이용한 편물 강습이 주로 진행되었다. 강사는 일본에서 유학파가 가장 많았으며 일본인이 수편물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강사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국내파도 역시 등장 하였다. 신문 및 잡지에서는 지면을 통하여 수편물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각종 뜨개법, 실의 종류, 패턴 등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 기사를 통해서도 편물을 배울 수 있었다. 근대의 수편물은 초기에 여성교육을 통해 국내에 보급이 되었으며 이후 강습회를 통해 일반 부인들을 교육함으로써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다. 또한 편물의 전개과정을 통해 1910년대까지는 일부 소수 계층에서만 착용한 것을 볼 수 있었고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에는 편물이 일반인들에게 점점 대중화 되어감을 볼 수 있었다.;This study is on Korea’s hand knitting from the opening of ports and national independence. It also observes the pervading process of knitting in Korea. The study analyzes the factors that contributed to the int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hand knitting in Korea by looking into articles, photos, and paper advertisements in the printed media including newspapers and magazines published at those times. The time when knitting was introduced to households in earnest was the 1900s when hand knitting techniques were educated in schools. During this time knitting education as a part of female education was included in school curriculum in newly established primary and secondary schools, encouraging girl students to learn knitting skills. In the 1920s ordinary women also started to learn knitting through workshops and became able to produce knit items such as socks, sweaters, and mufflers out of wool at their houses. The knit items worn during these times in Korea were mainly western clothing. In some cases, however, knitting technique was also applied to Korean traditional clothing such as Jeogori (襦) and Magoja (褂). During this period in Korea, knitting’s major purpose was for warmth, and thus wool was mainly used to produce knit clothes. The most widely used material for knitting was wool from sheep. Knitting techniques using bamboo needles and wool include stockinette stitch and garter stitch. It is widely accepted that knitting was brought in to Korea between the opening of ports and the 1910s. In the 1920s the types of knitting in Korea started to increase and schoolboys and then schoolgirls also began to wear them. As sports became popular, more people started to wear sweaters because they were highly elastic. However, as more Koreans started to wear knit items such as gloves, wool hats, and mufflers for warmth, less people wore Korean traditional clothing for warmth. In the 1930s, knitting became so popular that ordinary women and children began to wear them as well. The wearing of sweaters soared during this time and forms and types of sweaters became very diverse. Knitting was seen as efficient clothes in autumns and winters as it was thermal and appropriate for sports and outdoor activities as it was elastic. Knitting was economical as well because it was reusable and generated less wastes. Hand knitting was first introduced to Korea through female education and became widespread thereafter by educating housewives through workshops. Moreover, it was observed that knitting was mainly worn by a small number of upper class people until the 1910s and became popular among the general public from the 1920s and into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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