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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泗沘時期 祭祀體系 변화와 그 의미

Title
백제 泗沘時期 祭祀體系 변화와 그 의미
Other Titles
The Meaning of Changes in the State Ritual System in Baekje(百濟) Sabi(泗沘) Period
Authors
박초롱
Issue Date
2013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영미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국가제사가 왕권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국가 지배질서를 상징한다는 관점 아래 天地제사를 중심으로 백제 국가제사체계 변화와 그 의미를 규명하였다. 특히 사회사적·사상사적 의미에 천착하였다. 백제의 국가제사체계는 4세기경 東明廟와 天地合祀를 중심으로 정립하였고, 사비천도를 기점으로 仇台廟와 天及五帝之神을 제사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때 五帝라는 새로운 神格의 도입을사비기 백제의 새로운 지방통치체제인 5方制(方‧郡‧城制)와 연관지어 살펴보았다. 『三國史記』의 백제 제사 기록들에서는 온조왕·다루왕대에 최초로 동명묘와 천지에 제사 한 이후 약 200년 간 시간적 공백이 나타난다. 따라서 초기의 제사 시행기록은, 『三國志』에 등장하는 마한의 제사 기록을 참고하면, 국가차원에서 행해진 제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백제에서 국가제사체계가 정립된 것은 4세기경으로, 중국식 예제의 수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류왕 10년(313) 祭場을 南郊로 표현하고, 근초고왕 2년(347) 제사대상인 天地를 天地神祇라고 한 점에서 중국식 예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南郊祭天은 前漢 말 王莽이 완성시킨 郊祀 개혁을 통해 정립된 것이고, 天神地祇는 『주례』를 따른 표현이다. 즉, 남교와 천지신기라는 용어는 백제가 중국식 예제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제사를 체계화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3세기 이후, 특히 책계왕 이후로는 즉위 다음해 정월로 정례화되어 가는 것과도 유관하다. 따라서 4세기에는 중국 예제의 영향 아래 동명묘와 천지제사 중심의 국가제사체계를 정립하였다고 생각된다. 한편 『주서』를 시초로 『수서』, 『북사』, 『한원』 등의 중국 기록에서는 동명묘가 仇台廟로, 天地는 天(地)·五帝로 제사 대상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때 변화의 기점은 국가체제를 재정비하고 祭場이 변화하는 성왕의 사비천도로 추정된다. 백제 국가제사체계 변화, 그 중에서도 제천의례의 변화로 크게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 번째는 오제가 도입되어 四仲月에 제사했다는 것이다. 사중월은 『書經』, 『禮記』, 『史記』, 『春秋左氏傳』 등 중국의 유교 경전과 사서 속에서 국왕의 巡狩와 관련한 시기로 나타난다. 순수는 영토 통치 방식이자 四方天下를 관할하는 천자의 지배력을 확인·공표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사중월의 오제 제사는 백제 국왕이 천하군주로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보여준다. 한편 오제의 도입은 사비천도 후 영산강 유역 등을 5방제 아래 편재하는 과정에서 부여계 시조인 동명은 왕권과 지배 정당성을 보장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제는 중국의 관념으로 보편성을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두 번째는 변화한 국가제사체계 내에서 제천의례의 중요성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의 유교식 제사체계 정착과 함께 중국의 天 관념이 도입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의 경우 천이 有德者에게 天命을 내린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이때 天意·天心은 民意·民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백제의 경우 중국 천 관념의 수용흔적과 함께 웅진기인 문주왕, 무령왕 즉위 기사에서부터 民心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런 바탕 위에 성왕의 제사체계재정비가 이루어졌고, 시조묘보다 제천의례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국왕의 지배정당성을 보장하는 논리가 天命思想이라는 보편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This article studies meaning of changes in the state ritual system of Baekje(百濟) focusing on ritual for the god of heaven and earth while looking at the state ritual as a way to legitimize political power and a symbol for King's authority. The state ritual system which focused on ritual for Sijo-Dongmyeng-Myo(始祖東明廟) and the god of heaven and earth was established around the fourth century. The system was closely related to acceptance of chinese ritual institution. The influence from Chinese ritual was evidenced by terms used in Baekje's ritual. The place for ritual was called Namgyo(南郊) in the 10th year of King Biryu(比流王) and the object for ritual, the god of heaven and earth was named as Cheonjisinshi(天地神祇). Baekje understood the Chinese ritual institution and organized its state ritual accordingly. Since the third century, especially after King Chaek-gye(責稽王), rituals were held regularly in January. Meanwhile, old documents from China including the Chou-shu(周書) show that objects for rituals were changed to Sijo-Gutae-Myo(始祖仇台廟) from Sijo-Dongmyeng-Myo and to the god of heaven and earth and five Kings(五帝, wudi) from the god of heaven and earth. It is assumed that the change in the state ritual began with a shift of the capital to Sabi(沙沘) in King Seong(聖王) age. Along with the capital transfer, King Seong reorganized the state system which changed the place of rituals. The time of the Five Kings of Baekje was fixed for a middle month of each season, Sajungweol(四仲月)—February, May, August, November. There was any case found that the rituals were practiced in those four months in China. Yet, according to confucian scriptures and historical documents, those four months had particular meaning in connection with king's tour of inspection that meant reinforcement of his authority in local regions. In The Seo-gyeong(書經), it is found that King Shun(舜) performed similar rituals. When the King was succeeded to the throne he carried out a ceremony in the capital. After the ceremony, King Shun made a tour in four directions and offered sacrifices to the heaven in each sacred mountain. Then, he met feudal lords of the regions. The ceremonies in sacred mountains have some similarities with the way of Obangje(the ceremony for five directions, 五方帝) in Ogyo(五郊). That is, Sajungweol five the Kings of Baekje can be understood in connection with practices of the local ritual, Obangje of Sabi era. The five Kings represented gods of directions. There are two notable changes in a harvest ceremony in the changed state ritual system. First, the ceremony was performed on Sajungweol after Baekje had introduced Oje. The fact that the King practiced a ceremony for Oje in Sajungweol revealed how Baekje perceived local provinces as some kind of feudal states. With such perception, the central government naturally upgraded to a state of the son of heaven. Second, importance of the ceremony in the changed system grew. This change was closely related to establishment of Chinese confucian ritual system along with introduction of a notion of heaven. Chinese ‘tian(天)’ handed down orders to moral men while in ancient Korea, god of the heaven was related to the progenitor by blood. Against this backdrop, as the harvest ceremony became more important than Sijo-Myo, it is deemed that a universal principle, Tian-Ming(天命) through was utilized as a logic to legitimatize politic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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