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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의 계승 문제와 황실 여성

Title
초기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의 계승 문제와 황실 여성
Authors
배소연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강철구
Abstract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68년에 이르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Julius-Claudius) 가문의 치세 전반에 걸쳐 프린키파투스라는 신체제에 내재된 계승 문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가시화되었다. 군주정을 혐오하는 로마인들의 성향을 숙지하고 있던 아우구스투스는 최대한으로 프린키파투스 속에 내재된 군주정적 성격을 감춰야 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일원이 계승하리란 원칙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에도 계승에 대한 규정을 명문화할 수 없었고, 제위 계승 안보는 프린켑스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되었다. 본고에서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 치세에 사료상 기록되어 있는 간통 사건 재판들을 분석해, 프린켑스들이 제위 계승을 불안하게 할 소지가 있는 황실 여성들과 유력자들을 간통법과 반역법으로 통제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제위 계승 구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여인으로, 아우구스투스의 딸 대 율리아와 아우구스투스의 손녀 대 아그리피나를 들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 가문에 남자 직계 구성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딸 대 율리아는 율리우스 가문의 적통성을 전해주는 매개가 되었고, 그녀에게서 율리우스 가문의 적통성을 지닌 계승 후보들이 탄생했으나 그들은 잇달아 사망했다. 그러나 대 율리아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부과한 결혼의 도구라는 역할에 수동적으로 순응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무리와 함께 아버지의 통제에 저항했고 그 결과 자멸한다. 결국, 대 율리아는 제위 계승을 안정시키는 도구였음에도, 역설적으로 제위를 위협하는 불안요소이기도 했다. 대 아그리피나 역시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우구스투스의 친손녀였으며, 어머니 대 율리아와 마찬가지로 적통성을 전해주는 매개 역할로 제 3대 프린켑스 내정자였던 게르마니쿠스와 결혼했고 아우구스투스의 핏줄을 이은 계승 후보들을 낳았다. 자신이 초대 프린켑스의 혈통이라는 점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나 게르마니쿠스가 사망한 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자부심과 야망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잃게 되었고, 프린켑스의 아내가 되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유지를 받들었던 티베리우스는 아그리피나의 아들들로 제위를 이을 계획이었다. 아그리피나가 굳이 파당을 만들어 정치적 행동을 일삼아 유력한 계승 후보였던 큰 아들들을 파멸시켰던 것은 게르마니쿠스 사후 티베리우스의 아들 소 드루수스가 계승 후보로 유력시되던 상황과 더불어, 기사 계급 출신 근위대장 세야누스가 제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율리우스 가문의 적통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 율리아와 대 아그리피나의 정치적 시도는 제한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율리아의 무리는 정치색을 띄기보다 가족 내 분파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제국 계획이 다름 아닌 황실 내부로부터 공격 받았다는 점은 분명 아우구스투스에게 큰 타격이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대 아그리피나 역시 프린켑스의 아내가 되지 못했으며, 권력을 탐하는 성향으로 인해 자멸했다. 그녀의 정치행위로 인해 황실 내 많지 않았던 계승 후보가 더 줄어드는 양상이 초래되었다. 대 아그리피나 역시 초기 프린키파투스가 안정되는데 저해 요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특히 대 아그리피나가 성취한 제한적 성과가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과도기적 성격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대 율리아는 분명 아우구스투스의 유일한 핏줄이었고, 율리우스 가문의 적통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대 아그리피나는 불안정하긴 해도 프린키파투스가 차츰 안정화되고 있던 시기의 인물이었다.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비롯된 적통성의 힘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티베리우스 치세를 지나며 서서히 희석되어 가는 중이었다. 선대 프린켑스와의 연결성, 혹은 황실 일원이라는 점이 아우구스투스의 적통성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게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아그리피나는 이러한 과도기적 정점에 서서, 구시대의 권리를 주장했던 마지막 율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대 아그리피나는 프린키파투스의 계승 문제에 관련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몸소 겪고 또 보여준 거울이라 할 수 있다.;Throughout the Julio-Claudian reign(B. C. 27 A. D. 68), the uncertainty and the instability innate in the new political system, Principatus, were made visible. Augustus, thoroughly aware of the Roman tendency to abhor the monarchy, ought to conceal the monarchial trait inherent in the principate. Hence, despite the tacit rule accepted by the Roman people and the Senate that a certain member of Domus Augustawas doomed to ascend to the throne as the next princeps, Augustus could not overtly stipulate the provisions on succession. To secure the succession, hence, became the foremost duty for principes. I got the conclusion that they controlled the imperial women and the magnates who could affect the succession scheme through the adultery law and the treason law, through analyzing the adultery cases the ancient historians reported. Among imperial women, Julia the Elder and Agrippina the Elder had the largest room to affect the succession. Julia the elder, Augustus' only daughter, was used as a medium to transmit the Julian legitimacy to the candidates for the succession, due to the lack of male lineal descendants in the family. Her marriage to Marcus Agrippa created several grandsons of Augustus with the Julian legitimacy, but they died before their time consecutively. Yet, Julia the Elder did not comply withher duty imposed by her father passively, but she resisted to Augustus'control with her coterie sharing same opinion with herself against the moral reform. At length, Julia the Elder was the unrest to the succession plan as well as the sole tool to secure the succession simultaneously. Agrippina the Elder, too, allows a wide room for a multifarious interpretation. She was Augustus'granddaughter and like her mother, she transmitted the Julian legitimacy to Germanicus, the third princeps-designate, through marriage. She proved her fertility by producing several children of Augustan lineage. She was said to hold a great confidence in her blood. The sudden demise of Germanicus bereft Agrippina of the foothold to achieve her desire for power and she became the empress-manquee. Adhering to the predecessor's imperial policy, Tiberius planned to hand over the status of princeps to Germanicus in Germanicus'lifetime and to one of his sons after his death. Despite this, why Agrippina was deeply absorbed in thepolitical activities only to destruct her own sons is as follows. Her entrenched claim based on her Augustan sacred blood might have been posed at crisis by the situation that Drusus the Younger, Tiberius' biological son, was regarded as the next princeps after the death of her husband and furthermore, Sejanus, praefectus from equestrian status, gained power and seemed to covet for the prerogative of princeps. Julia's and Agrippina's political ventures imply a limitation in them. The grex Juliae was rather closer to the family faction than a political party. However, the fact that Augustus' moral reform and the imperial plan were challenged by the very members of domus Augusta must have been a blow. In Agrippina's case, she caused her destruction in a sense. Her sons' neutralization created the same problem, which had inflicted Augustus, the lack of the legitimate heirs. Given this fact, she could be evaluated as a culprit to destabilize the stability of succession. I, particularly, ascribed the limited achievement Agrippina fulfilled to the transitional period she lived her life. During this epoch, the principate, still toddling, started stabilization under Tiberius. The clout of Augustan legitimacy was surely effective, but it became diluted gradually during the Julio-Claudian reign. As exemplified in Germanicus'case, the direct link with the predecessors, and the membership of the imperial family turned out to be more crucial than Augustan lineage, as the era passed by. At this transitional juncture, Agrippina the Elder could be called the last member of gens Iuliito claim the right to the throne based on the Julian, that is, Augustan legitimacy. At the same time, she mirrored the uncertainty and the instability innate in the succession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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