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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선전영화에 표상된 조선의 이미지

Title
일제시대 선전영화에 표상된 조선의 이미지
Other Titles
Image of Chosun reflected in propaganda films during Japanese colonization : In case of 'Chosun Sketch (1939)'
Authors
오카와 히토미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영훈
Abstract
본 논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제작 및 발행된 홍보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일본에 의하여 표상되며 기호화된 조선의 이미지를 밝히려고 하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 홍보자료를 필요로 한 식민지 지배정책에 초점을 맞춰서 조선의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며 유포되었는지, 또한 그 이미지가 홍보자료 속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조선총독부가 정보선전에 힘을 쏟게 된 것은 1920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 조선에 부임해 온 사이토 마코토(斎藤實)총독은 문화정치 아래 '주지(周知)와 선전(宣傳)'을 내걸고 회유정책을 펼쳐나갔다. 이는 선전을 통하여 조선의 사정을 일본 및 외국에 알리며 올바른 이해를 얻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로 인해 조선이 발전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조선총독부는 선전정책을 펼쳐나가는 가운데 짧은 시간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영화에 착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영화이용을 수행하기 위하여 1920년에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官房文書課)에 활동사진반(후에 영화반으로 개칭됨)을 설치하며 이래 해마다 선전용 기록영화 및 극영화를 제작하여 조선 내외로 광범위하게 순회영사를 행하였고 대대적인 선전정책을 펼쳐나갔다. 이처럼 계몽선전 미디어로서 이용된 영화는 식민지 통치의 근본 목표인 조선인 동화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당시 이러한 영화 제작은 조선총독부는 물론이고 일반 영화회사나 개인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총독부에서는 영화제작을 위탁하거나 작품 공모를 통하여 식민지 지배정책의 이념에 맞는 훌륭한 작품을 수집하여 상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작된 영화가 『조선소묘(朝鮮素描)』(1939)이다. 이 영화는 국체관광국의 지도 아래 도호영화회사(東宝映画会社)가 관광 선전을 목적으로 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 그려진 조선의 모습에서는 당시 식민지 지배정책으로 내걸었던 내선일체 및 황국신민화 정책 등의 이념이 반영된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식민지 지배정책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는 영화를 식민지배 정책과 관련시켜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관광 선전영화인 『朝鮮素描』를 당시 조선이 어떻게 표상되었는가를 읽어내는 재료로 선택하여 표상된 조선의 이미지를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로 삼았다. 영화 분석을 위해 앞서 관광 선전영화라는 특징상 식민지 정책 중에서도 관광정책에 초점을 맞춰서 그 전개과정을 고찰하였다. 또한 선전영화와 관광 선전영화와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선전영화가 식민지 지배정책에 있어 이용하게 되는 과정을 고찰하며 관광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그리고 이들 결과를 토대로 영화분석을 하였다.;By analyzing propaganda materials that were produced and published during colonization, the thesis illustrates image of Chosun as represented and symbolized by Japan. With a focus on colonial policies that required propaganda, it is examined how the image of Chosun was fabricated and distributed, and how such images were reflected in promotion materials.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hereunder referred to as 'colonial government') began to focus on propaganda since 1920s. Makoto Saito, the governer-general at that time, put forward the idea of 'universal knowledge and publicity' under culture policies, and adopted conciliatory measures. The policy pursued to report situation of Chosun to Japan and other foreign countries, soliciting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country. In advertising the development of Chosun under the colonization, the colonial government noticed potential of films that could give strong impression to people in a short period of time. To facilitate efficient use of films, the colonial government organized a motion-picture department (later renamed to film department) within official document division in 1920, and produced propaganda documentaries and movies. They widely showed movies in and outside Chosun, as part of a great propaganda policy. Films, as a medium for enlightenment, were useful in realizing assimilation of Chosun people, which was the fundamental goal of colonization. Films were manufactured by commercial companies and individuals as well as by the colonial government. The colonial government would assign film producing to commercial firms, or solicited films to collect movies that advocated idea of colonial policies. 'Chosun Sketch (1939)' is one of the movies produced at that time. The movie was produced by Toho film company under supervision of the tourism bureau to promote tourism. The images of Chosun portrayed in the movie reflect the colonial policies such as 'Japan and Korea as one' and 'Subjugating Korean people to Japanese empire.' This reveals that even movies produced by private sector were influenced by colonial policies, and these movies need to be analyzed in context of colonization. The thesis picked 'Chosun Sketch', a tourism propaganda film, as an important material to interpret how Chosun was represented under colonization. Considering its intention to promote tourism, the argument focused on tourism policies among colonial policies. Also, to illuminate relationship between propaganda film and tourism propaganda film, a process of utilizing propaganda films by the colonial government was examined. The movie was then analyzed based on the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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