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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된 경계(border)

Title
증발된 경계(border)
Authors
김순아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학부회화·판화전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우순옥
Abstract
본인의 작업은 언어의 명시성을 의문시하고 의미의 불확정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현실 재현에 대한 의문에 서 출발한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가장 명료하게 전달해 줄 것 같은 매체이지만, 그것의 한계는 때때로 드러난다. 전달을 목적으로 사용된 언어는 오히려 두꺼운 벽이 되어 소통이 아닌 단절로 다가온다. 언어로 만들어진 개념은 사고를 결정하는 모체가 되고 이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고는 결국 이미 학습된 언어에 의해 지배받기 쉽기 때문이다. 본인은 언어를 틀의 은유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언어의 의미를 확대해 보면 구조화된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틀에 갇힌 내용물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이는 인간이 세계의 거대한 조직 안에서 인간 고유의 본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듯이, 전달 매체로써의 기능을 불완전하게 수행하는 언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본인은 불명확한 세계의 원인을 언어에 두었지만 동시에 현실인식의 도구로서 언어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역설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작업전체를 살펴보면 보이는 부분에서 언어가 표면으로 올라와 관객의 경험된 사고활동에 적극적으로 간섭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보이지는 않더라도 수 만 가지의 모세혈관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즉 언어가 문장이나 단어로 직접 출연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업에서는 이야기로 읽혀지도록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어뿐만 아니라 사진과 영상도 불명확한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미술사 안에서 본인 작업의 형식을 찾자면 개념 미술이나 비디오 아트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겠다. 본인 작업의 연구를 위해서 나름의 기준으로 참고해야 할 작가와 저서는 많았다. 미술사 안에서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미술로 분류되어 많은 연구가 된 작가들을 비롯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자료가 부족한 작가까지 다수였지만 세 명의 작가를 선택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작가인 게리 힐(Gary Hill, 1951~ , 미국)은 현실인식의 도구로서 언어를 상정하였다는 점으로는 구조주의에서 출발하였고 그 언어의 부조리함을 인식하여 해체 후 재 조합하고 있다는 점으로는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견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참고 작가로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언어사용의 의미 때문이다. 개념미술가들이 아이디어로써 비물질화된 언어를 사용했던 바와는 달리 그는 언어를 물질화 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본인의 시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언어와 이미지의 긴장 관계형성에 대한 게리 힐의 작업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 벨기에)의 사유에서 보여지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혼용하면서 그 둘이 지시하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연출함으로서 언어와 형상의 관습적 결합방식에 의문을 던졌다. 이러한 이유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글을 참고하였으며 깊고 넓은 사유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준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그 한 권의 책으로도 수많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 외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메시지를 이미지와 함께 말로 담은 작가인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1932∼ , 미국)은 보여지는 작업 그 자체로도 흥미로울 뿐만이 아니라 본인 작업을 다양한 시각으로 돌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그의 일상적 공간에서의 엉뚱한 해프닝의 연출된 연속사진은 논리파괴의 또 다른 형식을 소개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세 명의 작가를 참고한 이유는 그 나름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서로가 다른 형식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언어가 현실 인식의 도구로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점은 같았다. 이것은 본인이 작업에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기도 하며, 세계라는 집이 인간을 드러내기에는 적절치 않은 구조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은 3차원의 공간 안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정신의 세계는 그 공간 안에 갇히지 않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되고 경험된 인간의 활동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탄력적인 세계관이 필요하다. 탄성이 부족한 고무줄이 잡아당기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리듯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관습적으로 세계와 만나는 것은 자신과는 점점 더 멀어짐을 의미한다. '세계 속의 나'가 아니라, 내가 속한 세계가 곧 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My work began with my intention to doubt the expressability of a language and talk about the ambiguity of the meaning of a language. It started at the doubt about the impossible realization of realities. It seems that a language is a medium that can most clearly convey not simply the current situation but also complicated thoughts, but its limitations often appear. A language which is used for the purpose of conveyance became a thick barrier comes close to us as cutting-off rather than communication. This is because concepts made with a language become the mother which determines thoughts, when men's thoughts after all can be easily governed by the language already learned. I view a language as a metaphor of a frame. Therefore, a language, when expanded in its meaning, also means a structured world. Contents closed in the frame are affected by external force. As humans cannot fully express the indigenous nature of humans in the gargantuan organization of the world, likewise a language which performs the function of a medium imperfectly can be talked about in the same context. The type of my work was affected from inside the artists such as conceptual art and video art. In addition, my work attributes the cause of the ambiguity of the world to languages, but at the same time uses languages to emphasize the irrational situation of humans that cannot live without a language as a tool of recognizing reality. In the visible parts of the work, languages surface and positively interfere with the thinking activities that viewers have experienced, and the invisible parts, too, form the flow of talks like tens of millions of capillary vessels. A language itself appears as sentences or words, but other parts are composed to be read like stories. More than that, photos and moving images are used together with a language to present doubts about the ambiguity of the world. There were lots of artists and publications this work had to refer to for its own standard. There are many artists whose works have been studied a lot as conceptual art - closely related languages - in the history of art and artists who are still active, but my work chose three of them. My work began as structuralism in that a language is use as a tool to recognize reality, but in the same context with later structuralists' view in that it recognizes the irrationality of a language and reassembles the language after dissembly, so I first referred to the artist Gary Hill whose view resembles mine in the way of viewing the world. Another reason why I referred to him is the meaning he uses languages. Unlike conceptual artists who non-materialized languages as ideas, he positively used languages in materialization, which is in agreement with my angle of view. The work of Gary Hill concerning the formation of tense relationship between language and image is on the same line as seen in the thought of Rene Magritte. Magritte used images and texts together and produced what they indicate that are not in harmony, thus threw doubts on the customary way how language and image are combined. Because of this, my work referred to works and words of Rene Magritte. And of Michel Foucault which made it possible to share his deep and broad thoughts threw lots of questions even as a book. Furthermore, the work of Duane Michals who put messages of invisible world in images and words is interesting and enabled me to look my work in various angles. In particular, the sequential story-photos of abrupt happenings in the ordinary spaces were things which introduce another form of destroying logics. As considered above, my work referred to these three artists because they have some in common with me. They attempt to speak in different ways, but are same in the thought that a language is not enough as a tool to recognize realities, which I intented to express in my work. This also means that a house of the world is not a proper frame to express humans fully. It is difficult for a human body to get out of three dimensional space when alive, but the world of mind has a possibility of not being caught in the space. To this end, a elastic view of the world which does not accept humans' learned and experienced activities without criticism. As a rubber band which lacks its elasticity can easily be cut off when it cannot bear an excessive pull, meeting with the world customarily and by taking it for granted means that one gradually draws away from himself because it's not 'myself in the world', but the world to which I belong is also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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