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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宮闕遺跡 出土 磁器 硏究

Title
朝鮮時代 宮闕遺跡 出土 磁器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Porcelain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of Joseon
Authors
김혜인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의 기록과, 왕실관련 유적의 출토품을 대상으로 조선왕실이 실생활기명으로 자기 사용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조선왕실의 자기를 소비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조선왕조의 공식기록이라 할 수 있는 『朝鮮王朝實錄』과 儀軌를 대상으로 조선 왕실의 자기사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왕조가 갖고 있던 자기사용에 관해 절검의 입장을 확인하였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신분적 차등에 따른 사용기명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왕실행사기록인 의궤에서 위계질서에 따른 구체적 기명의 종류와 시기별 기명의 소비양상을 알아보았다. 조선의 왕실에서는 보통 유기와 함께 중국산 청화백자를 가장 고급기로 인식하고, 자기 안에서도 품등을 나누어 甲燔磁器> 磁器> 高足자기 순으로 인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각 연례에서 사용되는 자기의 수급처와 수량을 비교함으로써, 각 연례의 규모는 왕실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이는 왕권이나 국가 체제, 혹은 왕조가 처해 있었던 사회적 배경등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왕실유적을, 한양 내의 궁궐(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과 행궁(남한행궁, 화성행궁, 강화행궁)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출토된 자기편을 유구별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기록에서 확인한 조선왕실의 입장을 출토품을 통해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궁궐유적에서 출토된 자기는 궁궐의 사용시기와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자기는 대부분 조선후기로 편년되는 것이며, 경희궁을 제외한 유적에서는 조선중기에 해당하는 자기 출토량이 적은 편이었다. 행궁유적 출토자기는 각 시대별 건물의 주요 사용 시기 및 사용성격과 편년이 비교적 일치하였으며, 이는 출토자기가 해당 건물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의 현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더불어 경복궁의 훈국군영직소지와 같이 조선후기의 위상이 낮은 건물지에서 조선전기의 양질 자기편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어, 문헌상에 나타나지 않은 조선전기 궁궐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궁궐유적 출토 자기의 특징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이를 종류별로 크게 청자, 분청사기, 백자, 수입자기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더불어 궁궐유적 출토품을 조선전기 왕실사찰인 회암사지와 최근 발굴된 한성 내 관청급유적인 통의동과 사간동 유적·동대문운동장 유적 등의 출토자기와 비교함으로써 왕실유적 출토품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고자 하였다. 각각의 자기들은 사용상의 특징을 달리하며, 유적의 위상에 따라 사용하는 자기의 질과 문양 등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자는 고려말기 청자와 이를 계승하여 주로 특수기종으로 생산된 조선청자를 같은 계통으로 보고 함께 살펴보았으며, 이들의 생산지를 추정해 보았다. 분청사기는 출토품의 분석 결과 인화 조각상감기법을 중심으로 대접과 접시의 기형에 한정되어 소비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분청사기에서 확인되는 관사명과 출토유구와의 관련성을 통해 관사명이 새겨진 이유와 당시 분청사기의 수급체계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기명인 백자를 백태청유자와 철화백자·청화백자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에 따라 조선 백자의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백태청유자는 기존의 주 사용처로 알려진 ‘東宮’보다 사용범위는 실제로 더 넓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왕실유적에서는 철화백자가 주로 17세기로 편년되는 것이 출토되었으며, 출토기형과 문양이 한정적인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청화의 수급이 어려워 택하게 된 철화는 소량의 특수기종에만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청화백자는 왕실관련 유적 출토품 중 조선전기의 것은 거의 없으며, 대다수가 18세기 후반으로 편년되는 것이다. 유적별 성격에 따라 청화백자의 소비양상을 살펴본 결과 궁궐유적내의 위계적 차이는 청화백자 출토량의 차이에서도 드러났다. 또한 출토된 청화백자 중 특징적인 문양에 주목하여 그 연원과 편년, 문양이 가졌던 위상을 전세품등과의 비교를 통해 밝혀보았다. 그리고 백자의 굽바닥이나 내저면에 쓰이는 명문의 형식을 구분하고 의미를 분석하였는데, 생산지에서 쓰는 음각명과 청화명, 소비지에서 쓰는 점각명과 묵서명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명문의 의미와 편년자로로써의 가치를 정리하였다. 이 외에도 조선 왕실은 많은 양의 수입자기를 사용하였는데, 이 중 조선 궁궐에서 출토되는 근대자기에 대한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왕실유적 출토품을 분석한 결과 조선왕실의 생활기명은 조선의 자기로 대표되는 무문의 백자가 그 기저에 있었지만 분청사기와 청자, 철화백자, 청화백자 등이 각각의 역할을 달리 하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소비처인 왕실에서는 비교적 양질의 고급자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기존 생산지 연구에서 이루어 졌던 양질과 조질의 분화가 소비지에서는 엄격히 지켜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왕실전용 자기라 여겨졌던 양질백자는 비록 수량적 차이가 있지만 관청급 유적에서도 그 사용예가 확인되어 생산지에서 파악한 양질과 조질의 이분법적 사용구분은 실제 소비지 출토품의 분석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해석이 가능하였다. 왕실유적 출토품 분석을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시기별로 살펴본 결과, 먼저 분청사기의 경우 인화와 조각상감기법을 사용한 발과 접시 등이 왕실유적에서 집중 출토되므로 왕실에서 식생활기명으로 활용되었던 분청사기의 역할을 확인함과 동시에 분청사기의 여러 기법 가운데 인화, 조각상감기법이 가지는 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와 비교하여 17세기까지 고려 스타일의 청자가 특수기형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현상은 청자의 역할은 분청사기나 백자와 구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동궁전용기물로 인식되었던 백태청유자는 동궁 이외의 다른 소비지에서도 출토되어, 제한적 사용에 대한 이전의 논의에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임진왜란 직후로 편년되는 유물이 왕실유적에서는 출토량이 매우 적어 이를 통해 당시 관요의 자기수급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17세기 왕실 내에서 철화백자의 위상은 관요산 철화백자가 궁궐유적에서 출토량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사용기종과 문양이 한정적이므로 청화백자의 완전한 대체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선 후기 급증하는 청화백자의 생산량은 전량 왕실에서 수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번의 증가와 관요의 민영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실록과 의궤의 기록, 왕실관련 유적 출토품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조선왕실 자기사용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려 하였으며, 이를 통해 실제 조선왕실이 백자를 어떻게 수용하였는가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usage patterns of porcelain as the everyday vessel of Joseon's royal family and to understand the porcelain of Joseon's royal family from the perspective of consumption by reviewing the records of Joseon and the royal artifacts excavated at certain sites. For those purposes, Joseonwangjosillok(朝鮮王朝實錄), which hold official records of Joseon Dynasty, and Uigwe(儀軌) to examine the royal family's uses of porcelain. The results indicate that the dynasty was thrifty on porcelain, which was ultimately for categorizing vessels according to social status. Uigwe, which contains the ceremony records of the royal family, was reviewed to figure out the kinds of specific vessels according to hierarchy and the consumption patterns of each vessel. In the royal family, they usually regarded brassware and Chinese blue and white porcelain as the highest grade vessel and set an order for porcelain, which placed Gapbeon porcelain(甲燔磁器) at the top and porcelain and Gojog porcelain(高足磁器) at the lower positions in the order. The suppliers and amount of porcelain used in each annual ceremony were compared, and the results reveal that the size of each ceremony represented the royal family's majesty and was related to the royal or national institution and social backgrounds facing the royal family. The porcelain artifacts excavated in the royal palaces(Gyeongbokgung, Changgyeonggung, Changdeokgung and Gyeonghuigung) and Haenggung(the temporary palaces(Namhanhaenggung , Hwaseonghaenggung , and Ganghwahaenggung) within the perimeter of Hanyang were analyzed to understand the concrete aspects of the royal family's positions checked in the records. The analysis results indicate that the porcelain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varied according to the period and status of each palace. Most of the porcelain belonged to later Joseon. The sites generated only a small number of porcelain that belonged to middle Joseon except for Gyeonghee Palace. The porcelain excavated at the Haenggung relatively matched the main period and usage nature of each of those palaces chronologically. That is, the excavated porcelain reflects when and for what purposes the concerned palaces were used relatively accurately. In addition, high quality porcelain from early Joseon was excavated in large numbers at the building sites whose status was low in later Joseon such as Hungukgunyonggiksoji(訓局軍營直所址) at Gyeongbokgung, which provides information about the situations around the palaces in early Joseon not found in documents. In an attempt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rcelain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the investigator categorized it into celadon, Punchong porcelain, white porcelain, and imported porcelain. By comparing porcelain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with that at Hoeamsaji, which was a royal Buddhist temple in early Joseon, and Tongui-dong, Sagan-dong, and Dongdaemun Stadium sites recently excavated as government offices of Hanseong, I tried to figure out the former more clearly. As a result, each porcelain differed in terms of usage characteristics, and the status of the sites decided the quality and patterns of porcelain. As for celadon, I regarded celadon from the end of Goryeo as the same family with Joseon celadon that inherited it and was produced as a special product and estimated their production sites. The analysis results also indicate that the consumption of Punchong porcelain was restricted to bowls and plates around the stamped and Inlaied techniques. In particular, the relations between the official name on Punchong porcelain and the other excavated artifacts offered information about the reasons why such titles were engraved and the supply system of Punchong porcelain in those days. Joseon's most popular vessel, white porcelain was categorized into White porcelain with celadon glaze(白胎靑釉磁), White Porcelain in Underglaz Iron-brown(鐵畵白磁), and blue and white porcelain(靑畵白磁). Within the framework of White porcelain with celadon glaze may have enjoyed a wider scope of usage than “Palace of the Crown Prince(東宮)" that's known as the major usage site. White Porcelain in Underglaz Iron-brown excavated at the royal family sites belonged to the 17th century and was limited in terms of forms and patterns, which indicates that White Porcelain in Underglaz Iron-brown, which was an alternative to scarce blue and white porcelain, was used as special vessels in small numbers. And no blue and white porcelain excavated at the royal family sites belonged to early Joseon. Most of it came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As for its consumption patterns according to the sites, the hierarchy of the sites was reflected on the excavated amount. Focusing on characteristic patterns, I compared the excavated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artistic artifacts in terms of origin, chronological order, and patterns. In addition, I distinguished the formats of words on the outside bottom and inside of white porcelain and analyzed their meanings. And the royal family imported and used a good deal of porcelain from overseas, and I examined the modern porcelain excavated at the Joseon palaces and its characteristics. The analysis results of the porcelain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indicate that the basis of the royal family's everyday porcelain was white porcelain with no patterns. But it's also concluded that they must have used punchong porcelain, celadon, white porcelain in underglaz Iron-brown, and blue and white porcelain for different purposes. Although the royal family used high quality porcelain, it's confirmed that they didn't strictly divide high and low quality porcelain at the consumption sites compared to the production sites that were researched in the previous studies. High quality white porcelain, which was estimated to be solely used by the royal family, was checked to have been used by government offices through excavated artifacts despite the gap between them in terms of quantity. The dual distinction between high and low quality porcelain at the production sites gave way to more diverse and multifaceted interpretations at the consumption sites. Furthermore, the porcelain excavated at the royal sites was compared between before and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s a result, there was a concentration of bowls and plates that used the stamped and Inlaied technique in the category of Punchong porcelain at the royal sites, which sheds light onto the roles of Punchong porcelain porcelain as a food vessel in the royal family and the status of the stamped and Inlaied technique among its various techniques. The fact that the celadon porcelain of the Goryeo style remained in constant use as a special vessel until the 17th century, which indicates that its roles were different from those of Punchong porcelain and white porcelain. Formerly regarded as the vessel solely used at the Palace of the Crown Prince, White porcelain with celadon glaze was excavated at other consumption sites, as well, which suggests a possibility for a new interpretation of its limited use in the previous discussions. Only a very small of porcelain was excavated at the royal sites after the Japanese invasion, which gives information about the supply of office porcelain. As for the status of underglaze iron-brown porcelain in the royal family in the 17th century, it doesn't seem that it completely replaced blue and white porcelain since the amount excavated at the palace sites was very small and its kinds and patterns were very limited. Finally, although the production of blue and white porcelain surged in later Joseon, not all of the production went to the royal family, which suggests its close connection with the increasing Sabeon(私燔) and privatization of office porcelain. In short, the study conducted multifaceted analysis of the artifacts excavated at the royal sites as well as Joseonwangjosillok and Uigwe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oyal family's porcelain usage. Its significance lies in that it examined how the royal family accepted white porce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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